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 여중생 살해 후 물탱크 유기…"암흑대왕이 시켰다"며 심신미약 주장한 김길태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일 방송된 '김길태와 암흑대왕'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조우진, 신소율, 김기방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진실 혹은 거짓
때는 2001년. 부산지방법원이야. 판사석에 앉은 박성철 판사는 지금 머리가 너무 아파. 꽤 까다로운 사건을 맡았거든. 결정적인 '물증'이 없는 사건이야. 그래서 정황증거와 양측의 진술만을 가지고 사건을 판단해야 해. 과연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는지, 잘 들어봐.
먼저 검사 측, 32세 여성 한 씨의 주장이야. 2001년 5월 30일 새벽 4시 50분 경, 한 씨는 새벽기도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어. 인적 없는 골목길을 서둘러 가는데, 갑자기 누군가 한 씨를 낚아채. "소리치면 죽는다"며 옆구리에 들어온 흉기를 본 한 씨는 그대로 얼어 붙었어. 이후 그녀는 인근 건물에 감금된 채 성폭행을 당했다고 해. 무려 9일 동안이나.
그런데 그 순간, "성폭행이요? 말도 안 됩니다!"라며 고요한 법정에 한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러. 이 남자는 피고인 김 씨. 20대 중반의 청년인 그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어.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하는 취지가, 성관계를 가진 건 맞는데 새벽에 가다가 만나서 나를 유혹했다, 여자가 같이 열흘 동안 잘 있다가 집에 돌아가서, 집에 할 말 없으니까 나한테 납치, 감금, 강간당했다고 뒤집어씌우면서 합의금까지 뜯어내려고 하고 있다..."
-박상철, 사건 당시 판사
피고인 김 씨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한 동네에서 자란, 누나동생 사이였다고 해. 그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관계를 맺었는데, 한 씨가 이 사실을 남편에게 들키자 거짓말을 한다는 거야. 억울함을 주장한 김 씨는 재판부에 현장검증을 요구했어. 여기가 바로 당시 사건현장이야. 두 사람이 9일간 함께 있었다는 곳.

사진 속 옥탑방은 피고인 김 씨가 사는 방이야. 그리고 옥탑방 바로 아래 그의 부모님이 살고 계셔. 김 씨는 "바로 아래 부모님이 계시는데 열흘 동안 사람을 감금시켰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럼 저희 부모님도 한패라는 건가요?"라고 반박했어. 김 씨의 주장 어떻게 생각해?
김 씨가 어찌나 강력하게 무죄를 주장하는지, 재판부는 성폭력 사건에서는 이례적으로 피해자 한 씨를 증인으로 불러 심문했어. 그러자 한 씨는 이렇게 진술해.
"손발을 다 묶고 소리치면 죽는다고 칼로 위협했어요! 그래서 꼼짝없이 잡혀 있다가, 겨우 탈출한 거라고요!"
한 씨와 김 씨. 둘 중 한 사람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어. 재판부를 농락한 거짓말쟁이, 누구였을까?
바로 피고인 김 씨였어. 당시 김 씨의 옥탑방은 출입구가 분리돼 있어서 부모님 몰래 출입하는 게 가능했다고 해. 그렇게 한 씨를 데려온 후 방문을 걸어 잠근 채 9일 동안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거야.
이 사건으로 김 씨는 징역 8년 형을 선고받았어. 그런데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김 씨가 1년 만에 또다시 경찰에 검거돼. 그가 검거되던 날, 부산 전역이 발칵 뒤집혔어. 당시 상황을 보여줄게.


"얼굴이라도 좀 보려고 왔어요. 어떻게 생겼나 싶어서요. 사람이 그러면 안 되거든요."
-시민
부산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 그 사람의 이름, '김길태'이야. 2010년 김길태는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검거됐어.

기자: "살해 혐의 인정하세요?"
김길태: "저는 라면밖에 안 끓여 먹었는데요."
기자: "살해하지 않았다는 얘기예요?"
김길태: "저는 모르는 얘기인데요. 아니, 가죠 일단. 아!"

