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 27년 만에 공개된 '실제 사형장'…'집행' 버튼 누르는 교도관, 어떤 심정이었을까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5일 방송된 '1997 마지막 집행자'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뮤지션 이상순, 개그우먼 안영미, 배우 김희창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특별한 직업
때는 1997년 12월 30일 새벽. 창 밖 세상은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흐린 날씨야. 윤휘 씨는 밤잠을 설치다 겨우 잠이 들어있어. 그런데, 갑자기 전화 벨소리가 울려.
"이 주임! 듣기만 해. 1급 비밀이야! 긴급 소집이니 아무도 모르게 지금 바로 출근해!"
직장에서 걸려 온 긴급 전화.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야. 한 겨울이라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인데, 다짜고짜 전화 와서는 당장 출근하래.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어떤 상황이길래 새벽에 출근을 하라는 걸까. 윤휘 씨한테 당시 심경을 들어볼게.
"아침에 옵니다 전화가, 출근 전에. 거의 5, 6시 그 정도에. '일찍 출근해서 준비하라' 참석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긴장감이 있었고, 그것을 제가 직접 눈으로 목격한다는 그 두려움, 긴장, 여러 가지 애환이 교차되는 시점이었죠."
-이윤휘 씨
그렇게 출근길에 오른 윤휘 씨. 근데 윤휘 씨의 직장, 보안이 장난이 아니야. 콰광! 굉음과 함께 두꺼운 철문이 열리고, 철컹! 다음 문이 또 하나 열리고. 거쳐야 하는 문만 여러 개야. 윤휘 씨의 직장, 어떤 곳일까?
아까 '긴급 소집'이라 했잖아. 다들 일사불란해. 윤휘 씨는 한 후배 직원과 만나서, 끼익~ 또 하나의 문을 열고 어디론가 들어왔어. 사방이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아주 좁은 공간. 오늘은 일과 시간 내내 여기에만 있어야 한대. 그리고 윤휘 씨의 눈앞엔 바로 이게 있어.
아무것도 없는 흰 벽에 이런 버튼들이 여러 개 붙어 있어. 윤휘 씨의 오늘 임무는 '버튼조'야. 하루 종일 이 버튼만 누르다가 집에 가는 거야. 근데, 버튼 앞에 선 윤휘 씨의 마음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아.
"한 6개 정도가 있던 걸로 기억해요. 색상별로 이렇게 다 있어가지고, 파랗고 빨갛고 쭉 이렇게 있고. 그거를 이제 저와 제 후배 되는 직원 2명이서 그 담당을 했고. 다른 어떤 것보다도, 버튼 누를 때가 제가 마음이 제일 좀 심란했어요. 누름과 동시에 한 생명이 이제 죽음으로 간다는 생각이 딱 들다 보니까. 내 역할에 대해서 굉장히 뭐랄까, 긴장도 되고. 안쓰럽다 그럴까. 그런 거였죠. 미안하기도 하고."
-이윤휘 씨
잠시 후, 벽 너머에서 여러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 자세히 들어보니, 불경을 외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찬송가가 들리기도 해. 그러다가, 덜컹!!! 아주 큰 굉음이 울리고, 이번엔 사람들이 막 울기 시작해. 윤휘 씨가 서있는 이곳, 어디일 것 같아?
윤휘 씨가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한 생명이 죽음으로 간다'고 말했던 걸 보면 알 수 있어. 그래, 윤휘 씨의 직업은 교도관. 그리고 이윤휘 교도관이 서 있는 이곳은 바로 사형장이야. 아까 봤던 그 버튼은, 바로 사형 집행 버튼이야. 그걸 누르면, 사형이 집행되는 거지.
자, 오늘은 사형을 직접 집행하는 이들, 교도관의 시선으로 사형장의 모습을 바라볼게. 사형 집행의 모든 과정을 공개하는 건, 아마 방송 최초일 거야.
▲ 사형 집행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건, 1997년 12월 30일. 아까 이윤휘 교도관이 새벽에 전화를 받고 출근한 바로 그날이지. 전국적으로 총 23명의 사형수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고 해.
그날 이후 27년 동안 우리나라에선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어. 법적으로 사형제가 폐지되진 않았지만, 사실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나라가 된 거야. 2007년엔 국제인권단체 엠네스티에서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지정하기도 했지.
그럼 사형 집행을 하던 그 당시에는, 사형 집행을 얼마나 자주 했을까? 1~2년에 한 번씩밖에 안 했대. 그것도 1년에 딱 하루. 그날 하루동안 집행 예정인 사형수들을 모두 사형시켜야 되는 거야.
1991년부터 97년까지의 사형집행일, 그리고 집행당한 사형수들의 숫자야. 오늘 우리는, 어쩌면 사형 집행의 마지막 페이지가 될지도 모르는 '그날'의 기록들을 이야기할 거야.
아까,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누구라고 했지? 맞아. 교도관들. 실제 사형을 집행을 하는 교도관들의 마음, 어떨지 생각해 본 적 있어? '꼬꼬무'가 이번에 정말 어렵게, 사형을 직접 집행해 본 교도관들을 만나봤어. 사실, 인터뷰에 응하기까지 진짜 많은 고민이 있으셨대. 이런 얘기를 어디서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 과연 그들은, 사형 집행에 대해 어떻게 기억할까?
