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이게 은퇴작인가요?" 소리 또 나왔다…안재홍의 소름 끼치는 생활연기

강선애 기자 작성 2024.02.13 16:28 조회 2,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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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혹시 이게 안재홍 은퇴작인가요?"

지난해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이 공개됐을 때, 극 중 주오남 캐릭터를 소화한 배우 안재홍을 두고 이런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주오남은 현실 사회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19금 방송을 하는 여성 VJ에 집착하고 야동을 즐기는 음침한 성격의 오타쿠 캐릭터였다. 10kg를 증량한 몸으로 탈모 특수분장을 하고 "아이시떼루"를 외치며 완벽하게 주오남을 소화한 안재홍의 파격 변신은, 칭찬을 넘어 배우 은퇴(?)를 걱정하는 우려로 이어졌다. 마치 내일은 없다는 듯,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주오남 캐릭터로 분한 안재홍에게 "연기 좀 살살 해라", "앞으로 다른 작품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라는 팬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나왔다.

안재홍

그래서 최근 티빙(TVING) 오리지널 시리즈 'LTNS'로 돌아온 안재홍은 제작발표회에서 스스로 "이건 은퇴작이 아닌 복귀작"이라 말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복귀작이라 하기에, 'LTNS'도 만만치 않았다.

'LTNS'는 'Long Time No Sex'의 줄임말로, 제목부터 화끈한 19금 드라마다. 짠한 현실에 관계마저 소원해진 부부 우진(이솜 분)과 사무엘(안재홍 분)이 돈을 벌기 위해 불륜 커플들의 뒤를 쫓아 협박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는다. '윤희에게'로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준 임대형 감독과 '소공녀'로 잔잔한 여운을 남긴 전고운 감독, 두 젊은 감독들이 연출과 극본을 함께 맡아 유쾌한 시너지를 선사한다.

'LTNS'에는 수위가 높은 장면들이 다수 등장하고, 성(性)과 관련한 적나라한 대사들이 핑퐁처럼 오간다. 사무엘과 우진의 뜨거웠던 연애 과정부터 섹스리스 부부의 현실까지 보여주는 안재홍과 이솜은, 보는 이들이 충분히 얼굴 빨개질 만한 과감한 연기를 펼친다. 그러다 보니 안재홍은 두 작품 연속으로 '은퇴설'을 듣는 우스운 상황에 빠졌다.

사실 안재홍은 현실적이고 친근한 캐릭터로 더 익숙한 배우다. '응답하라1988'의 엉뚱한 정봉이, '쌈, 마이웨이'의 다정한 김주만, '멜로가 체질'의 유쾌한 손범수처럼, 우리 주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캐릭터를 특유의 자연스러운 연기로 실감 나게 그려냈다. 배우로서 안재홍의 특기는 이런 '연기인데 연기 같지 않은' 생활연기다.

'LTNS'는 표면적으로 자극적인 19금 드라마로 보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또 다르다. 부부 관계에서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갈등을 현실적으로 풀어내 공감을 이끌어내고, 사랑의 여러 단면과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안재홍은 가정적인 남편인 듯 보이지만 불륜 앞에서 이율배반적 모습을 지닌 사무엘 캐릭터를 특유의 생활연기로 실감 나게 연기해 낸다.

따지고 보면 '은퇴설'을 불러온 주오남과 사무엘도, 이런 안재홍의 '생활연기' 때문에 불거졌다. 실제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 것처럼 실감 나게 소화하니까,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안재홍 그 자체로 투영돼 보이며 은퇴설까지 언급되는 것이다.

두 작품 연속으로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배우로서도 부담되는 일이었을 텐데, 왜 안재홍은 '은퇴설'이란 이야기가 또 나올 것을 감내하며 'LTNS'를 선택한 것일까. 그에게 직접 그 이유를 들었다.

안재홍

▲ "주오남 의식 안 했다, 새로운 이야기에 빠져"

안재홍은 'LTNS'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마스크걸'의 주오남을 의식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LTNS'의 대본을 처음 보고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미 '소공녀'에서 호흡을 맞춘 이솜과 전고운 감독, 대학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온 임대형 감독과 함께 재미있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었다. 이 작품이 지닌 자극성과 높은 수위는 크게 고려할 조건이 아니었다.

