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 47억 횡령 후 성형수술로 '페이스오프' 감행한 남자…집요한 추적극의 전말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5일 방송된 '추적자 vs 도망자-두 얼굴의 남자'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보이넥스트도어 멤버 명재현, 가수 이예지, 이민우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
때는 2013년 1월. 희망찬 새해가 밝았어. 서울에 사는 주연(가명) 씨는 새해를 누구보다 행복하게 맞이했어. 며칠 뒤, 웨딩 촬영을 앞두고 있거든. 행복하겠지? 결혼을 앞두고 단꿈에 젖어 있던 주연 씨.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남자친구와 연락이 안 되는 거야. 얼마 뒤에는 남자친구 휴대전화가 아예 꺼져 있어. 얼마 전까지 함께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를 알아보며 결혼 준비를 하고, 웨딩 촬영이 코앞인데 갑자기 연락 두절이 된 남자친구.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리고, 장소를 옮겨 이곳은 충남 아산에 있는 한 중소기업이야. 2013년 1월 4일 금요일 오전. 이 회사에 다니는 한 남자가 한 통의 문자를 받아. 부하 직원에게서 온 문자였어.
"형님 저 오늘 오후에 출근 좀 할게요. 아버지 몸이 안 좋다고 연락이 와서요."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오후에 출근을 하겠다는 내용이야. 상사는 당연히 '아버지에게 얼른 가보라'고 답장을 했어. 그런데, 오후에 출근하겠다던 부하 직원은 그날 회사에 나오지 않았어. 하지만 회사에서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어. 아프신 아버지 때문에 출근을 못 하나보다 했다는 거야. 그런데 이날이 금요일이라고 했잖아.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오전, 상사는 부하 직원에게서 또 한 통의 문자를 받아.
"저 오늘까지만 못 나가요. 다시 병원에 왔어요. 무슨 일 있으시면 문자로 해주세요."
문자 메시지에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어 보이지. 그런데 이 문자를 보낸 직원은, 그 이후 회사에 나오지 않아. 연락도 안 돼. 회사에서는 직원의 집에 연락을 해봤다고 해. 그런데 가족의 대답은 이랬어.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집에는 아무 일 없는데요. 아픈 사람도 없고요."
집에서도 아는 게 없어. 심지어 아버지가 아프신 것도 아니라는 거야. 그런데, 혹시 이 직원. 누구인지 알겠어? 앞서 결혼을 앞두고 연락 두절이 됐다는 남자친구와 동일 인물이야. 도대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길래 직장도 안 나오고, 여자친구와도 연락이 안 되는 걸까? 먼저 남자의 사진을 보여줄게.
나이는 30대 중반, 김 씨(가명)야. 좀 순하게 생긴 얼굴이야. 어느 날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김 씨. 그런데, 사라진 건 남자만이 아니었어. 김 씨와 함께 사라진 것이 있어. 아주 어마어마한 거야. 그게 도대체 뭘까?
▲ 함께 사라진 어마어마한 것의 정체
김 씨의 이야기는 회사를 넘어 방송국까지 전해졌어. 바로 여기, SBS로. 그 이야기를 들어볼게.
"아이템 회의를 하기 위해서 저녁에 작가하고 담당 팀장하고 저하고 이렇게 회의를 하다가 몇 개의 아이템이 나왔는데. 저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오늘 저녁에 바로 미팅을 하자'라고 했고, 이거는 방송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었죠."
-윤영휘, 당시 '궁금한 이야기Y '연출
당시 윤영휘 피디는 15년 차 베테랑 피디였어. 베테랑 피디의 눈에 이 아이템은 바로 취재를 해야겠다는 감이 딱 왔다는 거야. 그리고, 취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그야말로 상상초월이야. 사라진 김 씨에게 어떤 놀라운 이야기가 있는 걸까?
김 씨가 충남 아산에 있는 한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고 했잖아. 당시 직책은 과장이었어. 2010년 대리로 입사해서 2년 만에 과장으로 진급하며, 나름 능력과 성실함을 인정받은 인물이었다고 해. 김 씨가 일하던 부서는 회사의 자금 입출금을 담당하는 재무팀이었어. 김 씨가 엄청난 것과 함께 사라졌다고 했잖아. 그게 뭔지 짐작이 돼?
김 씨가 회사에 처음 문자를 보낸 1월 4일 금요일. 이날 재무과장 김 씨는 회사 통장에 있던 돈을 자신의 통장으로 6차례에 걸쳐 이체를 했어. 그 금액이 얼마일까?
"큰돈이잖아요, 47억은. 47억 원이면 그때 당시면 더 가치가 더 컸죠. 지금 47억과 그때 47억은 다르죠."
-윤영휘, 당시 '궁금한 이야기Y '연출
재무과장 김 씨가 회사 자금, 무려 47억을 가지고 사라진 거야. 사태를 파악한 회사는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계좌 지급 정지 신청을 했어. 회사의 조치는 빠르고 정확했어. 그런데 문제는, 김 씨가 더 빨랐다는 거야. 김 씨가 결근하고, 1월 4일 날 간 곳이 있어. 서울 강남이야. 충남 아산에 거주하던 김 씨가 왜 강남을 간 걸까? 그 이유를 알면 소름 끼칠 거야.