한 시민이 김길태의 뒤통수를 때렸어. 그는 살인만큼은 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해. 김길태와의 진실게임,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 물탱크 살인사건

2010년 3월, 부산 사상구의 오래된 동네야. 이 동네 토박이 박 씨는 요새 문단속에 특히 신경을 쓰고 있어. 왜 그럴까? 박 씨네 동네는 6년 전 재개발이 확정됐어. 그런데 공사가 진척도 없이 미뤄지면서 주민 대부분이 동네를 떠났대. 미로 같은 골목에 빈집만 남다보니 절도나 폭행같은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 거야. 이날도 박 씨는 대문부터 창문까지 꼼꼼히 살핀 뒤 잠자리에 들었어. 그런데 얼마 후, 누군가 박 씨네 현관을 다급하게 두드려.
"경찰입니다! 뒷마당에 있는 물탱크, 이 댁 거 맞죠?"
박 씨네 보일러용 물탱크에서 뭔가가 발견된 거야. 당시 물탱크 사진을 보여줄게.


물탱크 안에 담긴 내용물은 건축용 자재로 쓰는 벽돌과 타일이야. 물탱크 안에 이런 게 왜 들어있었을까? 당시 박 씨의 이야길 들어볼게.

"저기 사람 들어가 있다고… 나 그때 기절할 뻔했어요."
-박 씨, 물탱크 집 주인

"물탱크는 (사체를 바로) 들어내면 사체에 손상이 가고 사인이 안 밝혀질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물탱크 통째로) 인근 병원으로 바로 옮겼습니다."
-경찰 관계자
박 씨네 물탱크 안에서 시신이 발견된 거야. 누군가 시신을 물탱크에 넣은 뒤, 그 위에 시멘트를 붓고 그것도 모자라 벽돌과 타일까지 덮은 거야. 얼마 후, 시신의 신원이 밝혀지고 박 씨와 동네 주민들은 또다시 충격에 빠졌어. 이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름이었거든.

이름은 정민아(가명). 박 씨네 집에서 겨우 100미터 떨어진 곳에 살던 열세 살 여자아이야. 집에 있던 민아가 감쪽같이 사라진 건, 열흘 전이었어. 누군가 집 안으로 침입해 아이를 납치한 뒤, 박 씨네 집 물탱크에 시신을 유기한 걸로 보여. 대체 누가 열세 살 아이를 상대로 이렇게 극악무도한 범행을 저질렀을까?
▲ 용의자 김길태
얼마 후, 김길태가 용의선상에 올랐어. 민아네 거실에서 당시 김길태가 신고 다니던 운동화와 사이즈까지 똑 같은 족적이 발견된 거야.

경찰은 곧바로 그를 긴급체포하기로 해. 그런데, 김길태는 이미 수배 중이었어. 아까 김길태가 8년 형을 선고받았던 거 기억하지? 8년 만에 출소한 김길태가 교도소를 나온 지 한 달 만에 또다시 20대 여성을 성폭행했어. 그리곤 경찰의 추적을 피해 잠적해버린 거야.
경찰은 그가 도피 중에 민아를 납치해 살해했다고 판단했어. 그래서 20대 여성 성폭행 혐의에 민아를 납치, 살해한 혐의까지 더해서 김길태를 공개수배해.

"부산 여중생 실종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33살 김길태를 공개수배 했습니다."
"성폭행 혐의로 8년간 복역한 뒤 지난 1월에도 성폭행한 혐의로 수배된 상태였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그런데 이 소식이 전해지고 민아네 동네가 다시 한번 발칵 뒤집혀. 아까 김길태 옥탑방 기억나지? 사실 그도 이 동네 주민이었어. 당시 전과 8범이었던 김길태는 매번 이웃 여성들을 상대로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어. 그런데 이번엔 살인 용의자라니, 네가 그 동네 주민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

"무섭지요. 그땐 저녁에 나가지도 못 했지요. 우리도 밖에 일절 안 나가고 그랬어. 밤에 무서우니까."
-주민A
"혹시라도 김길태가 다니다가 남의 집 들어오면 해칠까 싶어서, 그때 다 문 잠그고 그랬어요."
-주민B

"제일 무서워하는 게 길태 사건 일어나고 우리 막내딸이 없어져서, 저녁에 우리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찾았다. 그때 너무 무서워서."
-주민C

"내가 신고를 한 번 한 적이 있었어. 길태 같이 생겼는 거야. 남자가 겨울에 모자를 팍 쓰고. 그때 떨리더라. 신고는 했지, 나한테 해코지하면 어떡하지 싶어서."
-주민D
▲ 애끓는 부모 마음
김길태가 공개수배되고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집은 따로 있었어. 누구였을까?

