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15번 수술로 얼굴서 제거한 이물질만 4kg…'선풍기 아줌마' 故 한혜경, 불법 성형의 비극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8일 방송된 '잃어버린 이름, 한혜경'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김희정, 배명진, 영화감독 방은진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발레리나 소현이의 꿈
때는 1992년, 서울의 한 공연장이야. 커다란 무대 위에, 밝은 조명이 한 여성을 비추고 있어. 올해 스무 살이 된 박소현. 오늘 소현이는 무대 위에서 발레 공연을 펼칠 거야. 어릴 때부터 발레를 시작한 소현이는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를 꿈꿨어.
소현이는 큰 대회에서 상도 여러 번 받고, 열아홉 살의 나이에 국내 최상위급 발레단에 입단할 만큼 모두가 주목하는 발레계의 유망주였대. 사람들의 기대 속에, 소현이가 무대 위에서 발을 떼기 시작했어. 우아한 백조처럼 훨훨 날아오르던, 그때! 갑자기 무대 한가운데에, 소현이가 주저앉았어. 착지하며 무릎 인대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거야. 소현이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재기할 생각만으로 치료에 전념했어. 그러던 그녀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어. 너무 큰 부상이라, 다시는 발레를 할 수 없다는 거야. 그토록 이루고 싶던 꿈이, 좌절되는 순간이었어.
그렇게 한순간의 부상으로 꿈을 접은 소현이는, 발레와는 관련 없는, 생판 다른 직장에 다니게 됐어. 무려 20대에서 50대가 될 때까지. 그러던 어느 날, 소현이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쳤어. 20년을 넘게 몸을 바친 일터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된 거야. 소현이에게 직접 들어볼게.
"안녕하세요. 저는 1993년에 데뷔해서 올해로 33년 차가 된 방송인 그리고 연기자, MC, DJ를 하고 있는 박소현입니다. 발레 말고는 다른 꿈이 없었죠. 왜냐하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발레리나의 꿈을 가지고 계속해서 대학생 때까지 전공자로만 삶을 살았기 때문에, 부상으로 인해서 꿈을 접은 케이스죠. 포기하는 데까지도 시간이 한 1년 반 이상 걸렸던 것 같아요. 갑자기 느닷없이 제의가 온 거예요. 이렇게 오래 할 줄 모르고 시작을 한 일이고요. 그냥 매일매일을 열심히 달려왔던 것 같아요."
-방송인 박소현
누군지 알지? 이 이야기의 주인공, 어릴 적 발레리나의 길을 걷다 부상으로 꿈을 접고, 우연한 기회로 방송을 시작해, 올해로 33년 차가 된 방송인 박소현 씨야. 그럼 소현 씨의 사라진 직장, 어디일 것 같아? 바로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이야.
소현 씨는 1998년 첫 회부터 2024년 마지막 회까지, 27년간 무려 1,279회동안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의 MC로 활동했어. 인생의 절반을 함께 한 만큼, 그녀에게 여전히 소중하고 애정이 깊은 프로그램이라고 해.
그간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소개됐어. 매일 맨발로 산을 달리는 지적장애인의 사연을 담은 '맨발의 기봉이', 동물원에서 탈출해 한 마을을 쑥대밭을 만들었던 '신창원 원숭이', 어린 아들을 홀로 키우는 시각 장애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 '맹인 아빠의 육아일기' 등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사연들은, 많은 사람을 웃고 울게 만들었어.
그중에서도, 정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던 사연이 하나 있어. 이 사연으로 방송만 무려 8번, 순간 최고 시청률 31%를 찍은 이야기야. 오랜 시간, 많은 이야기를 접한 MC 박소현 씨도 이 사연을 처음 봤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했어.
"제가 원래 기억력이 좀 없는 편인데 그분의 이야기는 잊혀지질 않아요 그 보여지는 화면 자체가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었기 때문에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아니 이런 화면이 있을 수가 있어?'"
-방송인 박소현
지금부터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레전드 편이라 불리는 사연에 대해 이야기할 거야. 과연 어떤 이야기일지, 한번 잘 들어봐.
▲ 동생의 얼굴이 달라졌다
때는 1998년, 서울 성북구야. 한미애, 김영수 부부는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어. 그날따라 부부의 손길이 분주해. 식당에 아주 특별한 손님이 오기로 했거든. 10여년 전 일본으로 떠났다가 돌아온, 미애 씨의 여동생이었어.
"초창기에는 그냥 평범한 동생이었죠. 그냥 예쁘고 좀 남보다 좀 세련됐더라고. 엄마가 엄청 공주님 같이 대했죠. 걔는 그냥 엄마가 다 해줬어요. 진짜 엄마가 잘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일본에) 바로 갔어요. 항상 엄마 아버지 생활비를 보내요. 그렇게 걔가 책임을 지고 지가 다 하지. 부모들한테도 속 안 썩이고 지가 알아서 그냥 큰 거 같아. 걔는."
