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영화 핫 리뷰

[빅픽처] '코로나 포비아' 떨칠 3색 신작…공포·전쟁·드라마

김지혜 기자 작성 2020.02.06 16:49 수정 2020.02.13 16:46 조회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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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젯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악재가 극장가를 강타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2시간 가까이 앉아 있어야 하는 관람 형태의 특성상 극장이 사람들의 기피 순위 1순위로 떠오른 것. 그 결과 1월 영화 관객 수가 2012년 이후 8년 만에 최저치(1,684만 994명)를 기록했다.

설 연휴를 겨냥해 개봉했던 영화들도 흥행 먹구름이 끼었다. 잘 나가던 '남산의 부장들'과 '히트맨'의 경우 개봉 2주 차에 코로나 바이러스 악재를 만나 현재는 손익분기점도 불투명하게 됐다.

이 와중에도 신작은 쏟아지고 있다. 지난 5일 개봉한 세 편의 영화는 장르도 다르고 매력도 달라 골라보는 재미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영화들은 '코로나 포비아'를 이겨내고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클로젯

◆ '클로젯', 하정우의 첫 공포 영화

'클로젯'은 이사한 새집에서 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 딸을 찾아 나선 아빠에게 사건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의문의 남자가 찾아오며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 배우 하정우가 데뷔 17년 만에 처음으로 선택한 공포 영화다. 엄밀히 말해 호러물이라기보다는 공포 요소가 가미된 드라마다.

미술과 음악, 촬영 3박자가 어우러져 조성하는 긴장감이 초반부터 상당하다. 벽장을 미스터리의 통로로 설계하고 민담 속 요괴 어둑시니를 등장시켜 공포감을 끌어올렸다. 특히 '기담'에서 '엄마 귀신'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박지아가 또 한 번 관객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중, 후반부 이야기의 주요 무대가 되는 이계(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세계)의 디자인도 흥미롭다.

이번 영화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하정우와 김남길의 앙상블도 좋다. '상원'으로 분한 하정우는 연기에 힘을 빼 딸을 잃어버린 아빠의 상실감과 막막함을 표현했고, 퇴마사 '경훈'으로 분한 김남길은 장난기 있고 엉뚱한 캐릭터를 설정해 자칫 무겁게만 흐를 수 있는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명진'으로 분한 정시아의 열연은 극의 주제 의식을 극대화시킨다.

다만 공포 영화 마니아라면 몇몇 영화 제목이 떠오를 만큼 기시감을 느낄 수도 있다. 비주얼 구현과 무드 형성에 들인 공을 생각하면 예상 가능한 전개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한여름이 아닌 늦겨울 만나는 공포 드라마는 꽤 흥미롭다.

조조

◆ '조조 래빗', 히틀러를 친구라 믿었던 소년

아버지는 전쟁터에 가고 어머니 로지(스칼렛 요한슨)와 살고 있는 10살 어린이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히틀러 유겐트(Hitler-Jugend: 나치스 독일의 청소년 조직)에 입단한다. 유약하다는 이유로 교관에게 꾸지람을 듣고 친구들에게도 놀림을 당하지만 그에겐 속마음을 터 놓는 자랑스러운 친구 히틀러가 있다. "유대인은 괴물"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조조는 자신의 집에 숨어든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메킨지)를 만나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다.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이토록 밝을 수 있을까. 디즈니풍 동화로 시작해 끝에는 '인생은 아름다워'과 같은 먹먹함과 마주하게 되는 영화다.

아이들은 보고 듣는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기 마련이다. '조조 래빗'은 화자를 10살 어린이로 설정해 아이의 눈에 비친 전쟁의 비극을 극대화시킨다. 유대인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히틀러와 조조 래빗의 대화는 웃프다. 이를 통해 감독은 인종차별과 편견이 어떠한 폭력보다 무섭다고 말한다.

물론 과도한 동화적 상상력이 시대와 상황과 맞느냐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영화를 연출한 타이카 와이티티는 폴리네시아와 러시아계 유태인 혼혈이다. 그는 영화에서 아돌프 히틀러를 직접 연기했다. 자신만의 색깔로 완성한 이 반전(反戰)영화를 지지하고 싶다.

페인

◆ '페인 앤 글로리', 스페인 거장의 내밀한 고백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스페인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사랑과 욕망, 금기라는 주제를 화려한 비주얼과 파격적인 형식으로 그려내면서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확립했다.

신작 '페인 앤 글로리'는 70세가 된 영화 거장이 지난 40년의 영화 인생을 돌이켜보며 쓴 회고록 같은 영화다. 은유가 가득한 시적인 제목을 선호한 전작들과 달리 제목조차 직접적이다. 상처와 영광, 더하거나 빼지 않고 담담하게 제 삶을 고백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슬럼프에 빠진 거장 살바도르 말로(안토니오 반데라스)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분신이다. 중년이 되면서 급격히 노쇠해진 말로는 수술 이후 영화 연출은 물론 삶에 대한 의욕을 잃는다. 회고전을 앞두고 오래전 갈등을 빚었던 배우 알베르토(에시어 엑센디아)를 만나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된다. 또한 오래전 헤어진 연인과 조우해 과거를 추억하고, 아픈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페인

알모도바르는 오래전부터 영화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해왔다. 부모의 뜻에 따라 신학을 공부했고('나쁜 교육'), 남다른 성 정체성('내 어머니의 모든 것')으로 인해 사회와 충돌했으며, 여성과 어머니에 대한 남다른 애정('귀향')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인생사를 작품 속에 녹여냈다.

'페인 앤 글로리'는 집대성에 가까운 영화다. 과거 어떤 영화보다 사적인 이야기며, 내밀한 고백이다. 삶에 있어서 영화가 어떤 의미이며, 사랑은 어떻게 자리매김했고, 모성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일기장에 기록하듯 담담히 써내려 갔다.

파격과 저항이 빠진 알모도바르의 영화가 낯설기도 하지만, 회한과 애수가 켜켜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알모도바르의 팬이라면 필람의 영화이며, 스페인 거장의 독특한 색채를 확인하고 싶은 관객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황금종려상을 놓고 경쟁한 끝에 남우주연상(안토니오 반데라스)을 수상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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