"1981년도에 교정 공무원 시작을 해서 2012년 말에 대전 교도소장으로 퇴직을 했습니다. 서울구치소 보안계장 직무를 수행할 때, (사형)집행조의 집행조 팀장으로 집행을 했습니다. 특별히 뭐 사형집행에 대해서 어디 가서 뭐 특별히 얘기한 거는, 구체적으로 얘기한 거는 없는 것 같아요. 듣는 사람들도 별로 그렇게 유쾌한 얘기가 아니고. 또 집행했던 사람들조차도 그 사형 집행 자체를 얘기를 안 하는, 뭐 그런 생각들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굳이 뭐 사형 집행에 대해서는 얘기들을 서로 안 나눈 것 같아요. 집행 한 사람들끼리도."
-지정수, 전 교도관
"저는 상담을 전공하고 상담 업무를 주로 하다 보니까, 거의 사형수들은 저하고 상담을 했다고 보면 되거든요. 그동안에 상담했던 그런 시간들, 삶의 이야기들을 했던 것들. 이런 것들이 기억이 나면서, 내가 거기에 참석했을 때 이 사람들을 어떻게 내가 눈을 마주쳐야 할까. 차라리 참석을 안 하면 그냥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텐데. 죽음으로 가는 그 자리에 내가 그것을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 이런 것들이 굉장히 오버랩이 되면서. 교도관의 어떻게 보면 애환이라고 할 수 있죠."
-이윤휘, 전 교도관
열심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서 교도관이 됐는데, 사형을 집행하는 일을 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래서 가족들한테도 이런 이야기를 잘 안 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 끝에 어렵게 '꼬꼬무' 카메라 앞에 섰어. 우리나라 역사상 마지막이 될지 모를 사형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겠다 생각하신 거야. 교도관으로서 사명을 갖고 공무를 수행한 것이지만, 한편으론 인간으로서 고뇌할 수밖에 없었던, 애환이 담긴 그날의 이야기. 좀 무거울 수도 있지만, 그 마지막 기록을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들어줘. 지금부터 사형이 집행되던, 그날로 가볼게.
▲ 사형 집행의 그날
때는 1995년 10월의 마지막 날. 서울구치소의 보안과 사무실이야. 당시 지정수 교도관은 서울구치소의 보안계장이었어. 그런데,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와. 법무부에서 공문을 수령해 가라는 전화야. 꼭, '직접' 와서 수령해 가래. 이거 뭔가 있겠다, 싶은 마음에 급히 법무부로 향해. 꼭 교도소장님께 바로 전달하라고, 극비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잘 밀봉된 갈색 봉투를 전달받았어. 이런 봉투야.
봉투에 쓰여진 글자는 '친전(親展)'. 받는 사람이 직접 열어보라는 뜻이야. 예전에는 극비 문서에 이렇게 '친전'이라는 도장을 찍었대. 잠시 후, 서울구치소장이 이 봉투를 전해 받았어. 봉투를 열고, 안에 있는 문서를 꺼내 보는데, 표정이 심상치 않아.
사형집행 명령서였어. 이 문서를 받아온 날이 1995년 10월 31일. 그리고, 1995년도에 사형집행이 언제 있었다고 했지? 1995년 11월 2일. 이렇게 사형 집행 며칠 전에 법무부에서 극비리에 연락이 온대. 이틀 뒤가 사형 집행일이야. 그럼 가장 먼저 뭘 해야 할까?
"사형을 워낙 안 하던 데니까 막 좀 많이 어지럽죠 거기가. 막 낙엽도 들어와 있고. 뭐 그러니까 청소 좀 하고. 통상적으로 뭐 집행하기 위해서는 밧줄이나 또 여러 가지 전기 장치들이 필요하니까, 그런 거 다 점검하고."
-지정수, 전 교도관
아무래도 1-2년에 한 번씩만 사형 집행을 하니까, 사형장 내부도 지저분해졌을 테고, 집행 시설이 잘 작동되는지 점검도 해야겠지. 근데, 교도관들이 사형장을 정비한다고 들락날락거리면, 다른 수용자들은 물론 사형수들까지 알아챌 수 있잖아. 자칫하면 구치소 전체에 큰 소동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인 거야. 그 문제는 이렇게 해결했대.
"사형장은 대체적으로 수용자가 수용돼 있는 수용 사동 지하 밑으로, 연결 통로가 다 돼 있어요. 통행로를 쭉 점검하고 올라가서 그 안에서 시설 점검을 하죠. 그러니까 청소를 딱 사형장만 청소를 하는 게 아니고. 전체 사동 청소를 다 시키는 거지. 시키면서 이제 그 사형장 앞에 의무병동이 있으니까 의무병동도 이제 소독하고 청소하면서 그 앞에 거기도 이제 청소를 하는 거죠."
-지정수, 전 교도관
자, 이제 시설 점검은 마쳤고, 다음으로는 뭘 준비해야 할까? 사형을 집행할 교도관, 즉 '집행조'를 선발해야 해. 사형 집행, 아무나 할 수는 없겠지? 선발 조건은, 멘탈이 강하고 신체가 건강해야 해.
"부담이 좀 많이 되는 그런 업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좀 강인한 직원들을 선발해서 집행에 참여했죠."
-지정수, 전 교도관
우선 선발 조건도 있어. 이전에 한 번이라도 사형 집행을 해봤던 사람, 즉 경력자. 그리고 보안을 지키기 위해, 집행조에 선발된 교도관들에게도 당일 새벽에 통보하는 게 원칙이래. 그래서 아까 이윤휘 교도관처럼, 새벽 5시에 출근 통보를 받았던 거야.
