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경계를 넘어 춤추는 예술가, 최호종

작성 2025.06.17 16:15 수정 2025.06.17 16:15
최호종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최호종(30)은 '무용수들의 무용수', '예술가를 넘어선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고요하지만 깊은 눈빛으로 주변을 관찰하고, 어떤 것이든 자신만의 언어로 생각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최호종은 큰 강점을 가졌다.

지난해 11월까지 방영된 엠넷 <스테이지 파이터>에서 최호종은 월등한 실력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음악이 시작되면 마치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다른 존재가 되어 몸짓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당연히 최호종은 어릴 때부터 남달랐을 예술가의 모습 자체였을 것 같다는 상상이 들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고백한 최호종은 오히려 어린 시절 무대 위의 모습을 전혀 꿈꿔본 적 없을 정도로 말없고 소심한 소년이자,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일명 '대치동 키즈'로 공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무대나 미디어에서 비쳐지는 최호종과 인간 최호종의 모습은 다소 괴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 깜짝 놀랄 정도로 솔직했고,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된 문장으로 읊는데 아주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그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일문일답 형식으로 그와의 대화를 전한다.

최호종

Q. 평소 성격과 무대 위 모습이 다르다는 말을 들었어요. 본인도 그렇게 느끼시나요?

A. 네, 저도 좀 반항적인 면이 있긴 한데… 무대에서만요. 원래는 굉장히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편이에요. 평소에는 말을 많이 아끼기도 하고, 일부러라도 소통을 최소화하는 편이라서 안에 감정이나 생각이 많이 쌓여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게 무대에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풀려요. 어떤 때는 즉흥적으로, 텍스트로도 그걸 쏟아내듯이요. 그러다 보면 무대에서는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Q. 처음부터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들었어요.

A. 네, 정말 그랬어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굉장히 무기력했어요. 꿈도 없었고, 춤도 몰랐고, 무대라는 것도 전혀 몰랐어요. 심지어 무대에 내가 설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고요. 그냥 대치동 학원가에서 일주일에 학원만 11개 다니면서, '공부'를 위해 사는 삶이었어요. 꿈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죠. 말수도 적고, 친구도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제가 춤을 추고 무대에 서 있다는 게 기적 같아요. 부모님께서 그 당시 굉장히 애를 많이 써주셨거든요. '좋아하는 게 없으면 이것저것 다 해보라'고 하셨어요. 대학도 인서울 해야 한다는 압박이 컸던 시절이었는데, 그러던 중에 연극 오디션을 알게 됐어요. 연극 <디 마르가리따> 오디션을 봤는데, 연출님이 저를 보고 '치유가 필요한 아이 같다'고 하시면서 뽑아주셨어요. 그게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어요. 고1 때였는데, 그 이후로 스스로를 반성적으로 바라보게 됐고, 성격도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부모님이 저에게 '너는 엄청난 재능이 있다'고 해주셨고, 믿고 지지해 주셨어요.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죠.

Q. 글을 쓰는 것도 그런 감정의 흐름을 정리하는 방법 중 하나인가요?

A. 맞아요. 예전에는 배우일지를 하루도 빠짐없이 365일 쓴 적이 있어요. 요즘은 그렇게 자주 쓰진 않고 2주에 한 번 정도? 글 쓰는 목적이 하나가 아니라서요. 안무에 대한 아이디어를 기록하기도 하고, 예술적인 사유나 인간으로서 느낀 감정을 남기기도 해요. 형식도 다양해요. 다큐처럼 쓸 때도 있고 시처럼 쓸 때도 있고. 글을 쓰게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극을 하면서였어요. 그때 처음으로 '말'과 '글'이라는 도구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최호종

Q. 안무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으세요?

A. 책에서도 받지만, 꼭 책이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필요할 때 읽는 정도? 오히려 평범한 일상에서 많이 받아요. 애니메이션 보다가, 게임하다가, 그냥 아무 일도 아닌 순간에도요. 내가 주체로서 깨어 있으려고 애쓰면 어디서든 영감은 오더라고요. 최근엔 '고통받는 몸'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감명 깊었어요. 읽다가 '왜 내가 이걸 읽어야 하지?' 하면서도 끝까지 읽게 되는 그런 책이었어요.

Q. 한국무용이라는 장르를 해석할 때 어떤 태도를 가지시나요?

A. 미술관에서 작품 볼 때랑 비슷한 것 같아요. '작가의 의도는 뭘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저는 그냥 느껴요. 많은 움직임이 애초에 모호한 상태로 존재하는 거잖아요. 그걸 해석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멀어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안무가조차도 자신의 의도를 다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잖아요. 그냥 별로면 별로인 거고, 좋으면 좋은 거예요. 관객이 그렇게 느끼는 게 예술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순환이라고 생각해요.

Q. 올해 인기를 실감하신다고요?

A. 공연장에서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있었지만, 요즘은 일상에서도 알아봐 주세요. 그게 좀… 아직은 어색해요. 감사하지만 적응은 잘 안 되더라고요. 생일카페도 마지막 날 몰래 가서 인사드리고 왔어요. 팬분들이 해주시는 게 너무 커서, 제가 그만큼 돌려드릴 수 있을지 걱정도 돼요. 그래서 더 좋은 무대, 좋은 퍼포먼스로 보답하려고 해요.