"지금 심정요? 말할 수 없는 거고요. (민아네) 집을, 가정을 생각하면 뭐 처절하게 참, 내가 어찌 잘못 자식을 키워서, 그 애가 그리됐는가 싶은 그런 죄책감이 생기고요. 아이고, 그리고… 또 (김길태) 입장을 생각하면, 돈도 한 푼도 쥔 거 없는데 저렇게 잠도 못 자고 헐벗고 다니는 거 생각하면, 마음이 또 그렇고."
-김길태 어머니
김길태의 부모님, 사실 두 분은 그의 친부모가 아니야. 갓난아이 때 교회 앞에 버려진 김길태를 3살 때 입양하셨어.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던 아들이 열일곱 살 때부터 소년원과 교도소를 오갔다고 해.


"전부 돈 부쳐준 영수증 아니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두 달 만에 한 번씩 (돈이) 떨어지면... 내가 또 보내주고. 이런 일 앞으로 (없게) 몸 건강히 잘 보내서 사회에 나가 좋은 사람 되라고. 내가 매 편지로 전하고 했지. 나는 이가 없어도 자기(김길태)는 윗니가 없어서 이 해야 한다고 해서 또 130만 원 그것도 부쳐줬지. 그렇게 세상을 살아서는…"
-김길태 아버지
이후 김길태가 동네에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를 때마다 두 분은 집 밖에도 못 나오셨대.

"태야, 모든 것을 잘못된 거는 잘못됐지만 어쨌거나 자수해라. 자수해가지고 좋은 날이 또 안 있겠나. 그래, 잘못된 거는 네 마음 속도 시인하고 그렇게 해라. 자수를 꼭 하기를 바란다."
-김길태 어머니
그런데 얼마 후, 경찰서로 뜻밖의 전화가 걸려와. 도주 중인 김길태가 직접 경찰서로 전화를 건 거야.
"사람 안 죽였습니다! 죽었다는 애가 누군지도 모르고 본 적도 없어요!"
본인은 20대 여성 성폭행 사건 때문에 숨어지냈던 건데, 갑자기 왜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된 거냐며 따졌어. 그러면서 자신이 전과자라고 덮어놓고 의심하는 거 아니냐고 화를 내. 사실 지금까지 유일한 단서는 김길태의 족적뿐이긴 해. 근데 김길태의 이런 주장에 대해 경찰은 이렇게 발표했어.

"범인이 아닐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이 됩니다. 왜냐하면 피해자의 몸에서, 신체에서 용의자의 DNA가 검출되었습니다. 이거는 직접적인 증거이기 때문에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류삼영, 당시 부산경찰청 폭력계장
김길태가 겨우 열세 살 아이를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른 거야.
▲ 김길태를 잡아라

경찰은 곧바로 김길태를 찾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려. 바로, 형사총동원령! 4만여 명의 부산 경찰을 모두 투입해 김길태가 살던 사상구 일대를 샅샅이 뒤졌어. 얼마나 많은 경찰이 투입됐는지, 당시 1년치 동원 수당이 보름 만에 다 소진됐어. 그런데 왜 경찰은 사상구를 집중 수색했을까? 다른데 도주했을 수도 있는데?
당시 서른네 살이었던 김길태는 10년 넘게 교도소 생활을 해왔어. 성인이 된 이후 사회에 나와 있던 시간을 다 합쳐도 1년 2개월밖에 되지 않아. 지금까지 그가 모든 범행을 저지른 곳도, 다 이 동네야. 그리고 이 동네에 빈집이 많다고 했지? 경찰은 동네 지리를 잘 아는 김길태가 재개발지역 빈집 어딘가에 숨어있을 거라고 판단했어.
야간수색이 한창이던 어느 밤, 한 경찰이 사건현장 인근 빈집에서 수상한 형체를 발견해. 서둘러 손전등 불빛을 비추자, 누워있던 누군가가 잽싸게 일어나.
"김길태다!"
경찰은 곧바로 그를 덮쳤어. 그런데 김길태가 한 발 더 빨랐어. 무려 3미터 높이의 창문에서 그대로 뛰어내린 거야. 김길태는 어릴 적부터 복싱을 배워서 몸이 아주 날쌨다고 해. 오죽하면 김길태의 지인들은 "경찰 두세 명이 덤벼도 걔는 절대 못 잡습니다!"라고 말했대.

"도주로까지 다 봐놓고 창문 옆에서 신발 신고 잠을 잔 거지. 그러니까 바로 튀지. 우리가 불 비추고 확 들어가니까 곧바로 도망간 거예요."
-당시 경찰 관계자

그런데 김길태가 숨어있던 이 빈집에서 발견된 게 하나 있어. 바로 휴대전화. 근데 고장이 났는지, 통화는 되지 않아. 이 휴대전화는 매일 새벽 5시에 알람이 설정돼 있었어. 도주 중에도 또다른 범행을 계획한 걸까?
경찰이 김길태를 놓쳤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론은 들끓었고, 경찰서로 항의전화가 빗발쳤어. 당시 부산 경찰들, 심정은 어땠을까?