"지금이야 뭐 이렇게 가상화폐로 사거나 이렇게 할 수 있겠지만, 그땐 그런 시절이 아니었으니까. 가장 (범인 입장에서) 안전한 건 현금이잖아요. 그거는 돈을 인출할 수밖에 없는 거니까 기본적으로."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회사에 아버지가 편찮으시다고 문자를 한 그 시각, 그는 강남에 있었어.
이건 1월 4일 김 씨의 행적이야. 하루 동안 무려 12곳의 은행을 돌아다녔어.
"(김 씨가) 치밀했던 게 은행에 현금이 없어요. 어느 은행 가도 몇 억씩 찾을 수 있는 은행이 없거든요. 지방에는 더 없고."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여기에 주목해야 할 것이 있어. 바로, 이동 동선이야. 이 숫자가 이동한 순서인데, 구역을 한 바퀴 돌 듯 아주 알차게 돌아다녔지. 아산에 거주 중인 김 씨가 어떻게 서울 강남에서 불필요한 동선 없이, 이렇게 착착 은행을 방문할 수 있었던 걸까? 계획을 한 거겠지.
"동선을 미리 계산해 놓은 거죠. 그러니까 거기 강남의 큰 은행을 딱 그려 보면 딱 동선에 맞게 딱 돌았어요."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큰돈을 한꺼번에 인출하기 어려우니, 이렇게 동선을 짜고 1억, 2억, 3억 이렇게 나눠서 인출을 한 것으로 보여. 이 범행, 아주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것 같지.
김 씨는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인 7일에도 은행 5곳을 아주 효율적인 코스로 돌며 돈을 인출했어. 이렇게 인출한 금액이 무려 33억 6천만 원. 횡령한 47억 원 중 나머지 돈은 계좌 지급 정지로 인출을 못한 것으로 보여. 그래도 무려 33억 6천만 원이야. 이 만큼의 현금, 상상이 돼? 이해를 돕기 위해 준비한 것이 있어.
오만원권 한 묶음이야. 100장이니까 500만 원이지. 이 묶음이 672개가 있어야 하는 거야. 어마어마하지? 김 씨는 이렇게 33억 6천만 원의 현금을 가지고 유유히 사라졌어.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몇 년을 함께 한 동료들을 배신하고 말이야.
"제일 배신감이 컸던 사람이 아마 그를 뽑았던 본부장님이 엄청 속상해했죠. 엄청 속상해하고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윤영휘, 당시 '궁금한 이야기Y '연출
"그것도 자기가 번 돈이 아닌데. 다른 사람들의 피고 눈물이거든요…(눈물)"
-피해 회사 본부장
그런데 김 씨가 사라지고 얼마 후, 여자친구 집 앞에 가방 하나가 놓여 있더래. 뭔가 싶어서 열어봤더니, 가방 안에는 명품 시계와 현금 5천만 원이 들어 있었어. 누가 보낸 걸까? 맞아. 남자친구 김 씨가 보낸 거야. '기다려 달라. 데리러 갈게'라는 메시지와 함께 말이야. 이런다고 여자친구가 입은 상처와 배신감이 덜어질까?
물론 물건과 돈은 회사에서 회수를 했다고 해. 그런데 김 씨의 거짓말과 배신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 회사에서 김 씨를 추적하기 위해 그의 행적들을 알아보던 중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어. 김 씨가 입사할 때 제출한 졸업증명서가 거짓, 위조였던 거야. 애초에 해당 학교를 다닌 적이 없대. 영화 '기생충'에 나온 것처럼 학력 위조를 한 거지.
▲ 사라진 김 씨를 찾아라
김 씨를 빨리 찾아야 해. 한시가 급해. 시간이 지날수록 회수할 수 있는 돈은 점점 줄어들 거야. 돈을 계속 쓸 거니까. 말 그대로 시간이 돈인 상황이야.
회사에서는 재빠르게 경찰에 신고했고, '궁금한 이야기 Y'에도 도움도 청했어. 그리고 김 씨를 빨리 잡기 위해 현상금 1억 원을 걸었어. 회사 직원들도 모두 자신의 일처럼 김 씨 찾기에 나섰어. 이렇게 회사, 경찰, 방송이 똘똘 뭉쳐 김 씨 찾기에 나선 거야.
그런데 이 사건, 여타 사건들과 좀 달라. 보통 사건은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지, 범인의 정체부터 알아내야 하잖아? 그런데 이 사건은 범행을 저지른 인물이 누군지 알지. 그렇다면 훨씬 잡기 쉬울까?
"경찰이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사실은 누구인지 알아내는 게 1차 제일 힘든 거거든요. 누구인지 사람만 특정되면 반은 끝났다, 보통 강력 사건들은 그렇잖아요. 근데 반대로 얘기하면 이 친구는 자기 신분이 알려졌기 때문에 더 꽁꽁 숨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을 거 아니에요. '쉽지는 않겠구나. 아, 이거 만만치 않다' 생각을 많이 했죠."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형사들 말대로, 사건이 일어나면 바로 지목당할 텐데 범인이 아무런 대비를 안 했을까? 당연히 철저하게 준비를 했겠지. 오히려 사건 해결이 쉽지 않을 수 있어. 그만큼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들의 수사 능력이 중요하겠지.
한재갑 형사는 사이버수사 특채로 온라인 추적에 특화된 인물이야. 반면, 이경호 형사는 강력팀에서 날아다녔던, 오프라인 추적에 특화된 형사야. 그야말로 온라인, 오프라인 추적의 완벽한 조화, 환상의 콤비인 거지.
