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 은행 현금수송차량 탈취, 단 10초면 충분했다…범인 잡은 집념의 형사들

작성 2025.03.07 12:38 수정 2025.03.07 12:38
꼬꼬무 찐리뷰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6일 방송된 '범죄꾼의 시나리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진서연, 뮤지컬배우 김호영, 가수 테이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은행 현금수송차가 털렸다

때는 2001년 12월 18일, 경주경찰서야. 시간은 오후 5시 42분. 강력반에서 근무하는 주재정 형사는 퇴근을 앞두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 사건이 터진 거야. 형사들은 곧장 사건 현장으로 출동했는데, 사건이 벌어진 곳이 예상 밖이야. 경찰서에서 불과 100미터 정도 떨어진 아주 가까운 곳이었거든. 현장에 도착한 주 형사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듣고 깜짝 놀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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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근무중에 연락을 받고 가까우니까 바로 나왔죠. 나오니까 현장에는 아무것도 없고. 여기가 사람이 많은데, 제일 중심가 사거리거든요. 처음에는 '이게 진짜 실화야?' 이럴 정도였어요. 경주 이 지역에서는 접해본 적이 없었죠. 그러니까 진짜 생소했고, 영화에서나 보는 그런 거라 생각했죠.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어떤 사건이길래, 형사도 생소하다고 한 걸까. 당시 뉴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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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현금 수송 차량이 털렸습니다. 범인들은 경찰서 코앞에서 보란 듯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어제 오후 5시 35분 조흥은행 경주지원 출장소 소속 현금수송 차량이 본점에 입금하러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오토바이를 탄 20대 남자 두 명이 접근해 현금 3,100여만원이 든 가방을 들고 골목길로 달아났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은행으로 현금을 수송하던 차량이 털린 거야. 피해금액은 현금 3,100만원. 범인들이 들고 간 돈가방에는 수표랑 수입인지도 있어서 이걸 다 합하면, 총 피해액이 1억 8천여만 원이야. 큰 돈이지. 백주 대낮에 중심가 사거리, 그것도 경찰서 코 앞에서 거액이 도난을 당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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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조흥은행 사거리야. 은행직원 남 대리는 대구지방법원에 있는 조흥은행 출장소에서 현금과 수표가 든 돈 가방을 차 트렁크에 싣고 주차장을 나왔어. 승용차 안에는 남 대리와 다른 직원 김 씨, 청원 경찰까지 총 3명이 타고 있었어. 주차장부터 목적지 은행까진 단 100m의 아주 짧은 거리야. 남 대리는 주차장을 나와서 은행 앞 사거리로 차를 몰았어. 이제 신호를 받고 좌회전만 하면 되는데 바로 그 때,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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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대리는 이상한 예감에 백미러를 쳐다봤어. 보니까, 차 트렁크가 활짝 열려있는 거야. 놀라서 차에서 내렸지만, 이미 늦었어. 젊은 남자 두 명이 탄 오토바이가 반대쪽 골목으로 사라지는 걸 목격했고, 그들의 손에는 트렁크 속 돈가방이 들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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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러로 보니까 트렁크가 열리고 돈이 나가는 느낌이어서, 청원경찰과 제가 바로 문을 열고 뛰어나갔으나 쫓아가지 못했습니다."
-당시 은행직원

좌회전을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에 트렁크가 열리고 돈가방이 털린 거야. 불과 10초도 걸리지 않은 짧은 시간에. 범인들은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어떤 방식으로 트렁크를 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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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이 구간에서 불과 100m 되는 거리에서 트렁크 문을 순식간에 열고. 10초도 안 걸렸을 거예요 아마. 저 문을 어떻게 열었을까."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 범행 시간 단 10초, '트렁크 따기 수법'에 당했다

그 의문은 곧 풀렸어. 범인이 남기고 간 물건이 현장에 있었거든. 바로, 차 열쇠. 범인은 차 열쇠로 트렁크를 열고 돈가방을 훔쳤어. 그리고 도망가면서 미처 이 열쇠를 회수하지 못한 거야. 그렇다면 범인들은 어떻게 차 열쇠를 준비할 수 있었을까? 범인이 두고 간 열쇠는, 진짜 차 열쇠를 복사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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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진짜 승용차 열쇠. 오른쪽이 트렁크에 꽂혀 있던 범인이 남긴 열쇠야. 열쇠 모양이 완전히 다르지. 형사들은 범인이 두고 간 열쇠로 승용차의 문을 열어 봤어. 열리지 않았어. 근데 그 열쇠를 차 트렁크에 넣고 돌려봤더니, 바로 열려. 이게 어떻게 가능해? 비밀은 바로, 트렁크 잠금장치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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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자물쇠 내부는 이런 식이야. 길이가 각각 다른 핀들로 잠겨있고, 핀 길이에 딱 맞는 열쇠가 들어가야 해. 이런 식의 잠금장치를 '핀 텀블러' 방식이라 불러. 당시 현금을 수송하던 그 차의 트렁크도 이런 잠금장치였어. 근데 형사들이 그 트렁크의 잠금장치를 뜯어보니까, 8개의 핀 중에서 4개가 부러져 있었어. 그래서 진짜 열쇠가 아닌, 모양이 다른 열쇠로 돌려도 쉽게 열렸던 거야.