"거의 뭐 2주 동안 휴일도 없었고요. 24시간 주야간으로 교대 근무를 하면서, 경찰 기동대 버스 안에서 쪽잠을 자기도 하고. 그리고 한 가구의 수색이 끝났다고 해서 끝이 나는 게 아니고요. 수색했던 집도 또 수색을 하고. 어떻게든 빨리 잡아야 된다는 그런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장예태 경위, 당시 부산경찰청 순경
특히 강희정 경사는 초등학생 아들과 유치원생 딸을 둔 아빠였어. 그래서 이 사건이 남 일 같지 않았대.

"무조건 내가 잡는다… 언제든지 보면 잡으려고 제가 책상 위에 사진을 크게 확대를 해서 김길태 사진을 매일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넘게 보면서 김길태 잡는 데 매진을 했었습니다. 저도 부모 된 심정으로 상당히 마음이 안타깝고, 진짜 범인을 잡아서 만약 만나게 되면... 방송 용어로 좀 부적합 하겠지만 때려죽이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어요."
-강희정 경감, 당시 부산경찰청 경사
그런데 얼마 뒤, 경찰서로 심상치 않은 신고가 접수됐어. 사상구의 한 시장에서 연달아 크고 작은 도난 사건이 일어난다는 거야.

"27만 원을 지갑에 넣고 집에 올라가고 그 다음 날 아침에 내려오니까. 손님 머리 해 주고 계산을 해 보려고 보니까 돈이 10원도 없었습니다."

"하루저녁에 털면 한 군데만 안 털어요. 보통 두서너 군데는 털고 가는 거야. 그날 털린 집만 일곱 집이야 하루에."

"이 동네 다 쓸었지. 뭐 그 애가 안 들어간 집에 어디 있어. 이 동네는 뭐 다 돌아다녔지."
-당시 지역 상인들
사라진 물건은 주로 현금 그리고 음식물. 경찰은 이 시장 안에 김길태가 있다고 생각했어. 경찰은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서 이 시장 일대를 집중 수색했어. 당시 1년 6개월 차 신입이었던 장예태 순경도 수색에 동원돼. 장 순경이 시장 옆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한 할머니가 "저기요! 경찰 맞죠?"라며 불러세워.

"할머니 한 분께서 지나가시면서 저희한테 '얼마 전에 옥상에서 길태를 봤다'고…"
-장예태, 당시 부산경찰청 순경
장 순경은 곧바로 제보 내용을 상부에 보고하고, 할머니가 가리킨 방향의 그 건물로 향했어. 3층 높이의 건물이었는데,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옥상 문을 열었어. 그런데, 장 순경의 눈 앞에 의아한 광경이 펼쳐져.

"그 옥상 문을 열면 정사각형 정도 되는 평상이 있거든요. (누군가) 거기 앞에 걸터앉아 있다가 다른 옆 건물 옥상으로 뛰어 넘어가는 거예요. 너무 순식간이라서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담을 넘어갔는데. 보통은 뛰어넘더라도 바로 일어서잖아요. 근데 그 난간 뒤로 숨어 있으니까 제가 안 보이잖아요. 이렇게 죽기 살기로 도망가는 애는 길태 밖에 없다."
-장예태, 당시 부산경찰청 순경
장 순경은 뒤편 건물 옥상에 있는 동료에게 급하게 신호를 보냈어. 싸인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살금살금 김길태가 숨은 옥상 건물로 다가가.
"하상욱 순경하고 같이 길태가 숨어있는 그 옥상으로 살금살금 다가갑니다. 그니까 이제 잡았다, 우리는 하상욱 순경하고 '독 안에 든 쥐다'하고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길태가 갑자기 일어서서 다다다닥 뛰어서 뛰어내릴 거라고 상상도 못했죠. 거기서."
-장예태, 당시 부산경찰청 순경
옥상 밑을 확인한 장 순경은 그대로 얼어붙었어. 김길태가 벽을 타고 내려가더래. 거기가 건물과 건물 사이 틈이 1미터도 안 될 정도로 좁았거든. 그사이에 등과 다리를 대고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타고 내려간 거야. 단 20초 만에.

