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보이스피싱, 얼굴 없는 살인자를 추적했다.
1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얼굴 없는 살인자'라는 부제로 20대 청년의 생명을 앗아간 잔혹한 사건의 전말을 추적했다.
2020년 1월 22일, 전북 순천의 한 아파트의 옥상에서 20대 청년이 추락해 사망했다.
이틀 전 집을 나서 집으로 돌아온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28세의 김후빈 씨. 그는 20일 오후 1시경 집을 나서 정읍으로 간 뒤 3시간 머문 후 서울로 갔다가 22일 집으로 돌아온 후 사망했다.
죽음의 기미가 전혀 없었던 후빈 씨. 그런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가족들을 향한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그의 휴대전화에는 사망 전 11시간의 통화 기록이 남아 있어 의아함을 자아냈다.
1월 20일 오전 중앙지검 이도현 수사관이라는 이의 전화. 그는 후빈 씨에게 금융사기 사건에서 후 빈의 통장이 발견되었다며 김민수 검사와의 전화를 연결했다.
이어 김민수 검사는 후빈 씨에게 피해자의자 피의자 일 수 있다며 사건 협조를 요구했다. 후빈 씨의 모든 정보를 알고 그를 압박한 이들은 사실 보이스피싱범.
전문가는 "진정한 가스라이팅이다. 정보를 가지고 권력 관계자라고 사칭하면 가스라이팅이 쉽다"라고 했다.
보이스피싱범은 후빈 씨를 가스라이팅한 후 완전하게 고립시켰다. 그리고 계속 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를 압박했다. 당시 공무원 임용 시험을 준비 중이던 그에게 이는 너무나 두려운 협박이었다.
일거수일투족이 추적되고 있다며 후 빈의 정신과 행동 모든 걸 통제한 보이스피싱범. 결국 그들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후빈 씨는 협조 수사를 하겠다며 집을 나섰다.
이후 보이스피싱범은 위조된 홈페이지와 사건 공문, 공무원 신분증까지 보여주며 그를 속였고 현금을 인출한 후 금감원에 이것이 범죄 수익금이 아니라고 직접 소명하라며 그를 서울로 이동하게 했다.
무려 7시간 동안 계속된 통화. 또한 이들은 20일 당일 후빈 씨가 사용한 돈의 영수증을 모두 촬영하게 했다. 이후 해당 내역을 정산해 줄 것이라며 국가 기관에서 인정하는 정당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는 인식을 주입시켰다.
이에 이들이 자신의 무고를 밝혀줄 단 하나의 동아줄이라 더욱 굳게 믿게 된 후빈 씨.
이후 보이스피싱범은 금감원 근처 주민센터 택배보관함에 소지품과 현금을 두고 가라고 지시했다. 그 후 근처 커피숍에서 전화기를 끄고 대기하며 금감원 직원을 기다리라는 지시. 15분 후 다시 전화기를 켜고 연락을 기다리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 사이 수거책은 후빈 씨가 택배보관함에 보관한 현금을 수거했다. 그리고 금감원 직원은커녕 다시 전화를 걸겠다던 김민수의 연락도 없었다.
보이스피싱범들은 더 이상 후빈 씨가 쓸모없다고 생각해서 버린 것. 하지만 후빈 씨에게는 아직 사건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음 날에도 수차례 통화를 시도하며 김민수의 연락을 기다렸던 후빈 씨. 그는 결국 이틀 후 집으로 돌아와 사망했다.
휴대전화 메모장 속에 발견된 유서에는 그가 끝까지 자신이 금융사기에 연루된 것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후빈 씨는 마지막까지도 자신이 보이스피싱을 당한 줄 몰랐던 것. 경황이 없어 가방과 현금도 찾아오지 않고 집으로 온 그는 금융사기로 인한 억울한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성한 유서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공무원을 준비하던 그에게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을 잃게 만들었던 것. 이에 전문가는 "일말의 측은지심도 없는 집단이 벌인 일. 이것은 자살이 아닌 살인이다"라고 말했다.