이제 사형 집행을 할 준비가 모두 끝이 났어. 그로부터 이틀 뒤인 1995년 11월 2일. 이윤휘 교도관은 이른 아침부터 동료 교도관들과 함께 어느 방 앞에서 대기하고 있어. 작은 미동도 하지 않고, 숨소리조차 죽인 채.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야. 그리고 잠시 후,
"준비됐으면, 집행 시작합니다."
사형 집행 시작을 알리는 무전 신호와 함께, 윤휘 씨를 비롯한 교도관들이 일제히, 그리고 신속히 방 안으로 들어가. 그리고 이렇게 말해.
"김기환, 나와!"
사형수를 사형장으로 데려가려는 거야. 사형수들은 이렇게 자신이 사형당한다는 사실을, 그날 아침까지도 모른대. 사전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거야. 이렇게 사형수를 사형장으로 데려가는 걸 '동행' 또는 '연출'이라고 하는데, 이 임무를 맡은 교도관들에겐 공통점이 있어. 바로, 무술 유단자라는 거.
"주로 무술 교도관들, 군 생활에서도 좀 특수부대 경험도 있고. 좀 강인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강인한 직원들을 선발해서 (동행조) 근무자로 보통 세우고…"
-지정수, 전 교도관
아무래도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이잖아. 무슨 짓인들 못 하겠어? 혹시 모를 난동을 진압하기 위해서지. 실제로 별에 별 일이 다 있대. "안 나가! 못 나가!" 버티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건, 뭐 기본이야. 창문을 부수거나 문틀을 떼어내서 교도관들을 위협하는 일까지 있다고 해. 사형수 입장에서는 이 문을 나가면 이제 죽음을 맞이하는 길인 거니까.
다시 아까 그 상황으로 가볼게. 그런데 이 사형수, 처음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금세 평정심을 되찾았대.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해.
"교도관님.. 잠시만 시간을 주십쇼."
깨끗하게 세안을 하고 양치까지 마친 뒤, 새 옷으로 갈아입었대. 보통은 이때, 최대한 시간을 끌려고 일부러 느릿느릿하기도 하는데, 이 사형수는 그렇지 않았다고 해. 그리고 잠시 후, 방 밖으로 나왔어. 사형수 양옆으로 교도관들이 팔짱을 끼고, 그 뒤로 한 명의 교도관이 더 따라붙어.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는 거야.
자, 이제 사형장으로 향하는 길이야. 사형수들, 순순히 갈까? 대부분은 다리에 힘이 풀린 채로, 끌려가다시피 간다고 해. 혼이 나간 상태로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거나, 가는 내내 흐느끼는 사람도 있대.
근데 아까, 이 사형수의 이름. 뭐였는지 기억나? 그래, 김기환. 누군지 혹시 알아? 1990년대 어느 조직의 두목이야. 이 조직 때문에 대한민국 전체가 발칵 뒤집혔어. 5명의 사람을 연쇄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잔혹하게 살인했어. 얼마나 조직적이었냐면, 이 조직의 행동강령까지 있어.
첫째, 돈 많은 자들을 증오한다.
둘째, 각자 10억 원을 모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셋째, 조직을 배반한 자는 지옥까지 따라가 죽인다.
넷째,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마라.
-조직 행동강령
조직의 행동강령 보니, 혹시 어떤 조직인지 알겠어? '꼬꼬무'에도 나온 적이 있어. 바로 '지존파'야. 1993년에 결성된 범죄 조직, '지존파'는 세상을 비관하며 '잘 먹고 잘 사는 놈들'을 살인하는 게, 조직의 목적이었어. 그 과정에서 5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잔인한 수법으로 살해했지. 김기환은 바로 연쇄살인조직 지존파의 두목이야.
1995년 11월 2일. 이날은 서울구치소에서만 15명의 사형 집행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첫 번째 사형수가 바로 김기환이야. 워낙 극악무도하고 잔인한 사건을 일으킨 지존파의 두목이라, 교도관들도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지. 근데, 김기환은 사형장으로 가는 동안 의외로 덤덤했다고 해. 고개를 똑바로 들고 두 눈을 크게 부릅뜬 채, 흐트러지지 않은 똑바른 걸음걸이로 사형대까지 걸어갔대. 그리고 마침내, 그가 사형대에 섰어. 사형수 김기환의 눈앞엔 뭐가 있었을까?
▲ 27년 만에 공개되는, 실제 사형장
우리나라의 가장 마지막 사형일이 언제라고 했지? 1997년 12월 30일.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이지. 자, '꼬꼬무' 제작진이 정말 어렵게 공들여 섭외한 곳이 있어. 바로, 실제 사형장이야. 교정본부의 협조를 받고, 실제 사형장의 문을 27년 만에 열었대. 마지막 집행이 있었던 그 사형장, 지금 보여줄게.
사형장 한가운데 있던 나무판자, 봤지? 가로 세로 65cm쯤 되는 그 나무판자 위에 있는 의자가, 사형수가 앉는 마지막 자리야. 그 위에서 사형수가 마지막 유언을 끝마치면, 교도관들이 나무판자를 끌어서 뒤에 있는 사형대로 옮겨. 왜 그렇게 하는 걸까? 보통 사형수들이 뒤돌아서 교수대에 걸린 밧줄을 보면, 직접 걸어가지를 못 한다고 해. 그렇게 사형수를 자리에 위치시키고, 흰 천과 올가미를 씌운 뒤, 버튼을 누르는 거야. 지금 여기에, 사형수 김기환이 앉아있는 거야.