"그래서 '길태다!' 외치고, 계단으로 빨리 뛰어 내려갔죠."
-장예태, 당시 부산경찰청 순경
겨우 발견한 김길태를 이대로 놓치는 건 아닌지 심장이 타 들어가. 근데 잠시 후, 반대편 골목 쪽에서 "김길태다! 잡아라!"는 소리가 들려. 김길태가 강희정 경사와 딱 마주친 거야.

"그 맞은편 쪽 빌라 주차장에 어떤 인기척이 딱 느껴졌고, 제가 눈을 돌렸을 때 거기서 사람이 옆으로 스윽 이렇게 지나오는 것을 봤는데. 무의식적으로 저도 그쪽으로 향했죠. 제 얼굴을 딱 쳐다보는데, 그 눈이 제가 평소에 하루에도 몇 십 번씩 봤던 제 책상 앞에 걸어둔 김길태 눈이었습니다. 무조건 잡아야 된다..."
-강희정, 당시 부산경찰청 경사
강 경사는 옥상에서의 상황은 전혀 몰랐어. 그냥 인근 주차장을 수색하던 중이었는데, 김길태의 눈을 보는 순간 단번에 알아봤어.
강 경사는 곧바로 김길태가 도망친 골목으로 향했어. 잠시 후 골목 반대편에선 동료 경찰이 달려와. 김길태는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야. 그런데 그 순간, 퍽! 퍽! 동료 경찰이 김길태의 주먹에 얼굴을 맞았어. 설상가상 뒤따라오던 다른 경찰과 부딪치면서 뒤엉켜 쓰러져. 결국 강희정 경사 혼자서 김길태를 쫓았어. 근데 김길태, 빨라도 너무 빨라.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져.
강 경사는 마지막 승부를 걸기로 해. 보폭을 넓혀, 한 발, 두 발, 세 발! 그리고 점프! 달아나는 김길태를 향해 몸을 날린 거야. 강 경사, 김길태를 잡았을까? 직접 들어봐.

"도움닫기를 해서 두세 걸음 뛴 다음에 몸을 날려서 잡았죠. 가까스로 모자 끝을 잡고 있는 저를 손을 빼려고, 안 빠지니까 발로 또 밟고 차고 이렇게 하려는 찰나에, 제가 돌려서 넘어뜨리고 바로 목조르기 들어갔죠. 찰나였습니다. 제가 조금만 늦었으면 못 잡았죠."
-강희정, 당시 부산경찰청 경사
사실 강 경사, 유도에 태권도까지 마스터한 특수부대 출신이야. 강 경사는 분을 못 이겨 씩씩대는 김길태의 목을 조르며 이렇게 말했어.
"가만히 있어라. 목 부러진다!"
드디어 김길태를 잡았어! 사건이 벌어지고 14일 만이야. 강 경사의 기분은 어땠을까?

"한편으로는 피해 학생이나 유가족들을 생각해보면 크게 기쁘고 그렇지는 않았어요. 그런 사회적 약자를 지켜내지 못했던, 우리 경찰관의 책임....(울컥) 저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정말 많이 안타까운 그런 심정이었기에 그런 일이 절대 재발되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전국에 계신 경찰분들, 똑 같은 심정일 겁니다."
-강희정, 당시 부산경찰청 경사
▲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런데 검거된 김길태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아. 현장검증에서 김길태는 이런 행동을 보여줬어.

경찰: 이 집에 들어온 사실이 있습니까?
김길태: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기억이 안 납니다.

경찰: 피해자 옷은 어디 있어?
김길태: 정확히는 모르는데... 어디... 하여튼 어디 근처에 있었어요.
경찰: 어디 근처? 근처 봐봐라, 그래. 네가 기억나는 대로.
김길태: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어떻게 기억을 합니까.
경찰: 자, 길태야, 봐봐라 가방에 네가 한번 넣어봐라.
김길태: 아, 못 하겠는데 이런 거.
민아의 얼굴을 본 적도 없다던 김길태가 이번엔 술을 많이 마셨다며 기억상실을 주장하는 거야. 경찰은 그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판단해. 그리고 그 거짓말도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자신했어. 확실한 '증거'가 있었으니까. 바로 민아의 시신에서 나온 김길태의 DNA. 그런데…
"DNA요? 그게 뭡니까? 전 모릅니다."
김길태가 결과지를 받자마자 바로 던져버려. 사실 이 DNA로 입증할 수 있는 건, 김길태의 성폭행 혐의뿐이야. 시신이 발견된 물탱크를 정밀 감식하고 김길태의 옥탑방도 샅샅이 수색했지만, 살인과 시신유기에 대한 직접 증거는 찾지 못했어. 그래서 DNA결과로 그를 압박해 자백을 받아내려 했던 건데, 김길태에겐 전혀 통하질 않아. DNA라는 게 정확히 뭘 말하는지, 얼마나 결정적인 증거능력을 갖는지, 김길태가 이해하질 못 하는 거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 집요한 심리전
경찰은 곧바로'이 사람'을 투입시켜.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 누군지, 보여줄게.

