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몇 놈 데리고 갑니다" 소름 돋는 마지막 통화…가스통 9개 폭파 협박, 25일간 숨 막히는 대치

작성 2026.06.19 16:57 수정 2026.06.19 16:57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8일 방송된 '죽음의 문 앞에서'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고준희, 문희경, 성우 남도형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인질범을 설득하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때는 2016년 3월 28일 오전, 인천 시내 한복판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어. 경찰의 통제선 밖으로 언론사 카메라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통제선 안쪽 한 오피스텔 건물 앞에는 커다란 에어메트가 놓여있어. 구경 나온 시민들로 인산인해야. 그때, 로프를 둘러맨 경찰특공대 대원들이 오피스텔 안으로 줄지어 들어가.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은 한 곳을 향하고 있었어. 바로, 오피스텔의 6층이야.

오피스텔 6층, 굳게 닫힌 문 밖에 파란 점퍼를 입은 남자가 서있어. 그는 문에 바짝 다가가더니 안쪽을 향해 외쳐. "일단 문을 열고 서로 얼굴을 보고 얘기합시다!"라고. 그러자 안쪽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다들 물러서! 이 문 안으로 들어오면, 이 놈 죽이고, 나도 죽어버릴 거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며칠 전, 스물세 살의 청년 우 씨는, 1년 반을 사귄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어. 그리고 이날 오전, 그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우 씨는 여자친구의 집을 찾아왔어. 품 속에 날카로운 칼을 숨긴 채로. 그런데 여자친구는 혼자가 아니었어. 남자 선배와 함께 있던 거야. 우 씨는 바로 달려들어 몸싸움을 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남자 선배가 칼에 찔리고 말아. 그 사이 밖으로 피신한 여성은 바로 경찰에 신고했어. 지금 우 씨가 남자 선배를 칼로 위협하며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야.

이 상황에서 닫힌 문을 여는 건 두 가지 방법이 있어. 문을 강제로 여는 것과, 안에서 스스로 열게 만드는 것. 체포 명령이 떨어지면 경찰특공대가 바로 문을 강제 개방하고 진압 작전을 펼치게 돼. 하지만 강제 진압을 하게 될 경우, 인명 피해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져. 최악의 경우, 인질은 물론 인질범 우 씨 본인까지도 사망할 수 있어.

그렇다면, 어떻게 문을 열어야 할까? 파란 점퍼를 입은 남자는 문 밖에서 우 씨를 설득하기 시작해.

"칼에 찔린 남자부터 병원에 옮겨야 해요. 치료가 늦어져서 사망하게 되면, 더 큰 책임을 지게 됩니다. 그걸 원하시는 건 아니잖아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과연, 굳게 닫힌 문은 열렸을까?

인질극 5시간이 경과한 시각. 갑자기 현장이 분주해지기 시작했어. 그리고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피해자야. 그리고 잠시 후, 인질범이 건물 밖으로 나왔어. 그는 마음을 바꾸고 마지막에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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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인질범

▲ 파란 점퍼의 협상관

인질범을 설득해 스스로 문을 열게 만든 파란 점퍼의 사나이. 그의 정체는 바로, 전문 협상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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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할 때까지 10년 동안, 논현경찰서 위기협상팀, 인천지방경찰청 대테러 위기협상 요원으로서, 협상관으로서 근무했었죠. 위기자라 그러죠. 자살 시도자라든지 인질이라든지 인질범에 대해서 범인을 잡는 것보다도 구출해 내는 것.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임상도 협상관, 당시 인천경찰청 대테러 위기협상팀

위기협상팀에 대해 알아? 인질 강도범, 자살 시도자, 정신이상자 등 생사의 기로에 놓인 협상 대상자를 '위기자'라고 불러. 인질뿐만 아니라, 범인까지 모두 위기자야. 경찰의 목적은 범인을 체포하는 것이지만, 협상관의 목적은 인질도 범인도 안전하게 구출하는 거야. 설령 범죄자라고 해도, 스스로를 구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거야.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생명을 구하는 걸 목적으로 해서 현장에 출동하기 위해서 임시 편성을 해놓는 게 위기협상팀이라고 합니다."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평시엔 각자의 소속팀에서 임무 수행을 하다가,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파란 점퍼를 꺼내 입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거야. 마치, 슈퍼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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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으로 기본 구성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팀장, 그리고 주로 상대와 대화를 하는 주협상관, 그다음에 옆에서 도와주는 보조 협상관, 그리고 정보관, 분석관. 이렇게 5인 체제로 해서 임시 편성을 해놓은 상태입니다."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임상도 형사는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베테랑 협상요원이야. 지금까지 그가 출동한 사건에서 사망한 사람은 한 명도 없어. 성공률 100%의 협상관인 거야. 하지만 퇴직을 몇 해 앞둔 그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을 마주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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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36건은 전부 어떤 위기에 있든 구해냈는데, 그중에서 이 한 건은 좀 울컥해요."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임 형사가 겪은 위기협상 사건 중 가장 오래 지속됐고, 가장 위험했던 사건. 그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오늘 들려줄 거야.

