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30th BIFF, 영화제 부활과 대통령의 약속…위기를 기회로

작성 2025.09.22 09:52 수정 2025.09.22 09:52
부산국제영화제



[SBS연예뉴스 | 해운대(부산)=김지혜 기자] 올해로 30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근래 보기 드물었던 화려한 위용과 알찬 프로그램으로 순항 중이다.

지난 17일 개막한 영화제는 중반을 넘어 6일 차에 돌입했고, 후반부에도 전반부 못지않은 화제작과 굵직굵직한 프로그램으로 영화제를 향한 관심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로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결국, 영화제의 힘은 영화에서 나온다. 어떤 스타가 발도장을 찍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슨 영화가 어떻게 프로그래밍되는가가 영화제의 핵심이다. 올해 BIFF 30주년을 맞아 공식 상영 편수(241편)만 늘린 것이 아니라 특별전을 5개로 늘렸고, 세계적인 거장들의 최신작을 만날 수 있는 '아이콘 섹션' 작품 또한 역대 최대인 33편이나 초청했다.
부산



15년 만에 부산에 귀환하는 프랑스 국민 배우 줄리엣 비노쉬 특별전과 아시아 영화사를 빛낸 9명의 거장을 조명하는 '아시아 영화의 결정적 순간들', 신예 여성감독 5인이 자신들의 작품관에 영향을 미친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우리들의 작은 역사, 미래를 부탁해', 국내외 영화·문화계 인사들이 관객과 함께하는 '까르뜨 블랑슈' 등은 영화제의 기획력이 빛을 발한 프로그램 들이다.

또한 영화의 과거와 현재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제 만의 시선과 안목으로 미래의 영화인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서 영화제의 저력이 나온다. 아시아영화아카데미를 비롯한 부국제만의 신진 영화인 지원 프로그램은 올해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서른 잔치'는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어쩔수가없다



◆ '어쩔수가없다'→'그저 사고였을 뿐'…화제작의 향연

영화제 초반 가장 큰 화제작은 개막작 '어쩔수가없다'와 '그저 사고였을 뿐'이었다. 전자는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자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은 화제작이었다. 수상이 당연해 보였으나 무관에 그치며 영화에 대한 화제성은 더 높아졌다.

'어쩔수가없다'의 월드 프리미어(전 세계 최초 상영)를 베니스에 뺏기고, BIFF 개막작으로 한 발 늦게 초청한 것이 다소 모양 빠지는 선택이 아니었냐는 일각의 시선에도 부산국제영화제는 현재 가장 뜨거운 한국 영화를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공개한다는 의미부여로 초청을 결정했다.

선택은 옳았다. '어쩔수가없다'는 화제작에 걸맞은 뜨거운 관심이 아래 공개됐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호평이 우세한 반응을 끌어냈다. 누구나 공감가능한 소재를 박찬욱스럽게 풀어낸 이 영화는 거장의 존재감과 관록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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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오히려 아시아 영화인들의 반응이 더 뜨거웠다는 것이다. 영화제 기간 열린 주요 행사에서 만난 아시아 영화인과 언론인들은 '어쩔수가없다'에 대한 감상과 반응을 한국 취재진에 먼저 물어왔다. 선질문, 후감상의 상황은 영화제 기간 계속됐다.

야후 재팬과 롤링스톤 재팬, HUFFPOST 등에 글을 기고하는 일본의 영화 저널리스트 구와하타 유카는 '어쩔수가 없다'에 대해 "한순간의 흐트러짐 없이 몰입해서 영화를 즐겼다. 해고와 재취업이라는 위기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익숙한 소재를 박찬욱 감독 특유의 개성과 유머로 살려낸 빼어난 풍자극이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 중 가장 상업적이라고 느꼈다. 일본 내에서의 반응도 뜨거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영화를 향한 관심은 이제 시작이다. 부산발 입소문은 3일 뒤로 다가온 국내 개봉으로 이어지며 강력한 파급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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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그저 사고였을 뿐'은 갈라 프레젠테이션(거장 감독의 신작 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화제작 가운데 감독이나 배우가 직접 영화를 소개하고 관객과의 만남을 갖는 섹션)의 포문을 열었다.

영화가 소재 삼은 사건은 2022년 이란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히잡 시위다. 정부의 인권 탄압에서 비롯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개개인에게 남긴 분노와 상처를 들여다봤다. 여기에 복수극 형식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설정해 용서와 대화의 문을 열어놓은 거장의 너른 시선이 돋보인다.

이란을 대표하는 거장 자파르 파나히는 이 작품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타며 베니스(2002년 '써클'), 베를린(2015년 '택시')에 이어 3대 영화 그랑프리를 석권한 4번째(현존으로는 유일) 감독이 됐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그는 스스로 '사회파 감독'으로 규정하며 "관객이 원하는 영화가 아닌 따라오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반정부 영화를 만든다는 이유로 약 20년간 이란 정부의 체포와 구금, 영화 제작 금지 처분을 받아온 파나히는 "영화를 만드는 자유, 우리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계속 도전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영화 만들기가 투쟁이 된 영화 거장의 흔들림 없는 뚝심은 존경심과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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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의 밤은 잠들지 않는다…세 과시·영화 홍보·개인 브랜딩 파티

영화제의 하루는 체감으로는 24시간을 넘어선다. 아침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는 영화 감상과 기자회견, 인터뷰 등 취재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다면, 해가 진 후에는 또 다른 문이 열린다. 만남과 교류의 장 그리고 업계의 동향에 촉각을 세우는 시간이다.

