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논픽션] '옥자'를 거부한다?…극장 개봉을 둘러싼 쟁점

작성 2017.06.02 11:45 수정 2017.06.02 11:45
옥자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사상 초유의 멀티플렉스 3사의 특정 영화 보이콧 사태가 도래할 것인가. 영화 '옥자'(감독 봉준호)의 개봉이 3주 안팎으로 다가온 가운데 극장 상영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옥자'는 미국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가 제작비 600억을 출자한 미국 영화다. 지난달 28일 폐막한 제70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소식과 함께 프랑스 극장 협회가 "극장 상영을 전제하지 않는 영화의 칸영화제 경쟁 초청은 문제가 있다"고 반발해 극장과 안방의 영화 플랫폼 전쟁의 서막이 열렸다.

이런 논란은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는 이례적으로 6월 29일 극장과 안방의 동시개봉을 선언했지만, 국내 멀티플렉스 3사는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내 극장의 약 90%를 형성하고 있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옥자'의 극장 상영을 원치 않고 있다는 이야기가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옥자'는 극장을 향해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극장이 열어줘야 스크린으로 입장이 가능하다. 멀티플렉스 3사 관계자에게 '옥자' 극장 개봉에 관한 견해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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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한다 말한 적 없다"지만 "한다"라고도 못 하는 3사 

'옥자'의 극장 개봉 여부에 대한 멀티플렉스 3사의 입장은 같다. 공식적으로 "안 한다"고 말한 적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다"고도 섣불리 말은 안 하고 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어떤 영화의 상영에 대해 극장이 한다 안 한다고 말한다는 것은 유래가 없는 경우다. 아시다시피 영화의 극장 개봉 및 상영 규모는 개봉 1~2주 전 시사회 전후로 윤곽이 드러나는데 '옥자'의 경우 한 달 전부터 극장 개봉 이슈가 튀어나왔다. 현재로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협의 중이라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메가박스 관계자 역시 "공식적으로 명확하게 결정된 사항이 아니다. 우리는 안 한다고 말한 적 없다. 여전히 검토 중이다"라고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CGV는 양사와 달리 다소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극장 측과 논의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마치 선심 쓰듯 극장과 안방 동시 개봉을 발표했다"면서 "넷플릭스가 이 방식을 고집한다면 우리도 극장을 열어줄 수 없다. 선(先)개봉, 후(後)부가 서비스라는 전통적 영화 질서를 지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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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 질서 파괴에 대한 공동의 문제의식 有

멀티플렉스 3사는 모두 극장 질서 혼란에 대한 공동의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옥자'가 극장과 안방의 동시 개봉의 선례를 남기게 되면 제2,3의 케이스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CGV 관계자는 "'옥자'는 넷플릭스가 자신의 플랫폼에 상영하기 위해 만든 영화다. 그러나 돈을 댄 미국과 감독의 나라인 한국, 배우의 나라인 영국에서만 동시 개봉 서비스를 하겠다고 선언했다"면서 "특히 국내의 경우 자사의 회원 유치를 위해 한국의 영화 유통 질서를 훼손하면서 동시 개봉을 하려고 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옥자'가 극장과 안방에 동시 개봉을 할 경우 홀드 백(hold back)기간(한 편의 영화가 극장 상영 뒤 IPTV와 케이블 등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최소 상영 기간)은 무너진다. 한국 개봉 영화의 홀드 백 기간은 3주로 프랑스 3년, 미국 90일에 비해 짧다. 이 기간을 지키는 것이 큰 부담이 아니라는 게 극장 측의 생각이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우리도 ('옥자'를 극장에)틀고 싶은 마음은 있다. 하지만 극장과 온라인 동시 개봉이라게 기존의 원칙을 깨는 일이다 보니 그것에 관해 논의를 하고 있다. 우리 극장에 상영을 안다, 안 한다 명확하게 결정한 건 아니다.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메가박스 역시 "아무래도 '옥자'가 기존의 영화 유통 방식을 깨는 경우다 보니 뒤이어 나올 영화에 영향을 줄 여지가 많아 신중하게 논의를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극장 담합설'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했다. CGV 관계자는 "어불성설"이라며 "한 번도 타사와 이 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적 없다. 3사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는 것은 전통적 극장 질서에 대한 공동의 원칙과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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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 여부 및 상영 규모 6월 중순 윤곽

멀티플렉스 3사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옥자'의 개봉 여부 및 상영 규모는 대략 6월 중순쯤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옥자'의 국내 시사는 6월 13일로 예정된 상황. 보통의 영화들이 시사 이후 반응에 따라 상영 규모가 결정되는 것과 같은 순서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옥자'의 극장 상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넷플릭스의 양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앞서 천명한 동시 개봉을 철회하거나 적어도 극장 선 개봉 후 홀드백을 줄이는 등의 타협안을 마련해야 극장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엄밀히 말해 극장에서는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이다. '옥자'의 개봉일인 6월 말 전후로 '트랜스포머:최후의 기사', '미이라' 등 할리우드 대작과 '리얼' 등 한국 영화 기대작이 줄지어 개봉한다. 극장에 내걸 경쟁력 있는 영화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옥자'를 위해 관을 빼놓고 있을 이유는 없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옥자' 개봉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아시다시피 6월 개봉 영화들이 많다. '옥자' 전 개봉하는 대작들도 아직 상영 규모를 픽스하지 않았는데 벌써 '옥자'의 개봉 및 상영 규모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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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 질서vs관객의 요구…무엇이 더 중요할까 

'옥자' 개봉 논란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극장의 질서 수호와 관객의 요구 중 무엇이 더 선행되어야 할까. 두 가치가 함께 할 수 없는 상항에서 어떤 것이 조금 더 중요하게 적용되어야 할까.

전통적 질서 수호를 주장하는 극장들은 "영화는 극장 개봉을 전제로 최적의 화질, 조명, 화면비 등을 고려해 만든다. 오랫동안 극장이라는 최고의 상영 환경에서 영화를 즐기는 전통의 가치가 이어져 왔다"면서 "극장 개봉 후 IPTV서비스, 지상파 TV 상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시스템이 유지되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옥자'를, 봉준호 감독의 신작을 극장에서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바람은 무시해도 된다는 것일까.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일단 우리도 '옥자'를 극장에 걸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러나 기존 규정을 깨는 것에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관객의 관람 의향이 크기 때문에 그건 단호하게 차단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급하게 결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논의를 해보자는 입장이다"라고 전했다.

CGV 관계자는 "우리가 (극장상영)을 꼭 안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넷플릭스에 국내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동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반발이 심하지 않았나.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지켜져 온 가치다. '옥자'의 제작사이자 투자사인 넷플릭스 그리고 국내 배급사인 NEW와 계속 논의해 접점을 찾도록 하겠다"고 유보적인 말로 입장을 마무리했다. 

지난 5월 국내 취재진과 만난 봉준호 감독은 "스트리밍과 극장은 결국 공존할 것이다. 지금은 어떻게 공존하느냐는 아름다운 조율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얼마 전, 1960년대 프랑스 영화를 봤는데 극 중 영화감독이 '시네마는 죽었어, 영화는 끝났어, 왜냐면 텔레비전이 나왔잖아'라는 대사를 하더라.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지 않으냐. 그래서 마음 편하게 지켜보고 있다"라고 의연하게 말한 바 있다.  

현 상황이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갈등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bada@sbs.co.kr         

김지혜 기자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