▲ 가스 폭파 위협 사건

2022년 4월 18일 오후 2시경. 임 형사는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어. 야간 당직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야. 그런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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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인천지방청에 근무하고 있던, 저와 같은 위기협상관을 하고 계시던 이덕복 선배가 전화가 온 거예요. 그래서 받아서 '어쩐 일이십니까?' 그랬더니 '야, 너 빨리 간석동으로 와야 되겠다' 그 선배가 전화 와서 '너 어디로 와야 되겠다' 하면, 제 가슴부터가 또 이렇게… '아니 무슨 일이에요?' 그랬더니, '야 간석동에서 누가 가스 폭파하겠대. 빨리 와. 지금 특공대하고 소방팀하고 강력팀하고 다 왔어. 여기 난리야'…"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임 형사는 바로 핸들을 돌려 사건 현장으로 향했어. 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상황이 심상치 않아. 시내 중심가 도로 150m 구간 전체가 통제 중이야. 게다가 경찰 특공대, 폭발물 처리팀까지 출동했어. 현장에 출동한 인원만 100명이 넘어. 임 형사는 차 트렁크에서 파란 위기협상 점퍼를 꺼내 입고, 사건 현장을 바라봤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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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시내 한복판에 있는 8층 상가 건물이야. 이 건물은 재건축을 앞두고 퇴거명령이 내려진 폐건물이야. 이미 전기도 수도도 다 끊어진 상태야. 하지만 이 건물 6층 고시원에 퇴거에 응하지 않고 남은 사람이 있다는 거야. 임 형사보다 먼저 도착한 이덕복 팀장은 현장을 보고 바로 요원들을 소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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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냥 단순 농성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에요. '건물주와 매입자 하고 관계에서 그런 거다' 라고 생각하고 들어가서 내용을 들어보니, 이게 안에 저희도 바깥에서 냄새가 금방 들어올 정도로, 유증기 냄새하고 이런 것들이 굉장히 심했어요. 나와서 보니, 이건 한두 명 갖고 할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멤버들을 다 소집한 거죠."

-이덕복, 당시 인천경찰청 대테러 위기협상팀장

유증기는 기름기 기화해서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는 상태를 말해. 작은 불꽃이라도 튀면, 펑!! 터질 수도 있어. 위험한 건 그뿐만이 아니야. 이날 오후 1시 40분경, 농성 중인 인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해.

"난 조용히 있고 싶은 사람이야. 애먼 사람 죽이기 싫어서 전화하는데, 여기 지금 폭발물 엄청 많아. 가스통 9개, 휘발유도 잔뜩 있어! 내가 진짜 너무 억울해서 다 터뜨려버리고 싶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 팀장과 요원들은 관할 경찰로부터 사건에 관한 브리핑을 들었어. 협박 전화를 한 사람은 이정환(가명), 나이는 52세야. 그동안 6층 고시원을 관리하는 일을 해왔고, 범죄경력이 다수야. 그의 요구조건은 두 가지야. 고시원의 진짜 소유주인 자신에게 이주비용 8억 원을 달라는 것. 그리고 보상금을 가로챈 친구를 구속 수사하라는 거야.

그의 주장은 이래. 10년 전 이 씨는 친구의 부탁으로 자신이 운영하던 고시원의 명의를 빌려줬다고 해. 근데 재건축을 위해 건설회사에서 건물을 사겠다고 하자, 친구가 8억 원에 팔아버렸다는 거야. 결국은 자기 고시원인데 돈 한 푼 못 받고 쫓겨나게 됐다는 거야. 그래서 퇴거에 응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고 해.

경찰은 일단 그의 주장이 맞는지 확인에 나섰어. 확인 결과, 사실무근이야. 10년 전 이 씨와 친구 사이에 고시원 매매 계약서와 거래 대금이 오간 게 확인됐어. 이 씨의 주장과 달리, 정상적으로 매매가 이뤄진 거야. 고시원을 매입한 그 친구는 이 씨에게 고시원 관리를 맡겼대.

"정상적으로 넘어갔고 정상적인 거래가 다 이루어져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실질적으론 아무 권한이 없는 사람이었던 거죠."
-이덕복, 당시 위기협상팀 팀장

근데 이제 와서 그 고시원이 자기거라고 주장하는 거야. 그렇게 이 씨는, 6층 고시원에 진입하려는 경찰에게 휘발유와 시너를 뿌리며 거세게 저항하고 있어. 이 사건, 단순 농성 사건이 아니라, 폭파 위협 사건이야.

가스통이 9개면 위력이 얼마나 될까? 최근 있었던 가스 폭발 사고를 볼게.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 4월 13일 새벽 4시경에 한 아파트 상가에서 일어난 사고야. 엄청난 위력의 가스 폭발은 아파트 상가를 순식간에 집어삼켰어. 폭발 후 사고 현장은 처참했어. 반경 100m까지 피해가 번졌고, 200m 밖에서도 폭발의 진동이 느껴졌어. 당시 폭발이 일어난 식당에는 가스통이 2개 있었는데, 한 개는 빈통이었대. 한 개가 터졌을 때의 위력이 이 정도야.

그런데 여기 고시원에 있는 가스통은 무려 9개야. 물론, 이 씨의 주장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어. 협박하려고 부풀렸을 수도 있으니까.

아까, 굳게 닫힌 문을 열게 하는 방법이 두 가지라고 했지? 강제로 개방하는 것과 안에서 스스로 열게 만드는 것. 근데 둘 다 어려운 점이 있어. 강제 진압을 하려다가 만약 가스통 9개가 한꺼번에 폭발하면 어떻게 해. 그렇다고 그가 요구하는 8억 원을 줄 수도 없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일이 있어도 폭발만큼은 막아야 해. 이제부터 위기협상팀이 나설 차례야.

