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방송 프로그램 리뷰

[스브스夜] '꼬꼬무' 한필성-한필화 '남북 이산가족 상봉' 조명…"보고 싶어 죽겠는데"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3.06.09 04:36 수정 2023.06.09 11:08 조회 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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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꼭 만나야 할,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8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우리는 만나야 한다'라는 부제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특별한 만남을 조명했다.

1964년 열린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아시아인 최초의 메달리스트가 된 북한의 한필화 선수. 그런데 어느 날 남한에 살고 있던 한계화 씨가 한필화 선수의 메달 획득 소식을 접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한필화 선수가 한국전쟁 당시 헤어진 동생이라고 확신했던 것.

이후 한계화 씨는 딸을 스케이팅 선수로 키웠고, 그의 딸 김영희 선수는 1971년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동계 프레올림픽에 최연소 국가대표로 참가해 북한 대표 한필화와 같은 링크에 섰다.

이에 동생과 딸의 만남만을 고대한 한계화 씨. 그런데 이때 상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졌다. 본인이 한필화의 오빠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등장한 것.

서울에서 TV판 매상을 하고 있던 한필성 씨는 1.4 후퇴 때 어머니가 쥐어준 미숫가루 한 포대만 들고 남쪽으로 피란을 떠났다. 그리고 여전히 북의 가족들을 그리워했는데, 그런 그가 한필화 선수가 자신의 동생이라고 확신한 것.

서로 자신의 동생이라 주장하는 한계화 씨와 한필성 씨. 전대미문의 동생 쟁탈전에 세계의 관심이 쏟아지고 마침내 한필화 선수가 기자회견을 자처해 입을 열었다. 한필화 선수는 한필성 씨가 오빠 같다며 본인과 오빠가 만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던 것.

이에 한계화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가족을 잃은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두 사람의 만남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한필성 씨는 꿈에 그리던 동생을 만날 것을 고대했다.

일본 신문사의 주선으로 21년 만의 통화를 하게 된 남매. 이들은 목소리만 듣고도 남매임을 직감했고,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그리고 당시 남북간의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도 남북은 이들의 만남을 허락했고, 이에 필성 씨는 동생을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동생의 호텔과 불과 5분 거리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동생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10분 먼저 도착한 필성 씨. 그런데 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오지 않고 잠시 후 북한 선수단이 떠났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사실은 남북 양측이 정치적 입장만 내세우다 각자 정한 장소만 통보하고 각각 기다렸던 것. 이에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남매들은 불과 5분 거리에서도 서로를 만나지 못하고 헤어져야만 했다.

이후 7.4 남북 공동 성명과 이산가족 찾기 특별 생방송 등 남과 북 사이에는 여러 일들이 일어났고, 그럴수록 필성 씨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1990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 필화 씨가 북한 측 임원으로 방일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고 필성 씨에게는 19년 만에 동생을 다시 만날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기필코 오빠를 만날 것이라고 말한 필화 씨. 필화 씨와 필성 씨는 한 방송사의 주선으로 다시 한번 전화 통화를 했다. 이 통화에서 필화 씨는 "어머니께 선물을 하고 싶으면 어머니가 입으실 수의를 준비해 달라"라는 말을 전했고, 이에 필성 씨는 "그런 말 하지 마. 보고 싶어 죽겠는데 왜 그런 말을 하냐"라며 속상해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남북은 이번에는 절대 남매의 만남에 정치적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이에 두 사람이 다시 일본 삿포로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 호텔로 이동하려는 필성 씨에게 필화 씨가 그를 만나기 위해 공항으로 직접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입국장을 나서자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그런데 이때 필성 씨의 귀에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오빠를 부르는 애타는 목소리, 바로 필화 씨였다.

40년 만의 만남에 필화 씨는 필성 씨를 끌어안고 "오빠 왜 이제 왔어요"라며 울었다. 그리고 필성 씨는 한순간도 동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만은 16살 오빠와 8살 동생으로 돌아간 두 사람. 두 사람은 일주일을 함께 했다. 그리고 필성 씨는 가족들에게 보낼 선물도 동생에게 전했고, 그중 어머니를 위한 수의도 있었다.

수의를 준비하면 장수한다는 이야기에 어머니가 오래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의를 준비했던 것. 그리고 동생 필화 씨는 오빠에게 그 어떤 것보다 감동적인 선물을 한다. 이는 바로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

전화가 연결되지 마자 필성 씨는 연신 어머니를 애타게 불렀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걱정은 말라며 아들 걱정만 하며 "꼭 돌아와야 한다"라고 일렀다.

예정된 시간이 지나고 다시 헤어져야 하는 남매. 남매는 헤어짐을 앞에 두고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고 헤어진 두 사람.

한국으로 돌아온 필성 씨는 가슴속에 더 큰 구멍이 생긴 것처럼 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필성 씨에게 꿈에 그리던 어머니의 얼굴을 볼 기회가 생겼다. 평양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대회 취재팀이 필화 씨의 집을 방문해 어머니의 모습을 영상에 담은 것. 이에 필성 씨는 TV 화면으로 나마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보고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리고 1998년, 이번에는 그의 어머니가 필성 씨 꿈속에 나타났다. 아들을 그리워하던 어머니는 돌아가신 다음 날 아들 꿈속에 나타난 것이었다.

끝내 어머니를 다시 만나지 못하고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던 필성 씨는 2013년 80세로 별세했고, 동생 필화 씨는 현재 평양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필화 씨는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조카들을 만날 수 있지 않겠냐며 또 한 번의 만남을 기다렸다.

필성 씨 남매의 애틋한 만남 후 남과 북 사이에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비극의 줄다리기 사이에서 가장 마음을 졸일 것은 이산가족이었다. 2018년 8월 이후 멈춰 버진 이산가족 상봉, 이제는 다시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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