Q. '오리'나 '작두핑' 같은 별명이 많은데요?

A. '오리'는 원래 오리 이모티콘을 자주 쓰기도 했고, 저랑 닮았다고 하더라고요. 조류가 생존에는 비효율적인 동작인데도 뽐내는 게 무용수랑 닮았대요. 웃기고 귀여운 동시에 멋있는 조류들의 모습이 저랑 닮았다고요. '작두핑'은 어떤 장면에서 팬들이 붙여주신 건데, 살면서 이렇게 별명이 많을 줄은 몰랐어요. 너무 재밌고 감사하죠.

Q. 국립무용단 퇴단은 큰 결심이었을 것 같아요.

A. 네. 국립무용단은 저에게 꿈이었지만, 최종 목적지는 아니었어요. 입단했을 때도 '여기서 뭘 배우고, 어디로 나아갈까'를 늘 고민했어요. 제가 가진 개성과 예술관이 어떤 건지 계속 관찰하다 보니까, 단순히 스펙트럼을 넓히는 게 아니라 '깊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동시대적인 이야기를 춤으로 다루는 창작 작업을 하고 싶었고, '살'이라는 단체를 만나 퇴단을 결심하게 됐어요. 실제로는 퇴단 1년 전에 이미 마음속 정리를 시작했어요.

최호종

Q. <스테이지 파이터> 출연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어요.

A. 맞아요. 제안받고 나서 3개월 넘게 고민했어요. 나는 예술가로서 나아가야 할 길이 있는데, 방송이 과연 맞는 선택일까 싶었죠. 하지만 예전에 <댄싱9>을 보면서 방송으로 자신을 알리는 멋진 무용수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제가 방송에 나온 이유는 단 하나예요. 내가 잘 보여서 이기기 위한 게 아니라, 무용수들이 어떤 사유를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재료'가 되고 싶었어요.

Q. 방송 이후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겠어요.

A. 무용계에서도, 예술계에서도 늘 중심을 지키려고 애써요. 한국무용수로서 정체성을 지키되, 동시대적인 접근을 병행하는 '투트랙'을 걷는 거죠. 외롭기도 했어요. 선배님들한테 "지금은 그거 할 때가 아니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그래도 저는 제 방식대로 중심을 지키려고 했어요.

Q. 평소 루틴이나 자기관리 방법이 있다면요?

A. 특별한 루틴은 없어요. 연습은 하루 종일 해도 안무가 10초도 안 나올 때가 있어요. 그 과정을 좋아해요. 스스로에게 제약을 주고, 거기서 방향을 찾으려고 해요. 운동도 체형 관리보다는 재활 목적이에요. 제일 큰 장점은 '다치지 않는 몸'을 유지하는 거예요.

Q. 체형 관리나 다이어트는 어떻게 하세요?

A. 기본적으로는 웬만하면 다이어트를 따로 하진 않아요. 무용이라는 게 워낙 활동량이 많다 보니까 살이 저절로 빠져요. 근데 작품에 따라 '극도로 마른 신체'가 필요할 때는 집중해서 다이어트를 하기도 해요. 그럴 땐 좀 철저하게 조절하죠. 술이나 담배는 일절 하지 않고요. 술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도 나름대로 자기관리를 구체적으로 하는 편이에요. 제게는 무대에서의 퍼포먼스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Q.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안무를 바꾸는 경우도 있나요?

A. 많아요. 몸에 안무가 숙지되면 무대에서는 체험자로서 판단하게 되거든요. 미묘하게 디테일을 바꾸기도 하고요. 관객은 몰라도 무용수는 느껴요. 그게 무대의 생동감이라고 생각해요.

Q. 부상은 없으세요?

A. 현대무용은 고통이 90%예요. 발가락 사이가 찢어지거나, 멍, 화상… 그런 건 기본이에요. 특히 발가락은 몇십 년째 찢어지고 있어요. 그래도 그 고통을 넘어서 오는 유레카 같은 순간이 있어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최호종

Q. 도전하고 싶은 주제나 작품은요?

A. 저는 아름답지 않은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고통, 아픔, 기괴함 같은 것들. 그런 걸 저만의 언어로 아름답게 표현해보고 싶어요. 심리라는 게 그렇잖아요. 아주 작은 빛 하나만 들어와도 감상이 피어나요. 그런 게 언젠가는 관객에게도 카타르시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Q. 최호종에게 춤은 무엇인가요?

A. 춤은 제 존재의 언어이자, 내 안에 응축된 세계를 표현하는 수단이에요.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때로는 탈피하고 또 태어나는 반복의 예술. 지금도, 내일도 어떤 변화를 겪을지 모르는 여정이죠.

Q. 전성기라고 느끼시나요?

A.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어요. 어쩌면 죽기 전 마지막 춤이 전성기일지도 몰라요. 그 순간까지 어떤 형태로든 끊임없이 춤추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팬분들에게 한 마디.

A. 제가 이렇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건 정말 기적 같아요. 제 춤을 보고 무언가를 느끼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좋은 퍼포먼스로 보답드리고 싶습니다.

사진=낭만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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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윤 기자 ky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