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방송 프로그램 리뷰

[스브스夜] '꼬꼬무' 평시 작전 중 가장 많은 군인 희생된 '봉황새 1호 작전'…사건의 진실은?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3.03.10 06:26 수정 2023.03.14 11:07 조회 1,229
기사 인쇄하기
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봉황새 1호 작전이란?

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수상한 비밀작전 - C-123기 추락사건'이라는 부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몰랐던 41년 전 그날 이야기를 공개했다.

지난 1982년 2월 4일 밤, 한라산 청원 경찰 양 씨는 청와대 직원들의 등산 안내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 약속 시간 임박까지 밤새 군부대며 경찰이며 그에게 임무를 강조했고, 다음 날 새벽 3시 그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그의 앞에 등장한 것은 청와대 직원이 아닌 군인들과 경찰들.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들과 함께 산을 오르던 양 씨. 그리고 그 앞에 더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군용기가 종잇장처럼 구겨져 추락해 있었던 것. 또한 주변에는 누가 누군지 분간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훼손된 시신들이 즐비했다. 이 사고로 사망한 이들은 무려 53명의 제707 특수임무단 대원들이었다.

군에서는 유족들에게 훈련 중 사망이라는 소식만 전했고, 얼마 후 언론에는 이들이 대침투 작전 중 사망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707 특임대 소속 대원이라면 최정예 특수 대원들로써 비행기 추락을 알고 있었다면 충분히 생존이 가능한 정도의 능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특히 작전 중 이러한 일이 발생했다면 당연히 낙하산도 있었을 것. 하지만 이들이 탄 비행기에는 낙하산이 단 하나도 없었고 이에 단 한 명도 생존하지 못하고 사망한 것이었다.

이에 가족의 죽음을 납득할 수 없었던 유족들. 이들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뛰던 중 사고 당시 일지를 습득했는데, 여기서 사고 발생 후 훈련 명칭이 변경된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원래 이들이 투입된 작전의 진짜 이름이 밝혀졌다. 그날 작전명은 봉황새 1호 작전, 이는 바로 대통령 경호 임무 작전이었다.

대통령의 제주행에 대비해 대통령의 보안과 안전을 위해 707 특임대원 250명이 제주도로 향했고 그러던 중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특히 이는 며칠째 이어진 폭설로 비행기 이륙이 불가했음에도 대통령의 경호를 위해 이륙을 강했했고, 이에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 충격을 더 했다.

당시 봉황새 1호 작전 강행 이유는 청와대 경호실장 장세동의 심기 경호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심기가 편해서 국정이 잘 운영된다는 그의 신념 아래 대통령의 심기를 편하게 하기 위해 이러한 작전을 강행했다는 것.

그리고 사고 후 전 대통령 전두환은 "이번 사건은 조종사의 착각으로 빚어진 사고다. 인명은 재천인데 어떻게 하겠냐,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라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겨 더욱 분노를 높였다.

사고 발생 100일쯤 뒤, 동생을 기리기 위해 한라산에 오른 유족. 이전까지는 경계가 삼엄해 한라산 등반조차 어려워 그제야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서 고철 덩어리처럼 방치된 군용기와 곳곳에 떨어진 병사들의 유품을 보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급히 연락을 했다. 이에 몇몇 유족들은 현장으로 달려왔고, 그곳에서 군인들의 방해를 뚫고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신 일부를 발견하고 충격에 빠졌다. 군 당국은 사고 직후 눈에 띄는 유해만 수습하고 나머지는 묻어둔 것이었다. 이에 영결식 당시 유골함에는 진짜 유골이 들어있었는지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족들은 이후 끊임없이 한라산에 올라 유해를 수습해 정성껏 화장하고 유골을 뿌려주었다.

그때까지도 세상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사건은 1987년 이후 달라진 사회 분위기로 조금씩 알려졌다. 이에 유족들은 국회와 청와대에 청원서를 제출해 봉황새 1호 작전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 시신 수습도 요구했다.

그리고 이에 7년 전 현장 사진을 찍었던 제주 일보 기자는 유일한 현장 사진을 보도해 이 사건을 세상에 밝혔다.

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에 유족들은 전 대통령 전두환을 비롯해 전 특전사령관 박희도, 전 국방부장관 주영복, 전 육군참모총장, 전 공군참모총장 등을 대상으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유족들은 권력 남용으로 군인을 강제 동원하고 강제로 비행기를 이륙시킨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간주할 수가 있으므로 이들을 살인죄로 고소했다.

그러나 몇 년 후 나온 판결은 살인 혐의 무혐의, 직권남용은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한 이도 아무도 없었다.

전두환은 사망 직전까지 사고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았고, 박희도는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고 침묵했다.

그리고 2015년 이들의 죽음을 기리는 충혼비 뒷면에 대침투작전 훈련 중 사망이라는 한 줄이 대통령 경호작전 중 사망이라 수정되었다. 한 줄을 바꾸는데 무려 33년이 걸린 것. 많은 이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 단 한 줄이라도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을 제외하고 평시 작전 중 가장 많은 군인이 희생된 사건이 바로 봉황새 1호 작전. 희생자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래 기억하고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또한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거는 숭고한 마음은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