-언니 한미애
미애 씨의 동생은, 가족이 봐도 참 예뻤대. 얼마나 예뻤는지, 엄마는 동생을 공주처럼 애지중지 키웠다고 해. 그리고 외모만 예쁜 게 아니었어. 누구보다 부모님을 먼저 챙길 정도로 착한 동생이었대. 홀로 타지에서 고생하는 와중에도 벌이가 생기면 집에 꼭 생활비를 보냈다고 해.
그런 동생이, 10년 만에 돌아오는 날이야. 오랜만에 동생을 볼 생각에, 언니 미애 씨는 간만에 솜씨를 발휘했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 앞에서 동생을 기다리는데, 뭔가 좀 이상하더래. 아무리 기다려도 동생이 안 오는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났나 걱정하던 찰나, 갑자기 남편이 다급하게 미애 씨를 불렀어. 기다리던 동생이 드디어 왔다는 거야. 그런데 남편이 가리킨 곳을 본 미애 씨는, 순간 두 눈을 의심했어.
"가게 의자에 앉아있는데, 나 생각도 못 했어요. '어디? 어디? 안 왔는데?' 했는데 나중에 '저기 끝에 앉아 있잖아' 그랬는데…"
-언니 한미애
"세상에 저런 얼굴이 세상에 있는가. 얼굴이 아주 엉망이었으니까. 깜짝 놀랐잖아요. 처음에 못 알아봤다니까요."
-형부 김영수
친언니도 형부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동생의 얼굴이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는 거야. 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수상한 제보
그리고 시간이 흐른 2004년,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팀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렸어.
"거기 세상에 이런 일이죠? 제보 하나 하려고요. 어우 그게요… 우리 동네에 얼굴이 엄~청 큰 사람이 있어요."
당시 제작진이었던 박진용 PD는, 이 제보 내용이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대.
"일단은 사람의 얼굴이 보통 사람의 3배 정도 크다. 그리고 인형 같은 모습이다… 처음에는 장난 제보라 생각하고 그냥 넘겼죠. 그냥 지나가는 제보로 생각했었는데, 그 제보가 지속적으로 몇 달 동안 계속해서 올라오는 거죠."
-박진용, 당시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PD
몇 달 사이에, 여러 사람들이 비슷한 제보를 해왔다는 거야. 박 피디는, 대체 어느 정도길래 계속 제보가 오는 건지, 직접 가서 확인해 보기로 했어. 수소문 끝에, 제보 속 주인공이 사는 집을 알아낸 박 피디는 높은 계단과 언덕을 올라, 집으로 찾아갔어. 그리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똑똑, 문을 두드렸어. 그러자 잠시 후, 끼익- 문이 열리더니, 집에서 한 여성이 나왔어. 박 피디는 이 여성의 얼굴을 본 순간, 너무 놀라서 얼어붙고 말았어.
혹시 옛날에 본 적 있어? 남들보다 3배 이상 큰 얼굴을 가진 이 여성, 바로 처음 얘기했던 미애 씨의 동생이었어. 사람들은 커다란 얼굴을 가진 그녀를 이렇게 불렀어. '선풍기 아줌마'라고. 그럼 혹시, 이 분의 진짜 이름을 알고 있어? 당시 방송엔 '한미옥'이라 소개됐지만, 그건 가명이야. 그녀의 진짜 이름은, '한혜경'이야.
그녀가 사람들에게 별명만 기억되고, 이름을 잃어버리기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 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의 이름은 남기지 못한 한 여성, '선풍기 아줌마'가 아닌, 한혜경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되돌아보려 해. 혜경 씨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유가 뭘지, 지금부터 그간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았던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 불법 성형의 시작
혜경 씨의 얼굴은, 원래 이랬던 건 아니었어. 혜경 씨가 어릴 때 누가 봐도 예뻤다고 했잖아. 그녀는 한때 화려한 외모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었대. 혜경 씨, 일본에서 무슨 일을 했을 것 같아? 그녀의 직업은, 가수였어. 어릴 적부터 노래를 좋아했던 혜경 씨는, 아주 오랫동안 가수를 꿈꿨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수를 준비하던 그녀는, 꿈을 이루기 위해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가수로 활동했어. 그때 그녀의 모습이야.
옛날 혜경 씨의 모습, 어때? 비록 작은 무대에서 활동하는 무명가수였지만, 예쁜 얼굴 덕에 인기도 굉장했다고 해.
