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사촌 동생 죽이고 지인들에 '살인 공범' 누명…뒤틀린 질투가 부른 비극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일 방송된 '네 명의 유괴범 – 누가 거짓을 말하는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앤더블 멤버 장하오, 가수 소유, 배우 박탐희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은지가 사라졌다
때는 1994년 10월 10일, 부산의 한 가정집이야. 주부인 김 씨는 연신 창 밖을 바라보고 있어. 10살된 딸 은지(가명)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거든. 초등학교 3학년인 은지는 평소 오후 1시면 학교에서 돌아왔어. 그런데 이날은 오후 4시가 다 되어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 거야. 그때였어. 집에 전화벨이 울렸어.
"은지를 찾고 싶으면 내 말 잘 들어요. 모레 오후 2시 30분까지 현금 두 장 준비해서 부산 극장으로 나오세요."
은괴가 유괴범에게 납치된 거야. 그런데 유괴범이 요구한 '현금 두 장'은 2천 만원이 아니라, 2백 만원이었어. 보통 유괴는 큰 돈으로 목적으로 하는 계획 범죄인데, 94년 당시 2백 만원은 현재 가치로 채 5백 만원이 안 돼. 유괴범은 아주 큰 돈을 요구하지 않았어.
게다가 은지의 아버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어. 범행 대상이 될 만큼 부유한 집이 아니었어. 그럼 유괴범은 왜 은지를 노린 걸까?
신고를 받은 경찰은 곧바로 은지의 마지막 행적을 추적해. 아이 사진을 들고 학교 주변을 탐문하는데, 은지를 봤다는 목격자가 나타났어. 은지와 같은 학원 친구 소영(가명)이야.
"은지, 아까 어떤 언니랑 저쪽으로 걸어갔어요. 긴 생머리 언니였는데."
실종 당일 오후 1시쯤, 20대의 젊은 여자와 은지가 함께 걸어가는 걸 봤다는 거야. 그런데 당시 은지가 웃고 있었대. 이 말을 들은 형사들의 눈빛이 달라졌어.
"웃으면서 지나갔다면, '절대 모르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 우리가 볼 때 친인척일 가능성이 높고."
-사건 담당 경찰
형사들은 두 사람이 간 방향 쪽에 은지의 친척이 살고 있는지 확인했어. 그 쪽에는 은지의 이모네가 있었어. 목격자가 본 건 20대 젊은 여성. 이모의 딸, 은지의 이종사촌 언니가 바로 20대 였어.
이름은 나경애(가명). 20살의 재수생인데, 긴 생머리였어. 은지와 같이 걸어갔다는 20대 여성이, 이종사촌 나경애가 맞을까? 다음날 경찰은 그녀를 임의동행했어.
"제가 은지를요?! 말도 안 돼요!"
-나경애
나경애는 펄쩍 뛰었어. 형사들이 의구심을 가지려던 그때, 누군가 다급히 전화를 걸어왔어. 나경애의 아버지였어.
"집에 와보니까 집이 엉망인 거예요. 경찰들이 왔다 갔다더라고요. 내가 하도 정신이 없어서 처음에는 경애 방에 들어와 앉아 있었어요. 차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자꾸 이상한 냄새가 나더라고요. 냄새가, 부패된 냄새가 나더라고요. 소름이 확 끼치면서 '아, 이거 뭐 이상하다'"
-나경애 아버지
소름 끼치는 악취가 난 곳은, 방 안쪽에 있는 이불보자기였어. 그날 밤 경찰은, 나경애의 방에서, 이불보자기에 싸인 은지의 시신을 발견했어.
그제야 그녀는 모든 범행을 인정해. 더 충격적인 건, 아이를 유괴한 그날 살해했다는 거야.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운 사이, 시신을 집에 숨긴 거야. 그런데 나경애가 털어놓은 비밀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어.
"현우 오빠가 납치해서 돈만 빼내자고 했어요. 정말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나경애
공범이 있다는 거야. 지금부터 나경애가 털어놓은 끔찍한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 네 명의 유괴범
이름은 최현우(가명). 23세의 회사원이야. 나경애는 그가 맨 처음 이 사건을 계획했다고 했어. 이 사건의 주범인 거지. 공범은 또 있었어.
이름 신유리(가명). 나경애의 고교 동창이자 가장 친한 친구야. 재수 중인 나경애와 달리, 올해 대학에 입학했어. 나경애와 신유리, 최현우는 이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고 해. 그리고 또 있어.
이름 정일수(가명). 음식점을 하는 23세 청년인데, 최현우가 데려온 동네 친구였대.
이제 갓 성인이 된 젊은 청년들. 멀쩡하게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고 했던 이들이, 왜 이런 일을 저지른 걸까. 바로, 이 사건 때문이었어.
1994년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트린 범죄조직 '지존파'. 가진 가들을 증오한다면서 살인 공장을 짓고 죄없는 사람들을 살해한 인면수심의 범죄조직이야. 네 사람이 처음 범행을 모의한 1994년 10월 9일, 범행을 저지르기 하루 전날. 나경애에 따르면, 당시 최현우가 이런 말을 했대
"너희 지존파 뉴스 봤어? 심심한데 우리도 한 건 해볼래? 나 엄마가 당분간 돈 안 준다고 했단 말이야."
