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조세이 탄광에서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10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검은 뼈 - 40년 만에 전해진 부고'라는 부제로 조세이 탄광에 대한 그날을 조명했다.
1991년, 전국 곳곳에서 일본에서 출발한 편지를 받은 이들이 등장했다. 편지를 받은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서 가족 중 누군가가 사망했다는 것.
유족들은 어느 것 하나 아는 게 없었다. 그런데 그날에 대한 생생히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다.
1939년 갑자기 일본으로 끌려간 스물한 살의 청년 설도술. 같은 처지의 청년들은 수백 명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이들이 도착한 곳은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던 조세이 탄광.
이들은 철저한 감시 속에 바다 밑에 뻗어있는 해저 탄광인 조세이 탄광에서 일을 시작했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배의 엔진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열악한 환경에서 수많은 청년들은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일을 했다.
이에 청년들은 항상 이곳을 벗어날 궁리를 했지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청년들은 매일매일 일본인들의 가혹 행위를 당했고 맞아 죽지 않기 위해 그곳을 벗어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무려 천여 명의 조선 청년들이 강제로 끌려왔다.
1942년 운명의 그날, 일을 마치고 잠을 자던 설도술. 감독관의 다급한 외침에 밖으로 나온 설도술은 탄광이 수몰되는 모습을 직접 마주했다.
갱도 앞에는 수많은 이들이 가득했다. 바닷물로 막혀버린 갱도 입구 앞에서 수많은 이들이 울부짖었다. 작업을 하러 들어간 가족들을 찾고 있었던 것.
시간이 지나도 갱도 안이 어떤 상황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알려주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등장한 일본 헌병대는 갱도로 들어간 이들을 애타게 찾는 가족들 앞에서 갱구를 막아 버렸다.
몇 명이 사망하고 어쩌다 사고가 났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유족들은 가족의 시신을 찾지도 못했고, 남은 유족들은 가족들의 생활을 위해 가족을 집어삼킨 탄광으로 일을 하러 갔다.
그날 이후 도술은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두문분출했다. 그리고 이후 시간은 흘러 흘러 해방을 맞았고 시간은 더욱더 흘러 1991년이 되었다.
야마구치 타케노부라는 우베시의 고등학교 교사. 조세이 탄광에 대해 뒤늦게 알게 된 야마구치. 그는 조세이 탄광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정보들을 하나둘씩 모았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그는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을 만들어 마음 맞는 이들과 모여 사건에 대한 정보 수집을 했다. 어느 날, 한 절에 사망한 이들의 명부가 있다는 소식을 접한 야마구치.
그는 명부를 보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명부에는 183명의 사망한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당시 일본의 국가정책이었던 석탄 산업으로 인해 사망한 이들의 이름. 그중 조선인은 136명에 달했다.
그런데 그곳에 적힌 이름들은 모두 창씨개명된 일본식 이름이었다. 새기는 모임의 첫 번째 목표는 사망자들의 이름을 새긴 추도비 세우기. 이들은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불리던 이들의 아픔을 알았고 그들을 기리기 위해서는 일본식 이름이 아닌 진짜 이름을 찾아서 추도비에 새겨 넣고 싶었다.
이름 아래 적힌 고향 주소를 발견한 새기는 모임. 이에 새기는 모임은 1991년 한국과 북한으로 편지를 보냈다. 이들은 본명을 찾기 위해 118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17통의 답장을 받았다.
답장의 내용은 대부분 사망한 가족의 생사나 소식을 전혀 알지 못했던 가족들이 새기는 모임의 편지로 조세이 탄광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50년 만의 편지가 가족들의 부고장이었던 것.
편지를 받은 이들은 가족을 추모하기 위해 조세이 탄광을 찾았다. 이들은 바다 어딘가에 있을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떠난 이들을 그리워했다.
2006년, 조세이 탄광의 생존자 설도술. 그는 65년 전 친구들을 남기고 온 그 바다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옛 탄광 자리의 남은 흔적만 바라보며 떠나간 친구들을 안타까워하고 눈물만 흘렸다.
사망한 이들의 위패가 모여진 절에 가서 친구의 낯선 이름 앞에 절을 하는 것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설도술 씨.
그는 당시 갱내 관계자가 비정상적 출수 현상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갱도에서 일하던 광부들은 감독관이 상황을 지켜보니 그들만 믿고 작업을 했지만 감독관들은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전쟁을 위해 석탄의 꾸준한 공급이 필요했던 일본. 그리고 평소보다 석탄을 많이 캐는 작업을 며칠에 걸쳐했고 그 과정에서 탄주라고 불리는 석탄 기둥까지 제거하며 붕괴가 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겼다.
그리고 새기는 모임의 노력 덕분에 2013년 조세이 탄광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비가 세워졌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양심 때문이었다.
새기는 모임의 다음 모임은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이었다. 이 또한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갱도 입구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고 막혀있던 갱구를 열었다.
"이 봐, 갱구가 열렸다고"라고 외친 새기는 모임. 82년 만에 희망의 빛을 본 이들. 이들은 이어 유골 발굴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어두운 갱도 속에서 발견된 희생자의 유골. 2025년 이윽고 세상 밖으로 나온 유골은 검게 변해 있었다.
갱도가 열린 것도 유골이 발견된 것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난 설도술 씨.
모든 이들을 대신해 사죄의 마음을 전한 새기는 모임. 새기는 모임의 요코 씨는 "제가 유족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은 사람이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유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머리를 숙여 눈길을 끌었다.
올해 1월 한일 정상회담에 유골 DNA 감정에 협력하기로 한 양국 정부. 바다 아래 잠든 이들의 귀향길은 이제부터가 시작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