▲ 협상의 시작

협상 1일차, 오후 3시경. 이덕복 위기협상팀장과 임상도 협상요원은 사건 현장인 폐건물로 들어서. 두 사람은 비상계단을 통해 6층 고시원으로 올라갔어. 한층 한층 오를수록, 이 씨가 뿌린 휘발유 유증기 때문에 숨 쉬기도 힘들어. 어느덧 5층. 거기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소방대원들이 수관을 들고 대기 중이야. 그리고 6층에 도착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대화하는 게 쉽진 않겠다는 생각을 많이 가졌던 이유가 출입구가 6층 내에 엘리베이터를 빼고 나머지는 비상 출입구가 두 개 있는데, 두 군데가 다 바리케이드를 해놓은 거예요. 철문하고 침대 매트리스 이걸 다 쌓아 놓아서 켜켜이 쌓아서 안이 안 보일 정도. 한 4cm, 5cm 정도의 틈 밖에 안 보여요. 그 사이로 대화를 할 때도 그 안에 냄새가 많이 나는 거 보고 '아, 이거는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덕복, 당시 위기협상팀 팀장

지금 위기협상팀이 있는 곳은, 고시원 정문으로 향하는 남쪽 계단이야. 그리고 또 다른 출입구는 북쪽 계단. 여기 고시원의 출입구는 두 개의 비상계단뿐이야. 매트리스 틈새로 들여다 본 고시원 내부는 캄캄해.

"여기 건물 자체가 전기 수도가 다 차단되어 있는 상태다 보니까, 안이 컴컴해요. 내부 상황을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이덕복, 당시 위기협상팀 팀장

그 안쪽 어딘가에서 이 씨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와. 이렇게 보이지 않는 상대와의 협상은 위험하고 무섭다고 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실직적으로 안에서 커다란 피해가 발생이 돼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기 때문에, 우발적으로 대화 중에 어떠한 극단적인 선택, 잔인한 범행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게 제일 두렵죠. 이야기하다 보면."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이런 상황에서 위기협상팀이 현장을 이어받게 돼. 협상의 시작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부터야. 그리고 내가 협상관이란 걸 인지시켜야 해.

"나를 잡아가려고 경찰들이 왔다 생각하지, 나를 도와주려고 왔다 생각 안해요. 적으로 생각해요. 우리는 그 생각을 바꿔주는 거예요. 협상관은."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협상팀은 안에 있는 이 씨에게 "우리는 경찰청 위기협상팀 협상관입니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나온 거예요. 원하는 게 있으면 저희를 통해 이야기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했어. 그러자 어둠 속 저 멀리서 이 씨의 목소리가 들려와.

"우리 전부 다 라이터 하나씩 들고 있어! 불 붙이면 다 같이 죽는 거야!"

'우리'라니? 지금 농성 중인 사람은, 이 씨 혼자가 아니라는 거야. 고시원에 거주하는 인물 3명이 더 있어. 이 팀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우리는 지금 체포하러 온 게 아닙니다. 도와드리려고 온 거예요"라고 대응했어. 하지만 무슨 말을 하든 이 씨의 반응은 같아.

"당신네들 밀고 들어오면, 이거 바로 터뜨릴 거야! 못 믿겠으면 어디 한 번 해봐! 우리는 목숨 내놓은 사람들이야!"

"이미 유증기 냄새는 맡았고. 육안으로는 확인 안 됐지만, 실질적으로는 가스통이 있을 거다라는 가능성을 두고 쉽사리 들어가지 못한 거죠."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 사라진 협박범

그렇게 몇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됐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씨가 말이 없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 거야. 밤이 깊어져도 이 씨는 여전히 반응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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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쯤 됐을 때부터 이 씨가 갑자기 대화가 없어지고 아예 인기척 자체가 없는 거예요. 그때부터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면, 혹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냐는 생각을 가장 먼저 가졌고, 들어보지도 못했던 협상팀이 오고 하니까 겁먹고 혹시 탈출하지 않았을까…"

-이덕복, 당시 위기협상팀 팀장

이 팀장과 임 형사는 북쪽 계단으로 이동해. 여기도 마찬가지로 철문과 집기들로 막아둔 상태였어. 이곳에는 함께 농성 중인 50대 남성, 두 명의 김 씨와 68세 여성, 노 씨 할머니가 지키고 있었어. 이 팀장은 이 씨가 없는 지금, 이들을 설득해 보기로 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노 씨 할머니: "여기 밀고 들어오면, 아시죠? 저 라이터 있어요."

경찰: "제가 여기 안에 계신 분 안전이 제일 우선이라고 얘기했잖아요. 근데 저희도 그렇게 했는데 여기도 빨리, 선생님들이라도 먼저 나가시는 게 전 좋을 것 같아요."

노 씨 할머니: "여기서 뼈를 묻을 거예요."

"우리가 트릭을 쓸 수 있는 거는 '그러면 이 씨가 왜 없냐 여기에. 다 책임을 떠 넘기고. 이 상황에서 혼자 도주할 가능성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 없냐', '억울하지도 않냐 당신들은' 이렇게 하다 보니까 자기들이 자기 어려웠던 얘기를 하는 거예요. 심정적인 걸 처음으로 얘기하게 된 거예요."
-이덕복, 당시 위기협상팀 팀장

이덕복 팀장: "우리는 안에 계신 분들 체포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잖아요. 아까 나하고 얘기할 때, 앞으로 더 살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러자 안에 있던 김 씨가 이 팀장에게 뭔가를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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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복 팀장: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뭔지 알아요? 길을 잃은 수는 있어. 근데 가지 못할 길은 없어. 사람이 가는 길은 가고 싶으면 다 가는 거야. 길을 찾으려면 혼자서 힘드니까, 주변 사람들한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냐' 물어보면 다 갈 수 있어요. 가르쳐 주는 사람도 있어요. 그 사람들을 찾는 거지. 그게 지금이야. 그 길을 우리가 연결해 줄게."

이렇게 설득은 몇 시간째 이어졌어. 그러자 농성자 김 씨가 이런 말을 해.

