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틱붐] '물랑루즈!', 쇼뮤지컬의 진수…홍광호·정선아의 눈부신 관록

작성 2025.12.27 10:38 수정 2025.12.27 10:38

물랑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프랑스 파리의 예술가 동네로 유명한 몽마르트르에는 관광객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빨간 풍차(Moulin Rouge)가 있다. 이곳에서 쇼를 본 사람이라면 공간의 매력을 보다 자세히 알겠지만, 그저 외관 사진만 찍고 지나간 사람에게는 피상적인 조형물 이미지로 각인돼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에서 '물랑루즈'에 관한 이미지가 구체화된 건 2001년 개봉한 바즈 루어만의 영화 '물랑루즈' 이후 일 것이다.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가 눈부실 열연과 뛰어난 가창력을 보여주며 뮤지컬 영화의 붐을 일으킨 작품이다.

영화 속 '물랑루즈'에는 청춘의 꿈이 녹아있었고, 젊은 남녀의 사랑과 시련이 서려 있었다. 그 아련하고 애절한 정서를 무대로 실어 나르고 관객의 가슴에 사랑의 풀을 지핀 건 화려한 쇼와 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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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뮤지컬이 영화로 재탄생하는 경우는 많지만, '물랑루즈'처럼 영화로 먼저 선보인 뒤 뮤지컬화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2019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재탄생한 '물랑루즈!'는 2021년 제74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비롯한 총 10개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도 입증받았다. 국내에서도 2022년 초연돼 큰 성공을 거뒀고, 3년 만에 재연으로 돌아왔다.

'물랑루즈!'의 음악은 오리지널 넘버가 아닌 팝송을 사용한다. 약 20개의 넘버는 총 70여 곡의 팝송을 매시업해 구성했다. 공연의 시작을 알린 넘버는 영화의 OST로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릴 킴·마이아·핑크의 '레이디 마멀레이드'(Lady Marmalade, 원곡은 라벨)다. 이를 시작으로 비욘세의 '싱글 레이디'(Single Ladies),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톡식'(Toxic), 휘트니 휴스턴의 '아 윌 올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 아델의 '롤링 인 더 딥'(Rolling in the Deep), 엘튼 존의 '유어 송'(Your Song) 등 유명 팝송의 멜로디가 새로운 가사와 만나 '물랑루즈'의 드라마와 쇼를 완성한다.

주크박스 뮤지컬인 '물랑루즈!'는 들으면 누구나 아는 팝 명곡을 사용하기에 영화로 이 작품을 접한 사람들은 물론 동명의 영화를 모르는 10~20대 젊은 뮤지컬 관객의 귀도 단 번에 매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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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랑루즈!'의 1막은 쇼공연장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화려한 볼거리로 시각적 호사를 보여주고, 2막은 크리스티안과 사틴의 가슴 아픈 드라마로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따지고 보면 '이수일과 심순애' 부류의 진부한 통속극에 지나지 않은 이야기지만 멜로 드라마는 가장 오래된 작법 중 하나다. 진부한 이야기에 아쉬워할 겨를 없이 꽉 찬 무대로 눈을 사로잡고, 배우들의 빼어난 노래에 가슴을 열어젖히게 된다.

홍광호와 정선아 페어는 '물랑루즈!'를 반드시 봐야 할 이유다. 두 사람은 뮤지컬계 최고의 스타지만, 크리스티안과 사틴의 롤을 하기엔 나이대가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일말의 우려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빼어난 가창력과 섬세한 연기로 관객들을 1889년 파리 몽마르트르의 '물랑루즈'로 안내한다.

크리스티안의 눈물의 절규인 '룰링 인 더 딥'은 공연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홍광호의 노래는 감정의 호소가 아닌 설득의 언어로 작용한다. 사틴으로 분한 정선아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다가올 죽음을 예감하며 부르는 '유어 송'이었다. 이 노래는 홍광호와의 앙상블로 이어지며 비극의 대미를 장식한다.

헤롤드 역할의 이정열, 툴루즈 역할의 최호중의 관록의 연기도 돋보인다. 산티아고 역할의 심건우와 나니 역의 하유진의 정열적인 춤사위는 '물랑루즈!' 무대를 가장 뜨겁게 달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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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에서 군무가 하나의 형식으로만 기능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물랑루즈!'는 아니다. 물랑루즈는 쇼의 공간인 동시에 쇼 그 자체다. 사틴은 이 쇼의 프리마돈나지만, 독무가 아닌 협연으로 쇼를 완성한다. 댄서들이 만들어내는 군무는 '물랑루즈!'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물랑루즈!'에서 선보이는 극중극의 작가인 툴루즈는 파리를 진실과 아름다움, 자유와 사랑이 넘치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는 사랑과 예술을 관통하는 키워드기도 하고 크리스티안과 사틴의 짧지만 뜨거운 사랑을 요약하는 말이기도 하다.

화려한 세트가 선사하는 시각적 호사, 배우들이 펼쳐내는 환상적인 앙상블은 '물랑루즈!'가 왜 현재 브로드웨이 최고의 쇼뮤지컬인지를 보여준다. '물랑루즈!'의 화려한 피날레를 보며 하게 되뇌는 말은 이것이었다.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 :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

ebada@sbs.co.kr

* [틱틱붐]은 뮤지컬 '렌트'를 남기고 요절한 비운의 천재 작곡가 조나단 라슨의 유작 '틱, 틱... 붐!'에서 따온 코너명입니다. 공연에 관한 다양한 시선을 전하겠습니다.

김지혜 기자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