만나자는 사람도 많았고, 러브콜을 보내는 회사도 많았지만, 혜경 씨는 모든 걸 거절했어. 그저 노래만 집중하는 현재가 좋았던 거야. 그렇게 혜경 씨는 누구보다 빛나는 화려한 삶을 살고 있었어. 그랬던 그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꼬꼬무'는, 혜경 씨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글을 어렵게 구할 수 있었어.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작곡 사무실 계속 다니면서 노래도 하고 곡도 받고 그랬는데, 사실 그게 잘 안 풀렸어. 무대 서는 거는 또 다르더라고. 자신감이 있어야 되고 자아가 좀 강해야 되는데. 내가 좀 내성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면 있었고. 그래서 그땐 항상 마음이 좀 위축되어 있었어."
-혜경 씨 수첩에서
혜경 씨,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나봐. 요즘 MBTI로 말한다면 'I' 성향. 그러던 와중에, 혜경 씨의 마음에 불을 지핀 일이 생겼어. 20대초 일본에서 가수생활을 하던 중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야. 작곡가 선생님의 사무실에서 노래연습을 하고 있는데, 그때 한 여성이 들어왔어. 혜경 씨를 가르치던 작곡가의 제자였다는 이 여성은, 한눈에 봐도 자신감이 넘쳐 보이고, 너무나도 예뻤대. 그 여성을 본 혜경 씨, 어떤 생각을 했을까?
"노래 연습을 막 하고 있는데 언니가 들어와. 얼굴도 멋있고 돈도 많이 벌었나봐. 나도 그렇게 멋있게 살고 싶더라고. 굉장히 부러운 마음이 들었어. 그때 그 언니 보면서 딱 드는 생각이 성형을 하고 싶다는 거였어. 몰라, 그 언니가 성형 했는지 안 했는지는. 그래서 그때부터 마음을 먹었지. 돈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얼굴을 해야겠다고."
-혜경 씨 수첩에서
그전까지 혜경 씨는, 성형이라는 건 생각도 못 해봤대. 그녀가 했던 건 오로지 쌍꺼풀 테이프가 전부였어. 하지만 그때, 멋지고 자신감 넘치던 언니를 본 후, 막연하게 성형을 해서 더 예뻐지면 저런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
그렇게 더 예뻐지기로 마음먹은 혜경 씨가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한 아파트 가정집이야. 어스름한 밤, 똑똑- 혜경 씨가 조심스럽게 집 문을 두드리자 현관문이 반쯤 열려. 그 문 뒤에서 한 여자가 은밀하게 혜경 씨에게 물었어.
"이름이 뭐야? 누구 소개로 왔어?"
혜경 씨가 이름을 말하자 그제야 문이 열렸어. 조심스럽게 들어간 집 내부는, 비밀스럽고 음침해. 잠시 후, 거실에 앉아있던 혜경 씨에게, 아까 그 여자가 다가왔어. 여자의 손에는, 주사기가 들려있어. 여기는 바로, 불법 성형을 하는 곳이야.
"불법성형수술 현장을 카메라에 잡았습니다."
"취재팀이 손님으로 가장해 불법 성형 수술을 하고 있는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의사 가운도 입지 않은 60대 남자가 50대 여성의 쌍꺼풀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100% 다리미로 다린 것 같이는 (안 되더라도) 80%에서 70% 잡힌다고 보면 정확해요. 그게 빨리 넣으면 쫙 퍼져요. 시기를 빨리 잡으면."
-불법 시술 업자
불법 성형수술이야. 불법 시술 업자는 주사기에 정체 불명의 물질을 채우고, 이걸 사람들의 얼굴에 넣었어. 혜경 씨는 왜, 이런 불법 성형을 하게 된 걸까?
혜경 씨가 가수의 꿈을 키우던 1980년대는 미용성형이 막 활발해지던 시기였어. 하지만 당시에 성형 수술 비용은 턱없이 비쌌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미용실이나 일반 가정집에서 하는 불법 성형 수술을 했던 거야.
"(미용실에) 머리 하러 갔다가 (시술 받았어요). 더 예뻐지고 싶고 또 비용도 저렴하니까.."
-불법 시술 경험자 A
"주사를 저희가 처음으로 맞은 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 맞은 분들을 보고 나서 맞았으니까…"
-불법 시술 경험자 B
"아예 내 주변에는 병원에서 하는 사람이 없었어. 그리고 병원 가면 돈이 얼만데. 보통 여자들이 그런 돈이 어디 있어. 다 물어 물어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어. 그래서 나도 그냥 병원에는 관심이 없었어. 난 진짜 성형외과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혜경 씨 수첩에서
그렇게 일본에서 가수 활동을 하며 수입이 생긴 혜경 씨는, 본격적으로 불법 성형 수술을 하기 시작해. 지인의 소개로 무면허 시술자를 알게 된 그녀는, 이마부터 시작해 턱, 코, 볼 등 여기저기를 고쳤어.
