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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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견뎌, 언젠가 빛날 거야"…수지가 '이두나'에게, 또 과거의 나에게

강선애 기자 작성 2023.11.02 14:55 수정 2023.11.03 11:03 조회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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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넷플릭스 제공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언제부터 연예계에서 '싱크로율'이란 단어의 사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동기화'를 뜻하는 영어 싱크로나이제이션(synchronization)의 줄임말인 '싱크로(synchro)'와 '비율'을 이르는 한자어 '율(率)'을 합쳐 만든 단어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이를 연기하는 배우와 얼마나 일치하는가의 정도를 수치로 표현할 때, '싱크로율'이란 말을 쓰곤 한다. 특히 웹툰을 원작으로 드라마를 만들 때, 캐릭터와 배우의 싱크로율을 따지는 건 당연한 일이 됐다. 이미 웹툰 속 그림으로 접했던 캐릭터이기에, 이를 연기하는 배우와 캐릭터의 싱크로율이 높을수록, 작품에 대한 몰입도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싱크로율이 낮은 캐스팅이라면, 원작 팬들의 외면을 받기 쉽다.

수지는 넷플릭스가 웹툰 '이두나!'를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가상 캐스팅 1순위로 꼽힌 배우다. '이두나!'는 최고의 자리에서 갑자기 은퇴를 선언한 아이돌 이두나와 평범한 대학생 이원준이 셰어하우스에서 한집살이를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로맨스 드라마다. 이두나가 독보적인 외모를 지닌 아이돌 출신이라는 점부터 수지와 닮아 있었고, 평범한 남성과 풋풋한 사랑에 빠진다는 전개는 '건축학개론'을 통해 '국민 첫사랑' 반열에 오른 수지에게 딱 어울리는 설정이었다. 이런 캐스팅 바람은 실제로 성사됐고, 그렇게 수지는 이두나가 됐다.

드라마 '이두나!'는 지난 10월 20일 넷플릭스에서 9회 전 회차가 공개됐다. 공개된 '이두나!' 속 수지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원작 웹툰을 찢고 나온 듯한 수지의 미모는 가히 황홀할 정도였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빛나는 톱아이돌 이두나, 셰어하우스 마당에서 내리쬐는 태양 아래 반짝이는 이두나. 어떤 이두나의 모습이든 매 장면 수지의 독보적인 아름다움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수지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이두나!'는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수지는 '이두나!'에서 외모만 '열일'한 게 아니다. 화려한 아이돌 생활 이면, 홀로 다양한 고통과 외로움을 감내해 온 이두나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불안정한 이두나를 표현하며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피우고 서슴없이 욕을 내뱉는 과감한 연기에도 도전했다. "내가 버는 돈 반은 얼굴값, 반은 욕값이라던데"라는 자조적인 이두나의 대사는 수지의 처연한 눈빛과 어우러져 그 내면의 아픔을 느끼게 했다.

2010년 그룹 미쓰에이 멤버로 데뷔한 수지는 2011년 드라마 '드림하이'의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데뷔 때부터 예쁜 외모로 늘 주목받아온 수지지만, 연기 쪽에서는 냉정한 평가를 맞닥뜨려야 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지금, 배우로서 수지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듯하다. 그 전환점이 된 작품은 지난해 공개된 쿠팡플레이의 '안나'다. '안나'에서 그동안의 모든 내공을 쏟아부은 듯한 감각적인 연기로 호평을 이끌어낸 수지는, 그다음 작품인 '이두나!'에서도 배우로서 성장의 흐름을 이어갔다.

'이두나!'로 다시 한번 배우로서 빛나는 역량을 보여준 수지를 만났다.

수지-넷플릭스 제공

# 외로운 이두나, 수지의 표현

수지는 이 작품과 이두나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컸다. 연기를 하며 두나가 느끼는 아픔에 공감했고, 이를 연기로 잘 표현하고 싶었다. 초반 내면의 외로움을 거칠고 날카롭게 드러내던 두나가 원준(양세종 분)을 만나며 달라지는 모습들을 섬세하게 그려내고자 했다.

"두나를 연기하며 항상, '넌 엉망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라는 적대적인 마음을 가지려 했어요. 그러면 두나가 가지는 경계심이 보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두나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과하게 날 서 있는 느낌으로 연기하려 했어요. 그래서 대본에 없는 욕도 많이 넣고, 어미도 조금씩 바꾸면서 많이 무례하고 이기적이게, 두나를 마음껏 오해할 수 있게 하고 싶었죠. 중반부터는 원준이가 두나의 장난인 듯 진심인 듯 애매모호한 말에 흔들리는 게 많기 때문에, 너무 확실한 표현보단 장난스러우면서 진심 같기도 하고. 그런 말투와 눈빛으로 연기하는 부분에 초점을 두고 연기했어요."