"네. 권일용 경위입니다. 이런 경우에 대개의 상황에 있어서 점차적으로 합리화를 시켜 나가기보다는 어느 순간에 모든 것이 드러나는 자백의 형태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매우 일관되게 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어떤 그런 부분들이 이 범죄자의 특성을 상당히 대변하고 있다, 이렇게 지금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권일용, 당시 담당 프로파일러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김길태가 조금씩 입을 열기보단, 한 번에 모든 걸 자백할 확률이 크다고 분석했어. 그럼 그의 계획은 뭐였을까? 직접 들어봐.

"김길태의 라이프 스타일, 즉 생애 전반에 걸친 분석을 해 보니까, 어느 정도 적당한 친구들의 피상적인 관계, 이런 것들을 유지해 온 것으로 보여지는데, 유독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바로 다음 날 전화를 걸었던 친구가 있어요. 그래서 그 친구가 김길태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해서 그 친구를 찾아갔었죠."
-권일용, 당시 담당 프로파일러
김길태의 친구, 박 씨를 직접 만난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아주 결정적인 키를 획득해. 그리고 며칠 후, 김길태와 첫 대면이 있는 날이야.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조사실에 앉은 김길태에게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이 한 마디를 건넸어.
"상태야."
그러자 김길태가 깜짝 놀라는 눈치야. '상태'는 박 씨를 비롯해 김길태의 친한 친구들이 그를 부르는 이름이었다고 해. 이 한마디로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김길태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해.

"제가 들어갔을 때 첫 마디로 '상태야. 내가 너를 만나러 서울에서 왔다'라고 했죠. '너 친구들이 다 그렇게 얘기하더라. 너 그렇게 나쁜 짓을 하고 파렴치하게 이렇게 할 사람은 아니라는 친구들도 있더라'고 했어요. '그렇죠? 나 그런 짓 할 놈 아니라는 친구들이 있죠?' '그래. 그렇더라' 이제 인정하기 시작하는 거죠. 자기가 원하는 이름을 불러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하고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대화를 시작한 거죠."
-권일용, 당시 담당 프로파일러
그렇게 대화의 물꼬를 튼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곧바로 김길태의 친구 박 씨를 조사실로 불렀어.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사전에 박 씨에게 이렇게 당부했어.
"다른 말씀 마시고 '친구야' 이 한 마디만 하십쇼."
이 지시대로 박 씨는 김길태와 잠시 시간을 가진 뒤 곧바로 조사실을 나왔어. 그 후 김길태가 엉엉 울어. 그러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해. 자, 이제 마지막 결정타를 날릴 차례야. 거짓말로 버티는 김길태를 무너트릴 한 방, 뭐였을까? 바로 거짓말탐지기. 근데 거짓말탐지기에서 거짓 반응이 나온다고 한들, 그 결과가 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될 순 없어. 법적 효력이 없거든. 그런데 왜 이 방법을 쓰려는 걸까?

"결국은 과학적인 단서들이나 또 결과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라고 판단을 했기 때문에. 본인이 내가 거짓말할 때 얼마나 과학적인 단서들이 파동을 움직이면서 드러나느냐. 내가 하는 거짓말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과학적으로 이게 입증되지 않다라는 것을 본인이 보게 하자는 거였어요."
-권일용, 당시 담당 프로파일러
조사관은 김길태에게 사건 장소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곳을 아느냐 물었어. 김길태가 모른다고 대답하자 그의 뇌파 그래프가 격렬하게 반응해. 난생처음 자신의 거짓말을 목격한 김길태. 눈동자가 흔들려. 그리고 드디어 입을 열었어.
▲ 김길태가 직접 말한 그 날
자, 지금부터 김길태가 직접 털어놓은 그날의 이야기를 들어줄게.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거야.