"우리는 여태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이 씨는 먹을 걸 숨겨놓고 혼자 먹는 것 같아요."

그 순간, 협상관들의 눈이 빛나. 위기자를 설득할 수 있는 결정적인 포인트, 이걸 '훅'이라고 부른대. 이 씨와 다른 농성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틈을 발견한 거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아, 이거다! 훅이라고 하죠. 우리가 제대로 들어갈 때 훅 들어온다 그러죠 갑자기. 아 이 사람들이 저 사람한테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이야기해 줘야 되겠구나… '식사도 못하고 힘드시죠',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이렇게 대화하듯이 옆에서, 마치 동생처럼 조카처럼 위해주는 말을 하는 거죠. '그 친구는 밥 먹는데요? 먹었을 거 아니에요' 저쪽에 내가 이용당하고 있구나, 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거예요."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그 대화가 지금 얘기하는 것보다 상당히 길었는데, 대화 내용에 가족 얘기도 나와요.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이런 사소한 얘기까지 하면서, 두런두런 얘기하면서 그런 감정들을 빼내는 거죠."
-이덕복, 당시 위기협상팀 팀장

그 결과,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어. 두 명의 김 씨가 고시원을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거야.

▲ 노 씨 할머니를 찾아라

이제 이 둘을 데리고 나가면 되는데, 이 팀장이 마음에 걸리는 게 한 가지 있었대. 노 씨 할머니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 거야.

"노 씨 할머니 어딨어요? 찾아서 같이 내려갑시다."

이 팀장은 고시원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해. 사실 이건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야. 만약에 들킨다면, 이건 이 씨를 자극하는 거야.

"좀 무모한 짓이에요 사실은. 아차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근데 그 상황에서는 그 여자분 구하는 게 가장 머릿속에 그거밖에 없었어요. 그때까지도 이 씨가 시간이 긴데도 안 나타났었으니까. 그런 상황이다 보니, '빨리 사람을 끄집어내서 데리고 나가는 게 우선이다'라는 생각을 가졌던 거죠."

-이덕복, 당시 위기협상팀 팀장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렇게 이 팀장은 고시원 안으로 들어섰어. 고시원 내부는 빛 한점 없이 캄캄해. 플래시를 비추자 곳곳에 집기들이 쌓여있어. 여기에 온통 휘발유와 시너를 뿌려놓아서 숨을 쉬기 힘들 정도야. 미로처럼 복잡한 복도 양 옆으로 방들이 쭈욱 늘어서 있어. 소리가 나지 않게 쌓아놓은 집기들을 피해 천천히, 조심스럽게 노 씨 할머니를 찾고 있을 때였어.

"방마다 손전등으로 비추면서 다니는데 갑자기 안쪽에서…"
-이덕복, 당시 위기협상팀 팀장

욕설과 함께 사라졌던 이 씨가 다시 나타났어. 그리고 '치이이이익'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 이 씨가 가스 밸브를 연 거야. 이 팀장은 황급히 고시원을 나왔어.

"이거 순간적으로 느낌이 딱 와서 일단 빨리 나가자. 나오는 과정에서 김 씨 두 명을 같이 데리고 나온 거죠."
-이덕복, 당시 위기협상팀 팀장

노 씨 할머니를 찾는 건 실패했지만, 두 명의 김 씨를 데리고 나오는 데는 성공해. 경찰은 두 사람에게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 고시원에서 거주하던 두 명의 김 씨와 노 씨 할머니. 세 사람은 재건축이 결정되고 갈 곳이 마땅치 않았대. 그런 그들에게 이 씨는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해.

"이주비용 고작 50만 원 나온다면서? 그 돈으로 어딜 가라는 거야. 내가 천만 원씩은 받아줄 테니까, 나가지 말고 같이 버팁시다."

이 말을 듣고 고시원에 남기로 결심했다는 거야. 이제 고시원에 남은 사람은 두 명, 노 씨 할머니와 이 씨야. 그리고 이 씨와 마주쳤을 때 가스를 틀었잖아. 실제로 가스통을 갖고 있다는 게 확인된 거야. 이 씨의 말대로 가스통이 9개 있다면, 이건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야.

▲ 강제진압

이번에 지휘부는 강제진압을 결정해. 두 명의 김 씨가 고시원을 나온 이후 위기자는 절반으로 줄었잖아. 그리고 위기자 두 명이 내려온 후에도 이 씨는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어. 또 이 씨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은 반반이야. 그만한 가스통을 준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허풍일 가능성도 있어. 지금 진압을 시도하면, 이 씨가 농성을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는 판단이야.

"한 번 건드려본 거죠. 어떤 반응이 나올지. 그리고 가능한지."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어쩌면 지금이 상황을 마무리할 기회일지도 몰라. 그렇게 협상 2일차 아침이 밝았어.

아침 7시 20분. 고시원 후문 쪽 계단에는 경찰특공대가 진입을 준비해. 그리고 정문 쪽에는 소방대원이 수관을 들고 대기 중이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바로 방수를 할 수 있게 해 놓자고 해서, 수관에 물을 미리 채워놓고 계속 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그 정도의 가스통이 있는 거라면, 그 층은 날아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김민수, 소방대원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독한 마음을 먹고 터트린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그러면 '아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긴 했는데. '최소한으로 피해를 막아보자'…"

-정석환, 구조대원

마침내 지휘부에서 진압 명령이 내려져. 정문과 후문, 동시에 들이칠 거야. 조용히 계단을 오르는데, 발 밑에서 깨진 유리조각이 밟혀. 누가 올라오는 걸 감지하려고, 이 씨가 뿌려놓은 거야. 최대한 숨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출입구로 올라가던 그때! 치이이익~ 매트리스 사이 좁은 틈으로 이 씨가 소화기를 마구 뿌려. 그리고 동시에 가스 냄새가 확 올라와.