그리고 그 의자 앞엔 긴 테이블처럼 생긴 심문대가 있어. 심문대 가운데는 구치소장이 앉아 있어. 그 옆으로 여러 사람들이 앉아. 구치소장의 오른편에는 검사와 사형집행조서를 작성할 검찰 서기관이 있고, 왼편에는 구치소의 보안과장과 사망을 확인할 의무과장이 앉아 있어. 뒷줄에는 신부, 목사, 스님. 세 종파의 종교인들까지 자리해 있어.
김기환이 사형대에 오르자, 구치소장이 일어서서 이름과 나이를 물어. 사형을 집행하기 전, 사형수 본인이 맞는지 마지막으로 본인에게 확인하는 거야. 그리고는 김기환의 범죄 사실들을 나열한 뒤, 판결문을 쭉 낭독해. 그 뒤, 사형수가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종교의식까지 마치면, 모든 절차가 끝이 났어.
"그럼, 김기환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겠습니다."
우선 사형수 앞으로 흰 커튼이 쳐져. 커튼 뒤에선 교도관들이 사형수의 양팔과 다리를 붙잡은 뒤, 움직이지 못하게 포승줄로 결박하고, 흰 천을 얼굴에 씌워. 그리고 사형수의 목에 줄을 걸고, 매듭을 조이기 시작해. 매듭은 동맥에 닿을 때까지 단단하게 조여야 돼. 모든 준비가 끝나면, 덜컹!!!!! 소리가 나.
"준비가 끝나면 집행하라고 단추에 불이 들어와요. 그 뒤에 직원들이 서 있다가 불 들어오는 거 보고 단추를 이렇게 누르면, 전기 회로가 이 바닥에 있는 여기에 연결되면서, 이렇게 붙어져 있던 게 이제 탁 떨어지는 거야. 그럼 이게 툭 떨어지죠 사람이."
-지정수, 전 교도관
아까 봤던 사형 집행 버튼 기억나지? 그걸 누르면, 사형수가 앉아 있는 사형대의 마룻바닥이 열리면서 사형수가 지하로 툭 떨어지고, 줄에 매달려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거야. 그렇게 지존파의 두목 김기환은 오전 7시 55분에 사형이 집행 됐고, 13분 뒤인 8시 8분. 최종 사망 판정을 받았어.
아까 이윤휘 교도관의 말 기억나? 버튼이 6개 정도 있고 버튼을 누르는 교도관이 여러 명이었다는 거. 왜 그랬을까? 내 손으로 집행했다는 심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야.
"부담이 없게 하기 위해서. 뒤에 이렇게 벽에 가려진 상태에서, 그 버튼을 누르는 거죠. (본인이 누른 게 맞는지 아닌지) 전혀 모르죠."
-이윤휘, 전 교도관
▲ 지존파 행동대장 김현양의 최후
김기환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7분 뒤인, 8시 15분. 다음 사형수가 사형대에 올랐어. 이 사형수는 검거됐을 때 이런 말을 했었대.
"내 어머니를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다! 나는 인간이길 포기했다!"
혹시 누군지 알겠어? 이름은 김현양. 김기환이 두목으로 있는 지존파의 행동대장이야. 지존파 중 가장 범죄 가담에 적극적이었던 데다가, 그 수법이 아주 잔혹한 살인자였어. 게다가 체포 후, 그가 했던 언행들은 대한민국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지.
5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인육까지 먹는 등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하기 힘든 엽기적이고 잔혹한 범죄 사실이 모두 드러난 뒤에도, 김현양을 비롯한 지존파들은 반성은커녕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어. 보통 사형수들은 사형을 선고받은 뒤 실제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몇 년이 걸리는데, 지존파는 이례적으로 대법원의 최종 판결 이후 6개월 만에 바로 집행됐어. 그만큼 사회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고 봐야겠지. 지존파들에 대한 판결문 중 일부야.
"죄 없는 선량한 시민들이 5명이나 절망감과 두려움 속에서 희생된 참혹한 결과, 앞으로 평생 그 유가족들이 겪어야 할 엄청난 고통, 전 국민을 심각한 불안을 넘어 좌절감마저 느끼게 하였던 그 사회적 반향 등을 같이 고려하면, 사회를 방위하기 위한 예방적 견지에서는 물론 물질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심화된 인간성 상실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는 의미에서도 피고인들을 극형으로 다스리지 않을 수 없다."
김현양은 사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어. 김현양은 모든 교도관들의 예의주시 대상이었어. 그도 그럴 것이, 워낙 세상에 대한 적개심을 크게 드러냈었으니까. 언제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잖아. 그런데, 김현양은 구치소 수감 중, 아주 깜짝 놀랄만한 모습을 보였대.
지존파 일당이 구치소에 수감된 지 8개월째인, 1995년 5월 26일. 이날은 지존파들의 최종 선고가 있는 날이었어. 김현양이 손을 번쩍 들더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거야. 김현양의 법정 최후 진술 내용 중 일부야.
"먼저 돌아가신 다섯 분의 죽음에 대해 제 죽음으로 사죄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대접해 줘서요. 지금은 잘못을 뉘우치는데, 솔직히 그때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인간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돌아왔어요."
