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th BIFF] 구로사와 기요시는 늙지 않는다…'클라우드'로 보여준 에너지
[SBS 연예뉴스 | 부산=김지혜 기자] 1983년 영화 '간다천 음란전쟁'으로 데뷔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올해로 데뷔 40년 차가 됐다. 그의 나이 69세.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영화를 찍는 감각만큼은 여전했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은 구로사와는 "나는 현역"임을 선언하듯 뜨겁고 강렬한 신작 두 편과 함께 부산을 찾았다.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는 회고전 성격이 아닌 신작 상영으로 자신의 수상을 자축한 것이다. 그가 이번에 가지고 온 영화는 '클라우드'와 '뱀의 길'이다.
이 중 '클라우드'(Cloud)는 거장의 관록을 확인할 수 있는 신작이다. 물건을 헐값에 구매해 웃돈을 얻어 인터넷에 파는 리셀러가 구매자의 타깃이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통찰과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극대화하며 스릴을 만들어내는 거장의 솜씨가 돋보인다.
이번 작품은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타라 할 수 있는 스다 마사키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구로사와는 3일 국내 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마사키는 일본에서 가장 바쁜 배우 중 한 명이라 내 작품에는 안 와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배우로서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싶어 하던 시기에 내 제안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나에겐 행운이었던 것 같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윈-윈(Win-Win)이 된 만남이다. 구로사와는 일본 내 투자가 원활하지 않은 장르 영화에서 활로를 모색할 수 있었고, 스다는 거장과의 작업으로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스다는 강렬한 이미지 변신과 섬세한 내면 연기로 주인공의 불안을 극대화했다.
영화의 제목인 '클라우드'에서 물질 만능주의가 부른 개인의 이기, 급속도로 퍼지는 집단의 광기를 구름에 빗댄 의도가 엿보인다.
구로사와는 '도쿄소나타', '큐어', '회로' 등의 대표작에서 일본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를 인간 내면의 분노와 불안, 공포로 연결시키며 평단과 관객을 사로잡았다. '클라우드' 역시 그의 장기가 살아있다.
2막 구조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특히 후반 20여분 가까이 펼쳐지는 총격전은 서부극이 떠오를 정도로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 총격 액션도 활기가 넘치지만 영화 내내 주인공을 옥죄는 보이지 않는 공포 구현과 긴장감 조성도 일품이다. 리셀러에 빗댄 물질 이기주의, 도덕성의 상실, 익명성을 방패삼은 온라인 언어폭력, 집단행동의 공포와 광기 등은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관객에게도 와닿을 이슈다. 또한 현실인지 판타지인지 모를 마지막 시퀀스는 지옥을 드라이브하는 영혼이 탈곡된 인간의 모습을 보는 듯해 인상적이다.
한평생 장르물, 이른바 B급 영화라 공포, 스릴러를 기반한 영화를 만들어온 구로사와 기요시는 그 정의와 성격이 모호한 '장르 영화'에 대해 '익사이팅'(exciting)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설명했다. 일흔의 나이에도 변함없이 관객에게 익사이팅한 시간을 선사하는 구로사와 기요시에게 '거장'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영화적인 무언가를 표현하는 가능한 게 장르 영화가 아닌가 싶다. 그 순간이 스크린에서 나오면 눈을 다른 데 두지 못하고 못 박힌 듯 봐야 하는, 영화가 끝나고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굉장히 익사이팅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장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