수지-넷플릭스 제공

극 중 두나는 크롭티를 즐겨 입고 한겨울에도 얇고 짧은 패션을 고수한다. 수지가 그런 의상을 찰떡같이 소화해 화면에서는 예쁘게 그려지지만, 실제라면 집에서 입기에 불편한 의상들이다. 이런 '이두나룩'에도 수지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두나는 그 집(셰어하우스)에서 마음이 편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마음이 불편하니, 보이는 것도 불편해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선택한 의상들이에요. 두나는 그 집에 갇혀 감옥처럼 살고 있고, 외출은 잠깐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게 전부예요. 그래서 두나 의상이 항상 얇고 짧은데, 그걸 통해 두나가 더 외롭고 추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이두나!'에 등장하는 수지의 장면 장면이 너무 예뻐서, "마치 수지의 화보집을 보는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온다. 수지는 이런 반응들에 "너무 예쁘게 잘 찍어주셔서 그런 거다"라고 겸손하게 말하며 부끄러워했다. 그렇게 수지의 미모가 극찬을 받은 장면들 중에는, 이두나의 흡연신도 존재한다.

'이두나!'에서는 이두나와 이원준이 처음 만나는 장면을 시작으로, 두나의 흡연신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수지가 담배라니, 몇 년 전의 수지였다면 흡연자 캐릭터는 출연 제의조차 들어가지 않았을 수 있다. 수지 역시 "과거의 저한테는, 이런 대본은 제의가 안 왔을 것 같긴 하다"며 인정했다. 청순한 이미지의 여배우로서 흡연 장면을 연기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는데, 수지는 두나의 외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일환으로 과감하게 흡연 장면을 소화했다.

"초반에 두나가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 그건 두나의 외로움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예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이 턱 막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연기했어요. 두나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거 같은 느낌으로, 세상에 흥미가 없다는 식으로 피우려 했죠. 그래서 추워도 추운 척을 절대 하지 않았어요. 그런 두나가 원준과의 관계가 안정되면서는 담배를 안 피워요. 그러다 다시 두나에게 괴로운 순간들이 오면,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되죠. 그땐 좀 더 불안정한 느낌을 주기 위해, 손을 떨던가 그런 식으로 표현하려 했어요."

수지-넷플릭스 제공

# 아이돌 이두나, 수지의 공감

'이두나!'가 공개된 후,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수지와 이두나의 싱크로율이 높다는 시청자 반응들이 쏟아졌다. 그럼 내면적인 싱크로율은 어떨까. 두나와 수지는 내적으로도 닮은 점이 많을까?

"두나와 제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누군가한테 자신을 설명할 때 과하게 쿨한 척하거나, 남들한테 센 척하는 부분에서 공감했어요. 저도 돌이켜 보니, 활동하면서 힘들더라도 저 자신을 속일 만큼 표현하지 않고 인지조차 하지 않은 채 넘어간 경우가 많더라고요. 두나를 연기하면서, 제가 힘들었던 시절에 그걸 회피했던 지점들이 많이 떠올랐어요."

두나는 아이돌이라서, 연예인이라서 온갖 루머에 시달린다. 은퇴한 이후에도 스토커의 사생활 촬영에 노출되기도 한다. 실제로 유명인의 삶을 살고 있는 수지는 루머에 고통받는 심경을 누구보다 잘 알 터. 수지는 두나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자신의 실제 경험담을 들려줬다.

"제가 활동 초반에 인터뷰를 했는데, 한 기자님이 '가수와 연기 활동 중에 하나만 고른다면?'이라는 질문을 했어요. 그때 '가수'라고 대답한 거 같은데, 기자님이 '이건 못 쓰겠네' 하면서 '그냥 둘 다 좋다고 쓸게요' 하시는 거예요. 전 어렸을 때라, 그 기자님의 대답이 충격적이었어요. '그럼 내가 뭐라고 대답했어야지?'라는 생각에 혼란스럽더라고요. 두나가 느끼는 힘듦이, 그런 부분들이랑 맞닿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사실이 아닌 루머들이 두나를 힘들게 만들었을 수도 있고요. 그런 생각들을 하며 두나를 연기했어요."

