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夜] '꼬꼬무' 희생자 가족, "그날의 아픔 모두가 꼭 기억해 주길"…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911 테러' 조명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아무리 많은 날이 지나도 지울 수 없는 그날의 이야기를 추적했다.
2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는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그라운드 제로 - 9.11 테러의 그날'이라는 부제로 2001년 9월 11일 그날을 조명했다.
2001년 9월 11일,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서는 승무원과 승객 92명을 태운 아메리칸 항공 AA11편이 LA를 향해 이륙했다. 그런데 얼마 후 관제탑으로 이상한 교신이 왔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너도 다치고 비행기도 다쳐!"라는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 이는 바로 비행기에 타고 있던 테러범이 승객들에게 방송하려던 것이 실수로 관제탑과 교신이 된 것이었다.
테러범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때 항공사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무원이 목숨을 걸고 테러범에 대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건 것이었다.
승무원은 누군가 칼에 찔렸다며 비행기 내부의 상황과 테러범들의 좌석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지상 승무원은 그에게 비행기가 현재 어디쯤이냐고 물었다. 엄청 낮게 날고 있다는 승무원의 이야기.
승무원의 말이 떨어지고 단 1분 후 오전 8시 46분 AA11편은 뉴욕의 쌍둥이 빌딩 북쪽 타워에 그대로 충돌했다.
이 믿을 수 없는 일은 전 세계에 전해졌고, 해당 건물에서 일을 하는 이들의 가족들은 간절한 기도만 하며 세계무역센터로 달려갔다.
하지만 완전히 통제된 현장은 지옥 그 자체였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2001년 9월 11일, 바로 911 테러가 일어났던 것이다.
911 테러의 생존자 동훈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회의 중 굉음이 들리면서 사무실 지붕이 회의실 3분의 1 정도 주저앉았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고 지진인가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비행기가 충돌한 곳은 쌍둥이 빌딩 북쪽 타워의 93층에서 99층 사이. 84층에 사무실이 있던 동훈 씨는 동료들과 함께 문을 열고 계단을 따라 건물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들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길을 밝혀준 이가 있었고 이는 동훈 씨에게 영웅 그 자체였다.
이대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 하지만 그들 앞에는 엄청난 재앙이 기다리고 있었다. 목적지 LA가 아닌 뉴욕으로 온 항공기, 이에 항공기는 항공유를 거의 그대로 실은 채 쌍둥이 빌딩을 덮쳤다. 그리고 그러한 항공기는 대형 폭탄이었다.
빌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앞다투어 911에 전화를 걸어 간절하게 구조를 요청했다. 도와달라는 간절한 외침,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운명을 예상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리고 북쪽 타워가 공격받은 지 17분 뒤인 오전 9시 3분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번째 비행기가 남쪽 타워를 강타했다. 이에 사람들은 확신했다. 이는 사고가 아닌 테러라는 것을.
사람들은 탈출하기 위해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었다. 계단으로 갈 수 없는 이들은 1000도에 달하는 내부 열기를 견디지 못해 창문으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추락하기도 했고, 열기를 피하기 위해 창문에 매달렸다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투신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그렇게 추락한 사람들만 200여 명에 달했다.
그리고 빌딩 속 사람들은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한 그 순간 사랑하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침착하게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이들도 순조롭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질서 정연했고, 자신보다 타인을 걱정하고 배려했다. 그리고 탈출하는 자신들과 반대 방향으로 구조를 위해 올라가는 소방관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북쪽 타워 1층에 도착한 동훈 씨와 사람들. 소방관들은 이들을 지하로 안내했다. 지하를 통해서 다른 건물로 탈출할 계획이었다. 다른 건물의 입구가 눈앞에 보이던 그 순간 또 한 번 엄청난 굉음이 들렸고, 지하몰은 초토화됐다.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이에 동훈 씨는 자신이 죽은 것인가 생각했다. 오전 9시 58분 59초 남쪽 타워가 붕괴된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소방관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동훈 씨는 다친 동료를 부축하며 다시 대피를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상으로 빠져나왔다.