-최현우
사실 나경애를 제외한 세 사람은 모두 부유한 집의 자녀들이었어. 그런데 지존파를 보고 호기심에 범행을 계획했다는 거야. 단순히 유흥비를 벌려고 끔찍한 모방범죄를 저질렀다는 거야.
다음날, 네 사람은 하교하는 은지를 유인해 미리 준비한 승용차에 태웠어. 몸값만 받고 아이는 돌려보내도 됐을텐데, 굳이 왜 은지를 살해한 걸까. 나경애에 따르면, 신유리가 이렇게 주장했대.
"애가 우리 얼굴을 봤잖아. 집에 가서 다 말하면 어떡해? 그냥 처리하자."
-신유리
결국 네 사람은 은지를 살해하기로 해.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나경애와 신유리가 차에서 내려 망을 봤어. 그리고 최현우가 차 안에서 은지를 교살했어. 이후 정일수가 이불보자기에 감싸 시신을 트렁크에 넣었어. 그리고 다음날 시신을 나경애의 집으로 옮겼다는 거야. 여기까지가 나경애의 주장이야.
경찰은 나경애의 진술을 토대로 세 명의 공범을 검거했어. 지존파 사건에 이어 온 나라가 또 한번 충격에 빠졌어.
▲ 어긋난 진술
그런데 그 시각, 다른 이유로 발칵 뒤집힌 곳이 있어. 당시 부산의 3대 신문사 중 하나인, 부산매일신문사였어. 3대 신문사 중 유일하게 조간신문을 발행하는 곳이었어. 그런데 전날 저녁, 다른 신문사들이 이 사건을 먼저 특종으로 보도한 거야.
"조그마한 교통사고 하나, 사망 사건도 아닌 그런 일반 사건 하나도 사건 취재 과정에서 놓쳐서 낙종을 하게 되면, 엄청난 질책을 받던 분위기였고. 특종과 낙종에 대한 개념이 엄청나게 강했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김형진, 당시 부산매일신문 사회부 기자
엄청난 특종 사건을 놓친 이 신문사는 발칵 뒤집혔어. 급하게 특별 취재팀이 꾸려지고, 김 기자와 동료들은 사건 담당 경찰서로 달려갔어. 그리고 친한 형사 한 명에게 부탁해 간신히 유괴범 중 한 명과 대화하게 됐어. 바로, 나경애의 동창 신유리야.
근데 신유리는 기자 앞에서 아무 말 없이 계속 울기만 해. 별 소득 없이 자리를 뜨려던 그때, 신유리가 입을 열었어.
"저… 진짜 안 그랬어요. 전 그날, 타자 시험 보고 있었다고요!"
-신유리
자신은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거야. 사건 당일 신유리는 학교에서 타자 시험을 봤다며 알리바이를 댔어.
"조사 과정에서 '어제 뭐 했냐, 왜 범행에 같이 가담했냐'라는 질문을 하니, '저는 그때 학교였습니다. 범행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더라고요."
-김형진, 당시 사건 취재 기자
기자들은 사실 확인을 위해 신유리의 학교로 달려갔어. 확인 결과, 범행 당일 타자 시험이 있었다는 건 사실이었어. 신유리의 동기는 이런 말을 했어.
"시험을 치다가 제가 종이가 밀려서 종이가 찢어지는 바람에, 그 시간을 그냥 옆에 친구나 쳐다보고 있었거든요. 바로 옆에 유리가 앉아 있었기 때문에 유리도 쳐다보고, 유리도 저를 보고 웃고. 그런 식이었거든요."
-신유리 학과 동기
김 기자는 신유리 동기들에게 진술서를 받았어. 진술서에는 "신유리가 자리에 앉아있는 걸 봤다. 1분단 중간 자리쯤", "타자시험 마치고 계단 내려올 때, 신유리가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뒤쪽에 있는 아이한테 스테이플러 빌린다고 뒤로 돌아봤을 때 유리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등 구체적인 목격담이 담겨 있었어. 어떤 학생은 타자 시험 당시 배치도까지 그리며 신유리가 당시 현장에 있었다고 증언했어.
이 정도면 사건 당일 학교에서 타자 시험을 봤다는 신유리의 알리바이는 사실일까?
신유리가 범행 당일 학교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는 부산매일신문이 단독 입수한 특종이었어. 그런데 그때였어. 신문사로 한 중년의 남자가 찾아와 "도와달라"고 호소했어. 이 남자는 주범으로 지목된 최현우의 부친이었어.
"그다음 날 주범으로 지목되어 있던 최현우의 아버지가 저희 신문사로 찾아왔습니다. 자기 아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을 하면서, 상당히 억울해하는 그런 톤으로 계속 이야기를 했고, 다른 신문사에도 갔는데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다…"
-김형진, 당시 사건 취재 기자
최현우 역시 범행 당일 알리바이가 있다며 부친이 내민 봉투. 첫 번째 봉투에는, 최현우 동료들의 진술서가 들어 있었어. 범행 당일 최현우가 근무하는 걸 봤다는 내용이야. 두 번째 봉투에는 최현우의 집 전화 통화 내역서가 담겼어. 이건 범행 당일, 최현우가 퇴근 후 집에서 여자친구와 통화했다는 기록이야.
게다가 그의 집과 회사는 부산이 아닌 다른 지역에 있었어. 즉, 최현우가 범행 당일 부산에 있지도 않았다는 거야. 동료들의 진술서와 여자친구와의 통화 기록을 보면, 최현우의 주장은 사실일까?