"안에서 좁은 틈으로 쏘니까 막혀있던 게 뿜어져 나오니까, 경찰관들이 이게 휘발성 냄새인지 소화기이지, 그 순간 위험성이 있단 말이에요. 야! 빠져 빠져!"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거센 저항에 진압팀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어.

▲ 다시 시작된 협상

진압이 중지되고 몇 시간 후, 임 형사는 다시 고시원으로 올라가. 이 팀장이 가장 경험이 많은 임 형사에게 주 협상관을 맡긴 거야. 임 형사 뒤에는 보조 협상관이 함께 해. 협상팀장과 분석관, 정보관 등 다른 팀원들은 건물 밖 차 안에서 실시간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어. 모든 요원이 임 형사를 서포트하는 역할이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6층 남쪽 계단에 선 임 형사는 이 씨에게 말을 걸어. 그러자 고시원 안 쪽에서 이 씨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

"다 필요 없고! 들어오지 마! 들어오면 다 죽어! 내가 군대 있을 때 폭파 전문이었어. 내가 여기저기 폭약 다 설치해 놨으니까, 들어오면 너희 무덤인 줄 알아!"

그러자 귀에 꽂은 인이어에서 정보관의 목소리가 들려.

"군 경력 모두 허위입니다."

임 형사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가.

"맞아요. 그 말씀 듣고 나니까 무섭네요. 저도 사람인데요. 하지만 선생님을 믿습니다. 여기서 같이 생을 마감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임 형사가 차분히 대응하자, 이 씨의 말투도 누그러지기 시작해. 그렇게 조금씩 대화가 이어질 때였어. 이 씨가 갑자기 "그런데 당신 몇 살이야?"라고 질문을 던져. 임 형사가 나이를 이야기하자, 이 씨의 태도에 변화가 생겨.

이 씨: "그럼 나보다 형님이네. 그러면 제가 이제부터 형님이라고 부를게요."

임 형사: "좋아요. 편하게 부르세요. 그러면 전 뭐라고 부를까요? 아우님이라고 부를까요?"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형님? 딱 그 소리 듣는 순간에, 이거는 6부, 7부 능선 넘었다고 판단을 해요. 형님이라는 건 그만큼 벽을 허물었다는 얘기거든요."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그렇게 2일차 협상은 진전을 보이고 있었어. 그런데 대화를 마치고 내려온 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 이 일로 인해 또다시 상황은 180도 바뀌게 돼.

▲ 가스통 9개는 진짜였다

그 시작은, 관할 경찰서의 한 형사에게 전해진 영상 메시지 때문이었어. 이 씨가 보낸 34초 길이의 영상을 보고, 사람들은 말을 잇지 못해.

방안에 가득한 가스통들. 영상에 보이는 것만 9개야. 휘발유통도 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우리를 겁주기 위해서 공수표를 날린 게 아니구나. 허풍을 떠는 게 아니구나. 사실이구나…"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동영상 찍힌 걸 보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저게 공갈이라도, 지금이라도 믿어야 되지 않겠냐…"
-이덕복, 당시 위기협상팀 팀장

경찰은 이 정도의 가스통이 폭발할 경우, 피해가 어느 정도 될지 분석을 의뢰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소방, 그다음에 가스안전공사, 전기안전공사, 그다음에 우리 경찰 감식, 국과수 다 합동으로 분석하게 됩니다. 전체적인 상황을 분석하는데, 공통적인 얘기는 영상에 보인 것만으로 계산해도, 건물 자체가 붕괴할 위험성도 배제 못 한다. 그 정도면 반경 2km 정도까지 영향력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덕복, 당시 위기협상팀 팀장

만약 이 씨가 갑자기 가스통을 터뜨린다면, 인천 시내 한복판에서 거의 재앙 수준의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는 거야. 이제 상황이 바뀌었어. 지휘부는 '강제진압'이 아닌, '협상'을 계속하기로 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

현재 경찰이 진입할 수 있는 곳은, 두 개의 비상계단까지야. 고시원 내부는 29개의 작은 방이 복잡하게 붙어있어. 문제는 이 많은 방 중 어디에 이 씨가 있는지, 가스통은 어느 방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거야.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휘부도 신중할 수밖에 없어. 위기협상팀이 1선에서 협상에 주력하면서 더 정보를 얻자는 전략을 세웠어.

"'섣불리 진입하면 안되겠다' 지휘부에서도 명확히 판단을 한 거죠. 그러니까 빨리 정보를 빼내봐라, 어느 방에 정확히 있는지…"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임 형사는 계속 이 씨와의 협상을 전담했어. 그의 목표는 이 씨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게 하는 거야. 하지만 이 씨는 요지부동이야.

이 씨: "형님, 저 이거 한 달 전부터 준비했어요. 여긴 제 무덤입니다. 나 여기서 죽어 나갈 때까지 못 나가요."
임 형사: "아우님, 죽는다는 얘긴 그만해. 너도 오래 살고, 나도 오래 살자. 우리 손주도 봐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나랑 소주 한 잔 해야지."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어. 그리고 임 형사는, 마침내 문 하나를 열게 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렇게 얘기했었죠. '이야기하다 보니까 이게 너무 힘들어. 우리가 안에 좀 더 가까이 들어가서 이야기할 수 있게끔, 앞에 있는 매트리스 이건 좀 치울게. 너 있는 데까지 진입하는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이 씨는 선뜻 허락했어. 문 하나를 지나는데 일주일이 걸린 거야.