"정말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처음 보는 대본이었어요. 수위는 높았지만, 감독님들이 굉장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고 하시는구나, 이걸 내가 어떻게 흥미롭고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여기에 맞는 화법은 무엇일까, 그런 걸 먼저 고민했죠. 또 이솜 배우와, 감독님 두 분과의 조합이 근사할 거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들에 대한 믿음이 강해 같이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임대형 감독은 저랑 동갑 친구예요. 대학생 때, 저희 학교 같은 학과가 아닌 다른 학교의 학생과 작업해 보면 어떨까 해서 만났던 사람이 임대형 감독이었어요. 그때 함께 작업한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는 사이인데, 이런 임대형 감독님과 전고운 감독님이 협업을 한다니, 저도 너무 참여를 하고 싶었어요. 이 감독님들이라면, 새롭고 색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전고운 감독은 85년생, 임대형 감독은 86년생으로, 30대 후반의 젊은 감독들이다. 그래서일까. 부부와 불륜을 주제로 하는 'LTNS'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여타 작품들과 비교해 밝은 에너지와 세련된 매력이 느껴진다. 그 매력의 중심에는 평범한 듯 보이는 사무엘을 평범하지 않게 표현한 안재홍이 있다. 그는 이 캐릭터의 심연에 깔린 '광기'에 주목했다.

"사무엘이란 캐릭터를 처음 접했을 때, 생활밀착형의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굉장히 장르적 얼굴을 띤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인물을 통해 일상적인 면부터 드라마적인 순간까지 다 담아내고, 입체적으로 그려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인물이 곧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여기서 이 인물은 이럴 거야'라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의도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했어요. 예를 들어, 3화에서 백호(정진영 분)에게 실컷 얻어맞은 사무엘을 보고 우진은 걱정돼 눈물을 흘리는데, 사무엘은 '나 왜 재밌지? 내가 살아있는 거 같아'라며 약간의 광기를 보여주죠. 그렇게 조금씩 이 인물의 낯선 모습을 보여주는 게, 굉장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치 양파 껍질처럼 다른 모습이 있는, 다 알 것 같은데 모르겠는, 그런 인물로 그리고자 했어요. 사무엘은 설렘의 감정부터 광기의 감정까지 가져갈 수 있는, 다채로운 캐릭터라 생각했거든요."

안재홍

▲ 세 번째 만난 이솜과 '칼싸움' 같았던 부부 호흡

안재홍은 실제로 미혼이지만, 사무엘이 남편의 위치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우진과의 부부 일상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안재홍은 겪어 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인 결혼 생활을 이해하기 위해 주변 기혼자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다. 그러다 느낀 것은 '부부간의 대화가 마치 칼싸움 같다'는 것이었고, 이를 연기로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제가 아직 미혼이니까 부부의 세계는 '미지의 영역'이죠. 그래서 연기할 때 깊이감이나 무게감이 다를 수도 있어요. 모르는 감정들에 대해 주변 기혼자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는데, 제가 느낀 건 뭔가 칼싸움 같다는 거였어요. 대화 속에 칼이 있더라고요. 극 초반에 거실에서 우진이 아파트 집값에 대한 뉴스를 보며 '왜 우리가 사니까 집값이 내려가냐'라고 불평해요. 사무엘은 그 시선을 보지 못하는데, 제 생각에는 사무엘이 그 집을 사자고 했었을 거 같았어요. 그래서 일부러 시선을 안 주며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갈 거야'라고 말을 해요. 일상적인 대화 같지만, 그 안에 굉장히 층이 쌓여 있고 공격이 난무하는 대화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신 하나하나를 만들며, 일상적인 순간 같지만 굉장히 밀도가 높다는 생각을 하며 연기했어요. '뉘앙스'가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몇 겹의 감정이 쌓인 대화, 그 디테일을 보여줄수록 많은 분들이 '내 얘기 같다'고 느끼실 거 같았어요."

안재홍과 부부 연기를 펼친 우진 역 이솜과는 인연이 깊다.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에서 연인 사이를 연기한 것에 이어, 그가 연출했던 단편영화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에서는 이솜이 여주인공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LTNS'에서 세 번째 호흡을 맞췄다. 안재홍은 이제야 '배우 이솜'을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솜 배우와 친하다고 말할 순 있지만, '잘 안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이솜 배우가 참 동물적인 연기자라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이번에 굉장히 유기적으로 연기했던 거 같아요. 서로가 액션-리액션을 구분하지 않고, 정말 연기하지 않는 듯한 연기를 했어요. 이 작품이 더 큰 공감대를 살 수 있었던 건, 그렇게 이솜 배우와 유기적으로 주고받으면서 연기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친한 사이라 남녀 간의 애정신을 연기하는 게 더 어색하고 민망할 수 있다. 게다가 'LTNS'는 19금 드라마에 소재가 소재인지라, 수위가 높은 애정신이 다수 등장한다. 안재홍은 이솜과의 애정신을 '액션신'으로 이해해 달라 말했다.