나경애가 지목한 공범 세 명 중, 두 명이 알리바이를 주장하고 있어. 그럼 마지막 공범, 정일수도 알리바이가 있을까? 김 기자는 정일수가 운영하던 가게로 달려갔어. 그곳에서 정일수의 친구들을 만났는데, 친구들은 사건 당일 정일수가 가게에 있었다며 그 역시 알리바이가 있다는 거야. 더 의아한 건, 정일수는 나경애와 신유리를 경찰서에서 처음 봤대. 그 전에는 알지도 못한 사이였다는 거야.
무죄를 주장하는 세 명의 공범, 그리고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는 나경애. 이들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 조각난 알리바이
부산매일신문은 세 공범의 알리바이를 정리해 즉각 보도했어.
그러자 이번엔 경찰 측에서 난리가 났어.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유괴사건을 해결했다고 발표했는데, 그 중 세 명이 범인이 아닐 수가 있다는 기사였으니까. 경찰은 즉각 반박했어. 공범들이 주장하는 알리바이가 전부 조작됐다는 거야. 지금부터는 경찰 쪽 주장을 말해줄게.
먼저, 대학에서 타자 시험을 봤다는 신유리의 알리바이. 경찰도 범행 당일 신유리가 학교에 간 거까지는 인정했어. 그런데 그날 시험을 본 학생들 중에 뜻밖의 고백을 한 친구가 있다는 거야. 바로 신유리의 친구 A양이야.
"잘못했어요. 그날 유리가 부탁해서 어쩔 수 없이 대리 시험을 쳤어요."
-신유리 친구 A양
A양이 신유리 대신 타자 시험을 봤고, 신유리는 뒤늦게 들어와 그 답안지에 서명만 하고 갔다고 말했어. 다시 말해 신유리가 '가짜 알리바이'를 미리 만들어 놨다는 거야. 그리고 시험 당일 신유리를 봤다던 동기들의 진술. 경찰은 동기들이 뒤늦게 시험장에 도착한 신유리를 본 거라 설명했어. 이후 경찰은 A양을 검찰에 송치했어. 신유리의 대리 시험을 친 혐의로.
"사실 그날 가게에서 친구를 봤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친구를 돕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했습니다."
-정일수 친구
정일수의 알리바이를 진술했던 친구는 역시 뒤늦게 경찰에 이렇게 진술했어. 친구를 도우려 기자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경찰은 최현우의 알리바이 역시 신뢰할 수 없다고 했어. 당시 최현우가 근무하던 회사의 사장이 바로, 최현우의 아버지라는 거야. 그러니까 아버지 최 씨의 강요로 직원들이 허위 진술을 했을 수 있다는 거야. 그럼 여자친구와의 통화 기록은 뭘까. 경찰이 전문가에게 자문한 결과, 이론적으로 통화 기록 조작이 가능하대. 지역 유지인 아버지 최 씨가 전화국의 직원을 매수해서 가짜 기록을 만들었다는 거야.
자, 경찰의 주장을 들어보니 어때? 공범 세 사람의 알리바이는 믿을 수 있는 걸까? 세 공범의 알리바이에 대해 나경애는 이렇게 말했어.
"용서받지 못할 큰 죄를 지었습니다. 무슨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뉘우치지 않는 저들은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나경애
나경애는 공범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어. 이후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경찰과 마찬가지로 세 공범의 혐의를 인정했어. 결국 이 사건의 진실은 재판에서 가려지게 됐어.
▲ 진술의 괴리
그런데 이 사건 재판을 맡은 판사의 별명은 '호랑이 판사', 반인륜적 강력 사건에 중형을 선고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 당시에 모든 국민들이 '과연 이 사람들이 진범이냐 아니냐' 엄청 관심을 많이 가졌던 사건이니까. '이 사건은 특히 신중한 심리를 해야겠다' 싶었죠. 시민들이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은 결국 법원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법원에 있는 법관들이 함께 정답을 찾아 나가는 그런 자세,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게 아니냐…"
-박태범, 당시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그런데 박 판사가 사건 기록을 살펴보니, 한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었어. 그게 뭔지, 나경애의 진술을 다시 살펴볼게.
94년 10월 9일 네 사람은 최현우의 제안에 따라 범행을 계획했어. 그리고 다음날인 10월 10일, 나경애는 하교하는 은지를 유인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어. 이후 약속된 시간에 아이를 데리고 미리 정한 장소로 나갔어. 그곳에서 공범들이 타고 온 차에 은지를 태웠어. 이때까지만 해도, 은지를 해칠 생각은 없었대. 은지 부모에게서 돈만 받아내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이들은 한시간 여를 달려, 부산 남포동으로 향했어. 당시 이 곳은 '부산의 명동'이라 불리는 핫플이였어. 유괴한 아이를 데리고 한 시간 여를 달려 번화가로 간다? 좀 이상하지?
나경애는 이후 신유리의 주장대로 아이를 살해하기로 했고, 공범들과 살해 장소를 고민했다고 해. 나경애가 지목한 살해 장소는, 남포동에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부평동의 한 골목길. 그 곳에 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은지를 살해했다는 거야. 실내도 아닌 길가에서 범행을 저지른다? 이것도 쉽게 납득이 안돼.