"처음엔 이상했죠. 키 뭉치를 빼서 보니까 톱날이 있는데, 톱날을 일부 중간에 만능키 같이 웬만한 키가 들어가면 그냥 열릴 정도로 깎아놨으니까. 쉽게 열렸던 거죠."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주어진 시간, 단 10초. 이 안에 트렁크 잠금장치를 조작하는 건 불가능해. 그러니까 범인들은 사전에 잠금장치를 조작해 둔 거야. 그래서 신호대기 중인 현금수송차의 트렁크를 쉽게 연 거지. 일명, '트렁크 따기' 수법이야. 주 형사도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신종 범죄수법이야.

운전 중에 트렁크의 물건을 도둑 맞을 거란 생각, 지금은 하기 힘들지.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당시만 해도, 트렁크 따기 수법은 획기적인 범죄 방식이었어.

원래 은행 현금 수송에는 여러 보안 단계가 있어. 먼저 현금 수송은 전용 차량을 이용해야 해. 그리고 현금 수송하는 가방에도 보안장치가 있어. 만약에 누군가 돈 가방에 허락없이 손을 댄다면, 리모콘을 눌러 전기가 흐르게 할 수 있어. 이런 보안 단계가 있는데, 범인들은 어떻게 돈가방을 털 수 있었을까.

먼저 현금을 수송하는 전용 차량. 당시 경주에 은행 출장소만 14곳, 근데 전용 수송차량은 단 3대였어. 그래서 은행 직원의 일반 승용차로 현금을 수송한 거야. 그럼 보안가방은? 그것도 작동하지 않았어. 왜? 일반 가방을 가져갔거든. 100미터 밖에 안되는데, 설마 무슨 일 있겠어, 하는 그 설마하는 방심이 엄청난 피해를 불러온 거야.

범인들은 이런 허술함을 모두 알고 있었던 걸로 보여. 그래서 트렁크 잠금장치를 미리 조작해 둘 수 있었던 거지. 이 범인들, 보통은 아닌 거 같지? 형사들을 놀라게 한 건 또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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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좌회전 할 수 있는 시간이 10초 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본인들이 범행을 해야하는 거죠. 차가 대기하는 순간 바로 뒤에 오토바이를 붙여서 트렁크를 따고 가방을 가져가야 한다는 거죠. 시간적으로 봤을 때도, 사실 엄청나게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본인들이 사전에 여러가지 장소라든가 시간 체크가 정확하게 되지 않았나. 그래서 진짜 치밀한 계획이 아니었으면 이런 건 불가능하다…"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범인들은 현금 수송시간은 물론, 동선까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거로 보여.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된 범행이었다는 거지.

▲ 증거도 목격자도 없다

범인을 잡으려면 일단, 증거를 찾아야 해. '사건 해결의 열쇠는 현장에 있다'는 말이 있지? 이번 현장에도 차 열쇠 말고 범인이 남겨둔 게 또 있었어. 트렁크 잠금장치에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이 두 가닥 정도 끼어 있었대. 트렁크를 열고 돈가방을 꺼내다가 머리를 부딪쳐 남은 걸로 추정돼. 게다가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지문 일부도 발견했어.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용의자를 특정할 수가 없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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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 쪽지문이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에 우리 과학수사 기술로는 쪽지문 분석은 불가능했어요. 원래 지문의 삼각도를 찾거든요. 삼각도 세 개를 찾아서 그 기준점을 기준으로 삼아서 동일인 분석을 하는데, 한 개 점 가지고서는 분석 데이터에 넣으면 안 나오죠. 동일인을 찾을 수 없죠. 그리고 모발 두 가닥 가지고는 DNA 분석이 어려워요. 여러 가닥이 되어야 하거든요. 요즘은 소량도 분석 가능하다고 하던데, 그때 당시의 기술로는 힘들었죠. '모든 범죄는 현장에 있다'라고 배웠거든요. 현장에 아무 것도 없었어요. 결국에는 증거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완전 백지상태였죠."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지금은 우리나라 과학 기술이 발전해서 이 정도 증거로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2000년대 초반에는 과학 수사가 어려웠어. 그렇다고 수사를 포기할 순 없지. 이제부턴 형사의 경험, 집념과 끈기로 범인을 잡아야 해.

먼저 용의자를 추려야 하잖아.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이 누구야? 은행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 내부자의 소행은 아닐까 싶어 형사들은 은행 직원들을 상대로 수사했지만, 아무런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어. 이제 내부자는 아니야. 그럼? 이제 목격자를 찾아야해. 환한 대낮에 번화한 시내 중심에서 일어난 사건이니, 목격자가 있을 거야. 하지만, 목격자도 없었어. 범행 시간이 단 10초.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범행 순간을 제대로 목격한 사람이 없었대. 지금은 CCTV나 블랙박스를 보면 되지만, 당시엔 그게 힘들었지.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했을 때, 범인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었어. 한 명은 붉은색 125cc 오토바이를 몰고 있었고, 나머지 한명은 돈가방을 들고 오토바이 뒤에 탔어. 범행에 사용된 이 오토바이는 사건 전날, 도난당한 오토바이로 추정돼. 근데 누가 이 오토바이를 훔쳐 갔는지는 알 수 없어. 마찬가지로, 단서가 하나도 없었거든.

증거도 목격자도 없는 사건. 수사는 다시 벽에 부딪쳤어. 하지만 포기할 순 없어. 이 사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이유가 또 있어. 사건이 일어난 2001년 12월은 연말방범비상령이 내려진 상황이었어. 근데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전국 각지에서 은행 강도 사건이 유행처럼 일어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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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사건 일주일 전, 대구에서 엽총으로 무장한 강도가 은행을 털었어. 범행에 쓰인 총기는, 인근 총포사에서 탈취한 거야. 총포사 주인은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됐어. 범행에 쓰인 차량도, 차에 붙어있던 번호판도, 모두 도난당한 것들로 밝혀져. 그렇게 은행에서 1억 2천만원을 훔친 범인은, 모든 증거를 불에 태우고 사라졌어.

