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내 이름은', 염혜란이 위무하는 4.3…현재가 과거를 치유하다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내 이름은'은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다. 마침내 기억을 되찾은 정순은 앞서 떠난 이들의 상처가 서려있는 청보리밭에 서서 과거와 작별하는 춤을 춘다. 그 춤에는 흥이 아닌 한이 서려있다. 그저 한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춤사위만은 아니다. 그 땅에 서려있는 억울한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 같은 의미도 띠고 있다.
정지영 감독은 '내 이름은'을 통해 제주의 아픈 과거를 복기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폭력의 탄생과 세습을 그리며
이 영화에서 '이름'은 중요한 메타포다. 정순(염혜란)은 아들에게 영옥(신우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남자 이름으로는 어딘가 어색하며, 시대상을 생각했을 때 다소 촌스러운 이름이기도 하다. 고교생인 영옥은 이름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을 당한다.
태어난 후 부여되는 이름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존재의 기호기도 하고, 자아이자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식이기도 하다. '내 이름은'에서 '이름 찾기'는 상처의 극복 측면에서 중요한 설정이고, 기억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는 미스터리 드라마와 어우러지며 끊임없는 궁금증을 자극한다.
어린 정순과 영옥은 제주 4.3의 아픈 역사 속에서 다른 운명을 맞는다. 살아남은 정순은 '나'이자 '너'이기도 했던 '영옥'이라는 이름을 잊지 않고 현재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부여했다.
영화 속 이야기는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재로 넘나든다. 각각 1947년과 1998년을 선택한 것은 감독의 명확한 의도가 있다. 1949년은 제주 4.3 사건의 도화선이 된 해이자, 1998년은 제주 4.3 사건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해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정치적, 제도적 움직임을 보였다.
1949년에 행해진 국가폭력과 1998년 학교 폭력의 병치는 이 영화의 핵심 구조다. 성격이 다른 이 두 폭력을 병치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조화와 무게 중심의 이동 측면에서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폭력의 메커니즘을 해부하겠다는 감독의 의도만큼은 명확하게 읽힌다. 또한 현세대의 젊은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하고자 한 거장의 오랜 고민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정지영 감독은 폭력의 역사를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랑과 연대의 이야기로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정순과 영옥의 따뜻한 포옹과 정순의 한 서린 춤사위는 과거의 극복과 현재의 희망을 보여주는 명확한 이미지다. 대사로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아도 카메라의 시선으로서 관객의 끄덕임을 유도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내 이름은'을 관람한 후 "국가 폭력에 의한 범죄는 공소시효를 폐지해 자손만대까지 영원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제주의 아픔을 기억하고, 상처 너머의 희망과 용기를 발견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재명 정부는 국가폭력범죄의 민형사상 시효를 폐지하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번영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우리 세대의 공동 책무다. 정지영 감독은 이야기로 그 메시지를 전달했고, 염혜란은 몸의 언어로써 그날의 아픔과 그들의 영혼을 위로했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고 했던 한강 작가의 말은 그 반대 개념으로도 유효하다. 바로 선 현재가 잊혔던 아픈 과거를 치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