그래서 박 판사는, '현장 재검증'을 하기로 해. 직접 현장에 나가서 나경애의 진술을 확인해 보겠다는 거야.
그런데 직접 확인해 보니, 나경애가 지목한 살해 현장이 좀 이상해. 현실적으로 여기서 살해를 저질렀다는 게 납득이 안 가.
"차를 여기 가게 앞에 댈 수가 없어요. 대 놓으면 우리가 대 놓지 못하게 해요. 당장 장사를 하는데, 여기 가게 앞에 차를 대면, 차가 막아 놓으면 손님이 들어올 수가 없거든요."
-범행 현장 앞 가게 사장
당시 취재팀이 직접 확인해 보니, 이 골목은 차량 통행이 많아서 단 1분도 차를 댈 수 없는 곳이었어. 이런 지적에 대해 현장에서 나경애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차 안에서 나올 때는 망을 본다고 나왔는데, 사실 나와서는 망을 본 게 아니거든요..."
(이 장소가 살해 장소인지 아닌지 모른다는 거냐 묻자)
"지금 현재는요…"
-나경애
현장 재검증 결과, 나경애의 진술은 신빙성을 잃었어. 반대로 세 공범의 알리바이가 사실일 확률이 높아졌어.
▲ 새로운 증거
그 시각, 부산매일신문의 김 기자는 고민에 빠졌어. 알리바이를 입증할 증거들이 경찰 조사에서 무용지물이 됐잖아. 세 공범이 정말 누명을 쓴 거라면, 그들의 무죄를 입증할 또 다른 증거가 필요해. 그때, 한 젊은 여성이 김 기자를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어. 바로, 최현우의 여자친구였어.
"위치를 옮기고 자리를 옮길 때마다 저에게 늘 전화하는 편이었거든요. 상당히 성격이 자상한 편이었습니다. 10월 8일 오후 2시에 대구에 도착해서 8일, 9일, 10일 새벽 1시까지는 저랑 분명히 같이 있었기 때문에, 현우 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습니다."
-최현우 여자친구
범행 당일 10월 10일, 두 사람이 통화한 게 맞다며, 통화 기록이 조작된 게 아니라는 거야. 최현우의 여자친구는 당시 두 사람의 행적을 정리해 타임테이블을 만들어 보여줬어. 거기엔 이런 내용이 있었어.
"1994년 10월 9일 일요일. 언니, 현우 씨, 나, 조카 4명은 현우 씨 차를 타고 운동회 갔음."
범행 당일인 10월 10일에는 회사에 출근했고, 범행을 모의했다는 10월 9일에는 여자친구 조카의 운동회에 참석했다는 거야. 김 기자는 운동회를 열었던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서, 운동회 당일 촬영한 영상이 있냐고 물었어. 유치원 측은 그날 촬영기사를 불러 영상을 찍었대. 그 비디오 테이프에 최현우가 찍혀 있기만 하면, 최현우의 알리바이가 증명되는 거야. 그런데 확인해 보니, 거기선 최현우를 발견할 수 없었어. 김 기자가 실망하고 있던 그때, 유치원 측에서 한가지 정보를 알려줘. 비디오 카메라가 흔치 않았던 1994년. 그런데 딱 한 명, 학부모 중에 캠코더를 들고 온 사람이 있었다는 거야.
"그 당시에는 가정용 비디오카메라가 국산 제품이 처음 나왔기 때문에 신기해서. 일반 사람들이 제가 그걸 메고 찍으면 '어느 방송국에서 나왔냐'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엔 비디오 카메라가 귀했으니까. 운동회에 가서도 아이 친구 엄마들로부터 찍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고, 삼각대 들고 거기서 계속 찍었습니다."
-이상춘, 당시 유치원 운동회 촬영
그날 밤, 상춘 씨 집에 김 기자와 최현우의 변호사가 찾아와 같이 테이프를 돌려봤어.
"그래서 저희 집에서 비디오를 같이 보면서, 쭉 보다가, 스톱! 다시 거기서 몇 번 돌려보다가, '이걸 증거물로 하겠습니다' 하더라고요."
-이상춘, 당시 유치원 운동회 촬영
줄다리기 하는 학부모들 앞을 걸어가는 이 남자. 바로 최현우였어. 그럼 재판에서 최현우의 알리바이가 입증될까?
"운동회 영상에 대해서 검찰은 조작된, 합성한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했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게 합성된 것인지 당시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합성된 게 아니다'… (범행 모의 날인) 10월 9일에는 최현우가 부산이 아니라 대구에 있었다는 것이, 분명히 입증된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박태범, 당시 사건 담당 판사
주범이었던 최현우의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어. 모든 건 나경애가 꾸민 일일까?
▲ 진상을 밝혀라
이후, 부산의 변호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부산지방변호사회에서 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실시한 거야. 그런데 이 진상조사단의 단장을 맡았던 사람은, 문재인 전 대통령. 당시 문재인 변호사야.
"당시 문재인 변호사 님은 참 열정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저희 취재 과정에서 밤늦게 확인되는 새로운 사실들, 이런 부분들을 밤 11시, 12시에 말씀을 드리면 그때 바로 현장으로 뛰어나오고 직접 확인하시는 그런 열정을 보여주셨습니다."
