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28년 후', 너무 늦게 부활한 좀비…현실 담고 재미 놓쳤다

작성 2025.06.20 11:18 수정 2025.06.20 11:18
28년후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28년 후'는 2003년 개봉한 '28일 후'의 속편이다. 전작은 '뛰는 좀비'라는 좀비물의 새로운 원형을 제시한 수작이자 인간의 본성과 생존에 대해 사유하는 사회 드라마로도 호평받았다.

오래 봉인된 속편의 경우 전작의 주역들이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28년 후'는 '28일 후'의 주역인 대니 보일 연출, 알렉스 가랜드 각본 조합으로 기대치가 치솟았다. 그 사이 대니 보일은 '슬럼독 밀리어네어'(2009)로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며 최전성기를 누렸고, 알렉스 가랜드는 '엑스 마키나'(2015), '멘'(2022), '시빌 워: 분열의 시대'(2024) 등을 연출해 감독으로도 인정받은 위치에 올랐다.

23년의 공백 동안 좀비물은 무한 확장과 진화를 거듭했다. '28일 후'의 영향을 받은 '새벽의 저주'(2004), '월드 워 Z'(2013) 등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고 한국에서도 K-좀비 신드롬을 일으킨 '부산행'(2016)이 마니아들의 호평을 받았다.

좀비물의 대중화를 이끈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는 '28년 후'를 통해 전편의 명성을 지키고, 아류작보다 나은 결과물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니 보일은 '28일 후'의 속편을 표방했던 '28주 후'(2007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원조 좀비물 맛집'으로서 달라도 확실히 다른 결과물을 보여줬을까.

28년후

◆ 바이러스로 봉쇄된 영국…브렉시트로 인한 고립주의 반영

'28년 후'는 좀비 바이러스가 유출된 지 28년 후의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바이러스의 유럽 확산은 저지됐으나 창궐지였던 영국은 봉쇄 조치가 내려진 상황이다. 대재앙에 가까운 좀비의 습격에서 일부 살아남은 사람들은 홀리 아일랜드라는 곳으로 이주해 와 폐쇄적인 공동체를 꾸렸다.

영화는 한 가족의 이야기로 문을 연다. 제이미(에런 테일러 존슨)는 아픈 아내 아일라(조디 코머), 어린 아들 스파이크(알피 윌리엄스)과 살고 있다. 올해 12살이 된 스파이크는 단 한 번도 섬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제이미는 아들이 강하게 크길 바라는 마음에서 본토로 데려가 좀비를 사냥하는 신고식을 치러준다. 본토에 발을 들인 스파이크는 바이러스에 잠식된 세상을 마주하고, 감염돼 좀비가 된 사람들의 맹렬한 습격에 공포를 느끼게 된다.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단순한 귀신이나 괴수가 아니다. 대부분 물리쳐야 할 존재로 인식되기는 하지만 좀비는 사회상을 투영하고 메시지를 은유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28년후

전작 '28일 후'는 침팬지로부터 '분노 바이러스'가 유출된 28일 후의 영국을 그렸다. 대니 보일 감독은 자신이 만든 영화를 다시 보며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떠올렸다고 했다. 바이러스로부터 인류가 어떻게 대처하고 생존해 나가는지를 그렸던 이 영화는 실제로 코로나19 시대때 재조명받기도 했다. 영화는 예언의 매체가 아니지만 의도치 않게 과거가 미래에 재현되고, 현재가 과거를 반복하는 것과 같은 상황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대니 보일은 23년 만에 만든 속편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세상을 투영했다. 좀비 창궐로 인해 영국이 고립돼 버린 상황, 그로 인해 원주민이 고난당하는 모습은 브렉시트(Brexit) 이후 영국의 현실을 은유하는 듯한 인상도 남긴다.

또한 생존자들이 살아남아 가족과 공동체를 이루고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연명해 가듯, 본토에 남아있는 감염자 역시 10,228시간 동안 진화를 거듭했다는 설정을 부여했다. 그들은 더 빠르고 강해졌다. 다양한 이미지의 좀비들이 날뛰는 초중반부는 영화의 긴장감과 공포감을 조성하며 뒤이을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28년 후

◆ 가족주의·삶과 죽음…철학적으로 진화한 좀비물

다만 영화는 '28일 후'를 보면서 가졌을 기대감을 배신하는 형태로 이야기와 정서가 전개된다.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는 이번 영화에서 가족주의를 부각하는 동시에 삶과 죽음의 사유하는 철학을 내세웠다. 뚜렷한 개성으로 좀비 장르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던 전편과는 또 다른 노선이다. 범람에 가까운 좀비물의 홍수 속에서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가 내세운 건 재미보다는 메시지, 개성보다는 철학인 셈이다.

아릴라의 어딘가 숭고해보는 죽음과 좀비가 낳은 감염되지 않은 아기를 거두는 스파이크의 모습은 죽음과 탄생의 순환고리를 보여준다.

28년 후

특히 닥터 켈슨(랄프 파인즈)의 등장은 죽음을 사유하는 영화의 철학을 더욱 강화한다. 사망자들의 유골로 탑을 쌓아 위령제를 하는 듯한 그의 모습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를 다시 죽이는 것보다 인간다운 것임을 상기시킨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로 '죽을 것임을 기억하라'는 의미)라는 그의 읊조림은 정적인 영상, 음악과 어우러지며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다만 전편처럼 좀비물의 박력과 쾌감을 기대한 관객에게 '28년 후'는 실망스러운 결과물일 수도 있다. 쫓고 쫓기는 스피드 액션신은 초중반에 집중돼 있으며 중반 이후부터 철학을 사유하는 지난한 드라마가 이어진다.

또한 다채로운 좀비의 모습을 이미지화하는데 공을 들였지만, 그들의 캐릭터는 모호하며 자극적인 피사체로만 머문다. 감염자들의 리더 '알파'의 존재는 등장 초반에는 섬뜩한 공포를 안겨주지만 반복된 등, 퇴장으로 인해 자극의 강도는 옅어지며 '피식'하고 웃게 되는 상황도 빚어진다.

28년 후

'28년 후'는 대니 보일이 인정한 '28일 후'의 유일한 속편이자, 향후 이어질 트릴로지의 첫 번째 영화다. 두 번째 영화는 이미 촬영을 마쳤고 내년에 개봉한다.

감독은 '28년 후' 후반부 갑작스레 등장한 인물을 통해 2편에 대한 기대감을 부여하고자 했다. 영화의 전체 흐름에서 놓고 보면 상당히 튀는 장면이나 이 캐릭터가 영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인물을 모델링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의미하는 바가 있다. 이는 2편에서 보다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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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