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夜] '꼬꼬무' 1조 원 자산가 부부 살인 사건···오버킬의 살인마 '친아들 박한상', 범행의 이유는?

작성 2025.08.22 07:26 수정 2025.08.22 07:26
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변호사도 손절한 범죄자를 추적했다.

2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오버킬의 살인마 - 강남 대저택 부부 살인 사건'이라는 부제로 1994년 당시 100억대 자산가 부부의 사망을 추적했다.

1994년, 현재 시세 300억에 달하는 150평 대저택에서 현재 추정 1조 원, 당시 100억대 자산가 한약상 부부가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대저택은 불에 타서 완전히 전소되었고 부부는 탈출을 시도하지도 못한 채 흉기에 찔려 살해되었던 것.

시신이 처음 발견되던 당시에는 숯처럼 굳은 탄화 시신이라 보이지 않았던 것이 영안실로 옮겨진 후 드러났다. 두 시신에서 무려 100군데 넘는 자상이 발견된 것. 특히 남편은 심장, 그리고 아내는 목에 집중된 오버킬이 충격을 안겼다.

증오와 분노를 담은 오버킬 살인으로 피해자의 주변 인물을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하고 있던 가운데 경찰은 조사를 진행하던 중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부부의 큰아들 박한상을 주시했다.

사건 당시 작은 방에서 자고 있다가 깬 아들은 너무 큰 불이 나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홀로 탈출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시차 적응이 안 되어 밤 9시부터 잠이 들었다며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한상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잠만 든 자신을 탓하며 오열하기도 해 그를 의심하는 형사들에게 윗선에서는 설마 아들이 부모를 그렇게 죽일 리 없다며 그를 풀어주라고 했다.

그런데 조사가 계속되며 박한상이 돈 문제로 부모와 갈등이 있던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사건 후 현장을 태연하게 둘러보고 청소까지 하고 간 그의 모습에 일부 형사들은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했고 몰래 그에 대한 수사를 계속해서 진행했다.

투 트랙 수사가 진행되던 중 한 형사는 친척 집에 머물고 있던 박한상을 감청했다. 여자 친구와 통화를 하던 박한상. 그런데 통화 내용에서 감정의 동요가 전혀 포착되지 않아 의아함을 자아냈다.

사건 발생 4일째, 뜻밖의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화상을 입은 박한상의 치료를 담당한 간호사가 연락을 해 온 것. 간호사는 "머리에 피가 많이 묻었는데 머리에는 상처가 없더라"라는 말을 했고 이에 형사는 이것이 피해자들의 혈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종아리에 치흔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형사는 곧장 박한상을 만나러 갔다.

피해자들에게는 방어흔이 남아 있었던 상황이라 가해자에게 분명 상처가 남아 있으리라 판단한 형사들. 그리고 박한상의 종아리에 남은 치흔은 그의 어머니가 남긴 상처였던 것이다.

칼에 찔리면서 살려달라 애원하며 아들을 물었던 것.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행동에도 박한상은 인간의 심정을 다 포기한 채 부모를 무차별하게 살해한 것이다.

박한상이 범인이라 확신한 형사는 박한상을 밖으로 불러내 "왜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거야"라고 추궁했다. 그리고 결국 모든 범행을 자백한 박한상.

그는 본격적인 취조가 진행되기 전 여자친구한테 전화 한 번만 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리고 그는 완전 범죄를 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여자친구와 웃으며 통화를 해 이를 보는 형사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남부럽지 않은 재벌가 집안의 첫째 아들로 태어난 박한상. 그는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었고 겨우 입학한 지방대에 등교하기는커녕 오렌지족(부모님 돈으로 유흥을 즐기는 90년대 부유층 자제나 유학파 출신을 일컫는 말)으로 지내며 부모 돈으로 사치와 향락을 즐겼다.

결국 그만 보면 잔소리를 하는 아버지를 보고 아들을 유학 보낸 어머니. 이후에도 부모들은 아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박한상은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고 이를 알아버린 아버지가 분노하며 잔소리를 하자 살인을 결심한 것이다.

잡화점에서 범행에 사용할 칼을 사고, 휘발유도 구매한 박한상은 귀국하던 당시 비행기에서 보았던 완전 범죄 영화를 참고해 범행 도구도 골랐다.

그리고 범행 전 성매매를 하러 청량리에 간 박한상. 그는 집으로 돌아와 때를 기다리다 밤 12시가 넘어 집안이 고요해지자 범행을 시작했다. 혈흔이 튀면 증거가 남을까 봐 팬티와 운동화만 신은 채 맨몸에 침대 커버를 뒤집어쓰고 람보칼과 과도를 들고 안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10여분 동안 부모를 계속 찌러 살해했다.

미국에서 도박에 손을 댄 박한상은 하룻밤 새 두 달 치 용돈을 날리고 차를 사라고 부모가 보내준 천오백만도 앉은자리에서 탕진했다. 그러나 멈출 생각 없이 도박에 빠진 것이 사회 탓이라는 궤변까지 늘어놓았다.

결국 그는 유산을 상속받으면 그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며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만이 아닌 어머니까지 살해하기로 결심한 것.

살해 후 화장실에서 피를 씻어낸 박한상. 사실 그의 범죄는 완전 범죄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범행 후 머리만 감지 않았던 박한상의 머리에 핏덩이가 남아 있었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종아리의 치흔이 결정적 증거가 된 것이다.

사건 보도 후 충격에 빠진 국민들. 이에 오렌지족과 도피성 유학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 언론을 통해 사건을 접한 황산성 변호사는 박한상에게 죄를 뉘우치는 방법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박 씨의 변호를 자처했다.

그러나 박한상은 돌연 태도가 돌변해 자신이 무죄를 주장하며 아무 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형사들의 고문으로 자백한 것이라는 거짓말까지 했다.

이에 황 변호사는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고 계속 설득하며 첫 번째 공판에 나섰다. 그러나 박한상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지어내며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

결국 황 변호사는 첫 공판 후 박한상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심한 좌절을 느끼며 그에게서 손을 뗐다.

재판부는 박한상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부모님이 살았다면 아들의 사형은 원치 않았을 추측 외에 사형을 피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

세상 모두가 등을 돌려도 유일하게 내 편이 되어주는 부모님. 하지만 박한상은 그것을 몰랐다. 이에 재판부는 박한상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

사형 선고로 상속인 결격자가 되어 유산 상속도 못 받게 된 박한상은 이후에도 반성 없이 취재진을 향해 욕설을 하고 화를 내는 모습을 보여 보는 이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현재 박한상은 우리나라 두 번째 장기 복역 중인 사형수. 사건이 벌어지고 31년이 지난 지금, 그는 과연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을까?

박한상을 6년 동안 담당했던 교화 위원은 자신의 글을 통해 "반성은커녕 나갈 꼼수만 두고 있는 놈, 범죄 사실을 끝끝내 부인하면서 오히려 다른 이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했다. 사형수 상담 30년 동안 이 아이 앞에서만큼 참담해 본 일이 없었다. 나는 끝내 용서하고 포용할 마음을 내지 못했다"라고 설명해 그가 여전히 반성 따위 없는 삶을 살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사건 후 모두에게 던져진 질문. 우리는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하나. 또한 무너진 인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 높아졌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인성보단 성공을 강요하는 사회, 윤리와 도덕 보다 속도와 경쟁이 앞서는 사회, 보이는 것이 전부가 되어 버린 세상. 우리는 여전히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한 번쯤을 돌아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김효정 에디터 star@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