수지-넷플릭스 제공

다행히 수지는 세월의 흐름과 쌓인 경험만큼 성장했다. 과거 자신의 힘듦조차 인지하지 않으려 했다는 그는 이제 일과 생활을 분리해서 건강하게 지내는 법을 터득했다. 수지는 "지금은 힘들어하지 않는다. 예전보다 강해졌다기 보단, 예전보다 일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커졌다. 일할 땐 일 하고, 다른 혼자의 시간을 잘 보내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극복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두나에게, 그리고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같다.

"두나에게 '힘들어하는 모든 순간순간들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네가 더 빛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모든 걸 평탄하게 가져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힘든 순간들도 있어야, 다른 상황이 왔을 때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두나에게 '견뎌라'라고 말하고 싶어요. 과거의 저한테도 같은 말을 해주고 싶고요."

# 이두나, 그리고 수지의 성장

두나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 아이돌이었지만 정작 홀로 느끼는 외로움을 어쩌지 못해 밀폐된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 망가뜨리며, 다정하게 다가오는 원준을 밀어내기도 했다. 다행히 수지는 외로움을 극복하는 나름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전 외로움을 느낄수록, 두나처럼 숨는 것도 있지만 그냥 혼자 자기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그래서 남들은 잘 모를 수도 있어요. 자기 시간을 잘 보내면서 견디려고 하다 보면, 그게 큰일처럼 안 느껴지는 거 같아요. 청소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그렇게 집중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는 일을 하면, 저는 스트레스가 좀 해소되더라고요. 그런 기분에 사로잡혀 있지 않으려고, 집중도가 많이 필요한 작업들을 하려고 해요."

'이두나!'는 외롭고 힘들어하던 두나가 따뜻한 원준을 만나 아픔을 치유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이돌로서 겪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노래가 나오지 않아 모든 걸 놓았던 두나는, 원준과의 기억을 안고 다시 돌아간 무대 위에서 그 누구보다 빛난다. 두나의 성장처럼, 가수와 배우로서 10년 넘게 일해온 수지도 그동안 많은 성장을 이뤄냈다. 스스로 느끼는 가장 큰 성장 포인트는, 일을 일로만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데뷔 때와 비교해 제가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전에 비해 일을 일로써 대하려고 하는 건 성장한 부분 같아요. 두나는 '내가 춤과 노래를 못하게 되면, 난 앞으로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을 해요. 전 제가 하는 일이 저의 전부가 되지 않으려 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오히려 일에서도 더 효율적이고, 에너지를 잘 쓸 수 있게 되더라고요. 현장에서도 외부적인 거나 부수적인 거에 덜 신경 쓰고, 좀 더 저 자신에게 집중하려 해요. 예전에는 여러 것에 신경 쓰고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제가 제거에 집중해서 딱 해내는 게, 가장 큰 배려인 거 같더라고요."

수지-넷플릭스 제공

수지는 '안나'에 이어 '이두나!'까지, 자신을 향한 연이은 호평들이 낯설다. 과거 냉혹한 평가들에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기에, 아직도 이런 호평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그래도 그 속에서 수지는 자신의 연기 방식과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전 늘 똑같이, 최선을 다해 묵묵하게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평들이 아직도 낯설고 기분이 이상해요. 처음에는 욕도 많이 먹었으니까(웃음). 그래서 가짜일 거라고 부정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그냥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생겨요. 늘 하던 대로, 그렇게 계속해도 되겠다는 확신이요."

수지에게 '청춘'과 '사랑'이 뭐라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청춘'은 "뭘 해도 빛나는 것", '사랑'은 "안정적인 것"이라 대답했다. 지금 자신도 청춘이라 느끼는지 묻자 "그런 듯하다"며 웃어 보였다.

배우 수지로서, 또 인간 배수지로서, 지금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청춘이 '뭘 해도 빛나는 것'이라면, 지금의 수지는 가장 예쁘고 빛나는 청춘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이두나!'라는 작품도, 두나라는 캐릭터도, 너무 큰 애정이 가요. 연기를 하며 두나가 이해되고 마음이 아파서,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많이 시려요. 이번 캐릭터를 연기하며, 저도 제 과거를 돌이켜 볼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제 자신이 치유되는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이두나!'는 두나에게 성장이 있었던 것처럼, 저에게도 성장을 가져다 준 작품으로 남을 거 같아요."

[사진제공=넷플릭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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