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프로듀서·DJ 알티 '성실한 예술가'의 '비현실적인 완벽주의'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 '뚜두뚜두', '불장난' 등 수많은 히트곡에 참여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알티(R.Tee)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성실한 예술가'다. '성실함'과 '예술'은 언뜻 양립하기 어려운 단어처럼 보이지만, 알티가 추구하는 바는 그 둘의 공존이다.
화가인 아버지 밑에서 애정을 듬뿍 받으며 자란 알티는 스스로를 '워커홀릭'이라 말한다. "미술로는 예술적 표현을 다 할 수 없어서 다니던 미대를 자퇴하고 음악을 시작했다"는 그는 서울 마포의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했고, 그 결과 지난 10여 년간 YG와 더블랙레이블을 거쳐 블랙핑크, 전소미, 태양 등과 작업하며 K팝 대표 프로듀서로, 국내 최정상의 DJ로 자리매김했다.
뜨겁고 화려했던 20대를 지나, 서른다섯이 된 2025년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해다. 2~3년 전 인터뷰에서는 "절대 독립은 없다"고 단언했지만, 결국 그는 자신만의 음악 레이블 '알티스트'를 설립하며 독립의 첫발을 내디뎠다. 성동구 성수동으로 이사를 준비하던 중, 마치 '운명처럼' 새로운 꿈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층고 8m에 달하는 파티룸을 갖춘 그의 사옥 겸 작업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공간이다. 이곳에서 만난 알티는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웃어 보였고, 이 공간을 단순한 스튜디오가 아닌 새로운 아티스트 영입과 예술·공간의 융합, 그리고 국내 전자음악의 글로벌화를 위한 전초기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도 따랐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피로'보다 '들뜸'이 먼저 읽혔다. 레이블 운영자로서 하루를 보내고, 일과가 끝난 후에는 매일 작업실에서 두 곡씩 만든다는 그의 일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그는 이를 '창작의 고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누구나 이 정도 힘듦은 있지 않나요?"라며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아버지가 어릴 적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아무리 천재라도, 매일 붓을 드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고요. 어떻게든 하기 싫어도 그 일을 해내는 사람을 이길 순 없다는 말이죠. 저는 그냥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거고, 그것을 힘듦으로 표현하고 싶진 않아요."
새 레이블을 세운 이후 알티가 DJ로서 처음 내놓은 싱글은 전소연과 함께한 '담다디'였다. 작업실에서 직접 공개한 곡에 대해 그는 "몽환적인 감각 속에 강렬한 힘을 넣고 싶었고, 가사에 염원이 묻어나길 바랐다"고 말했다. 반면 뮤직비디오는 사무실을 배경으로 유쾌하고 엉뚱한 연출로 웃음을 자아낸다. 모두 알티가 100% 의도한 바다.
"전소연 씨의 은밀한 팬이었어요. 언젠가 꼭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는데, 지난 1월에 먼저 만나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어요. 저희 둘 다 곡을 만들지만 색깔이 워낙 다르다 보니, 오히려 더 큰 시너지가 나더라고요. 워낙 바쁠 텐데 12시간 넘는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함께해 줘서… 정말 고마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가장 아끼는 대표곡을 묻자, 그는 주저 없이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을 꼽았다. 그 곡 안에 담긴 모든 요소가 알티의 예술적 감성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여전히 전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 곡을 넘어서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그의 가장 가까운 목표다.
그리고 그가 더 멀리 바라보는 꿈은 '전자음악'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곡에 대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주파수, 감정의 순간을 담고 싶다. 명함 대신 곡으로 저를 보여드리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신의 음악적 색깔에 대해 "몽환적이지만 강렬한 힘, 양과 음의 에너지, 전자음악 기반의 정서적 전달"이라고 정리했다.

최근엔 젊은 아티스트 한 명의 영입도 준비 중이다. 그와 동시에 알티는 아티스트로서 전자음악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도 함께 모색하고 있다. K팝의 전성기를 이끈 작곡가 중 한 명으로서, 그는 아직 국내 전자음악 시장이 충분히 확장되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더 많은 실험, 더 많은 연결, 그리고 더 많은 무대를 준비 중이다.
"클럽도 좋지만, 건강한 에너지를 주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시뮬레이션해 보니 이곳에서 80명 정도 규모의 쇼케이스도 가능하겠더라고요. 단순한 클럽이 아니라, 페스티벌처럼 대중과 폭넓게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열고 싶어요. 그 속에서 전자음악이 가진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죠."
물론,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작업도 계속될 예정이다. 그리고 그가 이 장르에 더욱 깊이 빠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전자음악이 가진 희열이, 병실에 누워있는 누군가에게도 환한 미소를 줄 수 있다는 걸 저는 믿어요. 누군가는 '어렵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저는 예술의 힘을 믿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