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신데렐라는 없다…'아노라'가 선사한 달콤씁쓸한 비애

작성 2024.11.15 18:33 수정 2024.11.15 18:33
아노라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공주를 구한 왕자는 그다음 어떻게 되지?
"그다음에는, 공주가 기사를 구해줘요."

1990년 개봉한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은 신데렐라 판타지를 구현하며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이 영화의 드라마틱한 엔딩은 동화를 실사화한 것처럼 로맨틱했다

부유한 사업가 에드워드(리처드 기어)는 이별을 고하는 콜걸 비비안(줄리아 로버츠)에게 지금으로 치자면 일종의 '스폰서' 제의를 한다. 비비안은 자신은 신데렐라가 되길 바란다며 그 제안을 거절한다. 결국 에드워드는 비비안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그녀의 바람대로 공주를 구하는 왕자처럼 근사하게 프러포즈한다. 그토록 원하던 순간을 맞이한 비비안은 빈민가의 다락방에서 탈출해 에드워드의 품에 안긴다.

이 작품의 세계적 흥행 이후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말이 재조명됐다. 물론 이 동화 같은 이야기를 현실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영화란 지독한 현실을 그리기도 하지만 달콤한 꿈을 선사하기도 한다. '판타지 충족'이라는 측면에서 '귀여운 여인'은 관객에게 특별한 영화로 남았다.

지난 11월 6일 개봉한 '아노라'(감독 션 베이커)는 '귀여운 여인'의 판타지를 34년 만에 와장창 깨뜨린다. 이 영화의 이야기를 단 한마디의 비속어로 표현하자면 '신데 fuxxing 렐라'일 것이다.

아노라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총천연색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으로 가득한 스트립바를 비춘다. 카메라는 트레킹샷으로 남성 손님 앞에서 나체를 흔들며 웃음을 파는 여성들을 비춘다.

이 가운데 '애니'가 있다. 20대 초반의 여성인 애니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 손님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녀는 매일매일 성실하게 일하며 그 대가로 돈을 번다.

어느 날, 애니는 러시아말이 가능한 여성을 찾는다는 호출을 받고 젊은 남자 손님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이반, 러시아 부호의 아들로 부모의 간섭을 피해 미국에 머물고 있다.

애니의 능숙한 서비스에 반한 이반은 자신의 집으로까지 불러들인다. 이반은 자신을 쉼 없이 흥분시키는 애니에게 빠져들고, 애니는 가볍게 열리는 이반의 지갑에 반한다. 급기야 애니는 이반의 제안에 따라 일주일간 그의 연인이 되기로 한다. 두 사람은 라스베가스로 여행을 떠나게 되고 분위기와 흥에 취해 즉흥적으로 결혼 서약을 하게 된다.

단, 일주일 만에 인생이 바뀐 애니는 스트립바를 나와 이반의 대궐 같은 집에 들어가게 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반의 집안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집안의 하수인 세 명이 이반의 결혼을 무효화하기 위해 급파된다.

아노라

술과 약에 취해 즉흥적으로 결혼을 했으나 뒷감당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이반은 애니를 남겨둔 채 도망쳐버린다. 덩그러니 남겨진 애니는 어떻게든 혼인 상태를 유지하려 하고, 두 하수인은 애니와 사사건건 부딪치며 결혼 무효화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성 노동자가 러시아 부호의 아들과 결혼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소동극처럼 담아낸 '아노라'는 '귀여운 여인'의 냉혹한 현실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션 베이커의 대표작인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세계 최고의 놀이동산인 디즈니랜드 옆 빈민촌의 냉혹한 현실을 다룬 것처럼 '아노라'는 '꿈의 도시'라 불리는 뉴욕 맨해튼의 빌딩 숲이 아닌 그 공간 어딘가에 공존하는 스트립바에서 이야기가 출발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총천연색의 '찬란한 절망'을 그려 강렬한 충격을 안겼다면 '아노라'는 코믹 소동극의 탈을 쓰고 '달콤씁쓸한 비애'를 선사한다.

풍자와 해학을 강조한 영화인 만큼 시종일관 터지는 웃음 뒤에 남는 쓴맛이 꽤 진하다. 애니는 서비스를 돈과 교환하며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였으나 신데렐라가 될 수도 있다는 순진한 상상을 했다는 이유로 당하지 않아도 될 폭력과 멸시를 당하게 된다.

아

인생역전을 꿈꾼 사람에게 세상은 비정했다. 결혼 무효화 소동에서 당사자인 애니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되며 그때마다 그녀의 직업은 괄시와 천대의 빌미가 된다. 무력에 의한 폭력보다 더 끔찍한 것이 언어폭력이라는 것을 영화는 130여 분 내내 상기시킨다.