아시아 각국들은 올해도 나라의 이름을 내건 파티들을 개최해 자국 영화들을 알리고 아시아 영화인과의 교류의 장을 마련했다.

국내 영화 제작사와 연예 기획사들의 세를 과시한 '○○의 밤'도 끊이지 않았다. 부산국제영화제 후, 추석 전 개봉되는 영화들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또한 배우 강동원과 넷플릭스 김태원 디렉터 등은 개인의 이름을 내건 비공개 술자리를 마련해 영화인들과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부산



한 호텔에서 열린 영화진흥위원회의 밤은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한국 영화와 콘텐츠가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화 산업의 위기 극복은 전 세계 영화계의 공통된 숙제지만 이 자리에서는 "적어도 한국은 글로벌 OTT 시장의 흐름 선도하고 있지 않느냐"고 부러워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부러움의 시선뿐만 아니라 비판적인 시선도 엿볼 수 있었다. 다른 자리에서 만난 미국 대형 배급사 L사 관계자는 "한국 영화 산업의 쇠퇴와 함께 유망한 감독들은 대부분 OTT로 가고 있지 않았느냐"며 "한국은 글로벌 OTT의 납품 공장으로 전락했다"는 뼈아픈 지적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영화제에는 정부 인사들이 연이어 찾아와 격려와 지원의 목소리를 전해 영화계의 미래를 낙관하게 했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개막식에 참석한 데 이어 영화인의 산실인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찾아 영화인의 의견을 청취했다.
극장



지난 20일에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영화제를 방문해 관심과 지원을 약속하는 메시지를 냈다. 대통령의 행보가 곧 메시지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극장의 현실과 위기를 담은 영화 '극장의 시간들'을 관람하고 무대에 올라 "최근 한국 영화 제작 생태계가 매우 나빠지고 있다는데, 정부가 영화 산업을 근본에서부터 튼튼하게 성장하도록 충분히 지원하고 관심을 갖겠다"고 발화까지 한 적극적인 움직임은 정부의 영화계 지원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 충분했다.

또한 하루 지난 21에는 X(옛. 트위터)에 "정부는 영화 산업이 K-컬처의 세계적 확산을 주도하며, 국가 전략 산업으로서 굳건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튼튼한 기반을 조성하겠다. 제작부터 유통과 해외 진출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활성화해 영화 산업이 미래 혁신 성장 동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글을 올려 두 차례 극장 할인권 배포와 같은 일시적인 대책을 넘어 장기 대책과 지원을 마련하겠다는 구체적 의지를 피력했다.
부산국제영화제



◆ 경쟁 부문 신설…작품간 편차 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

올해 영화제의 귀추가 주목되는 건 경쟁 부문 신설 때문이다. 부산영화제는 기존에도 뉴커런츠상(신인 감독 데뷔 섹션), 지석상(제작 편수 3편 이상 감독 섹션)이라는 수상 부문이 있었지만 올해 이 두 섹션을 합쳐 경쟁 섹션으로 전환한 '부산 어워드'를 신설했다.

BIFF는 국제 영화제가 성장하려면 경쟁 전환을 해야 한다는 오랜 지적 속에서도 비경쟁 영화제를 표방해 왔다. 그러나 30주년을 기점으로 경쟁 영화제로의 변화를 선포했다. 박광수 이사장이 "경쟁 부문을 신설하는 것이 '아시아 영화'를 부각하는 차원에서 더 낫다"는 결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21일까지 공개된 경쟁작은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 '또 다른 탄생', '여행과 나날', '지우러 가는 길', '충충충', '고양이를 놓아줘', '소녀'까지 7편이었다. 총 14편 중 절반이 공개된 가운데 작품 간 편차가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중견 감독과 신인 감독의 작품이 한데 어우러진 데다 월드 프리미어에 구애받지 않고 타영화제에 이미 공개된 바 있는 작품까지 포용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였다.
나홍진



그러나 세계 어느 경쟁 영화제도 완벽하게 초청 영화의 수준을 컨트롤할 수 없다. 뛰어난 감독도 졸작을 만들고, 신인 감독도 수작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영화의 무한한 변수다.

남은 기간의 과제는 부산국제영화제만의 시선과 기준으로 이들 영화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다. 한국의 나홍진 감독을 비롯해 미국 코고나다 감독, 이란 마르지예 메쉬키니 감독, 홍콩 배우 양가휘, 한효주 등 7명 심사위원의 몫이다.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영화인이기에 격론의 장이 열리겠지만, 이들이 참여한 기자회견에서는 심사기준이 명확히 정립되지는 않아 보였다. 영화를 통해, 영화 안에서 해답을 찾아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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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점을 돈 부산국제영화제는 후반부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스파이 스타' 등 나머지 7편의 경쟁작을 잇따라 공개하고, 이창동과 두기봉 감독의 스페셜 토크, 봉준호 감독이 참여하는 까르뜨 블랑슈 스페셜 토크,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 양조위의 신작 GV, 줄리엣 비노쉬의 마스터 클래스 등의 핵심 프로그램도 관객과 함께 할 예정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9월 26일 폐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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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