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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조제',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멜로는...

김지혜 기자 작성 2020.12.15 09:25 수정 2020.12.16 09:56 조회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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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리메이크 자체가 성역의 침범처럼 느껴지는 영화들이 있다. 그 자체로 완전무결해 더 이상의 '나음'이나 '새로움'을 기대할 수 없는 작품을 건드렸을 때가 그렇다.

2004년 개봉한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감독 이누도 잇신)이 바로 그런 영화다. 이 영화는 2004년 10월 29일에 한국 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였고, 이후로도 몇 차례 재개봉해 7만 5천여 명의 관객과 만났다. 10만 명이 채 안 되는 관객 수를 기록했지만, 단순히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영화의 우수함과 매력이 있다.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와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의 사랑 영화인 동시에 두 청춘의 가장 뜨겁고 아름다운 순간을 담은 영화, 서로를 발견하고 사랑함으로 인해 성장한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또한 아련하고 저릿한 감성과 선명한 이미지, 진한 여운으로 기억되는 멜로 영화의 명작이기도 하다.

조제

이 영화를 김종관 감독과 한지민, 남주혁이 '조제'란 제목의 영화로 재탄생시켰다. 리메이크 영화를 가장 재밌게 보는 방법은 원작을 배제하는 것이다. 적어도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원작의 어떤 기억으로부터 동떨어져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좋다. 쉽지는 않다. 원작을 사랑한 관객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남성 시점의 멜로 중에서도 손꼽히게 남자의 감성을 잘 살려낸 영화다. 그러면서도 여자 주인공의 감정선도 켜켜이 그려내 끝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해냈다.

'조제'는 원작에 빚지고 있을 뿐더러 다르게 나아가지도 못한다. 설계가 잘못된 건축물처럼 각색한 시나리오의 방향이 영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벗어나고자 한 대부분의 시도들은 패착처럼 느껴진다.

타이틀롤인 조제의 캐릭터가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인 조제는 집안에서만 머물며 책을 통해 세상을 간접 경험한 인물이다. 육체적 제약으로 인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지만 신체가 자유로운 누구보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이다. 또 자신감은 낮을지언정 자존감은 높은 인물이다. 그것이 이 인물을 동정의 대상이 아닌 매력적인 존재로 느껴지게끔 한다.

조제

하지만 '조제' 속 조제는 망상가처럼 묘사된 감이 없지 않다. 원작 속 조제는 몽상가거나 공상가일진 몰라도 망상가는 아니었다. 한지민의 연기 자체는 성실하지만 일본어를 번역한 것처럼 느껴지는 딱딱한 문어체 대사 때문인지 강단 있는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함인지 초반에는 힘이 들어가고 뻣뻣해 보이는 감이 없지 않다. 다행히 중반 이후 감정선이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특유의 섬세한 연기로 캐릭터 변화와 설정의 아쉬움을 보완한다.

김종관 감독은 영석(남주혁)을 통해 청년 세대의 불안을 그리고자 했던 것일까. 이 과정에서 여러 인물과의 관계가 드러나는데 그 설정들은 다소 시대착오적이다. 특히 취업을 앞둔 영석의 고민과 진로에 대한 불안함을 묘사하면서 대학 은사와의 껄끄러운 관계를 암시하는 설정은 무리수일뿐더러 사족처럼 느껴진다. 나머지 주변 인물들 역시 존재와 기능의 이유가 모호해 보인다.

남주혁은 어리숙한 듯 담백하게 영석 캐릭터를 연기한다. 한지민의 액션을 주도하면 남주혁이 과하지 않는 리액션으로 감정 연기의 균형을 맞추는 앙상블을 보여준다. 스크린의 신예라고 생각했던 남주혁은 극의 톤과 무드에 잘 어우러지며 전작보다 한 단계 성장한 연기를 보여준다.

조제

연출을 맡은 김종관 감독은 전작 '더 테이블', '최악의 하루', '페르소나:밤을 걷다' 등에서 보여준 공감각적 연출을 또 한 번 선보였다. 얼굴 중심의 클로즈업, 골목길 정서 등을 인장처럼 사용해 인물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한다.

'조제'는 예쁜 영화다. 아름답고 잘생긴 배우가 극의 분위기에 맞게 잘 세팅된 공간에서 감정을 나누며 그들 각자의 고민과 싸운다. 다만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끌어당기는 감정에 의해 사랑에 빠졌다가 끝내 현실에 벽에 부딪혀 돌아설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이기와 가책, 후회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마치 유리창 너머로 저 먼치를 바라보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원작 영화에 큰 빚을 지기도 한다. 원작과 비교돼 아쉬움을 느낄 지점이 많지만 반대로 서사의 구멍과 감정의 흐릿함이 원작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상쇄되는 것이다. 오리지널 영화였다면 '두 남녀는 왜 사랑에 빠졌을까?'라는 의문이 들법한 급박한 서사 전개지만 원작에서 표현된 섬세한 감정의 결을 떠올려보면 인과 관계의 구멍이 메워진다. 물론 이것은 두 영화를 모두 본 관객이라야 느낄 수 있는 공감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남자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멜로 영화였다면 '조제'는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을 아우르기 위해 공을 들였다. 특히 영화는 후반부 조제의 성장에 방점을 찍고 있다. 마치 이 영화는 '집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갇혀 있던 조제가 스스로 집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라는 듯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조제의 모습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조제

그러나 길지 않은 세월 안에 이뤄진 급진적인 성장이 얼마나 현실성 있는가를 따진다면 영화가 선택한 결말은 다소 허무맹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원작 영화와 리메이크를 계속해서 비교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조제'라는 이름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제'의 주효한 미덕 중 하나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조제'만을 온전히 즐긴 관객에게도 원작을 찾아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선사한다.

다행히 원작 영화도 현재 기획전을 통해 상영되고 있어 동시기 두 작품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감상이 될 것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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