-김형진, 당시 사건 취재 기자
문 변호사와 진상조사단은 네 명의 피고인뿐 아니라 참고인들까지 모두 만났어. 결과가 발표되고 이 사건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돼. 나경애 뒤에서 사건을 조작한, 진짜 공범을 찾았거든.
▲ 제3의 공범
진상조사단이 직접 기록하고 공증까지 받은 진술서야. 진술의 주인공은 참고인 오 씨. 그는 은지 사건 담당 경찰서에서 다른 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있었어. 그러다 우연히 옆에서 조사 받던 최현우와 정일수를 봤다고 해.
"수사 책임자인 듯 보이는 사람이 애들 진술에 안 맞는 부분이 너무 많다면서, 진술을 맞춰야 한다고 지시하였습니다. 최현우와 정일수가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이 XX들 너희는 살 필요가 없는 놈들이다 죽어야 된다' 면서 무차별 구타가 시작되었습니다."
-참고인 오 씨의 진술 中
당시 경찰은 나경애를 옆에 앉혀 두고, 두 사람이 나경애와 같은 대답을 할 때까지 때렸대. 공범들끼리 서로 말이 다르면, 나경애의 최초 진술을 의심해 봐야 하는데, 오히려 경찰은 16개의 진술이 서로 맞지 않는다며 최현우와 정일수를 폭행했다고 해. 최현우가 조사를 받고 유치장에 돌아올 때마다 피멍이 들어왔다고 오 씨는 기억했어.
그리고 아까, 정일수가 나경애와 모르는 사이라고 했잖아? 사실 나경애가 처음 공범이라 지목한 건 정일수가 아닌, 박동수(가명)라는 사람이었어.
"처음에 경찰서에서 이종사촌 언니인 나경애가 지목한 공범은 '박동수'라는 사람입니다. 이 박동수를 범인으로 지목해서 데려와 실제로 경찰서에서 수사까지 했습니다."
-김형진, 당시 사건 취재 기자
그런데 박동수의 행적을 확인해보니, 사건 당일 의경으로 근무 중이었어. 누가 봐도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으니, 박동수는 범인이 아닌 거야. 경찰은 '진짜 공범'을 대라고 다시 물었어. 그걸, 나경애가 아닌 최현우한테 물어. 고문까지 하면서. 결국 최현우는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친구인 정일수를 지목했어. 그리고 정일수 역시, 경찰의 모진 고민 끝에, '박동수'라는 가명을 썼다고 허위 진술했어.
이게 끝이 아니야. 신유리의 대리 시험을 쳤다고 진술한 A양. 그는 진상조사단에 "그날 유리가 시험을 본 게 맞다"며 어쩔 수 없이 거짓말 했다고 밝혔어.
"(경찰 조사 때) 어땠었냐면, 정말 거기서 하는 소리가 진짜 같은 생각. (대리 시험 친 게) 진짜 아닌데, 저쪽에서 유리가 자꾸 맞다고 우기니까. 경찰이 자칫 잘못하면 며칠 동안 저기 유치장에 들어가서 있어 봐야 된다고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거기에 대한 무서운 것도 있었고."
-신유리 친구 A양
진상조사 결과, 신유리 역시 경찰에 심한 폭행을 당했다고 해. 그래서 친구에게 대리 시험을 부탁했다는 허위 자백을 한 거야. 그리고 진술을 번복했던 정일수의 친구. 그 역시 경찰의 폭행 때문에 거짓 증언을 했다고 밝혔어.
이렇게 경찰의 강압 수사 때문에 허위 진술을 했다는 참고인만 6명. 피의자 뿐만 아니라 참고인까지 폭행한 거야. 다시 말해, 세 공범의 알리바이는 조작된 게 아니야. 진실이었던 거지. 하지만 경찰은 처음부터 세 사람의 말을 믿지 않았어. 대체 경찰은 왜 이렇게까지 한 걸까?
"경찰의 날이 10월 21일입니다. 사건 발생이 10월 21일을 불과 열흘도 앞두지 않은 그런 시기였기 때문에 이 사건으로 해당 경찰서가 포상을 받는 그런 상황까지 갔었던 거죠. 그러니까 더 강력하게 압박하는 그런 수사를 했던 겁니다."
-김형진, 당시 사건 취재 기자
당시 경찰은 나경애의 자백만으로 세 사람을 공범으로 발표했어. 온 나라가 충격에 빠진 유괴 살인 사건을 일찌감치 해결하며, 대통령 표창까지 내정됐어. 그래서 표창을 앞두고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하기 위해 강압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어.
그런데 정말 의혹 뿐일까? 이 사건에는 분명한 '물증'이 있어.
은지의 시신을 감싸고 있던 이불 보자기. 이 사건의 유일한 물적 증거야. 당연히 보관해야지. 이 이불의 상태를 물었더니, 경찰은 이렇게 말했어.
"이거는 지금 소각되고 없습니다. (누가 소각했는지 묻자) 부검실 직원들이요. 부검실 인부들이."
-사건 담당 경찰
부검실 직원이 말도 없이 소각했다는 경찰. 이 주장은 사실일까?
"경찰이 '증거품이다 확보 해둬라' 라고 요청이 있을 때는 보관하죠. 우리 업무 자체가 경찰에서 부검하는 걸 보조하는 역할이지. 우리가 주체하는 역할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우리 마음대로 '남겨두지 말라' 라고 하는데 남겨놓고 이래도 안 될 거고, 경찰이 '남겨둬라' 라고 하는 걸 없애지도 않죠."