이뿐만이 아니야. 경주 사건 3일 후, 또 다시 사건이 터져. 이번엔 대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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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현금수송 차량이 또 털렸습니다. 얼굴을 가린 범인 두 명은 반항하는 은행직원을 권총으로 쏴 숨지게 한 뒤 현금 3억 원을 챙겨 달아났습니다."
"현금을 내리는 순간 미리 기다리고 있던 2인조 복면 강도가 승용차로 현금수송차의 뒤를 막았습니다. 그러나 은행직원이 반항하자 가슴과 팔과 다리에 실탄 4발을 발사했습니다. 은행직원을 살해한 강도들은 현금 3억원이 들어있는 돈 가방을 빼앗아 승용차를 타고 달아났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2001년 12월에 은행의 현금을 노린 범죄가 대구, 경주, 대전에서 무려 3건이나 터졌어. 경찰은 세 사건의 연관성을 분석했어. 대구 은행 엽총 강도사건과 대전 현금수송차 살인강도 사건. 경주 사건과 관련이 있을까?

다른 두 사건에선 총기가 사용됐어. 사망한 피해자도 있었고. 하지만 경주는, 신상 노출을 최대한 피한 채, 은행 직원과 어떠한 접촉 없이 돈가방만 들고 사라졌어. 다른 두 사건은 강도 사건이지만, 이건 절도 사건이야. 범행 수법이 완전 달라. 그래서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기 어려워.

공교롭게 이때는 신임 경찰청장이 취임한 직후였어. 경찰청장은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빨리 해결하라는 지시를 내렸어. 이제부터는 총력전이야.

▲ 다른 장소, 같은 수법

강력반 전체가 달라붙어 수사를 이어 나가던 그때, 마침내 사건의 실마리가 드러나. 경찰 전산망에서 동종 수법 범죄를 찾던 주 형사가 1년 전 부산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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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산상에 수법 조회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건 좀 특이한 사건이니까. 이런 사건이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게 있나 해서 검색하는 과정에 부산 사건을 알았죠."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때는 설 명절을 앞둔 2000년 2월 1일. 부산에서 이상한 사건이 발생해. 당시 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부산에서도 손꼽히는 베테랑이야. 1970년대부터 형사 생활을 한 부산 경찰 역사의 산 증인. 부산 조직폭력배 칠성파가 벌인 영락공원 칼부림 사건, 부산을 발칵 뒤집어 놨던 김길태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담당했던 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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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부산북부경찰서 형사과장으로 경찰 생활 38년 정도 하고 2016년도 6월 말에 정년퇴직 했습니다. 제가 2000년도에 부산남부경찰서 형사과 강력팀장을 맡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도 그때 당시만 해도 형사를 20년 정도 했었는데, 부산 시내에서는 그런 사건들이 한번도 없었어요. 한빛은행 출장소에 직원들이 현금을 이송하려고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를 받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뒤에 트렁크가 탁 열리는 소리가 나서, 뭐지? 하고 뒤를 쳐다보니까 트렁크가 열려있고. 쫓아 나가보니 오토바이에 젊은 사람이 타고 있고 현금을 훔쳐가지고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이런 사건은 너무나, 신출귀몰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제 기억에 오래 남아 있었죠."
-김삼식, 당시 부산 사건 담당 형사

1년 전 부산에서도 트렁크 따기 범죄가 일어났던 거야. 피해액은 무려 3억 6천 5백만 원. 당시 20년 경력 넘는 김 형사도 처음 보는 수법이라 깜짝 놀랐대.

"꽂고 돌리고 열고 바로니까. 불과 뭐 5초 안에 그냥 빼갔으니까. 완전히 신출귀몰한 사건이었죠. 흔히 말하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갑작스럽게 차를 타고 가는데 뒤에서 트렁크가 딱 열리면서, 가져가 버리니까. 은행직원들도 조금도 이게 털릴 것이라는 의심은, 0.1%도 못 할 상황이었어요. 이게 있을 수 있는 이야기가? 이런 사건이 있을 수 있는 이야기가? 할 정도로 신종 수법이었습니다."
-김삼식, 당시 부산 사건 담당 형사

운행 중인 차 트렁크를 어떻게 열 수 있었는지, 김 형사도 그게 의문이었다고 해. 혹시 차 열쇠를 복사한 게 아닐까 싶어, 김 형사 본인의 차 열쇠를 피해차량 트렁크에 넣고 돌려 봤어. 그러자 덜컥, 트렁크가 열려. 역시나 안에 있는 핀이 모두 빠져 있었대. 뭘 넣어도 열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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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차 열쇠도 넣어가지고 돌려보니까, 돌아가는 거예요. 아무 열쇠나 꽂고 돌리면 열리도록 이렇게 조작을 해놨던 겁니다. 그래서 아 이게 열쇠를 복사를 한 게 아니고, 잠금장치를 조작했다는 걸, 우리가 알게 됐죠."
-김삼식, 당시 부산 사건 담당 형사