"한 2~3일 전부터 제가 술에 취해 있었거든요. 괴로우니까. 아니 형사들이 내가 변명할 기회도 안 주고. 나를 잡으려고, 나는 도망 다니는 상황 아닙니까? 내가 갈 데도 없고. 24일 날 기억나는 게 뭐냐 하면, 내가 우리 동네에 당산이라고 있거든요, 당산. 거기 올라가서 술 마시고 있었어요. 사람은 잘 안 오니까. 내가 저녁 무렵에 시간은 모르겠습니다 술 먹고 깼으니까. 깼을 때가 저녁 무렵이거든요. 기억나는 거는 애가 옆에… 앤지도 얼굴도 모르겠고 사람이에요, 사람. 사람 있었고. 그러고 내가 기억나는 게 이제.. 다른 기억 안 나고, 그냥 막대기 같은 거 막~ 이러고 손으로 막~ 이러는데.. 그 외에는 기억이 잘 안 나요."
-김길태 음성녹취 중
김길태는 사건 당일 동네 뒷산에서 술을 마셨다고 해. 그리고 깨어보니 한 폐가였는데 옆에 웬 시신이 있더라는 거야. 김길태는 폐가에 있던 가방에 시신을 넣은 뒤 이웃집 물탱크에 유기했다고 진술해. 그리고 또 정신을 차려보니 본인이 막대기 같은 것을 들고 시멘트를 젓고 있었대.
"시체를 보니까 불쌍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벽돌이랑 타일로 덮어줬습니다."
▲ 김길태와 암흑대왕
검찰은 김길태를 강간살인혐의로 기소하고 그에게 사형을 구형했어. 그럼 1심 재판부의 판단은 어땠을까?
"주문.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
김길태는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했어. 사실 그가 이전부터 주장한 게 있었거든. 그 내용이 정말 충격적이야.

"내가 보기엔 좀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가 있는데, 그 존재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거든요. 암흑대왕이라고 있어요, 암흑대왕. 난 정신이 있는데, 이 사람이 내 정신을 지배하려는 거예요. 계속 시키는 거야 나한테. '저 녀석 때려야 된다'고. '저 사람 너를 죽이려 한다'고. 기억이 안 나버려요."
-김길태 음성 녹취 중
김길태는 중학교 시절부터 환청과 환각 증세를 겪다가, 2000년대 초 교도소에서 암흑대왕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주장했어. 그날 이후 쭉 그의 지배를 받아 왔고, 그간 저지른 범행 모두 암흑대왕의 지시였대. 민아를 살해한 그날 역시 암흑대왕에게 잠식당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해.

"진짜 표현을 하는게 '머털도사 봤냐, 거기 백팔 마왕이 있지 않냐' 그러니까 마왕이 굉장히 많은데 자기 안에 있는 이 존재는 '그 마왕들 속에서도 대왕이다'라고 표현을 하는 거예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이 존재가 같이 커 왔고, 나도 이 존재가 필요하고 이 존재도 나를 필요로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범행에 대해서 회피할 때는 '내가 그랬을 리가 없다. 이 존재가 뭔가 다른 행동을 했을 것이다'라고 말해요. 그러면서 또 했던 얘기가, '옛날에는 이게 과학적으로 입증 안 됐지만, 최근에는 입증된 거 있지 않아?' 그러면서 '이런 것처럼 내 거는 그런 거야'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해요."
-김미영, 당시 대검찰청 진술분석관
이에 김길태의 변호인은 그가 범행 당시에 심신미약 상태였기 때문에 1심의 사형이 과하다고 주장했어. 2심 재판부는 법무부 치료감호소에 김길태의 정신감정을 의뢰했어. 감정 결과는 어땠을까?

"(김길태는) 정말 의식 장애가 생기는 그런 에피소드가 평생에 걸쳐서 많았고. 의식 장애 시작할 무렵에 전조 증상, 그것도 뇌전증에서 나타나는 전조 증상과 거의 일치하고. 의식 장애가 끝날 무렵에, 깨어날 사이에 이 정신 상태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일반 뇌전증의 환자에서 깨어날 무렵하고 같은 거예요. 종합적으로 봐서 뇌전증의 가능성이 많이 그대로 보이는 거예요."
-허찬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법무부 치료감호소 의료부장
뇌전증은 뇌의 신경세포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돼, 반복적인 발작이 나타나는 신경질환이야. 특히 측두엽 뇌전증의 경우 환청과 환각 같은 발작증세를 보이는데, 심할 경우 발작 중에 했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해. 김길태는 과거 교도소 수감 중에도 정신과 약물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어.