체포 당시만 해도 뻔뻔한 태도를 유지했던 김현양은 구치소에서 생활하는 중에 죄를 뉘우치고 반성했대. 종교에도 귀의하며 지존파들에게 전도까지 했다고 해. 진심이었을까? 그것까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런 김현양이 지금 사형대에 선 거야. 김현양은 피해자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 외에 특별한 유언을 남기지 않았대. 그리고, 8시 25분. 사형이 집행되기 바로 직전이야. 김현양이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지정수 교도관에게 말을 해. 근데 그 내용을 들어보니 아주 뜻밖이야. 무슨 얘기였을까?
"자기가 세상에 사랑이 있는 줄 알았으면, 자기가 살인자 사형수가 안 됐다, 자기는 세상에 사랑이 있는 줄 몰랐다, 이제 구속된 다음에야 사랑이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다시는 자기 같은 사람이 안 나오면 좋겠다. 아유,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제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서 기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마지막에.."
-지정수, 전 교도관
김현양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23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어. 지존파 6명에 대한 사형은, 이날 모두 집행됐어.
▲ 사형 집행 교도관
김현양이 사형장에 입장한 시간은 8시 15분. 이렇게, 한 사형수가 방에서 나와 사형장에 들어서고 마지막 유언을 남긴 뒤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약 20분에서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해. 이날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된 사형수는 총 15명이라고 했잖아.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대략 8시간쯤 걸렸다고 해. 집행조 교도관들은 그 시간 동안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거야.
"한참 집행하다가 오후 되면 좀 머리가 빙~ 하는 것 같아요. 긴장이 많이 되니까. 나 같은 경우는 그런 걸 약간 느끼겠더라고. 그러니까 다른 직원은 말할 것도 없지."
-지정수, 전 교도관
지정수 교도관은 사형이 집행되는 그 순간, 자신이 꼭 해야 하는 게 있대.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야. 한 번 들어 봐.
"(사형수가) 떨어질 때 바로 그냥 똑바로 떨어지도록, 이렇게 밧줄을 좀 잡아주고 있었죠. 여기 이렇게 앉혀 놓고서 이렇게 잡고 있다가 툭 떨어지고 쭉 내려가면 딱 잡고. 그걸 안 하면 좀 오래가더라고. 이렇게 떨어질 때 안 잡아주면, 그냥 쿵 떨어지면서 자기 체중에 의해서 이렇게 막 흔들거리고 하면 고통도 심하고 막 꿈틀꿈틀거리고 좀 오래가요. 뭐 안 하려면 안 해도 되고 그런데, 내가 이제 해보니까 그걸 잡아줘야 되겠더라고요. 안 그러면 막 흔들리고. 빨리 운명을 안 하는 경우가 있어요."
-지정수, 전 교도관
줄을 잡아줬대. 15명의 사형수 모두에게. 이건 꼭 해야 되는 일은 아니래. 근데 왜 하는 걸까? 지정수 교도관은 사형수들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이잖아. 그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사형수에게도, 또 교도관에게도. 공무원으로서 나라의 명을 수행하는 거지만, 한 인간으로서 많은 고뇌와 혼란을 겪지 않았을까. 어떤 마음이었을지, 가늠할 수도 없지.
이윤휘 교도관은 총 3번의 사형 집행 임무를 맡았는데, 가장 처음 사형을 집행한 게 고작 26살 때였대. 교도관으로서는 3년차가 됐을 때. 이날 이윤휘 교도관의 업무는 사형집행 시 일어나는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것. 그래서 그런지 그날의 일들이 지금도 생생하대.
1. 서지우- 살인, 특수절도 등 전과 7범
2. 김태화- 살인 등
3. 서병원- 살인, 강간치상
4. 심재화- 살인, 폭력
5. 조경수- 살인 등
6. 윤도영- 살인, 사체 은닉
7. 강영리- 살인 등
8. 홍순영- 어린이 유괴 살인
이날 서울구치소에서 집행될 사형수 8명의 명단이야. 혹시 들어 본 이름 있어? 이날 사형 집행이 시작된 시각은 오전 11시 30분. 첫 번째 사형수 서지우부터, 서지우의 공범 강영리까지 7명의 사형수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어. 그리고 이제 시간은 오후 3시 35분. 오늘의 마지막 사형수가 사형장에 들어섰어. 근데 아주 작은 체구에 앳된 얼굴을 한 여성이야. 근데 이름과 생년월일을 묻는데,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계속 눈물만 흘려. 방에서 나와 사형장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내내 울기만 했대. 마지막 유언을 남기라는 말에도, 고개를 저으며 흐느끼는 게 전부야.
이 사형수의 죄명은, 어린이 유괴 살인. 이름은, 홍순영. 이 사형수도 전에 '꼬꼬무'에 나온 적이 있어. 누군지 혹시 기억나?
유치원생 유괴 살인 사건의 범인, 홍순영. 홍순영은 1967년 서울의 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어.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계속 대학 입시에 낙방하자, 거짓 대학생 행세를 하기 시작한 거야. 이 거짓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중엔 방송국 기자라는 가짜 신분까지 만들었어. 심지어 부모님과 남자친구까지 속이며 5년이나 가짜 인생을 살았던 홍순영은, 결국 허영심 때문에 유괴와 살인까지 저지르고 말아.