"내가 그때 이마에 주름이 있었어. 이마는 좀 하고 싶더라고. 이마를 못하면 내 인생이 전부 다 안 될 것 같아. 죽음이나 다름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가지고 너무너무 예쁘게 돼가지고 사람들이 내 이마를 전부 다 그렇게 부러워했어. 그 다음부터 볼도 하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아무튼 일 저지르기 시작한 거야. 이거는 꼭 예쁜 면으로 하고 싶은 게 아니야. 하면 기가 세진다고 생각하는 거지. 정신적으로 좀 자기가 남보다 앞서간다, 그런 거? 그런 느낌을 얼굴을 하면 받는 거지."
-혜경 씨 수첩에서
그녀에게 성형은, 단지 예뻐지기 위한 욕망이 아닌,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었던 거야. 처음엔 1년에 한 번씩 하던 수술이었지만, 나중엔 한 달에 한 번씩 수술을 할 만큼 점점 횟수도 늘어났어. 결국 그간 번 돈을 전부 성형 수술에 쏟아 붓고 성형 중독에 빠지고 말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혜경 씨의 얼굴은 점점 변해갔고, 결국 가수 생활도 끝나고 말았어. 그렇게 1998년, 혜경 씨는 빈털터리가 된 채로 한국에 돌아왔던 거야.
일본에서 돌아온 혜경 씨가 언니네 식당에 갔을 때, 아무도 못 알아봤다고 했잖아. 그때 즈음의 모습이야.
예전 예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이 완전 달덩이처럼 커져 있었던 거야.
"3일 동안을 못 나왔어요. 일본 공항에서 가둬서 신원조회 할 때까지 거기서 있었던 거예요. 여권 사진이랑 안 맞으니까. 나중에 신원조회 해가지고 맞다 해가지고 온 거예요. 힘들게 왔어요."
- 언니 한미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 언니 부부는, 없는 형편에도 거금을 들여 수술을 시켜주기로 했어. 7시간에 걸쳐 수술한 결과, 혜경 씨는 다행히 예전 얼굴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해. 당시 얼굴에서 엄청난 양의 실리콘이 나왔대. 그런데,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돼.
▲ 심각한 부작용
분명 수술을 해서 예전 예뻤던 얼굴로 다시 돌아왔다는데, 그 뒤로 언니 부부가 혜경 씨를 볼 때마다 얼굴이 계속 변하더라는 거야.
"집을 얻어서 저쪽에 가까운 데에 살고 있는데, 한 보름에 한 번 꼴 일주일에 한번 꼴 반찬을 해다가 집에 갖다 주면, 얼굴이 갈 때마다 이상해지는 거야. 자기가 직접 넣어버린 거야."
-형부 김영수
"보니까 이렇게 조금씩 집어넣은 것 같아 내가 볼 때는. 어느 날 보니까 도톰해졌더라고."
-언니 한미애
"처음에는 돈만 벌면 엄마를 가져다 줬는데, 이거에 맛이 들리니까 돈만 벌면 거기다가 넣었어. 그때는 미리 시술을 받고 나중에 돈을 내고 그렇게도 했기 때문에 빚도 있었어. 얼굴을 하러 갔는데 내가 돈이 없으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직접 성형하는 기술을 배우게 됐어. 나는 그때 눈에 뵈는 게 없었어."
-혜경 씨 수첩에서
모든 돈을 불법 성형에 쏟아 부었던 혜경 씨는 돈이 없자, 급기야 직접 수술 방법을 배웠어. 더 놀라운 건, 그녀가 자신의 얼굴에 넣었다는 물질의 정체였어.
양초를 만들 때 쓰는 파라핀 오일, 공업용 실리콘, 심지어 콩기름까지, 모두 인체에 넣으면 위험한 물질들이야. 혜경 씨는 대체 왜 이런 걸 넣었을까? 사실 이건, 실제 불법 성형 수술에 쓰이는 재료였대. 그런데 이런 걸 얼굴에 넣으면, 어떻게 되겠어? 문제는 바로 부작용이었어. 실제로 당시 불법 성형으로,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속출했어.
괴사한 피부 조직들.
"턱도 제 거가 아니고요. 예뻤던 이마인데 이거 보세요. 막 이렇게 하면 딱딱해요. 코도요. 이게 제 코가 아니에요. 지금 코가 휘었어요. 이렇게요. 입도요. 진짜 불편해요. 감각이 없어요."