동훈 씨와 동료들을 구출한 소방관들은 이들을 대피시킨 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아직 안에 남은 많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남아있는 북쪽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북쪽 빌딩까지 붕괴되며 쌍둥이 빌딩은 사라졌다. 첫 번째 비행기의 충돌 후 102분간 벌어진 일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기도를 하며 어디서든 어떻게든 가족들이 살아있기를 빌었다. 작은 희망을 안고 전단지를 만들어 딸을 찾았고, 근처의 병원을 다 돌며 아들을 찾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리운 딸과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유해도 없이 자식의 사망확인서를 받은 부모들은 후회만 남았다.
그리고 911 테러 발생 후 1년쯤 되던 날 성아 씨의 부모님은 딸의 시신 일부를 찾을 수 있었다. 딸이 태어난 때 통닭만 했다고 떠올렸던 성아 씨의 부모님들은 다시 돌아온 딸이 딱 그 크기로 돌아왔다며 가슴 아파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유해 일부라도 찾을 수 있었기에.
911 테러의 희생자는 총 2,977명. 그중 400여 명은 경찰관과 소방관이었다. 그리고 유해를 수습하지 못한 희생자는 천여 명이 넘었고 재훈 씨의 그런 희생자였다.
911 테러는 알카에다 테러 조직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의 주도하에 벌어진 테러. 이슬람 극단주의자이자 극렬한 반미주의자였던 빈 라덴은 항공기를 공중 납치해서 자살 테러를 지시했다.
두 대의 비행기는 미국 경제의 상징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했다. 그리고 세 번째 비행기는 미군의 상징 국방부 펜타곤을 공격했으며 이곳에서도 18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네 번째 비행기도 있었다. 네 번째 비행기는 펜실베이니아의 허허벌판에 추락했다. 하지만 해당 비행기의 타깃은 워싱턴 D.C에 위치한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으로 추정됐다. 그리고 이는 사고 후 수거된 블랙박스와 희생자들의 통화 내용 속에 진실이 남겨져 있었다.
네 번째 비행기의 테러범들은 항공기 납치에 성공한 후 사람들을 칼로 찌르고 폭탄이 실렸다며 협박했다. 그런데 이때 승객 몇 명이 몰래 지인과 연락했고 비행기 자살테러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게 됐다. 이에 승객들은 자신들이 탄 비행기도 자살테러 대상 중 하나라고 직감했다.
그리고 승객들과 승무원은 테러범들과 맞서 싸울 계획을 세웠다. 한 승무원은 물을 끓이고 누군가는 도끼를 들었다. 그리고 서로에게 우언의 응원을 하며 누군가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굳은 각오를 전했다. "다들 일등석으로 달려가고 있어, 나도 갈게 굿바이".
승객들은 "다들 준비됐나요? 갑시다"라며 일제히 테러범을 막기 위해 조종석으로 달려갔고 테러범은 승객들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기수를 내리고 그대로 추락했다. 그렇게 워싱턴 D.C에서 불과 20분 거리의 펜실베이니아에 추락했고,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객들 전원 사망했다. 하지만 이들은 워싱턴 D.C에서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희생을 막아냈다.
911 테러 후에도 곳곳에서 전쟁과 테러가 계속 일어났다. 911 테러 911일째 되는 날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차 폭탄 테러가 일어나며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됐다.
그리고 2011년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911 테러가 일어난 지 꼭 10년이 지났을 때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세상, 모든 것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희생당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악은 선을 이길 수 없었다. 위기의 순간에도 누군가를 돕는 선이 있었고, 이에 사람들은 서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에는 911 메모리얼 파크라는 이름의 공원이 만들어졌다. 이 공원에는 911 테러의 모든 희생자들 이름이 빠짐없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흐르는 폭포는 희생자와 가족들의 눈물을 상징했고, 이 눈물은 채워지지 않는 곳으로 흘렀다.
911 메모리얼 파크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 곳곳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희생자들이 다니던 길, 벤치, 운동장 등등 아픈 상처라도 공유하고 기억하기 위해 이름을 새겼다.
911 테러로 아들 재훈 씨를 잃은 아버지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같이 아들의 이름이 새겨진 곳을 찾아가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이 쓰인 그 자리를 매일같이 쓰다듬어 그 부분만 색깔이 진했다.
딸 성아 씨를 잃은 부모님들은 딸의 목소리를 녹음해 두고 매일매일 들었다. 딸의 목소리가 너무 그리워서.
그리고 이들은 "우리 아들과 딸은 우리만 기억해도 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꼭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라고 마음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