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서양 남자들은 동양 여성에 대한 어떤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대체로 찢어진 눈에 커다란 광대뼈, 검은 머리에 작은 키 여기에 표정의 변화가 크지 않기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고 한다.
여기에는 선입견과 편견이 깔렸다. 외모와 분위기라는 건 사람마다 다르고, 동양인 역시 서양인 못지 않은 개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서양인에 대한 어떤 판타지를 가지고 있듯 그들의 눈에 비친 동양인도 어떠한 판타지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 영화 속 동양 여성에 대한 판타지는 어떤 것일까. 최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동양 배우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특히 중국 영화 시장이 할리우드 못지 않게 커지면서 자국의 인기 여배우의 출연이 줄을 잇고 있다. 대표적인 여배우는 판빙빙과 리빙빙이다.
두 여배우는 중국 영화계에서 30대와 40대를 대표하는 미녀 스타로 자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서 높은 인기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이 최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출연하고 있으나, 팬들의 기대에 못미치는 활약으로 아쉬움을 자아냈다.
판빙빙은 '아이언맨3'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출연했고, 리빙빙은 최근 개봉한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했다. 또 내년 개봉할 '레지던트 이블:라이징'에도 캐스팅됐다.
판빙빙은 두 편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굴욕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아이언맨3'의 경우 월드 와이드 버전에선 통편집됐고, 중국 상영 버전에만 약 3분 정도 모습을 드러냈다.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 에서는 블링크라는 매력적인 역할을 맡았으나 5분 분량으로 아쉬움을 불러 일으켰다.
그에 반해 리빙빙은 '트랜스포머4'에서 한 시간 이상의 분량을 확보했으며, 영화 후반부에는 여주인공 니콜라 펠츠 못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문제는 분량이 아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동양 배우들을 활용하는 폭이 매우 좁아 유감스럽다. 두 여배우는 각기 다른 매력으로 많은 팬을 확보했는데,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그 구분이 쉽지 않다. 이들은 모두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으로 눈매를 강조하고, 붉은 립스틱으로 섹시함을 더한 듯한 모양새다. 캐릭터에 따른 이미지 연출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획일적이다.
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속 동양 여성들은 한결같이 무서울까. 대체로 이들을 여전사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다. 또 로봇처럼 감정을 절제한 채 기계적으로 행동한다. 때문에 이들 캐릭터에서 생동감은 찾아볼 수 없다.
등장 5분 만에 사라진 '엑스맨'의 판빙빙에 비해 '트랜스포머4'의 리빙빙은 대사도 많고 분량도 많은 편이다. 후반부 스탠리 투치와 러브 라인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 흐름상 불필요한 에피소드일 뿐이었다.
중국 여배우의 할리우드 진출은 미국 영화에서 중국 자본이 투입되면서 자연스러운 흐름이 됐다. '트랜스포머4'의 경우 미국 제작사인 파라마운트와 중국영화 채널 지아플릭스 엔터프라이즈가 협력해 제작했다. 중국이 주요 무대로 등장하고 중국 배우가 여러 명 출연한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여기에 중국의 한 호텔은 이 영화에 160만 달러의 제작비를 댔다.
할리우드는 중국 영화 시장을 크게 의식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언맨3'의 전체 수익 중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트랜스포머3'는 중국에서만 1억 6,5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이는 북미 극장 수익의 절반에 해당한다. 중국 관객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성적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타겟 시장에 친숙한 배우 한 두 명 정도는 출연시키는 것은 그럴 듯한 구색이다.
이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미국 영화 시장이 침체에 빠진 반면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시장은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할리우드의 동양 배우 활용에 대한 고민은 좀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 부분에 있어 아시아 배우의 언어 장벽은 큰 핸디캡이다. 그러나 단순히 미숙한 영어실력 때문에 캐릭터 묘사를 성의없게 했다고 할 수 있을까. 리빙빙은 수준급의 영어 실력을 갖춘 여배우다. 그럼에도 '트랜스포머4'에서 5분 출연한 '엑스맨'의 판빙빙 보다 존재감이 없었다. 이는 끼워맞추기 용으로 배우를 활용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중국의 여배우들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된 것을 보며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 중국 다음으로 눈여겨보고 있는 영화 시장이 바로 한국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벤져스2'는 할리우드 메이저 블록버스터 중 최초로 한국 로케이션을 진행했다. 지난 5월 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약 한 달간 촬영을 진행했고, 우리나라 배우 수현이 비중 있는 조연으로 캐스팅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우리나라는, 또 수현은 어떻게 묘사될 것인가. '트랜스포머4'처럼 부수고 뒤집어 엎는 공간으로만 사용되는 건 아닐지, 또 눈에 힘만 잔뜩 주고 발차기만 하는 무서운 동양 여자로 그려지는 건 아닐지 염려스럽다. 이런 우려가 괜한 노파심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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