▲ 협박범의 부탁

하지만 고작 몇 미터 가까워졌을 뿐이고,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벽으로 막혀 있어.

"거기도 복도가 한 번, 두 번 꺾여 있어서, 그걸 치우고 들어갔는데도 또 막다른 벽이에요."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여전히 이 씨의 얼굴은 보이지 않아. 며칠 후, 오른쪽으로 꺾인 복도 안 쪽에서 이 씨가 한 가지 부탁을 해.

"형님, 저 듣고 싶은 노래가 있는데 틀어주실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임 형사는 불안감이 엄습해. 이게 혹시라도 마지막 부탁일까봐.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실 불안했어요. 얘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나려고 그러나? 이 음악이 끝나는 순간에 뭔가 내 눈앞에 번쩍하는 게 있으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도 했어요. 나도 사람인데."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임 형사는 긴장한 채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틀어줘. 고시원 복도를 사이에 두고 떨어진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함께 음악을 듣기 시작해. 그 노래는, 가수 이재성이 87년도에 발표한 '그 집 앞'이라는 곡이었어.

"노래가 끝으로 갈수록 겁나는 마음이 들었어요. 마지막 피날레에서, 조마조마조마… 그런데 딱 끝나. 아 그 긴장감… 그리고 '잘 들었습니다' 하길래 '그래, 알았어'."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이렇게 대화를 하고 나면 진이 쫙 빠져. 게다가 여긴 휘발유 유증기 때문에 숨 쉬기도 힘든데, 상대방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해.

"200%, 300%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말 한 마디에 내 생명, 상대의 생명이 좌우될 수 있다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어요. 하고 나면 진짜 1, 2kg 빠지는 느낌이에요."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그렇게 긴장된 대화가 계속 오고 가던 어느 날, 이 씨가 뜻밖의 이야기를 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 친구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면, '형님, 형님은 오지 마세요' 하길래. '왜 오지 말라고 그래? 형님 아우 하기로 해놓고' 했더니… '죽더라도 몇 놈은 데리고 갑니다. 형님은 오지 마세요. 형님도 같이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처음에. 형님은 내가 차마 못 데리고 가겠네. 그러니까 형님 오지 마세요' 하더라고요. '아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럼 나만 올라와야겠다. 딴 사람 오면 너 여기 터트릴 거 아니야. 난 너 살리고 싶어서 그래' 이렇게 대화가 이어졌어요. 그 친구하고…"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 또 딜레마에 빠지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협상 12일차가 돼. 이때부터 현장 분위기는 달라지기 시작해. 최악의 상황은 막고 있지만, 이 씨가 스스로 고시원을 나올 기미는 보이질 않아. 게다가 주변은 날이 갈수록 소란스러워지고 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 고시원 건물 앞길은 하루에도 2천 여 대의 차량이 지나가는 도로야. 게다가 식당과 술집들이 늘어선 번화한 골목이기도 해. 이런 곳을 열흘 넘게 도로를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야. 게다가 시기적으로도 더 예민해질수 밖에 없었어. 도로 통제가 시작된 날이 2022년 4월 18일부터였거든.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날이였어. 상인들의 불만이 쏟아졌겠지? 이 씨를 향한 원망의 화살이, 이제는 경찰을 향하게 된 거야. 이대로 협상을 하며 시간이 흘러가는 게 경찰에게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야.

"인도도 막혀 차도도 막혀. 불만들이 있으니 지휘부가 계속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죠."
-이덕복, 당시 위기협상팀 팀장

하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강제 진압을 했다가는, 최악을 상황을 맞을 수도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처한 거야. 다시 한 번 '강제진압 vs 협상'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해. 고심 끝에 지휘부는 결정을 내려.

"이제부터 위기협상팀은 현장에서 빠지고, 형사과가 제1선을 맡는다."

고시원 폭파 위협사건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돼.

▲ 고시원 안으로

협상 13일차, 오전 11시경. 이 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119에 전화를 걸어.

"노 씨 할머니가 가스에 중독된 거 같아. 지금 숨을 못 쉬고 있으니까 구급대원 빨리 올려보네."

경찰은 구급대원들을 데리고 고시원으로 올라갔어. 그런데 이 씨는 또 다른 얘기를 해.

"너희들 지금 나 잡으러 온 거지? 됐어! 필요 없어! 가!"

막상 올라가면 소화기를 뿌리며 못 올라오게 해. 한마디로, 못 믿겠다는 거야. 결국 임 형사가 다시 나섰어.

"'그럼 내가 올라갈게. 그리고 구급대원도 남자 말고 여자 대원 올라갈게. 괜찮겠어?' 물으니 '올라와 주세요'"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지휘부는 상황을 보고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이 씨를 체포하라는 지시를 내려. 그렇게 할머니 치료를 담당할 여성 구급대원 한 명, 그리고 구급대원 복장을 한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 강력팀 여형사 한 명, 그리고 임 형사까지. 이렇게 세 명은 어두운 고시원 안으로 들어갔어. 복도를 지나 꺾여진 곳에 다다르자, 고시원 안쪽의 모습이 드러나. 그 광경을 본 일행은 모두 충격을 금할 수 없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천장까지 복도를 가득 메운 적치물들.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605호 문틈으로 손만 내미는 이 씨.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노 씨 할머니가 있는 곳은 606호. 좁은 문틈 사이로 의식이 희미한 노 씨 할머니가 있어. 하지만 들어갈 수도 없고, 잘 보이지도 않아. 애타게 할머니를 불러보지만, 아예 의식이 없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구급대원: "노 씨 할머니가 병원 가셔서 치료받는 게 중요하니까. 오늘 지나고 몇시간 지나면 심장마비까지 올 수도 있어요."