사형이 집행되기 전 마지막 순간, 홍순영은 겨우 목이 멘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
"피해자 가족에게 용서를 빕니다. 부모님께 너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짧은 유언을 남기고, 흰 커튼이 닫혔다고 해. 유괴살인범 홍순영을 마지막으로, 이날의 사형 집행은 모두 끝이 났어. 시각은 오후 4시 정각. 이날은 점심시간도 거르고 연이어 사형이 집행된 탓에, 구치소장이 미안하다며 식사를 같이하자고 했지만, 그 누구도 먹지 않았다고 해.
▲ 사형 집행을 멈추는 조건
사형 집행을 멈추는 조건이 있다는 말, 들어봤어?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을 절대 집행하지 않는 날이 있대.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국경일이야. 그리고 사형 선고를 받아도, 절대 집행할 수 없는 사람도 있어. 바로, 임신부. 임부의 경우는 출산을 할 때까지 사형의 집행을 유예해.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어.
집행을 앞둔 또 한 명의 사형수가 있어. 이 사람의 이름은 신민철. 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할아버지를 무참히 살해한 존속살해범이야. 신원 확인, 인정신문, 그리고 마지막 유언까지 모두 마친 뒤, 이제 마지막 절차만을 남겨 놓고 있어. 지정수 교도관이 팔, 다리를 결박하던 순간, 신민철이 갑자기 두 손을 바지 안으로 집어넣어. 그리고는, 이걸 꺼냈어.
휴지 뭉치 안에 있던 건 다량의 수면제야. 죽음을 앞둔 순간에 갑자기 수면제를? 무슨 일인 걸까?
"휴지에 싼 물건 하나 꺼내 가지고 주더라고. 그게 보니까 수면제가 한 30알 정도 돼요. 잠을 못 잔다고 해서 의무과에서 처방해 준 수면제를 교도관 몰래 모아놓는 거지. 근데 먹었다고 해서 몰래 숨겨놓는 거를, 검방이라고 그래서 찾아도 걔들이 의도적으로 약을 이렇게 숨겨놓는 거는 그걸 찾아내기가 쉽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영양제도 수용자들이 얼마든지 자기가 소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영양제 약통 같은 데다 넣어놨다가 이제 그랬던 것 같아요. '사실 집행하면 이거 먹으려고 내가 보관하고 있었는데 드립니다' 그러면서.."
-지정수, 전 교도관
사형 집행을 멈출 수 있는 조건 중 마지막 하나가 바로 이거야.
'형사소송법 제469조 제1항.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심신의 장애로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이거나 임신 중인 여자인 때에는 법무부 장관의 명령으로 집행을 정지한다.'
심신의 장애로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사형 집행을 정지한다는 거야. 왜 그런 걸까? 형의 집행은 의사능력이 있는 상태에서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의사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형의 집행을 당사자가 인지하지 못하겠지. 그럴 경우엔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대. 신민철은 바로 그걸 노리고 준비했어. 집행 직전, 수면제를 먹고 사형을 막아보려 했던 거지.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돌연 마음을 바꾼 거야. 왜 그랬는지는, 지정수 교도관도 알 수 없대. 그런데 며칠 뒤, 지정수 교도관에게 더 알 수 없는 일이 생겨.
"집행하고 한 며칠 후에 이제 꿈에 나타났어요. 그 친구가 웃으면서 나타났어. '집행했는데 왜 왔냐' 하니까, '인사는 하고 가야죠' 그래서 '어 그래, 알았다' 잘 가라 그랬더니 그냥 쭉 빠져서 가더라고요. 사형수는 빨간색이에요 수용번호 있는 데가. 시커멓게 그냥 뭐 블랙홀이라고 뭐 그런 것처럼 까만 게 쫙 빠지면서 가더라고. 이 수용번호 있는 데가 쭉. 특히 이제 신민철 같은 경우에는 면담도 많이 했고 그러니까. 걔가 꿈에 나타났던 거 같아요 내 생각에는."
-지정수, 전 교도관
이때 신민철의 나이는 36살, 지정수 교도관의 나이는 마흔 살이었대. 그리고 신민철은 1990년부터 5년 동안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었어. 바꿔 말하면, 그 시간 동안 교도관들과 매일 대면하며 생활했던 거잖아. 그만큼 교도관 입장에서도 심적으로 부담이 많이 됐다는 거겠지.
▲ 사형장의 사람들
아까 사형장에 어떤 사람들이 입회한다고 했지? 교도관, 검사 같은 공무원들, 그리고 세 종교의 성직자들. 지존파의 김현양도 신앙심을 갖고 지존파 일원들에게 전도했다고 했잖아. 사형수들은 유독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 우리나라 마지막 사형집행일인 1997년 12월 30일. 그날, 맹세영 신부님도 사형장에 계셨어.
"저는 처음 참관하는 거니까 많은 걱정이 됐고, 사실 죽음 앞에 두렵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저도 뭐 두렵지만, 사형 집행되기 전에 각 종파별로 예식을 하는데, 저희는 고백성사라는 것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앞두고, 내 죄를 사제에게 고백하고 뉘우치고, 하느님께 갈 수 있는 마지막 준비를 도와주는 과정인데. 그때에 사형수에게 좋아하는 성가를 물어보고 '너 좋아하는 성가가 몇 번이냐?' 물었더니 '신부님 저 54번 좋아합니다' 해서 그걸 불러줬던 거 같아요. 마지막 성가 불러주면서 저도 울고, 수녀님들도 눈물 범벅되면서 성가 불렀어요."
