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Y] 부실 설계의 참사…'설계자', 52만 동원하며 극장가 퇴장

작성 2024.06.18 11:23 수정 2024.06.18 11:23
설계자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강동원 주연의 영화 '설계자'가 개봉 4주 만에 극장 동시 IPTV & VOD 서비스 시작하며 사실상 극장에서 퇴장한다.

지난 달 29일 개봉한 '설계자'는 이번 달 18일까지 전국 52만 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제작비 약 130억 원을 투입한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200만 명. 목표치의 절반도 달성하지 못한 채 쓸쓸하게 퇴장하게 됐다.

'설계자'는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완벽한 사고사로 조작하는 설계자 '영일'(강동원)이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강동원, 이무생, 이현욱, 이미숙, 탕준상, 김홍파 등 개성으로 무장한 배우진을 구축했다.

영화는 흥하기도 망하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안목은 더 까다로워지고, 입소문 더디게 퍼진다.

최근 한국 영화의 흥행 타율은 끔찍한 수준이다. 나왔다 하면 천만은 기본으로 넘는 안전한 기획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도 있지만, 어떤 시도를 해도 완성도와 재미에 발목 잡히는 한국 영화들이 대다수였다.

설계자

'설계자'는 톱스타 강동원 주연작이라는 점과 영화 '범죄의 여왕'(2016)으로 주목받았던 이요섭 감독의 연출 그리고 남다른 안목과 영리한 기획으로 준수한 결과물을 내놓았던 영화사 집 제작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설계자'는 홍콩 영화 '엑시던트'(2010)를 리메이크를 했다. 1990년대 말부터 홍콩영화 재부흥기를 주도한 두기봉이 제작하고 그의 페르소나인 고천락이 주연한 영화다. 홍콩에서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한국에서는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났던 작품이다.

홍콩 영화의 리메이크는 아이디어나 콘셉트만 따오고 각색을 통해 한국화 하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 이 과정에서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경우도 있다. '설계자'에 앞서 영화사 집이 제작했던 '감시자들'('천공의 눈' 리메이크)은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로 꼽힌다. 또한 최근에는 용필름의 '독전'('마약전쟁' 리메이크)이 똘똘한 리메이크로 대성공을 거둔 바 있다.

'설계자'는 설계가 잘못된 시나리오와 연출에 발목이 잡혔다. 청부 살인을 사고처럼 조작하는 집단의 리더 영일이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청소부'의 존재를 추적해 간다. 이 과정에서 트리거가 되는 사건이 등장한다. 원작에서는 전당포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보험금을 노리는 딸의 청부 살인 의뢰라면 '설계자'에서는 검찰총장이 되기 위해 가족까지 희생시키는 아버지를 청부살인하는 딸이 등장한다. 이 사건이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며 영일의 딜레마를 부각하려는 듯한 전개를 보여준다.

설계자

개연성 부족은 원작에서부터 지적된 아쉬움이었다. 그러나 원작이 주인공에게 집중하며 그의 내면과 심리에 따라갈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한 것과 달리 '설계자'는 이야기의 볼륨을 키웠으나 그에 따른 설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중반 이후부터 크게 흔들린다. 또한 주변 인물의 캐릭터 설정과 직업 설정에도 감독의 어떤 의도가 보이는데 이것이 흥미롭게 작용하기보다는 노골적으로 드러나 오히려 진부해졌다.

물론 '설계자'는 관객의 허를 찌르기 위한 반전을 제시하기는 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사실상 열린 결말을 선택해 허무함을 안기기도 했다. 또한 리딩롤을 비롯해 어느 캐릭터 하나 관객의 마음을 제대로 뺏지 못한 것도 상업영화로서는 큰 단점이었다.

리메이크는 소재 고갈의 한국 영화에 꽤 좋은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성공한 원작을 뛰어넘는 건 큰 숙제다. 창작의 재가공과 업그레이드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그 난이도는 두 배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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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