-부검실 직원
경찰이 유일한 물증이자 결정적 증거를 제대로 관리조차 하지 않은 거야. 보자기 안에 남아 있을지 모를 지문이나 DNA, 당연히 하나도 조사하지 않았어. 사실이라면 엄청난 직무유기고, 은폐한 거라면 범죄 행위야.
이후 문재인 변호사와 부산지방변호사협회는 고문 경찰 14명을 모두 고소해. 수사 결과, 7명은 혐의가 인정됐고, 그 중 3명에게는 유죄 판결이 내려졌어.
"부산지방변호사회의 진상조사단 그리고 문재인 변호사님 이런 분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 단계까지 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형진, 당시 사건 취재 기자
▲ 끝나지 않은 폭로
그럼 은지 사건의 재판도, 순리대로 흘러갔을까? 신유리 친구 A양이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했어. 그녀의 자술서 내용이야.
"이번에는 진짜 사실만을 말하고 와야지 하는 생각으로 검찰청에 갔었습니다. 하지만 믿어주기는커녕 거짓말을 한다며 때리며 심한 욕을 했습니다."
-A양 자술서 中
경찰과 마찬가지로 검찰 역시, 폭행과 협박을 했다는 거야. 부산매일신문의 김형진 기자는 이 내용을 곧장 보도했어. 그러자, 신문사가 발칵 뒤집혀.
"정말 검찰 조직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문사 사장님께서 서울대를 나오셨는데, 하숙할 당시 인연이 닿는 검찰 고위 간부, 그런 분을 찾아내서 사장님께 연락해 '그만 보도하면 좋겠다'라는 제안을 할 정도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압박을 가했었고."
-김형진, 당시 사건 취재 기자
부산매일신문의 또 다른 기자는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았고, 김 기자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소까지 당했어. 하지만 기자들은 굴하지 않았어. 공범들의 알리바이를 입증할 증거들을 계속해서 보도했어.
"심지어 들리는 소문으로는 '취재 기자들이 구속될 것이다' '회사가 망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무섭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이 사건은 반드시 파헤쳐야 된다, 오히려 그 생각을 더 갖게 되고, 기자 정신을 더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김형진, 당시 사건 취재 기자
하지만 검찰도 팽팽히 맞서. 고문에 의한 조작된 증거를 제외해도 피고인들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다면서. 법정 공방은 날로 치열해졌어. 당시 양쪽에서 신청한 증인만, 무려 98명이야. 당시 형사재판 사상, 최다 기록이래.
그렇게 격렬했던 94년이 지나고, 95년 2월. 드디어 선고만이 남았어. 그런데 그때, 누군가 박 판사의 사무실을 찾아왔어.
"이 사건이 워낙 전국민적인 관심을 자꾸 받게 되고 그러니까, 중진급 검사님들이 저에게 오셔서 '결론을 내리지 말고 박 부장은 그냥 후임지로 가시죠' 당시 흘러가는 분위기가 점점 무죄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강력히 드니까, 다른 재판부에게 선고를 듣는 방향으로 하고 싶다는 그런 뜻에서 부탁이랄까요? 그런 얘기를 많이 했죠."
-박태범, 당시 사건 담당 판사
당시 박 판사는 95년 3월 1일부로 다른 법원으로 발령이 난 상태였어. 근데 검찰이 새로운 증거가 있다며 추가 공판을 열어달라 두번이나 신청한 거야. 박 판사는 그 요청을 다 받아줬고, 선고 기일을 최대한 미루고 미뤄, 전보 일주일 전인 2월 24일로 잡았어. 그런데도 검찰 간부가 선고를 또 미뤄달라는 거야. 박 판사는 이런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어.
"'그래도 재판 받는 피고인들은 이 재판부만 믿고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그냥 무책임하게 내팽개치고 이렇게 갈 수가 있겠느냐'"
-박태범, 당시 사건 담당 판사
선고 공판 하루 전인 2월 23일 밤. 퇴근을 준비하던 박 판사가 왠지 모를 느낌에 집에 전화를 걸었어. 집에 수상한 사람이 오거나, 누군가 쪽지 같은 걸 남기고 간 게 없느냐 물으니, 박 판사의 아내가 이렇게 말했어.
"웬 남자들이 서 있긴 한데. 왜 그러세요?"
박 판사는 이대로 집에 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대. 그래서 일부러 자정을 넘긴 새벽에 집에 들어갔어.
그렇게 선고 기일의 날이 밝았어. 그런데 아침 일찍부터 낯선 남자들이 집에 찾아왔어. 검찰 측 사람들이었어. 결국 박 판사는 도망치듯 집을 나와 이곳으로 향해.
"공판 당일 바로 사무실에 가면 여기저기서 선고를 연기하라고 계속 압력이 들어올 입장이었고, 그 당시에 법원 옆의 작은 섬에 있으면서 선고 시간에 맞춰서 법정에 들어가는 식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했던 거죠."
-박태범, 당시 사건 담당 판사
드디어 선고 공판이 예정된 오후 1시 30분. 박 판사는 법원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재판정으로 향해. 이날 그의 선고를 듣기 위해 법정에 모인 사람은 무려 300여 명. 형사재판 중에 이례적으로 법정에 방송국 카메라까지 등장했어. 그럼, 박 판사의 최종 판결은 뭐였을까?