-맹세영, 세례자 요한, 신부
사형 집행 전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고 했잖아. 이때 사형수가 원하는 경우 종교의식을 해준대. 각 종파별로 성직자가 사형대로 와서 기도를 해주고 찬송가나 불경을 불러 준다고 해. 머리에 두건이 씌워지고 목에 줄이 걸리는 최후의 순간까지, 종교 의식을 하게 되는 거지. 그렇게 사형수가 지하로 떨어지고 약 5분 정도 뒤, 교도소장의 옆에 앉아 있던 의무과장이 일어나서 지하로 내려가. 청진기를 심장에 대보고 멈췄는지 확인한대. 최종 사망 판정을 내리는 거야. 이때 의무과장과 함께 가는 사람이 있어. 검사야. 검사도 의무과장과 함께 사망을 확인한대.
당시 막 임용된 1년차 강찬우 검사도, 사형장에 있었어.
"1992년 전반부 형사부를 마치고 후반부에 공판부로 이동이 되어서 그중에 제가 담당했던 업무가 형의 집행, 주로 징역형의 집행, 또는 사형의 집행도 포함되는 거죠. 형사소송법상으로 '형의 집행은 검사가 한다' 이렇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사형도 형이기 때문에, 이 집행을 검사가 하도록 법률상 되어 있는 거죠."
-강찬우, 전 검사
아무리 그래도 20대의 초년 검사인데, 괜찮았을까?
"이런 일을 겪고 나서 한 10여 년이 지나서, 어느 정신과 의사가 대검찰청에 강의를 하러 오셨는데. 사형집행에 참여한 사람들, 부검에 참여했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주 강력한 현상을 경험하게 되면, 그걸 이기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감정을 확확 누른다는 거예요. 제가 검사할 때 되게 차갑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집에서 계속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너무 차갑다고, 너무 무뚝뚝하고. 아이들 얘기에 공감할 줄 모르고. 뒤늦게 의사 선생님 얘기 듣고 그랬구나, 했어요.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사실은 어떤 정신적 치유 과정이 좀 필요할 겁니다. 분명히."
-강찬우, 전 검사
당시 강찬우 검사가 사형장에 들어섰을 때 묘한 기분을 느꼈대.
"'오늘 사형을 집행하려고 하는데 마지막으로 더 할 말 있냐' 하니, '담배를 한 대 피우게 해 주세요' 근데 그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 되게 길게 느껴져요. 왜냐하면 이 짧은 담배인데, 이게 타들어가면은 이게 이제 자기 삶이 짧아지잖아요. 얼마 안 남았잖아요. 그 시간이 우리는 좀 빨리 갔으면 좋겠고, 당사자는 이게 좀 늦게 타기를 바라는, 빨리 안 빱니다 천천히 빠니까.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그가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조용하게."
-강찬우, 전 검사
강찬우 검사가 입회한 사형장에서, 총 7명의 사형이 집행됐어.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사형 집행은 오후 3시 반이 넘어서야 끝났다고 해. 검찰청 사무실에서 아침 일찍 출발했다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복귀한 거야. 그런데, 강찬우 검사가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전화가 한 통 오더래. 평소엔 전화가 없던, 차장님의 전화야. 차장님이 "부인하는 사람은 없었나?"라고 물어보더래.
"딱 그거 하나만 묻더라고요. 아마 그분은 그게 제일 신경이 쓰였던 모양입니다. 법무부에서 이런 걸 집행할 때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이긴 하거든요. 혹시 억울한 사람이 집행되면 안 되니까요. 만약에 그랬으면, 거기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그게 찝찝했을 거예요. 특히나 검사들이."
-강찬우, 전 검사
검찰에서 사형 집행에 가장 신경 쓰이는 게 아무래도 그런 부분이겠지. 범죄 행위를 직접 조사하고, 형을 구형하는 역할이니까. 그래서 당시에는 사형 집행할 때 일부러 연차 낮은 초임 검사들을 많이 보냈다고 해. 법의 엄중함과 판결의 무게를 몸소 체험하게 해주는 거지. 차장님은 강 검사의 "없었다"는 대답을 듣자마자 안심하면서 전화를 끊었대.
사형 집행 절차에서 검찰과 함께 법무부에서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결정이 있어. 당시 사형 집행을 대기하는 사형수들의 수는 50~60명 정도였거든. 근데 한 해에 실제로 집행당하는 사형수는, 10명에서 20명 남짓이잖아. 법무부에서는 사형수 중 누구를 집행할지, 선정하는 역할을 해. 선정 기준이 따로 있을까? 선정 기준에는 죄질이나 수용 생활 태도, 반성의 정도, 건강 상태 등이 있대. 그리고 이것 또한 영향을 끼친다고 해.
"사형 집행이 주로 살인 사건의 피고인들이긴 한데, 살인 사건 중에서도 존속 살인을 한 사람들을 주로 집행을 하면, 그 사회에 있어서 효, 부모를 모시는 이런 문제를 좀 더 강조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거고. 또는 다수 연쇄살인범을 골라서 사형 집행을 한다면, 연쇄살인범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의미가 있는 거죠."
-강찬우, 전 검사
당시의 시대 상을 반영하는 거지. 해마다 연쇄살인, 유괴살인, 존속살인 등 특정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목적이 있었다는 거야. 그리고 강찬우 검사가 사형 집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놀란 게 있었대. 바로, 사형수들의 장기기증. 혹시 사형수들이 장기기증을 할 수 있다는 거, 알고 있었어? 장기나 각막을 기증하기도 하고, 간혹 본인의 시신 전체를 실험용으로 기증하기도 한다고 해.
