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알' 출신 도준우PD, 힙합 래퍼가 범죄 전문 PD로 살아남는 방법

작성 2024.10.02 16:22 수정 2024.10.02 16:22
그알 도준우 PD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SBS 도준우 PD는 SBS 시상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의 '신정동 엽기토끼 살인사건' 편을 연출했다. 이 회차는 '그것이 알고싶다'가 다룬 굵직한 미제사건 편들 중에서도 단연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과 사회적 파장을 선사했던 레전드 오브 레전드 회차로 평가받는다. 이밖에도 도준우 PD는 〈토끼굴로 사라진 여인―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의 또 다른 퍼즐인가> 등 다양한 편을 통해 사건 해결의 작은 실마리라도 건지기 위해 자료와 사람에 끈덕지게 매달리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겼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에게 각인된 도준우 PD의 인상은, 떠오른 의심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떠도는 의혹으로부터 분명한 사실만을 추려내는 날카로운 면모였다. 규모가 크든 작든, 그 결과물로서 경이로움을 만들어낸 작품을 볼 때면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연출가의 맨얼굴을 궁금해한다. '뭔가 남다르지 않을까' 하는 시청자들의 근거 없는 호기심과 크게 다르지 않게, 아니 어쩌면 그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도준우 PD가 그동안 밟아온 삶의 궤적은 상당히 변화무쌍했다.

먼저 놀라움을 주는 지점은 도준우 PD가 정통 힙합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십 대 초반 힙합에 빠져 반골 정신을 온몸으로 익혔다. 랩에 빠져서 교내 힙합 동아리 '바운스 팩토리'를 창설했으며 직접 만든 〈훈민정음랩〉 〈용비어천가랩〉을 포털 사이트에 올려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도준우 PD는 2008년 예능국으로 입사했다.

여기까지는 흔히들 '평생직장'에 취업하기 전, 한 때 도전정신이 남달랐던 20대 청년의 치기 어린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도준우 PD의 '남다름'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그는 얼마 안 가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이후 오랜 기간 이어진 동료들의 만류로 교양국으로 자리를 옮겼고, 「SBS 스페셜」 「짝」 「궁금한 이야기 Y」 등 교양 프로그램을 거쳐 2015년 「그것이 알고싶다」 팀에 합류했다. 도준우 PD가 '그것이 알고싶다' 팀에 합류한 이유는 어쩌면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도 PD는 「그알」을 무사히 졸업한 피디들에게만 주어지는 프로그램 기획의 기회를 잡기 위해 기꺼이 「그알」 팀에 합류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 관한 호언장담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증명하듯 탐사 보도 프로그램의 매력에 금세 감화됐다. "두 발로 뛰어다니며 모르던 것을 알아내고, 닫혀 있던 누군가를 걸어 나오게 하고, 막막했던 사건의 밑그림을 조금씩 그려내면서 얻는 보람과 쾌감을 아주 살짝 알게 된" 것이었다.

도준우PD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일한 '8년'은 무언가를 "딱 1년만 해보겠다"던 다짐을 완전히 무색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그는 보이스 피싱 조직을 검거하기 위해 위장 잠입을 시도하기도, 경찰 협조가 어렵다는 이유로 동료들이 다루지 않았던 '신정동 사건'을 맡기도, 무모함과 실천력을 무기로 끝내 협조를 얻어내기도, 범죄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신정동 사건'과 '노들길 사건'의 연관성을 제기하기도, 배산 대학생 피살사건의 범인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알」의 오랜 시청자라면 기억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엽기토끼와 신발장―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퍼즐> 편, 〈토끼굴로 사라진 여인―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의 또 다른 퍼즐인가> 편이 탄생한 것이었다. 도준우 PD가 출간한 에세이 <스릴 너머>는 치열한 파고듦의 기록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강력 범죄자의 이름과 그들의 범행을 다루고 또 다루는, 범죄자의 자극적인 언행만을 부각하는 방송들을 볼 때마다 "무섭다는 생각마저 든다"는 도준우 PD는 그 이유를 "내 뇌리에 줄곧 도사리고 있는 불온함에 대한 공포와 정면으로 마주한 기분이 들어서"라 설명한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불온이란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을 높은 조회수나 시청률을 위해 '볼 만한' 무언가로 만들어야 하는 일 그 자체다. 이 불온한 숙명을 의식하는 그가 소재를 정하고, 취재하고, 영상을 촬영해 편집‧송출하는 전 과정에서 제작 명분을 끊임없이 되뇌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범죄 콘텐츠가 많은 이에게 닿되 가벼이 닿아선 안 된다고 믿는 그가 지키는 것이 있다. 흥미와 스릴이 콘텐츠 제일의 목적이 되면 안 된다는 것. 그가 말하는 '스릴 너머'에는 "경각심 제고, 예방법 공유, '증거는 반드시 찍히고 발각된다'는 경고의 전달"과 같은 목적이 있다. 그는 언제나 이런 목적을 염두에 두고 일하려 노력한다. 그의 고뇌를 통해 우리는 '교양 피디란 어떤 무게로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는가' '교양 프로그램은 어때야 하는가'라는 비교적 먼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기에 앞서 '직업인의 책무란 무엇인가' 그리고 '범죄 콘텐츠를 소비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은 어때야 하는가'라는 일상적인 물음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또 「그알」이 어떻게 지금의 「그알」이 되었는지, 피디들이 그간 어떤 싸움을 통해 지금의 「그알」을 만들었는지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책에 자신이 직접 쓴 랩의 가사를 실었다. 그리고 우리는 대학 시절 적은 그의 랩 가사와 교양 프로그램에까지 활용된 그의 랩 가사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만드는 콘텐츠를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형식상의 유쾌, 내용상의 진지眞摯!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도준우를 딱 이 맥락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그의 정체성을 '범죄 전문 피디 도준우'라는 단 한 줄로 기술하는 건 태만이다. 이제는 우리가 아는, 또 모르는 범죄 전문 피디의 면면을 부지런히 발견할 시간이다.

도준우
· 발행일 : 2024년 9월 2일
· 분 야 : 에세이
· 쪽 수 : 424쪽
· 값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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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윤 기자 ky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