"저는 이제 제가 사이버 특채로 들어와서 컴퓨터 쪽을 좀 할 줄 알거든요. 컴퓨터로 분석하고 추적하는 업무를 제가 조금 좋아하고 잘했고."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제가 사이버수사팀에 근무하기 전에는 아산경찰서 강력팀에서 형사로 근무했었거든요. 그래서 추적해서 검거하는 건 좀 원래 자신 있어 했고."
-이경호,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그러니까 둘이 좀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실적이 좀 좋았거든요. 범인을 잘 잡기도 했고."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두 형사는 먼저, 김 씨의 통신, 카드, 통장 내역을 무려 1년 치나 조사를 했어. 하지만 단서가 나오지 않아.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도 당연히 사용하지 않고 있어. 예상대로 철저하게 숨어버린 거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형사 콤비는 일단, 김 씨의 휴대전화 기록을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있었어. 김 씨가 전화를 걸진 않지만, 전화가 걸려올 수는 있잖아. 수신 내역을 확인하려는 거지.
그러던 중, 좀 수상한 번호를 발견했어. 수신 내역 중에 '02'로 시작되는 번호가 나온 거야. 서울에서 온 일반 전화. 김 씨가 서울 강남에 있었던 흔적이 있으니까, 형사 콤비는 이 번호에 주목했어. 수신된 전화번호는 서울 강남에 있는 백화점 번호였어. 백화점에서 김 씨에게 왜 전화를 한 걸까? 형사들은 급히 강남에 있는 그 백화점으로 출동을 했어.
"좀 특이했던 거죠. 백화점에서 왜 전화가 왔지? 여자친구가 여기 있나? 아니면 지인들이 있나? 이렇게 생각하고 우리는 이제 백화점으로 둘이 달려가게 됐던 거죠."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백화점에 물어보니 김 씨가 손님으로 왔었대. 그리고, 이걸 사용했다는 거야.
천만 원짜리 수표야. 그런데, 수표를 사용하려면 이름과 연락처를 남겨야 하잖아. 김 씨가 실수로 자신의 흔적을 남긴 거지. 하지만, 그도 자신의 실수를 바로 깨달았어. 나중에 김 씨가 계산을 다시 할 테니, 수표를 돌려달라고 백화점에 요구했어. 이렇게 백화점에서 수표를 다시 회수해서 돌려주는 과정에서, 김 씨에게 전화를 건 내역이 남게 된 거였어.
김 씨의 이 실수는 아주 중요한 단서를 찾는 계기가 돼. 형사들이 백화점 CCTV를 확인했는데 거기서 뭐가 나왔을까?
김 씨가 백화점에서 명품 쇼핑을 한 거야. 그런데, 김 씨 혼자가 아니었어. 함께 쇼핑하는 남자가 있는 거야. 이렇게 백화점에서 김 씨가 명품 쇼핑을 한 날이, 1월 4일이야. 바로 47억 원을 횡령한 그 날, 김 씨가 어떤 남자에게 명품 구두를 사줬다는 거야. 쇼핑을 함께 한 남자는 김 씨와 어떤 관계일까? 확인을 해봐야지.
▲ 첫 번째 조력자
그런데 이 남자의 신원, 파악할 수 있을까? 아는 건 CCTV에 찍힌 흐릿한 얼굴뿐이잖아. 형사 콤비는 김 씨의 과거에서 현재까지, 주변 인물들의 사진 수백 장을 확보했어. 그리고 CCTV에 찍힌 얼굴과 일일이 대조를 한 거야.
"모든 사람의 인적사항을 추린 거죠. 그래서 몇 백 명이 나온 것 중에서 회사 관계자 빼고, 누구 빼고, 해서 다 추려서 인적사항과 사진 같은 걸 미리 뽑고 있었어요. 사무실 바닥에 쫙 깔아놓고 CCTV랑 비교해보기 시작했던 거예요. 이 중에 하나 있지 않을까. 이 친구(이경호 형사)가 좀 눈썰미가 좀 있거든요, 저보다. 그중에서 CCTV 화면을 보고 몇 명을 추려내더라고요. '어? 이거 비슷하네?'…"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그렇게 추리고 추려서 박 씨(가명)라는 남자를 찾은 거야. 그리고 박 씨를 조사하던 중, 뜻밖의 단서를 발견해. 박 씨 명의로 최근 휴대전화가 새로 개통이 됐는데, 그 뒷번호가 심상치 않아. 개통된 휴대전화 뒷번호 네 자리가, 김 씨가 원래 쓰던 번호와 동일한 거야. 이건 완전 빙고야! 박 씨가 김 씨에게 명의를 빌려준 걸로 보여. 게다가 박 씨가 최근 최고급 외제 승용차를 구입한 사실도 확인됐어. 그렇다면, 이 차 또한 김 씨의 자동차일 확률이 높아. 형사들은 박 씨가 김 씨를 도운 조력자일 거라 판단했어.
먼저 한 형사와 이 형사는 박 씨의 주거지인 빌라를 찾아갔어. 이 집은 박 씨 부부가 사는 집이었다고 해. 박 씨의 빌라를 찾은 형사들은 일명 '귀 대기'를 했대. 문 앞으로 조심조심 다가가서 문에 귀를 대는 거야. 그렇게 집 안 소리를 듣는 거지. 김 씨가 박 씨 빌라에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어.