이후 안타까운 후 빈의 사정을 알게 된 유가족은 국민 청원을 올리고 이 이야기는 세상에 알려졌다.
보이스피싱범들은 후빈 씨의 사망 이후에도 어머니에게 보이스피싱 문자를 보내는 등 상상할 수 없는 범죄를 이어갔다. 이에 반드시 보이스피싱범들을 처벌받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유가족들.
그 무렵 2년에 걸쳐 보이스피싱범을 검거 중이었던 부산 경찰청은 검거한 조직원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들의 조직에 우수한 조직원이 한 사람을 상대로 범행을 했는데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 국민 청원이 올라오고 언론에도 보도되었다는 이야기. 바로 후빈 씨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에 형사들은 후빈 씨 어머니에게 반드시 일당을 체포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조직원에게서 압수한 외장하드에서 발견된 회식 사진에서 김민수와 이도현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 형사들.
이들은 가짜 김민수가 중국에 출입국한 적이 있다는 첩보로 해당 기간 중국에 출입국 기록이 있는 이들의 얼굴을 일일이 대조해 김민수를 찾았다. 무려 14,000명의 기록에서 김민수를 찾아낸 형사들.
형사들은 현재 그가 국내 거주 중인 것을 확인하고 우여곡절 끝에 은신처도 알아냈다. 오랜 기다림과 노력 끝에 체포한 김민수와 이도현, 그리고 또 다른 조직원들은 하나같이 뻔뻔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벌이가 어렵지 않았음에도 쉽게 돈을 벌기 위해 보이스피싱을 했던 것으로 드러나 분노를 자아냈다.
자기가 속였던 피해자들이 누구였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범죄를 저지른 일당들. 이들은 검사와 수사관에게 깍듯한 모습을 보이는 약강강약의 모습을 보였다.
재판이 시작되고 후빈 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을 가슴에 안고 재판정에 서서 "이 사건으로 우리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부디 나중에 아들의 추모 공원을 찾아서 꼭 사과하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당들은 어머니와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의 가족 이야기를 하며 판사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1심의 6년형에 항소한 김민수와 이도현. 결국 이들은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해 최종 5년 6개월 형으로 감형되었다.
사기죄는 재산적인 피해 규모가 선고형을 정하는 가장 큰 기준으로 사기당한 피해자가 사망한 것까지 처벌하는 별도의 죄명은 없었던 것. 또한 피해자들과의 합의 여부가 크게 작용해 감형까지 받았다. 합의금은 보이스피싱으로 얻어낸 수익금일 수도 있다는 것이 씁쓸함을 남겼다.
이날 방송에는 실존하는 김민수 검사가 등장해 가짜를 구별하는 법을 밝혔다.
그는 "네가 정말로 피해자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러면 내가 널 피해자로 인정해 줄게 이런 경우는 절대 없다. 그리고 사건 정보는 기밀 사항으로 사건 관계인이나 피의자 피해자에게 사건에 관련된 정보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한 말을 조금 더듬었다든지 말을 똑바로 못 했다고 해서 수사에 협조하라고 압박하는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수사기관에서 연락을 하는 경우는 단 세 가지로 출석 일정 조율, 간단한 진술 청취, 자료 제출 요청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락하는 일이 없다고도 덧붙였다.
또한 "이렇게 검사에게 연락이 왔는데 진짜 검사가 맞냐"라는 문자를 보내면 진위 여부를 알려주는 보이스피싱 찐 센터(010-3570-8242)를 운영 중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사건 당시 보이스피싱을 당한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 힘들었던 후빈 씨의 어머니. 그는 "그건 안 당해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절대 자책하지 마라"라며 후빈 씨 같은 다른 피해자들을 걱정했다.
2025년에 일어난 보이스피싱 사건 건수는 23,360건, 피해액은 1조 2,578억. 이는 절대 나와 무관한 일라고 생각할 수 없는 숫자들.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이 유일한 예방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