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깐느박 키드' 엄태화 감독이 말한 박찬욱의 영향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그 엄태화가 혹시 너냐"
엄태화 감독이 지난 2013년 단편영화 '숲'으로 미쟝센영화제 대상을 수상했을 때 받은 문자 한 통이다. 발신자는 박찬욱 감독. 당시 영화제 집행위원이었던 박찬욱 감독은 범상치 않은 한 작품을 봤고, 엔딩 크레딧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 연출부를 했던 동명의 후배에게 확인차 연락을 했다.
"별다른 말씀은 없었고 '축하한다'고 하셨어요. 한마디뿐이었지만 기분 좋더라고요"
엄태화 감독은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미술 쪽에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영화라는 걸 모를 때부터 이야기를 만들고, 만화를 그려서 주변에 보여주는 걸 좋아했어요.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영화 미술팀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걸 영화를 통해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 같아요"라고 말했다.
졸업 즈음 영화를 하고 싶다고 담당 교수에게 말했고, 교수님으로부터 박찬욱 감독의 스태프였던 동시녹음 기사(이승철)를 소개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합류한 작품이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였다.
박찬욱 감독의 영향에 대해 엄태화 감독은 "태도와 자세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다"고 했다.

"연출자의 덕목, 자세는 물론이고 스태프들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것들을 배웠다고 할 수 있어요. 무언가 직접 가르쳐 주셨다기보다는 현장에서 감독님이 하시는 걸 보고 느꼈죠. 또 콘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리허설을 꼼꼼히 하는 감독님의 스타일은 제게도 큰 영향을 끼쳤어요. 저 역시 감독님 스타일대로 찍고 있더라고요"
박찬욱 감독은 애제자의 시나리오를 봐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태화 감독 역시 '가려진 시간'의 시나리오를 감수받았다.
"가장 큰 지적은 '지문'이었어요. 어린 성민과 큰 성민의 지문을 대조해 보면 진실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전 그걸 어른들의 의심으로 넘기는 방식으로 처리했어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엄태화 감독은 "따끔한 지적이었어요. 시나리오에 대한 총평은 "(이야기가)내 취향은 아닌데 흥미롭네"라고 하셨어요. 그런 조언이 큰 힘이 됐죠"라고 고마워했다.
완성된 영화를 본 박찬욱 감독의 반응 역시 그다웠다. 재능 있는 후배에 대한 애정과 격려를 느낄 수 있는 코멘트였다.
"살인사건이 나오지 않는 영화는 잘 보지 않는데, 살인 사건이 나오지 않은 영화 중에서 이렇게 재미있게 본 영화는 없는 것 같다"
엄태화 감독은 '가려진 시간'에서 신인답지 않은 개성과 연출력으로 '박찬욱 키드'다운 실력을 보여줬다.
<사진 = 김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