집 안에서 소리가 들려. 집에 누군가 있어. 하지만 무슨 소리인지 잘 들리지 않아. 그래서 형사들은 근처 병원에서 청진기를 급히 빌려왔대. 청진기로 문밖에서 집 안 소리를 들었는데, 남녀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근데,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있어.
"야, 이 미친놈아! 도대체 명의 갖고 뭐 하는 거야?"
여자가 누구한테 이 말을 한 걸까? 박 씨일까? 김 씨일까? 거친 언사에 놀란 형사들도 집 근처에 모여 긴급회의에 돌입했어. 형사들은 대화 상대가 김 씨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대. 하지만 확신이 없어. 이때 형사 콤비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어. 김 씨가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보기로 한 거야.
형사 한 명이 집 밖에서 전화를 걸고, 또 다른 형사는 문밖에서 귀를 기울이기로 했어. 전화를 거니, 집안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려. 그리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어.
"마지막 승부수를 썼어요. 한 명은 거기서 귀를 듣고 있고요. 청진기로 듣고 있고. 우리 형사 중에 한 명이 미리 훈련을 해서 전화를 했어요 거기로. '야, 너 누구 아니냐?' 잘못 걸려온 것 마냥…"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잘못 건 전화처럼 통화를 한 후, 이 녹음된 통화를 김 씨의 목소리가 맞는지 회사 직원들에게 들려줬어. 하지만 녹음된 목소리는 김 씨의 목소리가 아니었어. 결과적으로 조력자 박 씨의 집에 김 씨는 없었고, 새로 개통된 휴대전화도 김 씨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돼.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야. 또 하나의 단서가 있잖아. 바로, 최고급 외제 자동차. 이 차는 김 씨가 타고 다닐 수도 있어. 차량의 색상, 번호가 파악됐어. 그리고, 이 외제 자동차가 흔치 않은 모델이었다고 해.
형사들은 강남을 샅샅이 뒤지기로 했어. 김 씨가 강남에 왔었고, 강남에 있는 백화점도 이용했잖아. 이렇게 강남에서 자동차 찾기에 나선 거야. 그리고, 자동차 찾기에 함께 한 사람들이 있어. 회사 직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거야. 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1월.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형사와 회사 직원들이 강남 바닥을 뒤졌어.
"저는 그 외제차가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뭐 그 외제차만 찾으면 되겠지 뭐. 강남이 넓어봐야 얼마나 넓어? 돌아다니다 보면 그 차 찾으면 되겠지' 그랬더니만, 강남에 외제차가 많더라고요."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였던 거지. 하지만, 형사도, 회사도 그만큼 절실했던 거야. 작은 단서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말이야.
어렵게 찾은 조력자에게서 나올 단서는 더 이상 없을까? 형사들은 김 씨의 휴대전화 통신 내역에서 특이한 걸 발견했어. 박 씨와의 통화기록이 없다는 것에 주목한 거야. 없다는 게 왜 중요한 걸까? 두 사람이 백화점에도 동행했고, 명의도 빌려줬다면, 어떤 식으로든 연락했을 텐데.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수상하지.
형사들은 조력자 박 씨의 통신 내역을 샅샅이 뒤져봤어. 그리고 '041' 지역 번호로 온 통화 기록을 찾았어. 041은 충남 지역 번호야. 김 씨가 거주했던 지역. 박 씨에게 041로 걸려 온 전화는 한 공중전화 번호였어. 형사들은 바로 공중전화 주변 CCTV를 확보했어. 그리고, 김 씨가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모습을 확인해. 이걸로 새로운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이게 이경호 형사의 아이디어였는데요. (김 씨가) 조력자한테 공중전화로 전화한 내역이 있는데 이 친구가 그 생각을 한번 해 본 거예요. '과연 그 공중전화로 그 친구하고만 했을까? 이왕 한 김에 공중전화로 다른 사람 하고도 연락하지 않았을까?'"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요새 사실 공중전화를 많이 안 쓰잖아요. 분명히 또 다른 사람한테 이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을 수도 있겠구나."
-이경호,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형사들은 공중전화 기록을 살펴보기로 했어. 그러다 이 공중전화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인물 중, 김 씨와 비슷한 연배에, 같은 고향 출신인 정 씨(가명)가 확인됐어. 김 씨가 굳이 공중전화로 정 씨에게 안부 전화를 한 걸까? 아니겠지. 정 씨가 또 다른 조력자일 수 있어.
▲ 가면을 쓴 남자
정 씨를 조사해 봤더니, 최근 개통된 휴대전화가 있는 거야. 형사들은 새로 개통된 휴대전화 통신 내역을 살펴봤어. 그런데, 아주 이상한 기록이 나와.
"통화 내역에 성형외과가 여러 개가 나왔어요. 너무 이상하잖아요. 왜 갑자기 성형외과? 찌릿했어요. '아, 이거 혹시?' 아직도 이경호 형사가 한 말이 기억이 나거든요. '얘 혹시 얼굴? 이렇게 페이스오프? 혹시 그런 거 아니야?' 아, 이건 확인해야겠다. 너무 기분이 이상한 거예요, 성형외과니까."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형사들은 부리나케 광주에 있는 성형외과를 찾아갔어. 확인 결과, 김 씨가 성형외과에 방문했다는 거야. 김 씨가 성형외과에서 성형수술을 한 거야. 성형 전과 후를 보면, 한눈에 인상이 달라졌어. 그가 어떤 수술을 했는지 자세히 들어볼게.