부산 사건과 경주 사건. 동일범의 소행같지? 부산 사건을 살펴본 주 형사도 느낌이 왔어. 그래서 주 형사는 바로 부산으로 내려가 작년에 일어난 은행 현금수송차 탈취 사건의 수사기록을 보여달라 했어. 지난 23개월 동안 쌓인 수사기록. 그 자리에서 수사 자료를 훑어봤어.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했어. 부산 현금수송차 탈취사건의 용의자, 윤 씨의 이름이었어. 주 형사는 윤 씨의 자료를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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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놈이다! 경주에 올라와서 저녁에 회의하면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봤을 때, 맞다. 부산에 거기 수사보고 한 장에서 한 사람의 이름을 가져옴으로 해서 완전히 수사가 활기를 띠었죠."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 청송교도소 출신들

부산 사건의 용의자 윤 씨. 나이 35세에 전과 12범. 19살에 특수절도로 처벌 받은 후 수시로 교도소를 드나들었어. 혹시 '청송교도소'라고 들어봤어? 청송교도소의 정식 명칭은 경북북부교도소야. 3개의 일반 교도소와 직업훈련 교도소로 이루어졌어. 전국의 교도소는 4단계 등급이 있는데, 그 중 경북북부제2교도소는 가장 높은 S4 등급이야. 국내 유일의 중경비시설 교도소야. 이곳은 대부분 독방으로 되어 있대. 이곳 수용자들은 작업도 하지 않아. 하루 한 번 운동시간 외에는 독방에 있어야해. 운동할 때도 격리된 곳에서 혼자 한다고 해. 다른 수용자와 접촉할 수 없게 격리하는 거야.

교도소 수용자들도 경비 등급이 있어. 그중 가장 높은 S4 등급 수용자 400여명이, 이 곳 경북북부제2교도소에 수감돼 있어. 살인, 성범죄 등을 저지를 흉악 범죄자, 다른 교도소에서 문제를 일으킨 수용자들. 그런 자들이 이곳에 수용돼. 유영철, 신창원, 조두순이 이 곳을 거쳐갔고, 현재 오원춘, 김길태, 장대호가 수용돼 있어. 육지 속의 섬 같은 곳이야. 지금까지 한 명도 탈옥을 한 사람이 없어.

부산 사건 용의자 윤 씨는, 바로 여기 청송교도소 출신이었어. 그가 용의자로 떠오르게 된 건, 한 형사의 첩보 때문이었어. 바로,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에서 근무하는 장영권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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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형사는 강력범죄 수사로 정평이 난, 베테랑 형사야. 원래는 국가대표 유도선수였어. 영화 '범죄도시'에서 마동석 배우의 실제 모델이 장 형사라고 해. 장 형사는 수년간 홀로 윤 씨를 쫓고 있었대. 왜 서울에서 근무하는 장 형사가 어떻게 윤 씨를 알게 된 걸까? 장 형사한테는 특이한 별명이 하나 있었어. 바로 '청송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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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6개월 지금 근무를 하면서, 형사만 30년 4개월 정도 근무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신창원 사건이 우리나라에 떠들썩한 사건이 아니었습니까? 신창원 사건을 수사하면서 그 당시에 청송교도소에 있었던 사람하고 인연이 되면서, 청송교도소에 교육도 하고 하면서, 청송교도소의 사람들하고 3,000여명 정도 알게 돼서, 많은 사건을 해결하게 된 거죠. 방송에 큰 사건이 나가면 사건에 대해서 제보를 해주는 거죠. '아 형사님 참 고마웠는데, 이 사건은 누가 했을 것이다' 이렇게 제보하는 거죠. 조직폭력배 사건이라든지, 강도 사건, 서울 강남 전국으로 다니는 아파트 털이, 이런 사건을 청송 사람들을 알면서 많이 해결해 왔습니다."
-장영권 형사, 당시 서울경찰청 근무

매주 주말, 서울에서 경북 청송을 오간지 무려 15년. 그렇게 알게 된 3천명의 청송 출신들은 장 형사의 정보원이 됐어. 그러다 청송 출신 한 명이 장 형사에게 깜짝 놀랄 제보를 해.

"형사님, 97년도에 옥천에서 현금수송차 털었던 놈. 그 놈 제가 알아요."
-청송 출신 정보원의 제보

부산 사건 발생 3년 전, 충북 옥천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던 거야. 1997년 8월 26일, 오전 9시. 은행 직원 황 씨는 은행 출장소로 향하던 길이었어. 차에는 당일 사용할 현금과 수표 2억 2천만원이 든 돈가방이 실려 있었어. 출장소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던 그 순간, 갑자기 들이닥친 괴한이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로 황 씨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쳤어. 그리고 범인은 대기하고 있던 공범의 오토바이를 타고 유유히 사라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발생한 사건. 이 사건, 앞선 두 사건과 동일범의 소행일까?

용의자가 체포된 건 보름 뒤인 9월 10일이었어. 그 용의자가 바로, 부산 사건의 용의자 윤 씨였어. 윤 씨는 자신이 공범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제보로 경찰에 붙잡혔어. 제보자는 윤 씨와 함께 범행을 모의했지만, 마약 중독자라는 이유로 범행에서 배제되자, 화가 나서 윤 씨를 제보하는 거라고 경찰에 주장했어.

하지만 붙잡힌 윤 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어. 심지어 억울하다면서 자해까지 했어. 그런데 11개월 후, 윤 씨는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나. 증거불충분으로. 윤 씨를 제보했던 제보자는 법정에 증인으로 서지 못했어. 재판 전에 사망했거든. 마약을 투약한 채 운전하다가 사고로 사망했어. 판사는 제보자의 진술 말고는 윤 씨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어. 무죄를 받은 윤 씨는 풀려나자마자 관계 기관에 진정을 넣었어. 그로 인해 담당 형사는 징계를 받았다고 해. 옥천 사건 이후, 장 형사는 청송 출신 정보원으로부터 윤 씨에 대한 제보를 받게 돼.

