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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더 파더', 혼돈의 심연

김지혜 기자 작성 2021.04.21 15:47 수정 2021.05.04 17:30 조회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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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더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지금의 나를 만든 기억을 잃음으로써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모습이 이토록 처절하게 와 닿은 영화가 있었던가.

치매를 소재로 한 많은 영화들은 병으로 인해 무너져가는 인물의 안타까운 외형을 그리거나 그 모습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초점을 맞췄다.

'더 파더'는 다르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아닌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의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체험하게끔 한다. 덕분에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단단한 내공으로 완성된 명연기와 퍼즐판을 바닥에 떨어뜨린 후 편집을 통해 재조합해 나가는 듯한 연출의 영민함 역시 빛난다.

더 파더

안소니(안소니 홉킨스)는 런던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해 집을 오가던 딸 앤(올리비아 콜맨)은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파리로 가겠다고 선언한다. 늘 보던 딸이지만 오늘따라 낯설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내가 알던 나와 가족, 나만의 공간이었던 집조차 낯설어지는 순간의 연속이다.

영화를 보기 전,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예상이라는 것을 하고 가기 마련이다. '더 파더'는 관객의 예상을 벗어나는 구성과 전개로 놀라움을 선사한다. 자신의 건강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인과 그런 아버지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딸이 등장하는 한편 병수발에 지친 가족의 균열과 이를 감지한 노인의 끝 간 데 없는 의심도 엿볼 수 있다. '무엇이 현실에서 진짜 벌어진 이야기일까'라는 호기심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식이다.

이 영화가 선사하는 긴장감은 대부분 실재가 아닌 치매 노인의 헝클어진 머릿속에 기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과 현실의 혼재는 안소니만의 고통이 아니다. 관객 역시 의심과 불안, 공포의 감정을 인물과 함께 공유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는 기억과 현실을 분리하고, 사건의 인과 관계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함을 깨닫게 된다. 그때부터는 안소니의 머릿속이 아닌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더 파더

치매를 앓고 있는 인물에 대한 동정의 시선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을 조장하지 않는 담담한 연출 속에서 인물의 고통은 더욱 생생하게 와 닿는다. 장르가 스릴러가 아니라 기억을 잃음으로써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모습이 공포와 연민을 선사한다.

'더 파더'는 플로리안 젤러 감독이 직접 쓴 동명의 프랑스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집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5명의 배우가 등·퇴장하며 미니멀한 심리극을 완성했다.

공간과 등장인물의 제약은 연극의 특징이자 한계로 꼽히지만 '더 파더'는 연극의 특징을 영화의 효과로 발전시켰다. 여기에 '제3의 연출'이라 할 수 있는 편집의 묘까지 발휘했다.

더 파더

인물의 내적 혼란이 고스란히 와 닿는 건 배우의 빼어난 연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들의 침묵', '한니발' 등에서 광기 어린 카리스마를 발산하던 연기파 배우 안소니 홉킨스는 관록의 연기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오는 25일(현지시간) 열리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생애 두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노린다.

어떤 캐릭터는 배우의 생물학적 나이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얗게 샌 머리와 깊게 파인 주름, 광대뼈 주변으로 내려앉은 검버섯까지 어느 것 하나 가짜처럼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은 혼돈의 심연 그 자체다.

"내 잎사귀가 다 지는 것 같아."라는 안소니의 절규에 관객의 마음도 무너져 내리고 만다. 우리는 모두 죽으나, 온전히 나인 상태로 죽고 싶다. 껍데기만 남은 나는 오롯한 내가 아니기에.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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