-불법 시술 경험자
이 사람은 우유 마시는데 입 밖으로 흐르고, 국을 떠 먹는데 국물이 흘러. 불법 시술 부작용으로 음식 섭취도 어려워졌어. 혜경 씨도 마찬가지야. 부작용으로 얼굴이 점점 망가져갔어. 우리가 처음에 본 것처럼, 커다랗게 되고 말았던 거야.
"거울을 잘 안 봐요. 거울 보는 거 싫어. 거울 보면 내가 너무 비참하게 생각돼가지고 거울 안 보는게 나아요."
-한혜경
머리를 감는 혜경 씨. 이물질이 목 뒤까지 퍼졌어.
"너무 아파요. 그래 가지고 여기 귀 있는 데요. 커진 데가 너무 아파."
-한혜경
일을 할 수 없던 혜경 씨는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며 지냈어. 제대로 된 살림살이도 없는 휑한 집에서, 불도 제대로 켜지 못하고 지내고 있었어. 그런 그녀가 제일 견디기 힘든 건, 바로 외로움이었어.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외출도 제대로 못 하고, 유일한 친구 반려견과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었어.
"너무 외로워. 너무 심심해요. 심심해. 밖을 나가도 누가 또 아는 사람도 없고 친한 사람도 없고 친해질 수도 없고… 다들 잘해 주시기는 하는데."
-한혜경
한때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노래를 불렀던 혜경 씨는, 이제 집에서 혼자 흥얼거릴 뿐이야.
그리고 괴로운 건 혜경 씨뿐만이 아니었어. 가족들 역시 속을 태우고 있었어. 그리고, 혜경 씨를 보며 제일 가슴 아파한 사람이 있었어. 바로, 엄마였어. 처음에 엄마가 혜경 씨를 공주처럼 너무 예뻐했다고 했잖아. 그런 엄마의 심정, 어땠겠어?
"방학해서 시골가면 예쁜이 왔다고 난리를 치고 그렇게 컸는데… 돈이나 많으면 될까? 보통 재산가 가지고는 되지도 않아. 한두 푼 갖고 되겠어요?"
-혜경 씨 엄마
"얼굴 생각하면 엄마는 속상한 거죠.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그 얼굴만 보면은 진짜 힘들어 했었어요. 얼굴을 그러고 다니니까 집에도 못 오게 했어요. 엄마가 '너 집에 오지 말라'고. 동네 사람 창피하다고 엄마가 너무 속상해 했었어 진짜."
-언니 한미애
엄마는 딸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게 자신의 잘못인 것 같다며, 매일 자책했어. 혜경 씨 역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었어.
그 무렵, '세상에 이런 일이' 박진용 PD와 제작진, MC들 역시 깊은 고민에 빠졌어. 2004년 당시엔 성형이라는 주제를 방송에서 다루는게 조심스러운 일이었대. 게다가 이건 불법 성형이니까.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됐던 거야.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가 주변의 따뜻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보여드리는 내용이었잖아요. 그런데 이게 본인의 실수로 인해서 벌어진 일들을 우리가 과연 내보낼 수 있을까, 방송 소재로서 적합할까, 그런 고민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박진용, 당시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PD
고민 끝에 박PD과 제작진은, 방송을 통해 혜경 씨에게 도움을 주자고 결정했어. 분명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응원해줄 사람들이 있을 거라 믿었어.
▲ 새로운 삶을 향해
지금 혜경 씨에겐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야. 박PD와 제작진은 혜경 씨를 도와줄 병원을 찾아 나섰어. 그런데, 혜경 씨의 심각한 상태를 보고, 섣불리 나서는 병원이 없었어. 그렇게 제작진이 여러 병원으로부터 수차례 거절을 당하던 그때, 한 성형외과 전문의가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왔어. 당시 경력 25년 차의 장충현 교수였어. 장 교수는 그녀를 처음 봤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해.
"깜짝 놀랐죠 뭐. 그런 환자는 상상도 못했고 본 적도 없었고. 그렇게 됐으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던 환자니까. 심한 경우에 눈이 먼다든지, 아주 심하면 생명을 잃죠. 왜냐하면 그게 뇌혈관을 타고 들어가면 뇌경색이 올 수도 있거든요. 한두 번도 아니고 수십 번을 했을 텐데,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하여튼 혈관은 한 번도 찌르지 않고 피 속으로 한 번도 안 들어간 거예요. 피 속으로 들어갔으면 그 당시 금방 사망했을 텐데. 완전히 기적이죠."
-장충현 교수, 성형외과 전문의
다행히 장 교수가, 혜경 씨의 얼굴을 치료해보기로 했어. 예전의 얼굴을 되찾을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수술이었지만, 가족들은 그저 수술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
큰 수술을 앞두고 혜경 씨는, 그동안 차마 찾아가지 못했던 엄마를 제일 먼저 찾았어.