"이 드라마는 명백하게 액션 드라마라 생각해요. 정말 액션신 찍듯이 촬영했거든요. 액션보다 더한 액션신도 있었고, 합도 굉장히 중요했죠. 다양한 액션을 해야 했던 작품이라, 액션 드라마로 이해해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이솜 배우와는 세 번째 만나는 작품이긴 하지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선한 작업이었어요. '소공녀'에서는 애틋한 연인이라는 어떻게 보면 단면적인 감정을 짙게 보여줬다면, 제가 만든 단편영화에선 헤어짐을 맞이한 연인의 한 면을 보여줬죠. 이번 작품에선 설렘부터 경멸까지, 다양한 감정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굉장히 새로웠어요."

안재홍

▲ '진짜 같다'는 믿음의 연기, 내가 좋아하는 배우

앞서 언급했듯 안재홍은 '생활연기'의 달인이다.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가상일지라도 너무 자연스러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세상 어딘가에 살아 숨 쉴 것만 같다. 안재홍은 자신이 일부러 생활연기를 보여줘야 하는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자신의 연기를 보는 이들이 '진짜 같다'고 믿으며 작품에 더 몰입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저 개인적으로 늘 품는 생각은, 작품을 보시는 관객이나 시청자분들이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정말 어딘가에 분명 존재할 거 같다는 생각을 하길 바라는 거예요. 진짜 같다는 믿음이요. 그럴수록 작품이 가진 이야기, 메시지를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작품마다 고유한 화법이나 톤 앤 매너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스크걸'에선 거기에 맞는 톤 앤 매너, 'LTNS'에선 또 다른 분위기가 필요하죠. 그래서 그 작품 안에서의 진짜 같은 무언가를 찾아내고 싶어요. '마스크걸'은 굉장히 다크한 장르물인데, 그 안에서의 주오남이란 캐릭터는 우리가 평소 잘 보진 못 해도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 같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장르성 짙은 이야기에서도 뭔가 진짜 같은 생생함을 담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그렇게 톤 앤 매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LTNS'도 마찬가지였고요."

2009년 단편영화 '구경'으로 데뷔한 안재홍은 어느덧 15년의 연기 경력을 쌓았다. 그는 배우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으로 2013년 개봉한 영화 '1999, 면회'를 꼽았다.

"'1999, 면회'가 장편 영화의 첫 주연작이라, 정확한 의미로 데뷔작이라 말할 수 있어요. 그 작품은 제가 지금까지 통틀어서 가장 많이 본 작품인데, 처음 볼 때의 벅참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그때의 감정을 잘 가지고 있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참 운명 같은 일인 거 같아요. 그래서 궁금하고 설레고 기대돼요. 제가 어떤 작품을 만나고 또 어떤 연기를 하게 된다는 건, 다 큰 이유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안재홍

마지막으로 안재홍에게 식상한 질문을 던졌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그러자 뻔한 듯 뻔하지 않은 대답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대중이 연기를 보고 '진짜'라 믿어주는 배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안재홍. 그가 왜 작품마다 '은퇴작'이라는 소리를 듣는지, 새삼 이해가 갔다.

"얼마 전에 품게 된 생각인데, '난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거였어요. 이 말만큼 곧은 마음과 기준은 없는 거 같아요. 그 마음이 저한테는 굉장한 동력이 되고, 스스로의 격려가 돼요. 매 작품 '은퇴를 하는 거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모든 걸 다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작품이 끝나면 잘 환기시키고, 또 다음 작품을 만나면서요. 전 아직 못해본 장르나 캐릭터가 많아서 궁극적인 호기심이 있어요. 진짜 같은 연기, 진짜 같은 순간을 담고 싶어요. 그러면서 그 작품에 온전하게 존재하고 싶단 마음이 커요."

[사진제공=TVING, 넷플릭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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