"눈이 좀 부리부리해졌고 그러면 이제 쌍꺼풀은 했겠고. 눈매 교정했을 가능성이 크고요. 눈과 눈 사이 거리가 좀 좁아 보이죠. 앞트임 했을 가능성이 있고. 코 수술, 양 미간을 올리면서 코끝을 더 높였을 것 같아요. 그다음에 코 폭이 줄었으니까 폭도 줄였을 가능성도 있고. 아니면 코끝을 높이면 약간 줄기도 하고요."
-신용호, 성형외과 전문의
저 정도 수술을 하면 정말 못 알아볼까? 성형수술로 인한 이미지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꼬꼬무' 제작진이 준비한 게 있어. '꼬꼬무' MC들이 김 씨처럼 쌍꺼풀 수술, 눈 앞트임, 코 수술, 눈썹 문신을 한다면 어떻게 바뀔까 제작해 봤어.
성형 전후 얼굴이 완전히 달라졌지? 여기에 머리모양과 옷차림까지 바뀐다면? 이러면 알아볼 수 있을까? 형사들이 김 씨의 성형 후 사진을 주변인들에게 보여줬어.
"엄청 많이 바뀌었죠. 회사 관계자도 '몰라보겠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길거리에서 보면 몰라보겠다."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정말 영화에만 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구나. 그리고 내가 쫓는 범인이 그걸 했다니…"
-이경호,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김 씨는 도주 17일 만에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감행했어. 얼굴까지 바꾸고 숨어버린 그를 찾는 게 쉬울까?
▲ 독 안에 든 쥐
지금까지 최소 정 씨 명의의 휴대전화를 김 씨가 쓰고 있다는 건 확인이 됐어. 통신 내역에 또 다른 단서가 있을까? 형사 콤비는 다시 머리를 맞대고 상의에 들어갔어. 형사들은 김 씨가 돌아다니기 힘드니 배달을 시켰을 거라 추리했어. 그리고 통신 내역에서 중식당 번호를 하나 찾았어.
중식당에 확인해 보니, 이 빌라로 배달을 간 적이 있대. 광주에 있는 빌라인데, 3층과 4층 옥탑방이 정 씨 명의로 계약된 사실도 확인돼. 과연 이곳에 김 씨가 있을까? 한 형사와 이 형사가 차를 타고 빌라 주변을 한 바퀴 돌아봤어. 그때, 형사 콤비의 눈이 번쩍! 하고 빛나.
"둘이 이제 걸릴까 봐 차를 타고 거기를 싹 지나가야 되는데, 그 외제차가 거기 딱 있는 거예요."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빌라 주차장에 저희가 그토록 강남에서 찾아 헤매던 외제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걸 확인하고 '아, 여기구나. 여기가 은신하고 있는 곳이구나' 라고 확신하게 됐었습니다."
-이경호,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둘이 부둥켜안고 막 '이거 찾았어, 찾았어' 이랬던 것 같아요 그때 기억이. 제 경찰 생활에서도 그렇게 희열 느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 외제차가 그렇게 반갑더라고요."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그렇게 애타게 찾던 자동차가 빌라 주차장에 떡하니 세워져 있었던 거야. 김 씨가 사용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 위치추적 결과도 역시 이쯤으로 나와. 김 씨 도주 20여 일 만에 드디어 그의 은신처를 찾았어.
그런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파악이 안돼. 밤이 되면 창문에선 희미한 불빛만 보여. 뭔가로 창을 철저하게 가려놓은 듯 해. 과연 저 안에 김 씨가 있는 걸까? 형사들은 빌라의 유일한 출입구인 정문을 딱 지키고 잠복에 들어가. 김 씨가 은신처에서 나오거나 혹은 들어가는 순간, 검거할 계획이야.
1월 말 추운 밤, 경찰들은 차에서 잠복하며 히터도 켤 수가 없어. 시끄러운 소리가 나면 들킬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흘렀지만, 김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형사들의 고민은 깊어졌어. 당장 은신처로 진입하고 싶지만, 만에 하나 조력자만 있다면 꼬리를 자르고 더 깊이 숨어버릴 수 있어.
"그 안에 범인이 있다면 제일 좋은 시나리오로 가겠지만 범인이 없다면…"
-이경호,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만약에 안에 진입을 하거나 하면, 그 사실이 또 범인한테 알려지면 또 꽁꽁 숨어버리게 되잖아요. 굉장히 신중해질 수밖에 없고 잘못 움직였다면 지금까지 수사가 다 물거품 되거든요."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 또다시 연기처럼 사라지다
그렇게 형사들은 무려 일주일째 빌라 앞을 지키고 있어. 그러던 중, 빌라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와. 형사들도 아는 얼굴이야. 김 씨의 두 번째 조력자, 정 씨야. 형사들은 잠시 고민했지만 정 씨를 검거하기로 해. 그리고, 정 씨와 함께 빌라로 들어가. 은신처를 확인해 보기로 한 거야. 김 씨는 은신처에 있을까?
은신처에 김 씨는 없었어. 집 안에서 횡령한 돈의 일부인 1억 7천만 원이 남아 있었어. 거의 만원권이야. 그럼, 김 씨는 애초에 은신처에 없었던 걸까? 사실 형사들이 잠복하고 있을 때, 김 씨가 은신처에 있었다는 거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형사들이 빌라 출입구 앞에서 24시간 잠복을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빠져나간 걸까? 그 답이 은신처에 있었어. 형사들도 깜짝 놀랄만한 것이 방 안에 있었거든.