오랜만에 딸을 본 엄마는 눈물을 참지 못했어. 하얗게 머리가 센 엄마를 보고, 혜경 씨도 눈시울을 붉혔어.
"오늘이 너무 좋아요. 엄마하고 이렇게 같이 있어서."
-한혜경
"항상 눈 안 보이는 데서 그러다가, 이렇게 눈 앞에 와서 보니까 좋죠."
-엄마
딸의 변해버린 모습에 자책할 만큼 누구보다 속상해했던 엄마의 손을 꼭 잡은 혜경 씨는, 어려운 수술을 잘 견디고 나아지겠다고 약속했어.
그리고 이 무렵, 혜경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어. 사람들이 전한 응원의 메시지 본 혜경 씨, 이렇게 말했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꼭 열심히 사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 잃어버린 한혜경을 찾아서
드디어 혜경 씨의 첫 번째 수술 날이 됐어. 모두가 긴장하는 가운데, 혜경 씨가 수술실로 들어갔어. 성형외과와 호흡기내과, 마취과 등 여러 의료진이 총출동한 대수술이었어. 얼굴과 목을 잔뜩 덮은 이물질 때문에 마취 단계부터 진땀을 뺄 만큼 어려운 수술이었대. 그렇게 흐른 뒤, 드디어 첫 수술이 끝났어. 결과는 어땠을까?
"아이고, 이 정도까지는 기대를 안 했는데. 진짜 이 정도면. 윤곽이 다 나왔는데."
-형부 김영수
"너무 깨끗해졌어요. 여기 막 이렇게 늘어난 게 없어졌네."
-언니 한미애
목 주변을 감싸던 이물질이 많이 사라진 모습이었어. 수술 전 모습에 비해 눈에 띄게 얼굴이 작아졌어. 그런데 수술한 얼굴을 확인한 혜경 씨는 이런 반응을 보였어.
"어떡해… 그대로인 것 같아요…"
혜경 씨는 처음엔 내심 실망했대. 그 옛날, 화려했던 외모로 돌아갈 줄 알았던 거야. 하지만 혜경 씨의 얼굴은, 한 번의 수술로 끝날 상태가 아니었대. 당시 그녀의 얼굴은, 이런 상태였어.
모래 안에, 기름을 부어. 이 상태에서, 방금 부은 기름만 제거한다고 생각해봐. 전부 섞여버려서, 기름만 빼는 건 불가능하잖아. 혜경 씨 얼굴이 바로 이런 상태였어. 피부 조직과 이물질이 전부 엉켜있던 거야. 때문에, 이물질만 제거하는 건 불가능해. 생살을 전부 잘라내야 하는 상황이었던 거지.
이런 고통스러운 수술을 앞으로 몇 번이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야. 쉽지 않은 수술인 만큼, 혜경 씨는 마음을 내려놓고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기로 했어. 첫 번째 수술이 끝나고 2주일 후, 두 번째 수술이 이어졌어. 두 번째 수술까지 하는 동안 얼굴에서, 얼만큼의 이물질을 제거했을 것 같아?
이만큼, 총 1kg였어. 얼굴에 이만한 혹이 달려 있다고 생각해봐. 그런데, 아직 끝이 아니야. 이것보다 더 많은 양의 이물질이, 아직 얼굴에 남아있어. 그동안 혜경 씨가,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이물질을 넣어왔던 거야. 대체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사실, 혜경 씨에겐 얼굴 말고 더 큰 문제가 하나 있었어.
▲ 환각과 환청
"얘기하시는데, 누가 들어도 이상한 거죠. 누가 '주사기를 들고 넣어라'라고 자기한테 명령을 했다라는 거예요. 그냥 머릿속에 들린대요. 그리고 이제 구체적으로 좀 더 여쭤보니까, 그 집안에 작은 창문이 하나 있었거든요. 그 뒤쪽으로 골목이 있었는데, 그 골목을 통해서 매일 자기를 누가 쳐다본다는 거예요. 감시하고. 그 감시하는 남자가 매일 밤 '집어 넣어라 집어 넣어라' 이렇게 시켰다고 기억을 하죠."
-박진용, 당시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PD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막… '콩기름 콩기름 넣어' 콩기름 막 이렇게 들려. 그럼 부엌으로 막 뛰어가 가지고 막 그냥 막 주입하고. 정신없이 진짜."
-한혜경
단순한 성형 중독이 아니었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의지가 아닌 환청 때문에 이물질을 주입했던 거야. 이런 일도 있었대. 어느 날 갑자기 혜경 씨가, 집 안에 있던 가구들을 전부 밖에 버리더라는 거야. 언니 미애 씨가 왜 멀쩡한 가구를 버렸냐고 묻자 "언니… 누가 자꾸, 집에 있는 물건들을 다 버리래"라고 말하더래. 집에 제대로 된 살림살이 하나 없었잖아. 바로 환청 때문이었어.