"옥천 사건이 터지고 방송이 나가다 보니, 제보자 중에 한 사람이 저한테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범인이 제가 알고 있는 동료 중 한 사람인 거 같다'고 제보해줬어요. 자기가 자랑스럽게, 옥천 사건도 자기가 했다고 한다고…"
-장영권 형사, 당시 서울경찰청 근무

장 형사는 그 뒤로 윤 씨를 주목했어. 다른 청송 출신들에게도 윤 씨에 대한 제보를 모으기 시작했어. 그 제보들 중 공통적으로 들어온 키워드가 '은행'과 '오토바이'였어.

꼬꼬무 찐리뷰

"은행시간, 수송차량 움직이는 시간을 체크해서 범행을 한다는 이야기를 제보자한테 들었거든요. 아무리 범죄자가 제보를 한다고 해도 '아 이 제보는 아닌 거 같다'라는 와 닿는 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제보는 분명한 건 맞다, 윤 씨가 범죄자들이 하는 행동을 한다는 거죠. 그래서 아 이놈들이 범인은 맞구나…"
-장영권 형사, 당시 서울경찰청 근무

제보가 쌓일수록 심증은 커져.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어. 그러던 중, 부산에서 현금수송차가 털리는 사건이 일어난 거야. 부산 사건은 옥천 사건과 좀 달라. 은행 직원을 공격하지 않고, 트렁크 속 돈가방만 들고 사라졌어. 그럼, 동일범의 소행일까 아닐까?

▲ 증거를 찾아라

부산 사건이 터지자, 장 형사를 찾는 전화가 빗발쳐. 첩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연락이 오는 거야.

"사건이 나고 나서 부산청에서 저한테 연락이 많이 왔어요 청송 사람들도 많이 알고. 제가 수사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용의자들이 누구냐, 어떻게 움직이냐. 제가 알고 있는 용의자들은 맞는 것 같은데 증거가 없다…"
-장영권 형사, 당시 서울경찰청 근무

일단 부산에선 장 형사의 첩보를 바탕으로 윤 씨 수사를 시작했어. 하지만 얼마 후 윤 씨를 용의선상에서 배제했어. 윤 씨가 부산이 아닌 울산에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입증됐어.

부산 사건 현장에는 범인이 조작한 트렁크 잠금장치 외에는 아무런 증거가 남아있지 않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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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할 만한 단서가 없었어요. 거기에 단지 잠금장치가 조작됐다는 그 하나밖에 없고. 딱 꽂아서 들고 딱 들고 가버렸으니까요. 지문도 일절 안 나왔고. 그러니까 수사가 전혀 단서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단 말입니다."
-김삼식, 당시 부산 사건 담당 형사

확실한 알리바이와 불확실한 증거. 그렇게 부산 현금수송차 탈취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 하지만 장 형사는 포기하지 않았어. 이 제보가 확실하다는 감이 있었으니까. 어떻게든 증거를 찾아야겠다 생각했어. 은행에서 도난당한 수표. 그것만 찾으면 범인을 잡을 수 있어. 하지만 윤 씨는 전혀 빈틈을 보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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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 갔다고 하면 몇백만 원이 나오더라도 절대로 수표로 계산을 안 하는 거죠. 밥 먹고 나서 돈을 내면, 만원짜리다 그러면 수거를 해오는 거죠. 은행이나 다른 범행에 썼던 넘버인가 싶어서, 확인을 해도 아니라는 거죠. 그만큼 철저했다는 거죠 그들이."
-장영권 형사, 당시 서울경찰청 근무

결국 장 형사는 다른 방법을 생각했어. 청송 출신 정보원들을 통해 사건의 증거를 직접 수집하기로 한 거지.

"이 수표를 꺼내기 위해서, 세운상가 다방 거기서 이제 몰래카메라를 해놓고, 제보자와 주범하고 친구다 보니까, '네가 훔친 수표, 현금으로 바꿔줄 수 있다' '너 그 수표 혼자 못 쓸 것 아니냐, 수표 바꿔줄 수 있다' 술 한잔 먹으면서 이야기 한 거죠."
-장영권 형사, 당시 서울경찰청 근무

몰래카메라야. 윤 씨의 지인이었던 정보원을 통해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주겠다고 제안한 거야. 카메라를 숨겨두고 그 현장을 녹화하기로 했어. 만약 윤 씨가 은행에서 도난당한 수표를 가져온다면,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어. 그렇게 윤 씨가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는 장면을 영상으로 녹화했어. 그 영상에는 윤 씨가 이런 말을 하는 게 포착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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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라도 술 먹고 특히 입조심 해야 돼. 그랬다가는 언젠가는 다 탄로가 난다고."
-윤 씨

윤 씨는 5백만원 짜리 수표 한 장을 들고 나타나.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면서, 이렇게 과거 범행을 자연스럽게 얘기 했어. 그 대화가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어.

그럼 수표는, 은행 도난 수표가 맞을까? 장 형사는 수집한 수표를 조회해 봤어. 그 결과, 도난 수표가 맞았어. 그런데, 은행이 아닌, 다른 데서 도난당한 수표야. 이 은행과는 관련이 없어. 결국 이건 증거가 될 수 없는 수표야. 그럼 범행을 했다고 말하는 영상? 그것도 말뿐이야. 그냥 농담이었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야. 직접 증거가 되지 못한 수표와 영상. 그런데 장 형사는 그런 생각이 들었대. 윤 씨가 왜 수표를 한장만 가져왔던 걸까?

