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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조선 왕조 가장 비극적인 인물 '단종'···평생 외로웠던 '단종'의 마지막 이야기 '조명'

작성 2026.08.07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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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가장 외로웠던 왕 단종, 하지만 더 이상 그는 외롭지 않다.

6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역사 특집: 홍위, 노산, 단종 -왕의 이름을 찾아서-'라는 부제로 어린 왕의 마지막 이야기를 추적했다.

조선왕조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 중 하나인 단종. 그는 2대에 걸쳐 완벽한 왕의 혈통을 타고나 열두 살에 왕위에 오르나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를 빼앗겼다.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위를 빼앗은 수양대군은 자신을 도운 이들은 정난공신으로 책봉하고 김종서 일파는 몰살, 안평대군은 귀양까지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단종은 허수아비 왕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단종은 열다섯의 나이에 자신이 왕으로 있는 한 자신의 사람들의 희생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에 조선의 7대 임금 세조가 된 수양대군. 그는 왕이 된 후 단종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사정없이 쳐냈다.

이에 어린 왕을 지키려는 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거사를 도모했다. 그런데 그러던 중 5월 한 달에만 11번 혜성이 나타나고 사옹방의 시루가 혼자 우는 등 기이한 징조가 나타났다. 그리고 결국 한명회의 책략으로 세조에 의해 거사는 무산되었다.

이에 거사를 준비하던 이들은 불안에 떨다가 세조에게 거사를 주도한 이들을 밀고했다. 세조는 직접 국문에 나섰다. 하지만 성삼문과 박팽년은 끝까지 저항했다. 이들은 세조를 나으리라 부르며 끝까지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에게 받은 녹봉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그대로 뒀다. 이에 세조는 이들에게 죄인의 사지와 머리를 말 소 수레 등에 묶어 각 방향으로 끌려가게 하여 찢어 죽이는 형벌인 거열형을 명했다.

죽는 순간까지 단종에 대한 충심을 꺾지 않은 이들은 훗날 사육신이라 불리었지만 당시 세조는 혜성이 나타나고 변이 일어났다 하여 성변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결국 단종의 유배를 명한 세조. 명분은 역모의 배후에 단종이 있었다는 죄목 때문이었다. 상왕의 지위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 더 이상 그는 왕이 아니었다.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나고 아내와도 생이별을 하게 된 단종. 그리고 그는 청령포에서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왕을 잊지 않은 이가 있었다. 내 아들을 홀로 두지 말라던 문종의 말을 기억한 금성대군은 단종의 복위시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계획마저 들키고 사약을 받은 금성대군.

그는 사약을 받기 전 왕을 향해 절을 올리라는 명령에 단종이 있는 북쪽을 향해 절을 올리고 사약을 받으며 죽는 순간까지 형의 부탁을 지켜냈다.

세조실록에는 이후 노산군이 이를 듣고 또한 스스로 목매어서 졸하니 예로써 장사 지냈다라고 쓰여있다. 그러나 강원도에 남은 민담의 대부분은 100% 보낸 관리에 의해서 죽었다는 기록뿐이었다.

그리고 후대에 기록된 연려실기술에서 이야기하는 노산군의 죽음은 세조가 내린 사약을 들고 찾아온 의금부도사 왕방연을 이야기했다.

또한 "통인 하나가 항상 노산을 모시고 있었는데 스스로 할 것을 자청하고 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앉은 좌석 뒤의 창문으로 그 끈을 잡아당겼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단종이 스스로 죽었다고 기록된 것은 세조실록뿐 나머지에는 모두 타살로 기록되어 있고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일치하는 내용은 세조가 사약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승자의 기록인 역사. 이에 승자의 기록과 야사의 기록을 찾아 정말 진실에 가까운 것은 무엇인지 판단하는 것은 역사학자의 몫이었다.

한때 조선의 왕이었던 소년의 시신은 후에 동강에 버려졌다. 그리고 영월에서 그를 돌보았던 엄흥도는 다음 날 이른 새벽 세 아들과 집 밖을 나와 단종의 옥체를 수습하고 장사를 지낸 후 세 아들과 뿔뿔이 흩어졌다.

의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달게 받겠다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왕을 지켰던 것.

왕을 지킨 것은 엄흥도뿐만이 아니었다. 엄흥도가 떠난 후에도 영월 백성들은 노산의 묘를 정성스럽게 돌보았다.

그리고 단종은 조선 19대 임금 숙종에 의해 왕으로 복권되고 단종이라는 묘호가 내려졌다. 예를 지키고 의를 잡음을 단이라 하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 이는 단종이 세상을 떠난 지 241년이 지난 일이었다.

단종이 복권되며 역사는 다시 쓰이고 부인 송 씨도 다시 정순왕후로 추숭 되고 사육신은 충절의 상징으로 자리했다. 그리고 엄흥도는 공조판서 벼슬을 받고 충의공이라는 시호를 하사 받았다.

단종 사후 569년, 그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외로운 왕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많은 이들이 그의 흔적을 찾고 그를 기억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에 다시는 그가 더 이상 외롭지 않기를 바랐다.

또한 누군가의 목적을 위해 약자가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역사는 더 이상 반복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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