"막 어떻게 들리냐면요. 얼굴은 그래가지고 이렇게 차려놓고 살면 안 된다고, 나라에서 돈 받으면서 이렇게 살면 남들이 흉보고 안 된다고. 막 그런 식으로 들리는 거야."
-한혜경
결국 병 때문에 얼굴이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이물질을 넣어 왔던 거야. 가족들은 혜경 씨에게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곧바로 병원을 찾았어. 검사 결과, 입원을 해야 할 만큼 조현병이 심각한 상태였어. 그런데, 그때 혜경 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없었어. 혜경 씨의 얼굴을 본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전부 거절했던 거야. 결국 혜경 씨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고, 그녀의 몸과 마음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어.
다행히 제작진의 도움으로 혜경 씨는 정신과 치료도 함께 받을 수 있었어. 치료를 받으며 점점 안정을 찾아가던 그녀는 어떤 말을 했을까?
"정말 내 정신이 아니었어요. 이거 막 집어넣을 때요. 소리 들리고, 내 정신이 아닌 거 같아. 후회스러워요. 너무 힘드니까. 어차피 이렇게 될 거…"
-한혜경
혜경 씨 엄마가 딸을 응원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어.
"애썼다. 수고 많이 했어. 많이 달라졌다."
-엄마
엄마를 만난 혜경 씨는 다시 한 번 다짐했어.
"정말 잘 해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언니하고 엄마... 형부도."
-한혜경
혜경 씨는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후회했어. 그리고 엄마는, 몸이 온전치 않은 와중에도 딸에게 늘 용기를 줬어. 그런 가족들 덕분에, 그녀도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어. 웃기도 하고, 거울도 자주 봤어.
"많이 자꾸 보게 된다니까, 얼마큼 떼어냈나. 궁금해서요. 요즘은 진짜 거울을 끼고 살아, 진짜 (웃음)"
-한혜경
그렇게 혜경 씨는 조금씩 희망을 찾아가고 있었어. 그런데 그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어.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거야. 가족들은 조심스럽게, 이 소식을 알리기로 했어.
"놀라지 말라고. 어머니 돌아가셨어. 어제 저녁 11시 반에. 목욕까지 잘 갔다 오고 잘 쉬셨는데... 그런데 갑자기 그러셨네. 심장마비인 거 같아."
-형부 김영수
갑자기 전해진 비보. 혜경 씨는 엄마의 장례식장을 찾아 눈물을 흘렸어.
"진짜가 아닌 것 같아요. 진짜가 아닌 것 같아… 보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 치료 다 받고 가면 좋은데. 얼굴 모습 바뀌고... 엄마..."
-한혜경
항상 내 편이었던, 세상 누구보다 날 예뻐했던 엄마에게 걱정만 끼치고, 임종마저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혜경 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어. 그 누구보다 딸의 좋아진 모습을 보고싶다 했던 엄마 앞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
"엄마, 나 다시 살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꼭 잘 살게. 나에게 힘을 줘."
▲ 다시 한혜경으로 돌아가다
그 뒤로 혜경 씨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수술을 계속 이어 갔어.
"수술하고 나오면 아파하시잖아요. 신음을 내면서. 한 번은 기억나는데 '그래 다 자업자득이야. 다 내가 자초한 일이야' 하면서 자학도 하시고 스스로를 책망하시고. 그러면서도 꿋꿋이 참으셨죠."
-박진용, 당시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PD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견디기 힘든 나날들이었지만, 혜경 씨는 다시 잘 살겠다는 의지 하나로 꾹꾹 참고 버텼어. 그렇게 혜경 씨는 장장 2년 9개월 동안, 무려 15차례의 수술을 받았어. 수술이 마무리될 즈음 그녀의 모습이야.
그녀 얼굴에서 제거한 이물질 무게, 총 4kg이었어. 무려 신생아 몸무게와 맞먹는 양을 없앤 거야. 가벼워진 얼굴과 함께, 혜경 씨는 점차 평범한 일상을 되찾았어. 표정도 너무 좋아졌어. 외로웠던 지난날과 다르게, 웃으며 사람들과도 어울리게 됐어.
일상을 되찾은 그녀가 딱 하나, 꼭 하고 싶은 게 있었어. 바로 노래였어. 한혜경이라는 이름으로 음원을 내는, 진짜 가수가 되는 게 그녀의 마지막 꿈이었어.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남몰래 불렀던 노래였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어. 그런데 때마침, 반가운 소식이 하나 들려왔어. 한 노래 봉사단에서 혜경 씨에게 무대를 요청했어. 드디어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생긴 거야.