"한 장을 줬거든요. 한 장을 줬는데, 이거는 더 큰 것을 가지기 위한 테스트라는 걸, 감으로 알 수 있는 거죠 바로."
-장영권 형사, 당시 서울경찰청 근무

수표를 바꿔도 탈이 없는지, 정말 믿어도 될지, 시험을 해 본거야. 그렇게 장 형사가 다른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2001년 경주에서 세번째 사건이 터졌어.

▲ 전국구 합동수사의 시작

사건 며칠 후 경찰청장의 지시로, 경주 경찰서, 경북 경찰청, 서울 경찰청의 대규모 합동 수사가 시작됐어. 신출귀몰한 범인을 잡기 위해, 총 39명의 베테랑 형사들로 구성된 어벤져스 수사단이 구성됐어. 이 합동수사단이 가장 처음 한 일은? 옥천 사건과 부산 사건이 동시에 가리키는 유력 용의자 윤 씨의 행적을 조사하는 거였어. 그러다 윤 씨의 주변에 있는 또 다른 인물들을 알게 돼. 전과 10범의 최 씨, 전과 8범의 김 씨. 3명 다 동갑내기에, 청송교도소 출신이야. 윤 씨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들이야. 동선을 추적해도,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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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들은 매일 잠복수사를 하며 세 사람의 동태를 살폈어. 그런데 너무 평범해. 이들은 카센터와 세차장에서 일했는데, 아침에 출근해서 일하다가 저녁에 퇴근하는 평범한 생활이야. 게다가 알리바이도 확인됐어. 경주 사건이 일어났을 때 윤 씨가 울산에 있었던 게 확인됐어. 울산의 한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모습이 CCTV에 남아 있었거든.

"금융거래 내역을 봤으니까요. 돈을 찾았잖아요. 그 시간대에 돈을 찾았으니까 당연히 우리가 은행에 가서 CCTV를 보니까 어? 윤씨가 여기 있는 거죠. 콱 막히니까 수사 진행 과정에서 좀 막막했죠 그때 당시에."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다른 용의자들도 마찬가지야. 범행 당일, 경주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통화한 기록이 확인됐어. 그래도 아직 의심을 지우기엔 일러. 계속 지켜는 보는데, 지켜보다 보니, 용의자들의 행동이 어딘가 수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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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이 뭔가 자꾸 왜 주위를 살피고 하는, 사무실에서 나올 때도 이렇게 주위를 살피고. 보통 그렇지 않거든요. 들어갈 때도 누가 보는가 보고 들어가고. 일반인들이 봤을 땐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형사들이 보는 눈은 다르죠."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보니까 이 사람들, 길을 건널 때도 행동이 이상해. 파란불이 켜져도 가만히 있다가, 신호가 깜박거리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뛰어서 건너. 가까운 길도 빙빙 돌아서 가.

"따라오는 사람이 있는지, 또 본인을 살피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이런 것을 본인도 계속 살피는 거죠. 두 사람 다 마찬가지였어요. 윤 씨도 그랬고 최 씨도 그랬고."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아직 확실한 단서가 없어서, 당장 체포할 수도 없어. 심증은 가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는 답답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어.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결정적인 단서를 잡게돼

"잠복근무 중에 최 씨가 세차장에 계속 있었는데, 나중에 통화 내역을 보니까 다른 지역에 있었던 걸로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휴대폰을 가지고 썼을 수도 있다는 게 나오는 거죠. 그때 당시 최 씨가 가정을 꾸렸는데, 김 씨라고 여자가 있었거든요. 그 사람에 대해서 동선을 우리가 다시 본 거죠. 다시 쭉 살펴보니까, 그 사람이 휴대폰을 범행 시각에 가지고 있었던 거죠. 일부러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휴대폰을 부인한테 줘서 다른 지역에 보냈다…"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당시 윤 씨는 알리바이가 확실했어. 울산에서 현금을 인출한 CCTV 영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또 다른 용의자 최 씨가 일리바이를 조작한 정황이 드러났어. 형사들은 윤 씨가 범행을 설계하고, 같은 청송 출신 최 씨와 김 씨가 범행을 실행했을 것이라 추측했어. 형사들은 그동안 모은 증거들을 정리했어. 장 형사가 촬영한 윤 씨의 영상, 윤 씨에게서 회수한 도난수표, 청송 출신 정보원들의 제보, 최 씨가 알리바이를 조작한거까지. 모든 수사 자료를 증거로 체포영장을 신청했어. 체포영장,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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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오늘 울산의 한 카센터 사무실에서 35살 윤 모 씨 등 용의자 세 명을 붙잡았습니다. 용의자들의 위장 사업체였습니다. 범행에 사용된 승합차와 오토바이도 발견됐습니다. 이들은 이 승합차 뒤에 오토바이를 싣고 다니며 전국을 무대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들은 충북 옥천 은행 현금수송차량을 턴 혐의로 지난 1997년 체포됐지만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경찰의 용의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용의자들을 체포했지만, 주 형사는 마음이 여전히 무거웠어.

"그때 더 무거웠죠. 다른 사람들은 몰랐지만 이 내용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 우리 반장이나 저나 우리팀 5명은, 직접적인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말로 이걸 어떻게 요리를 해서 자백을 받아내지, 그것만 생각을 한 거죠."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용의자를 체포하면 경찰은 36시간 내에 구속영장을 신청해야 해. 하지만 아직 정황 증거만 있을 뿐, 다른 증거를 찾지 못하면 그대로 풀어줘야 할 수도 있어. 이제는 범행을 인정하는 자백을 꼭 받아야 하는 거야.

