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에너미', 관객의 두뇌를 자극하는 현기증 스릴러

작성 2014.05.27 17:23 수정 2014.05.27 17:23

에너미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도플갱어(Doppelgänger: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통상적으로 같은 시대와 공간에서 타인은 볼 수 없지만, 본인 스스로 자신과 똑같은 대상(환영)을 보는 것을 뜻한다)를 소재로 한 영화는 과거에도 많았다. '나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과 마주한다면?'이라는 가정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만큼 익숙한 호기심 중 하나기 때문이다. 

이를 소재로 한 대부분의 영화가 의도치 않게 자신과 닮은 사람을 만나 벌어지는 우발적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면, '에너미'(감독 드니 빌뇌브)는 조금 다르다. 이 작품은 인간의 호기심과 욕망이 야기한 파국을 집요하게 그린 스릴러다.

아담(제이크 질렌할)은 안정적인 직업에 매력적인 여자친구까지 가진 남부러울 것 없는 역사학과 교수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그는 우연히 본 영화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배우 앤서니(제이크 질렌할)를 발견하고 호기심에 그를 찾아 나선다.

이후 각자의 삶을 몰래 염탐하던 두 사람은 서로의 여자에게 끌리게 되고 위험한 거래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스스로의 욕망을 제어하는데 실패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불안과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의 원작은 포르투칼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도플갱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주제 사라마구의 '도플갱어'가 성적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잠재의식을 탐험해가는 설정에 끌렸다"고 말했다. 감독은 소설의 도플갱어라는 소재를 가져오되 '욕망'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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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앤서니가 만나기 전까지는 호기심의 강도를 높여가며 '나는 누구?', '너는 누구?'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뇌게 만든다. 그러다 두 사람이 재회하는 이후의 전개에서부터는 누가 누군지 조차 헷갈리게 한다.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아담과 앤서니 시점을 교차로 담아내며 두 사람의 외모처럼 닮은 듯 하지만 다른 욕망을 표면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아담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강렬한 이미지를 시각화한다. 이것은 주인공의 잠재의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데 결말에 이르러 매우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한다. 주인공의 꿈속을 탐닉하는 듯한 몽환적인 이미지 역시 주인공의 불안한 정신세계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또 오프닝 시퀀스에 등장하는 "혼돈은 아직 해석되지 않은 질서다"라는 모호한 글귀는 영화가 끝나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소설을 영화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심리묘사와 이미지화에 집중한 나머지 이야기가 선명하게 잡히지 않고, 결말 역시 모호하게 느껴지는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명확히 결론 내릴 수 없는 인간의 잠재의식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흥미로운 스릴러다. 

'그을린 사랑'(2010)을 통해 주목받고 '프리즈너스'(2013)로 할리우드에 안착한 캐나다 출신의 드니 빌뇌브 감독은 집요한 심리묘사와 힘 있는 전개를 보여줬다. 음울한 도시의 분위기를 강조한 세피아톤 영상, 이야기와 전개와 인물의 심리를 대변하는 적시적소의 음악 사용, 갈등을 극대화하는 짧은 컷의 활용 등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영화는 아담과 앤서니, 헬렌과 메리 네 명의 주요 인물에 의해서 전개되는데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가 극의 몰입을 돕는다.  특히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인물 아담과 앤서니를 동시에 소화한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상영시간 90분, 5월29일 개봉.

ebada@sbs.co.kr   

김지혜 기자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