이 씨: "그건 운명에 맡겨야죠. 여기 살려고 온 게 아니기 때문에."

구급대원: "지금도 많이 위험하세요. 빨리 병원 가셔야 돼요."

이 씨: "내가 여기서 돌아가시면, 봉지에다가 냄새 안 나게 꽁꽁 싸매서 조치를 해놓을게요."

임 형사: "내가 제일 걱정하는 게 그거야. 지금까지는 그냥 대치 상황이었을 뿐이잖아. 여기서 더 악화 안되게 해야지. 노 여사님 잘못되면 그 책임이 누구한테 가나. 다 자네한테 가잖아."

이 씨: "전 살아나갈 생각, 꿈에도 생각 안 하고 있어요."

임 형사: "아 그러지 마. 나하고 소주 하기로 했잖아. 그랬잖아. 제발 부탁할게 내가."

온갖 집기들이 천장에 닿을 듯 쌓여 있어서 한 발도 들여놓기 힘들어. 노 씨 할머니를 빼낼 방법이 없어. 좁은 문틈으로 산소를 공급해 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이제 남겨진 문은 단 하나. 하지만 그 문을 뒤로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도 새로 얻게 된 정보가 있었어. 바로 이 씨는 605호에, 노 씨 할머니는 606호에 있다는 것. 당시 606호 내부를 찍은 사진이 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당시 구급대원이 건네준 마스크를 통해 노 씨 할머니가 산소공급을 받고 있는 모습이야. 할머니 옆에서 산소마스크를 대주고 있는 남자는 이 씨야. 그런데 605호에 있었던 이 씨가 어떻게 606호에 같이 있는 걸까? 이 씨는 605호 벽면에 구멍을 여러 개 뚫어놓은 걸로 추정돼. 그렇게 바로 옆 606호는 물론, 고시원 곳곳을 활개치고 다녔던 거야. 그리고 사진에 아주 중요한 게 찍혀 있어.

오른쪽에 보면 가스통들이 보이지? 전에 이 씨가 보낸 가스통 영상과도 일치해. 이제 가스통들이 있는 장소도 확인이 된 거야. 그 많은 가스통들이 606호 안에 있었던 거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 영상에 나왔던 프로판 가스가 그 위치에 그대로 다 있는 거예요. 그때 이제 머리가 한번 더 섰죠. 아, 이게 진짜였구나…"

-이덕복, 당시 위기협상팀 팀장

노 씨 할머니는 가스통 9개와 13일을 보냈어. 비록 노 씨 할머니를 데리고 나오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정보는 확보할 수 있었어.

▲ 마지막 문

위기협상팀이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강력팀 형사들은 고시원 내부의 적치물을 조금씩 치우기 시작해. 마치 깃발을 쓰러뜨리지 않고 모래를 쓸어 오듯이. 이 씨를 크게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진압을 준비하는 거야. 위기협상팀 요원들은 그 과정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어.

그렇게 소소한 충돌이 반복되던 어느 날, 임 형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와. 발신인은 이 씨였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전화가 왔더라고요. '저녁 먹고 있는데 어쩐 일이야' 그랬더니, '형님 어디세요', '목소리가 술 한잔 한 것 같다?', '술 한잔 먹었어요. 형님 목소리 마지막으로 한번 듣고 싶어서 전화 드렸어요' 그러는 거예요. '야. 뭔 소리야. 마지막은' 그러니 '아, 이제 여기까지 끝내려고요. 다 끝입니다 형님. 형수님하고 애들하고 잘 사시고요. 형님은 아들 장가보내서 손주까지 보시고 행복하게 잘 사세요 형님', '야, 왜 그래? 무슨 소리하는 거야. 마치 죽으려는 사람처럼 그러냐. 너 진짜 혹시 쾅 가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하니 '네. 몇 놈 데리고 가려고요'…"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통화를 마치고 며칠이 지나 5월 12일. 협상 25일째 되는 날이었어. 이날은 길었던 폭파 위협사건이 종결된 날이기도 해. 그날 오전, 남동소방서에 화재신고가 접수돼. 고시원이 있는 폐건물에 화재가 났다는 거야. 건물 외부에 있던 경찰이 6층 고시원 창문 밖으로 연기가 나오는 걸 보고 신고한 거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고시텔에 불이 난 것 같다고 신고가 들어와서 확인을 해보니까 복도에다가 그냥 막 소화기를 막 뿌려서 6층에 있던 창문 사이사이로 이제 그런 분말들이 나니까 경찰분이 불이 난 걸로 생각을 하고 신고를 하신 건데, 가니까 이제 분말소화기 가루였던 거죠."

-김민수, 소방대원

알고 보니 연기가 아니라, 이 씨가 뿌린 소화기 분말이었다고 해. 사실 그날 오전, 지휘부에서 강제진압 지시가 내려왔어. 강력팀 형사들이 고시원 내부에 진입해 적치물을 치우자 이 씨는 거세게 저항해. 하지만 경찰은 멈추지 않았어. 오후가 되자 606호까지 진입로를 확보하는 데 성공해. 이제 문 하나만 남겨놓은 상황이야.

임 형사는 도통 마음이 놓이지 않아. 몇 사람 데리고 가겠다는 이 씨인데, 경찰이 계속 진입을 시도하고 있으니까. 임 형사는 경찰서장을 찾아가 간절히 부탁했어.