"과거 8년간 약물 치료 이력을 봐도 정신병 환자 중에 가장 심한 환자들이 먹는 양의 항정신병 약물을 먹었고, 중학교 다닐 때 자기가 갑자기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그 다음에는 자기가 정신을 잃게 된다는 거예요. 자기가 이제 그거를 이해하는 방식이, 어떤 외부의 힘이 나를 지배하려고 한다, 그게 암흑대왕이다, 그러니까 이제 그 암흑대왕이라는 거는 자기의 의식 상실의 증상을 자기대로 이해하는 수단으로 그런 망상을 하게 된 거란 말입니다. 엄연하게 굉장히 심각한 정신병이 있다, 이거는 정신병이 확실하게 있다…"
-허찬희, 전 법무부 치료감호소 의료부장
이 소식이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김길태에게 사형을 내려야 한다는 탄원서가 법원에 빗발쳤어. 왜 그랬을까?
8살 여자아이를 잔혹하게 성폭행하고 영구 장애까지 남긴 조두순 사건. 당시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결국 조두순은 12년형을 확정했어. 재판부가 조두순에게 감형을 내린 거야. 사유는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그런데 1년 만에, 김길태 재판에서 다시 심신미약 감경 가능성이 제기된 거야.
재판부는 서울대병원에 추가 감정을 의뢰해. 보다 면밀한 심층검사가 이루어졌어.

"김길태 씨의 사건이 상당히 그 당시에는 정말 큰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켰잖아요. 그래서 저도 약간 이제 부담은 상당히 됐었죠. 그래서 뇌 MRI도 찍고 양전자 단층 촬영술도 했고 인지 기능 평가, 심리 검사, 심층면접. 뭐 할 수 있는 거는 저희가 다 했죠."
-권준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기본적으로 뇌전증은 뇌파검사를 통해 확진한다고 해. 보통은 24시간 연속 촬영을 하는데, 당시 감정에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48시간 동안 뇌파를 측정했어. 그럼 결과는 어땠을까? 검사 결과, 뇌전증을 확진할 만한 별다른 이상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어. 그럼 망상장애에 대한 판단은 어땠을까?
"기본적인 현실감은 좀 있는 걸로 그렇게 나오고. 약간 일부 이제 비현실적인 그런 망상적인 생각. 이런 것들이 좀 있는 걸로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진단도 망상장애로 진단하기는 어렵고, 그런 피해망상이 좀 증상이 있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가 주 진단이다. 그렇게 저희가 진단을 한 거죠."
-권준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반사회적 인격장애만 확인이 됐을 뿐 범행 당시 심신미약의 상태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이야. 범행 과정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도 거짓말일 확률이 크다고 판단했어.
▲ 최종 판결, 그리고 심신미약
2심 재판부의 최종 판단은 뭐였을까?
"피고인이 범행당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었다거나 그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피고인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한 것이라기 보다는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이 법률상 심신미약의 상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정상인과 같은 온전한 정신상태였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등으로 보아 원심이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은 그 형의 양정이 너무 부당하다고 할 것이다. 주문,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한다."
그럼 김길태는 이 판결을 받아들였을까? 아니, 심신미약을 확실히 인정해 달라며 또다시 항소해. 하지만 2011년 4월 28일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고, 김길태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했어. 김길태는 지금도 사회와 격리된 채 수감 생활을 이어가고 있어.
우리는 지금도 '심신미약'이란 말만 나오면 가슴을 졸이며 뉴스를 보게 돼. 지난 7월, 60대 남성이 사제총기를 제작해 친아들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어. 또 올 초엔, 초등학교 교사 명재완이 여덟 살 아이를 학교에서 살해한 사건도 있었지. 이뿐만이 아니야. 20대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여행용 가방에 시신을 유기한 '정유정 사건', 분당 서현역 인근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무차별 공격을 해 열 네 명의 사상자를 낸 '최원종 사건'까지. 범행을 저지른 이들은 과거에 심신미약을 주장했거나, 현재 주장하고 있다는 거야.

용서받지 못할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을 피하려는 거짓말쟁이가 더는 없도록,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
우리나라는 범죄자가 심신 장애일 경우 형을 면제해 주거나 감형하고 있지. 경우에 따라 교도소 대신 치료감호 시설에서 형기를 채우게 해. 반면 영국은, 정신보건법 45조 A항에 따라 법원이 치료와 형벌을 동시에 명령한다고 해. 일단 병원에 구금해 치료를 한 다음, 감옥으로 보내 형을 살게 하는 거야. 심신장애가 인정되면 사회에서 격리되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셈이지. 이런 방법이라면, 심신미약을 악용하려는 거짓말도, 정신질환 범죄자의 재범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