부산에서 안과를 운영하고 있는 윤대영 원장님. 그가 개업한 지 2년 정도 됐을 때의 일이야. 한창 진료를 보고 있는데, 환자 한 명이 대뜸 "각막 이식술도 하냐"고 물어보더래. 할 수 있다니까, 어디에 추천해도 되겠냐는 거야. 거기가 바로, 구치소였어. 진료를 받던 환자가 알고 보니, 구치소의 교화위원인 목사님이었던 거야. 그렇게 정말 우연한 계기로 사형수의 각막 기증을 담당하게 된 거지. 윤대영 원장님은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 한대.
"생각하고 싶은 기억은 아니죠. (구치소) 출입구에서부터 가는 과정이 우선 으스스했어요. '여기가 사형장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니까 더욱더 으스스하고. 두려움이 제일 많고 긴장도 되고. 빨리 수술하고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사형수가 밑으로) 떨어지면 이제 사망 확인하고, 거기 일하시는 분들이 그 사체를 저 끝에 있는 별관으로 옮기면, 저도 따라가서 예정된 수술을 했던 거죠. 빈 방에다 간이침대 같은 걸 하나 설치해 놓았고, 그 위에 사체를 놓고 수술해야 하니까. 조금 허전한 느낌이었죠. 저희는 일의 특성상 임종 볼 때가 많이 있으니까. 근데 사형당한 그런 시체고, 그리고 체격이 굉장히 건장한 남자니까. 상당이 느낌이 좀 많이 달랐습니다."
-윤대영, 안과 전문의
▲ 사형 집행 후, 남겨진 교도관들
그럼 장기기증을 하지 않은 사형수들은 어떻게 될까? 최종 사망 확인이 되면, 교도관들이 시신을 준비된 관에 넣어준대. 그게 끝이 아니야. 사형수들의 시신은 보통 가족이 인계해 가지 않는대. 그럼 장례까지도, 온전히 교도관들의 책임이 되는 거야. 짧으면 하루, 길면 3일까지 연락을 기다려. 그때까지 가족들의 연락이 없으면, 공동묘지에 가서 묻어준대.
사형 집행 당일, 퇴근하면 교도관들끼리 하는 전통 같은 게 있대.
"직원들이 바로 헤어지면 또 아무래도 좀, 마음적으로 힘들 수 있기 때문에. 다 같이 가서 같이 식사하고, 같이 사우나 가서 다 같이 목욕도 하고. 혼자 있으면 좀 부담이 될 거 아니에요. 그날은 그냥 다 같이 있자 해서, 술도 먹고, 숙소도 하나 잡아주고. 여기서 자고…"
-지정수, 전 교도관
사형집행 당일은 집에 들어가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한대. 심적인 고통이 컸기 때문에 같이 위로해 주는 거지. 그리고 다시 출근을 해서, 가족들이 포기한 사형수들의 장례를 치러주면, 비로소 모든 절차가 끝나는 거야.
교도관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줄, 알았어? 이 직업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싶어. 우리가 만난 교도관 두 분께, '일을 그만두거나 회피하고 싶지 않았냐'고 여쭤봤더니, 놀랍게도 두 분 다 똑같은 얘기를 하셨어.
"또 다른 사람한테 맡길 수도 있는 뭐 회피할 일도 아니고, 내가 직무상 했고. 근데 뭐,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내가 안 하겠다고 하면 다른 사람이 해야 하잖아. 내가 안 하겠다고 하면…"
-지정수, 전 교도관
"나는 교도관이니까. 법을 집행하는 교도관이니까. 세상에서 잘못된 범죄인을 벌하는 그 시점에 이건 누군가는 해야 되는데. 교도관 이외에는 할 수 없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입회했던 것이죠."
-이윤휘, 전 교도관
지정수 교도관과 이윤휘 교도관. 두 분 다 지금은 은퇴를 하셨어. 그렇지만 사형 집행의 그날만큼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대. 혹시 두 분,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 않아? 여기서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어. 두 분은 근황도 아주 꼭 닮아있다는 거야. 두 분의 이야기를 끝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칠게.
"지금 퇴직을 했지만 그동안에 내가 상담했던 사형수들, 지금 서울구치소에 18명이 수용되어 있는데, 그들도 한 명씩 찾아가서 면회도 좀 하고. 영치금도 좀 넣어주고 그럴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정말 죄는 밉지만, 그 사람이 좀 변화되기는 어렵습니다만, 그런 사랑으로 인해서 (한 사람이라도) 변화가 된다면,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직 교도관으로서의 역할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이윤휘, 전 교도관
"2012년 말에 은퇴했으니까, 12년 됐네요. 교도소는 계속 가죠. 내가 사형수들을 만나다 보니까, 보통의 교도관들은 그런 특별한 수용자들, 상대하기 좀 곤란한 수용자들을 잘 안 만나려고 그래요. 그래도 그 사람들도, 상담을 잘 들어주면, 상당히 또 해소가 되니까. 만났던 사람 중에 사형수 중의 하나는 간암에 걸려가지고, 또 암이 더 심해지면 완화 의료를 해줘야 되잖아요, 호스피스. 퇴직하고 호스피스 교육도 받고, 호스피스 봉사를 하죠. 전직 교도관이니까, 교도관 중에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줘야 되겠더라고."
-지정수, 전 교도관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