무대의상으로 갈아입고, 오랜만에 화장도 했어.
"떨려, 또 자신 없어지려고 해. 두근두근 어떡해."
10여 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혜경 씨. 그녀는 제대로 노래 실력을 발휘했고, 관객들은 열심히 박수를 치며 응원했어. 무대를 마친 혜경 씨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어.
"너무 기뻐요. 잘 해주시니까 너무 행복하고."
혜경 씨는 15번의 수술을 견뎠지만, 예전의 얼굴로 완전히 돌아가지는 못했어. 그래도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얻었어. 그간 쉽게 가져보지 못했던 '용기'였어.
"저도 어렸을 때 꿈이 발레리나였지만 그 꿈이 한 번 좌절되고 나면 다시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요. 그런데 몇 십 년 만에 그렇게 다시 나의 잃어버린 꿈을 찾아서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더 제 일처럼 응원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방송인 박소현
▲ 혜경 씨와의 작별 인사
혜경 씨와 마지막으로 만난 건 2010년. 어느새 그녀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어. 2년 동안 다닌 일터에서 만난 혜경 씨.
"더 활달해지고 일도 의욕도 생기고 하다 보니까 또 재미도 있고. 다시 인생을 사는 그런 기분이에요."
하루의 일을 끝낸 혜경 씨는 동료들과 노래방도 갔어. 거기서 또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웠어.
"지금처럼만 지내면 좋을 것 같아요. 사람들 기대에 벗어나지 않게. 제가 또 잘 사는 게 보답하는 길이니까. 잘 살고 더 열심히 잘 지낼 거예요."
혜경 씨는 그간 응원해 준 사람들에게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즐기며 살고 있었어.
한 동네 살던 언니 부부와 즐거운 날을 보내던 혜경 씨는, 어느 날 멀리 이사를 가게 됐어. 예전처럼 가족들과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언니 부부는 다시 밝아진 혜경 씨의 모습을 멀리서 응원했대.
그러던 지난 2018년. 언니 미애 씨에게,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 병원이었어.
"병원에서 그 소식을 들었지. 쓰러졌다고. 그래서 이제 병원 들어가서, 그게 마지막이었지. 쓰러지고 나서 얼굴도 못 봤죠 저는."
-형부 김영수
전화를 받자마자 급히 병원으로 갔지만,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대. 다시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고통 속에서 삶을 붙잡아 온 혜경 씨는 안타깝게도 57세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어.
가수라는 꿈을 이루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잘못된 길을 선택했던 사람. 그 선택 때문에 세상은 그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지만, 잘못을 바로잡을 용기를 가지고 끝까지 꿈을 잃지 않았던 혜경 씨. 그녀의 꿈은 이뤄지지 못한 걸까? 혜경 씨는 떠났지만, 그녀의 꿈은 아직 여기에 남아있어.
혜경 씨의 노래가 담긴 음반이야. 노래하는 걸 너무나 사랑했던 그녀는, 떠나기 전 이렇게 꿈을 이뤘어.
자신의 얼굴부터 일상, 이름까지 모든 걸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던 한 사람. 그런 모습이 울림을 주었기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사람.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바로 한혜경이야.
"얼굴이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막 이상하게 봐서 그러지. 혜경이 자체는 진짜 착한 사람이에요."
-언니 한미애
"그냥 나쁘게 안 봐줬으면 좋겠어요. 옛날에 저도 예뻐지려고 했던 그런 부분이었는데. 거기에 집착을 하다 보니까 병적으로 돼가지고 많이 아팠다는 걸 좀 알아주시면 좋겠고."
-형부 김영수
"이제는 선풍기 아줌마라는 이미지보다는, 꿈과 열정이 가득했던 가수의 꿈을 꾸었던 한혜경 씨의 스토리, 이렇게 본인의 이름을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방송인 박소현
예뻐지면 자존감이 높아질 거라 여겼던 혜경 씨는, 성형을 하면 할수록 본인의 못난 점만 자꾸 눈에 들어왔다고 해.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수술 후 원하던 얼굴을 되찾진 못했지만, 오히려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됐어. 특히 무대 위에서 즐겁게 노래할 때 혜경 씨는 정말 행복해 보였어.
혜경 씨의 사연이 처음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외모지상주의 사회에 대해 비판했어. 21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한 것 같아? 아름답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욕망이야. 그러나 사람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다 다를 거야. 어떤 사람들은 외모에서 답을 찾고, 어떤 사람들은 마음과 태도에서 그 가치를 찾기도 해. 중요한 건,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야. 나는 어떤 모습일 때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서 오늘 이야기 마무리할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