"이 사건은 평소 피고인 나 씨를 '언니, 언니'라고 좋아하며 따르던 나이 어린 사촌 동생을 유괴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써 너무나 인륜에 반하는 소행으로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이 같은 이유에 따라, 피고인 나경애를 사형에 처한다. 그 외 피고인의 경우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해 각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에 공범 세 명 모두 무죄…"
-1심 판결문 中
하지만 검찰은 이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바로 항소했어. 그리고 95년 12월 8일.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져.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던 나경애는 범행을 반성한다는 점 때문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어. 나머지 세 사람은, 모두 무죄. 많은 이들의 노력 덕분에, 이 세 명의 청년이 억울한 누명을 벗었어.
▲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그런데 박 판사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사건에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있다고 해.
"나경애 그 여자 피고인은 자기가 범행을 했다는 걸 맨 처음부터 시인을 하고 이 세 사람하고 같이 했다고 시종일관 그 진술을 하고 있으니까요. 왜 죄 없는 세 사람을 끌어들인 건지, 하나의 미스터리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박태범, 당시 사건 담당 판사
지금부터 판결문에 기록되지 않은, 30년 전 그날의 또 다른 진실을 들려줄게. 이 모든 비극이 시작된, 94년 5월의 일이야.
사건이 있기 5개월 전. 나경애와 신유리는 해운대 밤바다를 걷고 있었어. 그때 한 청년이 다가와 "사진 찍어드릴까요?"라며 접근했어. 그리고 자기도 일행이 있다며 같이 커피나 한 잔 하자고 했어. 그가 말한 일행이 바로 최현우. 그렇게 처음 만난 세 사람은, 얼마 후 마산으로 여행을 갔어. 그런데 그날, 나경애가 뜻밖의 장면을 목격해.
"전 최현우를 처음 본 이후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가 깨어보니 최현우가 신유리 볼에 뽀뽀하는 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가지 후회스럽고 기분이 좋지 않았으며 수치스러운 느낌도 있었습니다."
-나경애의 진술 中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랑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지. 그런데 수치스럽다니? 사실 나경애는, 이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어. 자기가 짝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역시 신유리를 좋아한 거야. 정작 신유리는 그 남자에게 관심조차 없었대. 근데 하도 연락을 해와서 한 번 만나준 게 다래. 그래서 나경애는 '왜 신유리는 가만히 있어도 모두가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그는 왜 날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한 걸까.
그런데 나경애가 짝사랑 했다는 그 이름. 맨 처음 공범으로 지목했던 '박동수'야. 그러니까 나경애는 자기가 짝사랑했던 박동수와 최현우, 그리고 그들이 좋아했던 신유리에게 끔찍한 누명을 씌운 거야.
그런데 당시 나경애의 감정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나경애의 친구들은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
"경애가 좀 괴팍하다고 해야 되나? 아니 한 번은 유리컵을 입으로 씹어서 깨더라고요."
"경애가 콤플렉스 같은 게 있었어요. 대학 떨어지고 나서는 그게 좀 심해졌고요."
당시 신유리가 다니던 학교는, 나경애가 낙방한 그 대학이었어.
수사 초기부터 경찰은 나경애에게 공범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어. 협박 전화를 받은 은지 엄마가 유괴범의 목소리가 남자였다고 진술했거든. 혹시 제3의 진짜 공범이 있는 건 아닐까? 그를 숨기기 위해 나경애가 세 사람을 지목한 것일 수도 있잖아. '완벽한 거짓말은 진실을 재료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어. 어쩌면 나경애의 진술 안에,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숨겨둔 진실의 조각이 있을지도 몰라.
그 조각을 찾아, 30년 전의 진술조사실로 가볼게.
▲ 진술에 숨은 진실
먼저, 나경애가 협박 전화에 대해 진술한 상황이야.
"현우오빠가 그 집에 전화를 걸어서 돈 갖고 나오라고 했다 그러더라고요. 그랬더니 이모가 '애만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막 그랬다고 하대요."
-나경애의 진술 中
최현우가 협박 전화를 걸었다고 한 이 진술, 당연히 거짓말이야. 그런데 전문가는 여기서 눈여겨 볼 단어가 있대.
"여기서 나경애가 주장하는 거는, 최현우가 은지엄마에게 전화를 이전에 걸었던 내용에 대해서 들은 얘기를 묘사하는 장면이거든요. 이 진술에서 튀는 단어가 '이모'예요. 최현우 입장에서는 '전화한 상대가' 혹은 '애 엄마가' 혹은 '아줌마가' 이런 식으로 제 3자로서 통화 상대방을 지칭하는 표현이 보다 자연스러웠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여기서 나경애가 그것을 묘사할 때 '이모'라는, 본인과 통화 상대방과의 관계를 지칭하는 표현을 썼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이모와 통화한 사람은 나경애일 가능성이 있다…"
-박지선, 범죄심리학자
'이모'라는 단어는 나경애가 본인의 경험을 말하면서 무의식중에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야. 다시 말해 나경애가 남자 목소리를 흉내내 직접 협박 전화를 걸었을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럼, 은지는 누가, 왜 살해한 걸까. 이번엔 나경애가 차에 있던 은지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상황이야.