"회전, 줌, 360도 회전까지 다 가능합니다. 상하 좌우까지."
-피해 회사 직원
"CCTV, 고화질의 CCTV를 설치해 놓고 저희가 왔던 시점부터 저희를 감시하고 있었던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경호,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CCTV가 여러 대가 설치돼 있고 우리가 잠복하는 위치로 다 포인트가 맞춰져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 옥상 밖에 CCTV도 있고 문 앞에도 있고 다 있어요. 그 CCTV를 보는 거죠. 그래서 보니까 우리 잠복하는 것도 보이고. 누가 누구를 감시한 거야, 도대체가."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김 씨가 고성능 CCTV를 여러 대 설치해 놓고 외부를 감시하고 있었던 거야. 이 때문에 경찰의 잠복도 알아챘던 거지. 그런데, 경찰이 출입구를 지키고 있었잖아. 어떻게 빠져나간 걸까?
이건 김 씨가 빌라 옥상에 올라온 모습이야.
그리고, 얼마 뒤 김 씨의 모습은 옆 건물 CCTV에 찍혀 있었어. 김 씨가 옥상에서 옆 건물로 이동했다는 거지. 두 건물이 딱 붙어 있었던 걸까?
건물 사이 거리 어때 보여? 거리가 2미터 50센티야. '궁금한 이야기 Y' 윤영휘 피디도 김 씨가 도주한 빌라 옥상을 직접 가봤다고 해.
"위험해요, 거기가 되게 위험해요. 높낮이가 있어 가지고 폭도 좁고 그래서 잘못 떨어지면 진짜 많이 크게 다칠 수 있죠."
-윤영휘, 당시 '궁금한 이야기Y '연출
김 씨가 빌라 옥상에서 2미터 50센티가 떨어진 옆 건물로 뛴 거야. 심지어 건물 3층 높이에서 말이야. 김 씨는 목숨을 건 무모하고 아찔한 도주극을 펼치며 경찰의 시선에서 빠져나간 거야.
그런데, 말이야. 김 씨가 옥상에서 옆 건물로 뛸 때, 30억 원의 돈을 가져갈 수 있었을까? 30억 현금의 무게는 5만원권으로 해도 거의 60kg이야. 그리고, 옥상에서 포착된 김 씨의 모습은 빈손이었어. 집 안에서 현금 1억 7천만 원도 발견됐잖아. 그렇다면, 혹시 나머지 돈도 은신처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형사들이 주목한 곳이 있어. 바로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자동차 트렁크. 급히 기술자를 불러 자동차 문을 열었어. 하지만 텅 비어 있었어. 자동차 안 어디에도 돈은 보이지 않아. 그렇다면, 어떻게 그 무거운 현금을 가지고 사라진 걸까? 방법은 이거였어.
이 사진을 보면 김 씨가 돈을 옮긴 방법을 알 수 있어. 블라인드에 없어진 것이 있어. 바로 블라인드를 올리고 내릴 때 사용하는 줄이야. 집 안 블라인드마다 줄이 모조리 없어진 상태였어. 김 씨가 블라인드 줄을 연결해서 창문을 통해 돈가방을 1층으로 내린 거야. 형사들의 시야를 벗어난 건물 뒤쪽에 돈가방을 먼저 내려놓고, 몸은 옥상을 통해 이동한 후 돈가방을 회수한 거야.
여러 차례 돈가방을 길가로 옮긴 김 씨는, 택시에 가방을 모두 실은 후 들키지 않고 현장을 빠져나갔어.
"조력자 한 명을 체포하긴 했지만, (주범은) 놓친 거잖아요. 돈도 회수도 못했고. 되게 좀 어떻게 보면 실망도 하고 이렇게 했던 상황이었는데, 그때도 이경호 형사가 조금 힘을 줬던 것 같아요. 어떻게 했냐면 '우리도 타격을 받았지만 범인도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거기까지 쫓아왔고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진 거잖아요. 어렵게, 어렵게 도망갔고. 그렇기 때문에 걔도 멘붕에 빠졌을 것이다…"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형사들은 실망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불타올랐어. 형사들의 집요한 추적에 김 씨도 당황했을 거라고 생각을 한 거야.
▲ 최후의 추적
형사들은 김 씨가 좁혀오는 포위망을 피해 마지막으로 향할 곳을 예측했어. 자신의 명의로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김 씨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도주가 힘들어. 그렇다면, 김 씨가 향한 곳은 어딜까?
"제1 조력자, 그리고 제2 조력자까지 지금 저희한테 발각된 상황이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가족이나 친인척, 가까운 사람하고 접촉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겠구나 싶어서."
-이경호,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지금 걔의 상황이면 분명히 친한 친구나 친척, 이런 데 도움을 얻을 수밖에 없다."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형사들은 김 씨가 고향으로 갔을 거라 생각했어. 김 씨는 전라도에 있는 섬 출신이야. 그리고 김 씨의 고향을 눈여겨 본 사람이 또 한 명 있어. 바로, '궁금한 이야기 Y' 윤영휘 피디. 윤 피디 별명이 '해결사'라고 해. 취재했던 사건들이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거든. 이런 윤 피디가 김 씨의 고향 섬을 취재하던 중, 섬 주민에게 이런 얘기를 들어.