▲ 자백과 증거

그럼 자백만 받으면 될까? 이 자백도, 말뿐이잖아. 나중에 법정에 가서 뒤집으면 도로아미타불이야. 자백을 받고, 그걸 바탕으로 직접적인 증거까지 찾아야 하는 거야. 합동수사반은 용의자들을 체포하기 전, 미리 철저한 시나리오를 준비했어.

"체포하는 과정부터 조사하는 것까지, 모든 시나리오를 짠 거죠. 그래서 제일 센 용의자 윤 씨는 우리 후배가 있어요. 후배가 약간 강성이거든요. 거기 맡기고, 최 씨는 내가 맡겠다. 체포 이틀 전부터 담당을 정했죠. 누구를 어떻게 조사할 것이냐, 세부 계획을 다 짰거든요."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가장 먼저 용의자들을 분리했어. 따로따로 심문 조사에 들어가. 구속영장실질 심사는 바로 다음날이야. 시간이 별로 없어. 그때까지 자백을 받고 직접적인 증거를 찾아야 해. 그럼 체포된 세 명은 자백을 했을까? 아무 잘못도 없다면서 딱 잡아 떼. 주 형사는 공범 최 씨의 심문을 맡게 됐어. 하지만 두 차례에 걸친 조사에도 요지부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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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이 되면 보통 형사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마음을 움직여야 돼요. 본인의 마음을 자극해야 해요. 본인도 이제 가정을 꾸렸는데, 나와서 새 출발 한다고 생각해야지. 빨리 살고 나와서, 부인하고 지금 하는 거 유지하면서 살면 새 사람처럼 살면 안되겠나? 한번 생각을 해봐라. 이렇게 계속 설득을 하는 거죠."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최 씨의 마음을 흔들었던 주 형사. 첫날 조사는 아무런 성과없이 끝났어. 다음날 오전 11시에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잡혀있는 상황이야. 하지만 이 상태라면 영장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 그렇게 다음날 아침, 주 형사가 무거운 마음으로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유치장에서 전화가 걸려왔어. 최 씨가 주 형사를 만나게 해달라 했다는 거야. 주 형사는 최 씨를 찾아갔어. 그러자 최 씨가 사실대로 말하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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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대로 얘기하겠습니다' 하더라고요 그 순간에. 아 진짜 이건 형사 하면서, 그때는 그 순간이 대단한 상황이죠. 말이 안나올 정도로."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밤 사이에 최 씨가 마음을 돌린 거야. 주 형사의 가슴을 누르고 있던 그 무거운 돌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어. 그런데 아직은 기뻐할 때가 아니야. 얼른 자백 받고, 다른 증거를 찾아야 해. 최 씨는 훔친 돈가방이 자기 집에 있다고 자백했어. 굳게 잠긴 최 씨의 입이 열리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타.

형사들은 곧바로 최 씨를 차에 태웠어. 울산 외곽에 있는 한 주택에 도착한 형사들은, 최 씨가 알려준 창고로 향해.

"악간 집이 오르막 쪽에 있는데, 문을 열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왼편에 차고지 같은 창고가 있었어요. 처음엔 우리도 잘 모르겠더라고. 근데 최씨가 '저기 있습니다' 손짓을 하더라고요."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창고 구석에 놓인 물건들을 치우니, 시멘트 바닥이 나와. 형사들은 창고에 있던 해머로 시멘트 바닥을 힘껏 내리쳤어. 그렇게 10cm 정도 깨부수자 뭔가가 보여. 랩과 호일로 단단히 싼, 경주에서 도난당한 수입인지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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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최 씨 집 창고에 들어가 망치로 두께 10cm 정도의 콘크리트벽을 깨자 랩과 은박지로 싼 뭉치가 나타납니다. 랩을 뜯어내자 용의자들이 훔친 가방에 들어있던 9천만 원어치의 수입증지가 나타납니다."
-당시 뉴스 보도 중

드디어 증거를 찾아낸 거야. 형사들은 또 다시 최 씨에게 물었어. 수표는 어떻게 했냐고. 방어진에 버렸대. 울산에 있는 바닷가 방어진. 수표가 든 가방을 방어진 앞바다에 버렸다는 거야. 거긴 수심 10미터가 넘는 곳이야. 건지는 건 불가능해. 초조하게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그 순간, 저기 바다 위에 떠있는 뭔가가 눈에 들어와.

"해녀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마침. 그래서 이제 불렀죠."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형사들은 해녀들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가방을 건져 달라 부탁했어. 그러자 해녀 두 분께서 물 속으로 사라져. 형사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바다만 쳐다 봤어. 잠시 후, 해녀들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 그리고 줄을 당겨보라 해. 한참 줄을 당기자, 마침내 물 속에서 가방이 모습을 드러내. 경주에서 도난당한 바로 그 돈가방이야. 형사들은 가방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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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남부 방어진 앞바다에서 용의자들이 경주 조흥은행 현금 수송차량에서 훔친 가방이 올라옵니다. 경찰이 가방을 열자 커다란 돌이 나오고 곧이어 자기앞 수표 다발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경찰이 용의자 서른다섯 살 최 모 씨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고 오늘 해녀를 동원해 바다를 수색한 끝에 찾아낸 겁니다. 용의자 세 명은 훔친 현금 3,100만원을 나눠 가진 뒤 흔적을 없애기 위해 사용할 수 없는 수표를 바다에 버린 것입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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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확 뚫리는 기분이었죠. 물이 주르륵 흐르는 가방 끈을 받으면서. 그게 형사의 마지막 단계에서 오는 희열이죠. 이 맛이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참."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 범행을 철저히 연구했던 '범죄꾼'

이제 확실한 증거를 손에 넣었어. 그러자,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주범 윤 씨도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했어. 범행에 걸린 시간 단 10초. 어떻게 가능했을까?