이런 폭력적인 상황에 내팽개쳐진 애니는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밖에 없다. (외부인이 보기에) 야생의 정글 같은 스트립바는 오히려 그곳만의 규칙과 그들만의 직업 윤리가 작동했다. 그러나 세상에 툭 던져진 애니는 성 노동자라는 낙인으로 인해 번번이 멸시와 조롱을 당한다. 아무리 자신을 변호해도 그 목소리는 상대에게 닿지 않는다.

자신의 호기심과 쾌락을 길게 즐기고자 아무 생각 없이 애니는 세상에 끌고 나온 이반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유약하다. 부모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정작 부모의 울타리 밖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네포 베이비(nepo baby)의 전형이다.

자본주의의 민낯과 부조리, 현대 사회의 계급성이 신랄하게 묘사된 영화다. 상승을 허용하지 않은 계급 사다리의 상층부 인물들은 신데렐라를 꿈꿨던 성 노동자를 멸시의 눈으로 깔아본다.

아노라

이 영화는 뻔해 보이지만 뻔하지 않다. 성 노동자의 직업세계를 묘사함으로 인해 소재주의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으나 이 영화의 카메라는 인물과 직업을 전시하려는 목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한 세계에 대한 집요한 관찰과 그곳에 속한 사람들에 관한 생생한 묘사를 통해 볼거리가 아닌 삶을 보여준다. 1막에서의 상세한 묘사는 향후 애니가 처하게 될 위기, 그에 따른 대응과 선택을 이해하게 되는 밑거름이 된다.

한정된 시간을 담보로 서비스와 돈을 교환하던 직업의 룰을 스스로 깬 후 겪게 되는 애니의 고난은 순진한 희망과 기대에 대한 혹독한 대가다. 직업윤리 안에서 애니는 당당하고 쿨했다. 그 테두리 바깥으로 나와 자신이 아득히 높은 곳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 애니는 나약하고 초라해진다. 무엇보다 그 어떤 것도 자기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 더해, 그런 애니를 바라보는 스크린 밖 시선에는 대상에 대한 연민과 더불어 '그럴 줄 몰랐어?'라는 질타가 섞여있다. 관찰자인 우리 역시 이중적이다. 이처럼 이 떠들썩한 소동극이 보여주는 인간군상과 세상살이엔 폐부를 찌르는 통찰이 있다. 션 베이커의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폭넓고 깊이 있게 도달한 영역이다.

아노라

'아노라'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주인공의 적대자로 등장했던 세 남성이 종국엔 가까운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상기하게 될 때다. 계층의 사다리에서 애니나 토로스, 이고르, 가닉은 누군가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밑바닥 노동자라는 공통점, 피고용인으로서 고용인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 닮았다. 이들은 시종일관 서로의 존재를 부인하고 경멸하지만 어느 순간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긴다. 계급의 연대 같은 드라마틱한 결말로 이어지진 않지만 같은 이유로 분노하고, 같은 이유로 연민하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인 '아노라'는 애니의 본명이다. 러시아식 이름인 '아노라'(Anora: 우크라이나어로 '빛'이라는 뜻)는 촌스러운 이름의 전형인 것으로 보인다. 애니가 신분증에 적힌 본명이 불리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데서 유추할 수 있다. 아노라가 아닌 애니로 살고 싶었던 이 여성은 인생의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에 원치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본명과 마주하게 된다. '그 후'의 애니, 아니 아노라의 삶도 궁금해진다.

션 베이커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무책임하고 무의미한 해피엔딩을 제시하지 않는다. '아노라'는 '신데렐라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고 말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아노라

한여름 밤의 꿈과 같았던 나날과 악몽 같은 긴 밤이 지나고 난 후 창밖에는 함박눈이 내린다. 애니는 요란한 해프닝의 대가로는 너무나 적은 위자료를 받고 기찻길 옆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3분여의 엔딩씬은 '아노라'가 왜 특별한 영화인지를 보여준다. 창밖으로 흩날리는 눈, 애니와 이고르가 주고받는 증오와 연민을 담은 눈빛, 암전 속에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와이퍼 소리는 이 소동극이 이들 삶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가를 압축하는 듯하다. 이 엔딩이 불러일으키는 처연함에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다. 애니를 연기한 미키 매디슨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션 베이커는 이 작품으로 제77회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미국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건 2011년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브' 이후 13년 만의 일이었다.

트로피를 거머쥔 뒤 션 베이커는 "이 상은 과거, 현재, 미래의 성 노동자 여러분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데뷔부터 지금까지 성노동자, 성소수자, 이민자의 삶을 꾸준히 다뤄왔다. 인간의 삶을 전시하지 않고 응시하는 그의 영화적 시선과 태도가 오늘날의 영광을 만들었다.

ebada@sbs.co.kr

김지혜 기자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