"김 씨 그 사람 친척이 얼마 전에 섬에 들어왔었지. 두 번 들어왔어.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간다던데..."
-섬 주민
얼마 전 외지에서 갑자기 섬에 찾아왔다는 친척. 윤 피디는 이 친척의 행적을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 이 친척이 섬 어디 어디를 갔는지가 정말 중요해. 윤 피디는 섬을 돌아다니는 택시에 주목했어. 섬에서 이동하려면 택시를 타지 않았을까 생각한 거야.
"여기 내려줬거든. 이 길 따라서 (산속으로) 들어가더라고요. 여기를 따라서."
-김 씨 친척을 태운 택시기사
섬에 온 친척은 두 번 모두 저수지에서 내려 달라고 했고, 산 쪽으로 걸어갔다는 거야. 그리고, 친척 손에는 삽이 들려 있었대. 택시 기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야. 결정적인 이야기는 지금부터야.
"내가 물어봤어요. 나갈 때 어떻게 나갈 거냐고... 그랬더니 자기 친구 차가 오기로 했다는 거야. 근데, 내려가는 길에 보니까, 택시가 한 대 올라오더라고..."
-김 씨 친척을 태운 택시기사
혹시 올라오고 있던 택시에 김 씨가 타고 있던 게 아닐까? 택시 기사의 말에 따르면, 마주 오던 택시는 섬 택시가 아닌 외지 택시였다고 해. 윤 피디는 이 말을 듣자마자 선착장으로 달려갔어. 그리고 차량 출입 기록을 확인했어.
"출입을 하는 외지 차량들은 기록을 하게 돼 있거든요. 그래서 수기된 기록을 확인을 하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때 목포에서 들어온 택시가 있었고…"
-윤영휘, 당시 '궁금한 이야기Y '연출
윤 피디는 곧바로 목포로 향했어. 그리고 김 씨로 의심되는 남자를 태웠던 택시 기사를 찾았어.
"그날 우연히 그 손님을 태웠어요. 아이스박스 2개요. 보통 아이스박스 큰 거 있잖아요. 이만한 거. 그쪽에 가서 제가 한 1시간 반 정도 기다렸죠. 그리고 다 놔두고 몸만 오더라고요. 삽도 놔둬버리고. 아이스박스 2개 갖고 와서 삽으로 묻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무엇을. 요즘은 하도 세상이 이상한 세상이라 뭔 시체 같은 것을 그랬는가.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아. 얼굴은 봤는데... (김 씨 사진을 보여주자) 맞아요! 이 사람이에요."
-목포 택시기사
목포에서 만난 택시 기사는 김 씨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어. 김 씨가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가지고 섬에 들어갔다가, 박스를 두고 나왔다는 거야. 수소문해 보니,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목포 택시 기사가 또 있어.
"탈 때 제 트렁크에 박스, 박스만 두 개 실었거든요. 박스가 좀 컸어요. 커서 한 사람이 직접 자기가 두 번 실었거든요. 물어봤어요. 제가. 무슨 일로 가시냐고 했더니 산소에 간다고 그러더라고요."
-또 다른 택시기사
김 씨가 고향 섬에 두 번 들어갔던 거야. 그때도 종이 박스를 들고 택시를 타고 섬에 갔다가, 박스를 두고 나왔다는 거야. 30억 원의 현금이 섬에 묻혀 있는 걸까?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야. 혹시 김제 마늘밭 사건 알아? 2013년에서 불과 2년 전인, 2011년에 있었던 일이야.
김제의 한 마늘밭에서 110억 원의 현금이 나왔던 사건이야. 이 섬 어딘가에도 거금이 묻혀있을 가능성이 높아. 자, 이제 어떻게 해야겠어?
"30억 원, 한 번 찾아봅시다!"
윤 피디와 회사 직원들이 저수지 뒤쪽 산으로 향했어. 이곳저곳을 살피고 막대기로 쑤셔보고 하루 종일 30억 원을 찾아다녔어. 하지만 찾을 수 없었어.
"택시 기사한테 들었고, 그걸 가져다가 들여왔다는 걸 확인을 했고. 일단은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에 이쪽으로 갔으니까 이 주변에 묻었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안 나왔죠."
-윤영휘, 당시 '궁금한 이야기Y '연출
윤 피디와 회사 직원들이 섬에서 돈을 찾는 동안, 형사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어. 택시 기사들의 진술을 확보하고 삽을 들고 택시를 탔던 친척에 대해 조사 중이야. 그러다가, 결정적인 단서 하나를 찾게 돼. 친척 명의로 최근 도시가스가 설치된 기록이 있는 거야. 그 집이 김 씨의 새로운 은신처일까? 형사들은 확신했어. 가까운 친척에게 부탁했을 정도로 김 씨의 상황이 절박하다고 판단한 거야.
▲ 두 번째 체포작전
2월 20일 새벽. 김 씨 도주 48일째. 이번엔 은신처를 바로 확인해 보기로 결정을 해. 은신처는 전남 목포에 있는 한 빌라였어. 혹시 또 CCTV가 설치되어 있을지 모르니, 형사들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물 샐 틈 없이 주변을 에워싸. 은신처 진입 준비가 한창인 그때! 한 통의 연락이 와. 바로, 김 씨의 가족이야. 사건에 엮인 친척에게 이야기를 듣고 연락을 한 거였어.
"저희가 먼저 들어가서 설득을 해 볼게요. 순순히 형사님들 말 따르도록 얘기를 해 볼게요."