범인들은 2개월 전부터 은행 수송차를 감시했다고 해. 시간, 동선, 인원 등 모든 것을 파악했어. 신호마다 걸리는 시간까지 꼼꼼히 체크했어. 고성능 망원경, 야간 투시경까지 사용했다고 해.

"카센터를 운영하면서 견인차를 끌고 다니다 보니까 시민들이 의심을 하지 않지 않습니까? 견인차로 움직이면서 은행직원들의 동태를 다 파악하고 있었던 거죠."
-장영권 형사, 당시 서울경찰청 근무

그렇게 모든 걸 파악한 뒤, 사건 전날 밤, 현금수송차량이 주차된 곳을 찾아가 미리 트렁크 잠금장치를 조작했던 거야. 그리고 범행 당일, 설계자 윤 씨는 직접 범행에 나서지 않아. 자신이 경찰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거든.

"용의자로 조사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이 터지면 본인을 찾아올 것이란 걸 예상했겠죠. 그러니까 본인은 빠지고 다른 사람 둘을 시킨 거죠."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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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범행이 있던 그 시각, 윤 씨는 울산에 있는 은행을 찾아갔어. 일부러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당시엔 은행이 CCTV가 있는 몇 안되는 장소였어. 공범인 최 씨와 김 씨도 핸드폰을 지인에게 맡기고 범행 장소로 향했어. 지인들이 범행 시간에 맞춰 통화를 하게 만들었어. 이렇게 알리바이를 조작한 거야. 그리고 범행을 마친 다음날,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카센터와 세차장으로 출근해서 평범한 직원들처럼 일했어.

세 사람은 범죄수익금을 똑같이 나눴다고 해. 배신하는 사람이 생기는 걸 방지하기 위해. 범행 준비부터 실행, 사후 대처까지, 모든 과정에 빈틈이 없어. 어렵게 받아낸 자백과 증거들 때문에, 마침내 윤 씨와 공범들은 재판에 넘겨졌어. 재판 결과, 부산 사건과 경주 사건에 대한 윤 씨의 혐의가 인정됐어. 다만 97년도 옥천 사건은 제외됐어. 윤 씨는 징역 5년, 공범 최 씨와 김 씨도 징역 5년형과 4년형을 선고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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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검거 후 발견된 또 다른 증거가 있어. '무죄' 판결을 받은 기사만 모아놓은 스크랩북이야. 만약 붙잡힌 경우 어떻게 하면 무죄로 풀려날 수 있을지 까지 연구한거지. 밑줄까지 쳐가면서 공부한 흔적이 남아 있었어.

돌이켜 보면, 체포된 이후에 당당했던 그들의 태도. 이렇게 하면 피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던 거야. 교도소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범죄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있어. 바로 '범죄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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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들은 전과가 벌써 10개 이상씩 되는 사람들이고, 실형을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거기 안에 교도소에 있으면 연구하는 게 그런 거죠. 범죄꾼이라고 하죠. 그 친구들을 항상 앉아서 '내가 나가서 열심히 해서 잘 살아야지' 이런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떻게 하면 안 붙잡히고 범행을 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요."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범죄꾼들은 경찰의 수사 방식은 물론, 법적 지식까지 꿰뚫고 있대. 범죄를 연구하며 완벽한 범죄를 위한 시나리오를 쓰는 거야. 이번에 만난 형사들에게 '완전 범죄 가능한 걸까요?'라고 질문했어. 그러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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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는 없다. 언젠가는 완전 범죄라는 게 없기 때문에 잡힌다."

-장영권 형사, 당시 서울경찰청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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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는 없습니다. 범행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다, 100% 다 잡힌다."

-김삼식, 당시 부산 사건 담당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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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 그거는 있을 수가 없죠. 완전범죄를 막으려고 하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형사의 역량 또 집념이 있어야 합니다. 나쁜놈들 잡아야지 범죄꾼들 잡아야지, 그게 형사라고 생각하니까."
-주재정 형사, 당시 경주경찰서 근무

범죄꾼들이 노력하는 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애쓰는 사람들. 우리나라 형사들이야.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열정이야말로, 완전범죄를 풀 수 있는 마스터키가 아닐까.

은행을 노린 범죄들. 만약 똑 같은 범죄가 오늘날, 지금 발생한다면? 보안 때문에 구체적은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보안 장치들이 마련됐다고 해. 만에 하나 그 모든걸 뚫고 돈가방을 뺏는데 성공해도, 금방 잡힐 수 밖에 없어. 모든 도로에 있는 CCTV, 우리나라의 과학 수사도 세계적인 수준이니까. 은행 강도는 이제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야.

오늘 말한 사건의 범인들. 전과가 있고, 같은 교도소 출신이야. 그래서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3년 이내 재범을 저지를 확률을 조사해 봤어. 2023년 기준, 한국은 22.6% 정도래. 미국의 재범률은 37%, 호주는 42.7%야.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재범률은 상당히 낮은 수치야. 그러니까 오늘 말한 범죄꾼들은 극히 일부의 이야기라는 거야. 무엇보다, 교정시설을 통해 교화과정을 거친 후, 마음을 잡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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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