"은지가 안 울더냐고 하니까 현우오빠가 수건으로 입을 묶어서 안전벨트를 매놨다면서 괜찮다고 그러더라고요."
-나경애의 진술 中
이 진술 역시 나경애의 거짓말이야.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어.
"차 안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봤을 때, 굉장히 튀는 요소가 하나 등장하죠. '수건'입니다. 이 수건을, 실제 범행에 쓰였던 도구로 의심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친밀한 관계, 아는 관계에서 사람을 살해할 때는 옷이라든지, 수건이라든지 어떤 도구를 사용해서 입을 틀어막거나, 목을 조르는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에. 이 진술에 등장했던 수건과 같은 도구를 사용해서 아이를 질식사 시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요."
-박지선, 범죄심리학자
실제로 은지의 사인은 '질식사'로 밝혀졌어. 나경애가 정말 수건을 사용해 범행을 저질렀다면, 은지가 살해된 장소는 수건이 항상 있을 만한 곳이었을 거야.
"수건이라는 물건은 차 안에 있을 가능성보다는 집 안에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도구고요. 지금 여기서 묘사하는 '아이가 우는 상황'이라든지 이런 내용으로 봤을 때는, 아이가 사망에 이른 과정은 뜻하지 않은, 우발성이 굉장히 높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박지선,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교수는 나경애의 집에서 은지가 살해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해. 나경애의 주장처럼, 처음에는 돈만 좀 벌려고 은지를 데려간 걸로 보인대. 이후 본인의 집에서 간식도 먹이고 TV도 보여줬어. 그런데 계획에 없던 일이 벌어진 거야. 은지가 울기 시작한 거야.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는 부모조차도 쉽게 통제하지 못해. 그래서 실제로 많은 유괴범들이 우는 아이를 어쩌지 못해서, 유괴 직후 살해를 한대. 나경애 역시 그 과정에서 은지를 우발적으로 살해했을 거라고 전문가는 추정해.
그리고 시신이 발견된 나경애의 방. 만약 공범이 있었다면, 시신을 어떻게든 자기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숨기지 않았을까. 즉, 이 사건은 나경애가 본인의 집에서 저지른 단독 범행으로 추정돼.
가장 끔찍한 진실이 남아있어. 시신 처리에 관해 의논했다는 나경애의 진술이야.
"다음날 유리한테 물었거든요. 그것 어떻게 했냐. 그러니까 현우오빠가 밤새도록 싣고 다닌 거 같다고. 시체 그것을 어떻게 하지 못하겠다고요."
-나경애의 진술 中
거짓말 속에 숨은 나경애의 본심. 여기선 어떤 게 있을까?
"나경애의 진술에서 가장 놀랍고 충격적인 부분은, 피해자가 유괴돼서 살해되는 전 과정에 대한 진술에 있어서 슬픔이라든지, 후회라든지, 이런 감정 같은 것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나경애가 피해자를 묘사하는 단어가 '그것'. 본인의 친척인 피해자를 지칭하는 데 있어서, '그것'이라는 어떤 물건으로 지칭하는 나경애의 태도가 굉장히 충격적이다."
-박지선, 범죄심리학자
▲ 통발 속 물고기
전문가가 보기엔, 나경애는 피해자에게 죄책감 등의 감정을 느끼지 않은 것으로 보인대. 하지만 이 모든 건 추정에 불과해. 나경애의 진술과 고문에 의존한 수사를 하다보니, 핵심 증거를 모을 골든타임을 놓쳐 버렸거든. 결국 유족들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은지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해. 영원히 절반의 미제로 남았어.
진실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 덕분에 세 공범은 억울한 누명을 벗었지만, 이 사건은 완전히 해결되진 않았어. 만약 1심 판결 이후 검찰이 항소가 아닌 재수사를 선택했다면. 아니면 경찰이 피의자들의 알리바이를 제대로 확인했다면. 그것도 아니면 나경애가 진실을 말했다면. 은지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을까?
김 기자는 이 사건을 떠올리면,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통발'이 떠오른대.
"통발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물고기를 잡는 통발. 이 통발에 물고기가 들어가면 그대로 다시 돌아 나오면 삽니다. 그런데, 당시 검찰의 입장 자체가 통발에 들어간 물고기 같다고 전 생각했습니다. 검찰은 그때 '경찰의 초동수사 과정이 왜, 무엇이 잘못됐는가' '어디서부터 뒤틀어진 건가' 본인들도 인식했으리라고 봅니다. 그때 그냥 돌아 나오면 됐습니다. 그리고 그 수사 책임자에 대해 문책하고, 그다음 무고한 이 젊은이들을 구해내고. 그랬다면 오히려 더 검찰이 박수를 받죠. 그런데도 검찰 권력을 사용해서 자기들이 '처음 기소한 내용대로 몰고 가면 된다'라는 입장을 계속 폈던 겁니다."
-김형진, 당시 사건 취재 기자
통발 속 물고기. 이건 나경애한테도 해당되는 말일지도 몰라. 속수무책으로 우는 은지를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낀 그때라도, 아이를 그냥 돌려 보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이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해. 누구나 한 번쯤, 잘못 끼운 첫 단추에 대해 후회한 적이 있을 거야. 결국 중요한 건, 잘못을 바로잡을 용기가 아닐까. 조금 돌아가고 손해를 보더라도, 기꺼이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 그 용기라면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첫 단추'가 되지 않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