형사들은 고민 끝에 이 제안을 받아들였어.
"(김 씨가) 돌출 행동을 할 수도 있는 거고, 또 하다못해 창문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는 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형사들이 여기까지 왔다, 밖에 형사들이 있다. 협조해라', 출입구는 우리가 지키고 있는 거고. '그럼 가서 설득해줘라, 체포에 순순하게 응하게' 그러면 좀 부드럽게 될 수 있잖아요."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형사들이 근처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평소 김 씨가 가장 의지했던 매형이 은신처로 들어가. 그렇게 김 씨와 가족이 마주 앉았어.
매형: "여기서 네가 다른 데로 도피한다든지 그럴 이유가 없다고. 이제."
김 씨: "(밖에 경찰) 다 있어요?"
매형: "다 있어. 딴생각하지 말고. 정말 왜 그런 거야? 돈 때문에 그런 거야?"
김 씨: "회사한테 너무 죄송하고요. 지은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부모님한테는 말로 표현을 못 하죠. 여자친구한테도 그렇고."
형사들이 은신처로 진입했고, 김 씨는 순순히 검거됐어. 그는 형사들에게 이런 말을 했대. "잡히고 나니 마음은 편하네요"라고. 그리고 은신처에선 현금다발들이 쏟아져 나왔어.
은신처에서 발견된 현금은 10억 원 정도였어. 총 33억 6천만 원을 인출했잖아. 자동차를 사고 그동안 돈을 썼더라도 많이 부족해. 나머지 돈은 어디 있는 걸까?
형사들이 김 씨를 경찰서로 이송 후 신문을 했어. 나머지 돈은 어디 있냐 물으니, 김 씨가 말을 안 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거야. 이때, 형사들도 완전 황당했다고 해. 순순히 체포됐고, 이제는 마음이 편하다는 말까지 했는데, 나머지 돈의 행방에 대해 말을 안 하는 거야. 김 씨의 속셈이 뭘까? 나중을 위해 어떻게든 돈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 걸까? 하지만 형사들의 집요한 추궁에, 결국 김 씨가 입을 열어.
"고향에 묻어놨어요."
다음날, 형사들이 바로 김 씨의 고향 섬으로 향했어. 김 씨와 영상통화를 하며 알려준 장소를 파기 시작해.
김 씨가 지목해 준 장소를 팠지만, 돈은 없었어. 하지만, 김 씨의 뜻대로 일이 돌아가지는 않았어. 결국 돈을 찾은 거야. 고향집에서 말이야.
고향집에 숨겨둔 돈은 16억 원이었어. 결국, 인출한 33억 6천만 원 중 대부분의 돈이 회수가 된 거야. 자동차, 구입한 물품, 은신처의 보증금까지 현금화하면 피해 금액에서 90%가 넘게 회복된 것으로 보여. 천만다행이지?
▲ 횡령범 체포 그 후
그런데, 회사에서 현상금 1억을 걸었던 것 기억나? 이 돈의 주인은 누가 됐을까?
"두툼하게 봉투 두 개를 나한테 줘요. 꽤 두툼했어요. 이 정도 했으니까 한… 얼마였을까? 이 정도면 얼마일까요? 안을 안 봤어요. 안 받았거든요. 그걸 준다, 안 받는다, 한 30여 분 실랑이를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목적이 방송을 목적으로, 그걸 취재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았잖아요. (피해) 회사의 도움을 받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돈이) 복권과도 같았어요. 내가 그래서 마지막에는 이거 복권과도 같은데, 나는 이렇게 나의 행운을 여기다 쓰고 싶은 마음은 없다…. 후회요? 돈은 중요하죠. 삶에 있어서. '돈이 뭐길래'가 아니라 소중한 존재이죠. 그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러고들 계시잖아요. 돈은 되게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정정당당했으면 좋겠고요. 전 그 돈을 안 받았을 때 기분이 참 좋았어요. 기분 뿌듯하고. 왜 그런지 모르겠어. 내가 직접 돈을 안 봐서 그러나?(웃음)"
-윤영휘, 당시 '궁금한 이야기Y '연출
검거 후 형사들은 김 씨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어. 김 씨가 도피 기간 중 지출 내역을 가계부 쓰듯 상세히 기록해 놓았거든.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대.
"평생을 쓸 돈이니까 아껴 쓰려고요."
김 씨는 남의 돈으로 얼굴을 바꾸고 인생까지 바꾸려고 했어.
그는 이렇게 많은 돈을 손에 넣었지만 정작 커튼을 모두 내리고 불도 환히 켜지 못한 채 초라하게 마른안주나 뜯고 있었어. 현상금을 거절했던 윤 피디와 노력도 없이 남의 돈을 탐 낸 김 씨. 너무 비교되지 않아?
"이러려고 47억 원을 횡령했나? 정직하게 돈을 벌었으면 더 떳떳하고 당당하게 생활을 했을 텐데. 그 결과물은 그 초라함이었죠. 본인이 벌어서 그랬으면 10만 원을 써도 당당히 썼을 텐데. 1억을 쓰더라도 초라했잖아요."
-윤영휘, 당시 '궁금한 이야기Y '연출
"그러게요. 그렇게 돈 많이 갖고 있으면 행복할까요? 그렇게 불안한데. 뭐 하나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나가가지고? 불안해가지고, 쫓아온다고 생각하면."
-한재갑, 당시 충남아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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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