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방송 프로그램 리뷰

[스브스夜] '꼬꼬무' 지상 최대 규모의 구출 작전…'메러디스 빅토리호' 흥남 철수 작전 '조명'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3.06.02 05:34 수정 2023.06.02 11:20 조회 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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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지상 최대규모의 구출 작전의 그날을 조명했다.

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푸른 눈의 선장과 김치 - 기적의 해상철수작전'이라는 부제로 흥남 철수 작전의 그날을 추적했다.

1950년 12월의 어느 날, 흥남에 사는 인재네와 정숙, 영숙 자매의 가족들은 급히 집을 떠나 어딘가로 갔다. 이들이 향한 곳은 흥남 부두.

수십 만의 피란민들은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으로 철수를 결정한 군인 10만 명들과 함께 흥남 부두로 향했다. 코앞까지 추격한 중공군을 피해 피란민 20만 명에 군인 10만 명까지 30만 명이 탈출을 해야만 하는 상황은 탈출을 할 수 있을지 확신도 없이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당시 미 10군단 민사부 고문 현봉학은 "미군이 이 많은 피란민들을 다 태워줄까. 배를 못 타면 수많은 사람들이 떼죽음인데"라며 고민했다. 이에 현 박사는 흥남 철수 작전을 책임지는 미 10군단 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을 설득하기 위해 해상 작전 전문 지휘관인 부참모장 에드워드 포니 대령을 만났다. 피란민들을 데려가달라고 애원하는 현 박사, 이에 포니 대령은 적극 협조하기로 하고 함께 알몬드 장군을 설득했다.

알몬드 장군은 현 박사와 포니 대령의 이야기에 동의했지만 선뜻 모두를 책임지고 탈출시키겠다고는 약속하지 못했다.

구출을 위해서는 배가 필요한데 배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 이에 알몬드 장군은 군 병력부터 철수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구출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피란민들. 그리고 그때 현 박사의 눈에 보이는 광경은 그의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 해군 함선을 포함해 수송선 등 구조배들이 흥남 부두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

피란민들을 최대한 구출하기로 한 알몬드 장군은 지상최대규모의 구출 작전을 준비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배는 충분하지 않았고 선적 작업의 권위자 포니 대령은 30만 명을 탈출시키기 위해 군수 물자 사이사이 사람들을 태웠다. 이는 마치 테트리스 같았다.

승선 인원의 한계까지 채워 넣고 군수 물자 일부를 포기한 미군. 그럼에도 30만 명이 모두 탈출하기에는 여전히 배가 모자란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때 흥남 부두로 폭 19미터, 길이 138미터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들어왔다.

군수 물자를 실어 나르던 상선인 이 배는 피란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부산에서 흥남까지 왔던 것. 라루 선장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피란민들의 구출을 결정했고, 최대한 많이 태우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배의 정원은 단 60명. 화물선이라 승선 인원이 적었던 것. 이에 선장은 화물칸에 사람들을 태울 것을 지시했다. 선장은 선원들에게 만 명까지 태운 후 보고하라고 했고, 승무원들은 화물 크레인에 나무판자를 넣어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사람들을 20명씩 태워 화물칸에 내렸다. 그리고 철판으로 화물칸을 나누어 사람들을 계속 실었다. 갑판까지 빼곡히 채워 무려 1만 4천 명이 승선을 완료했다.

빛도 환기도 화장실도 물도 없는 화물칸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이불을 깔고 서로에게 기대며 버텼다. 12월 23일 항해를 시작한 이 배는 목적지는 부산을 향해갔고 40시간 만에 부산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포화 상태인 부산에는 피란민들을 수용할 수 없었고 이에 80킬로 떨어진 거제도로 뱃머리를 돌렸다. 부산에만 도착하면 된다고 생각하던 피란민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런데 이때 소란이 일어났다. 피란민들 사이에서 임산부가 출산을 한 것. 그리고 이는 한 명이 아니었다. 무려 5명의 아이들이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빅토리호 안에서 크리스마스에 태어났다.

기적적으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선원들은 한국을 상징하는 김치라는 닉네임을 붙여주었고, 미라클 베이비라고 불렀다. 그리고 미라클 베이비의 기적처럼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모두에게 일어났다. 전원이 무사히 거제도에 도착한 것.

배에서 내린 피란민들은 환하게 웃었고 당시 이를 본 선원은 흥남 구출 작전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 영광이라고 말했다. 거제도에 도착한 많은 사람들, 그중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모님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빅토리호의 구출 작전은 단일선이 가장 많은 인명을 구한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 뒤에는 큰 희생들이 있었다.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많은 피해를 입은 미 해병 1사단, 이들은 비행기를 타고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해병은 전우를 두고 갈 수 없다며 철수하지 않고 중공군을 공격했고, 이로써 중공군의 남하를 2주 늦추었다.

당시 사상자만 7천여 명, 그중에는 우리 카투사 장병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시 전사한 국군 유해 147구는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울컥하게 만들었다.

거제도에 도착한 피란민들, 그들을 또다시 도움을 받았다. 거제도의 주민들이 이들을 도와 하루하루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던 것.

그럼에도 피란민들은 힘든 생활에 가족을 잃기도 하고,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힘들지만 악착같이 살아갔고, 그중 인재는 서울대 지질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했고 18년 뒤 거제도에서 가족들에게 도움을 준 집을 찾아 고마움을 전했다.

또한 정숙이네 가족은 대전으로 이사를 해서 찐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이것이 대전의 유명 빵집인 성심당의 시작이 되었다. 창업주인 정숙의 부모님들은 살아남는다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라고 했고, 이에 그들의 자녀들은 지금까지도 빵을 나눔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피란민들은 자신들이 받은 도움을 나눔과 봉사로 돌려주고 있었던 것.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어 아프간인들의 탈출을 도운 미라클 작전까지 성공시켰다.

또한 포니 대령의 증손자는 할아버지가 사랑했던 한국에 관심을 가지며 한국에 대해 공부했고, 암 투병 중인 새어머니는 한국 국가보훈처를 통해 의료 지원을 받은 사실이 공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이에 포니 대령의 증손자는 "우리 할아버지는 피란민을 구하고, 70년 후 한국은 우리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 인연이 계속됐으면 좋겠다"라고 활짝 웃었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모든 기적 뒤에는 올바른 선택이 있었음을 잊지 말라 당부했다. 또한 우리가 받은 도움만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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