"빌 듯이 얘기했어요. '서장님 얘는 지금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쥐도 코너에 몰리면 고양이 코 무는데 지금 상황에서 들어가면, 터뜨리면 그거 어떡합니까? 제발 좀 기다려보세요. 내가 한번 연락해 볼게요'…"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잠시 고민하던 서장은 부탁을 들어주고 진압팀을 쉬게 했어. 마지막 기회를 얻은 임 형사는 바로 이 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런데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 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안 와. 그뿐만이 아냐. 경찰이 6층까지 올라가 봤는데 조용하다는 거야. 임 형사는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어.

"느낌이 딱... 뭐지? 유인하나? 나한테 그랬단 말이에요. '몇 놈 데리고 갑니다' 일부러 덫을 놓듯이 어차피 다 치워졌으니까. '이 문 하나 열고 들어오면 너네 같이 가는 거야. 한 놈이라도 더 와라'"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시간이 흘러 저녁 7시 30분. 진입로는 확보했고, 이제 남은 문은 606호 단 하나야. 지휘부는 최종 진압팀을 꾸리기 시작해. 남동소방서 김민수 대원은 수관을 들고 선두에 섰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만약에 방화를 하려고 라이터를 켜는 순간에 불이 저희한테 확 오지 않습니까? 수전을 세게 틀어놓고 방어막을 치면서 같이 하나하나 치우면서 갔습니다."

-김민수, 소방대원

문을 개방할 구조대원과 경찰특공대원이 뒤따라. 천천히 조심스레 계단을 오르고 출입구를 지나 복도를 따라 들어가. 어느덧 굳게 닫힌 606호 문이 보여. 아직까지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 한 구조대원이 606호 벽을 뚫기 시작해. 먼저 내시경 카메라로 내부 상황을 파악하려는 거야. 조심조심 벽에 구멍을 뚫고 내시경 카메라를 집어넣는데, 매트리스에 막혀 들어가질 않아.

대원들은 구멍에 측정기를 대고 가스 농도를 측정했어. 그런데 농도가 너무 높아. 6층은 가스와 유증기로 가득한 상황이야. 작은 불꽃 하나라도 튀면, 점화가 될 수 있어. 이제, 문을 개방할 차례야. 김민수 대원은 물이 열리는 순간 방 안으로 물을 뿌릴 거야.

"정말 마음을 먹고 점화를 시도했을 때, 물이 바로 닿아버리면 혹시 폭발을 막을 수 있으니까."
-김민수, 소방대원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굳게 닫혀있던 606호 문이 열려. 김민수 대원이 방안으로 물을 뿌리기 시작해. 그런데 그 순간, 김민수 대원 눈에 뭔가가 들어와.

"열고 나서 바로 물을 집어넣었는데, 그때 두 사람이 포개져 있는 걸 봐서. 아…"
-김민수, 소방대원

방 안에는 이 씨와 노 씨 할머니가 포개진 채 엎드려 있어. 606호 안에는 가스통 밸브가 열려있는 상태였어. 황급히 밸브를 잠그고 보니, 엎드린 채 사망한 이 씨 바로 옆에 토치가 놓여 있었다고 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는 마지막 순간, 점화하려고 했을까, 아니면 포기하고 죽음을 맞이한 걸까? 이렇게 고시원 폭파 위협 사건은 종결됐어. 임 형사의 심정은 어땠을까?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 두 명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차장 옆에 차에 가서 컴컴한 데 가서 저 혼자 엄청 울었어요. 둘이 죽었네? 끝났네? 뭐지?...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그때 그 감정은… 안 해본 사람들은 몰라요. '그 집 앞'이라는 노래 있잖아요. 그 노래만 나오면 내가 2022년도 4월 그 시점으로 머릿속에 생생하게 돌아가는 그런 느낌이에요. 내가 그때 다른 방법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 둘이 지금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서 숨 쉬고 있지 않을까. 그런 아쉬움… 그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게, 내 마음속에는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는 거예요."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임 형사는 퇴직하기 전까지 37건의 위기협상 사건에 투입됐어. 그리고 36건은 모두 위기자의 생명을 구했다고 해. 그들은 모두 임 형사에게 같은 말을 전했대.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36건 전부 다 나한테 딱 내려왔을 때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사실 무서웠어요' 나오고 싶어도 내려오고 싶어도 나 때문에 일이 이렇게 벌어졌고 사람들이 모여있고 피해를 줬는데. 내가 나오지 못하겠더라고요. 협상관님이 오셔서 제 얘기 들어주시고 도와주시겠다고 얘기하니까, 그러니까 나올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임상도, 당시 위기협상팀 협상관

하지만 이 씨와 노 씨 할머니는 끝내 그 문을 열지 못했지. 고시원 건물은 얼마 후 철거됐고, 그 자리에는 새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야. 이제 이 사건도 잊히겠지만 그 닫힌 문을 열기 위해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애썼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모두가 기억해 주면 좋겠어.

'꼬꼬무'가 이번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이덕복 협상팀장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만약에 거리에서 이 파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꼭 기억해줬으면 하는 게 있대.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위기협상은 말 그대로 위기상황이에요. 위기상황에서 협상을 하는데 주변 환경이 엄청 중요하거든요. 카메라로 사진 찍는다든가, 아니면 '젊은 사람이 거기서 뭐 해'라고 지나가면서 한다거나. 이런 것들은 오히려 악영향을 미치거든요. 그러니까 협상관들이 어딘가에서 지금 협상하고 있다면 둘 다 대화에 집중하게끔 구경거리가 아닌 도와줘야 된다는 생각으로 좀 지켜만 봐주시고. 저 사람 생명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행위는 자제해 주시고 안 하시는 게 도움이 되지 않나. 마지막으로 당부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덕복, 당시 위기협상팀 팀장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