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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찐리뷰

[꼬꼬무 찐리뷰] '동일본 대지진' 15주기…1만 6천명 사망한 재앙, 살아남은 한국인들 눈물의 생존기

작성 2026.03.13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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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2일 방송된 '2011 사라진 도시-동일본 대지진'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고우림, 배우 최진혁, 그룹 빌리 멤버 츠키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2011년 3월 11일 그날

때는 2011년 3월 11일. 서울 노원구 불암산이야. 한 무리의 남성들이 촌각을 다투며 움직이고 있었어. 이들은 구조대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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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119구조대 소속 백근흠 팀장은, 팀원들과 함께 산악 인명 구조 훈련 중이었어. 날이 따뜻해지면서 등산객이 늘어나는 봄은, 산악사고가 가장 많이 벌어지는 시기거든. 그런데, 훈련이 한창이던 그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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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인명구조 훈련을 하고 있는데, 4시 조금 넘어서 사무실에 전화가 온 겁니다. '여기 지금 난리다, 중국 쓰촨성이나 아이티 같이 출동할지 모르니까 인원과 장비를 한 번 점검해 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 그 전화받고 즉시 제가 귀대했던 생각이 납니다."

- 백근흠, 당시 중앙119구조 팀장

백 팀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같은 국내 재난현장은 물론,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도 현지에 파견됐던 30년의 경력의 베테랑이야. 그런 그에게, 그것도 훈련 중에 연락이 왔다는 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의미겠지? 백 팀장은, 부랴부랴 구조대로 복귀해서 TV를 켰어. 그리고는 턱 하고 말문이 막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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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일본 동북부 지방에서 초대형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강진 직후 일본 연안에는 최대 10미터 높이의 대형 지진 해일이 강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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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떠내려오고 있습니다. 트럭 위에 있던 사람이 쓸려 내려갑니다."

"아, 지금 제방이 터져 무너져 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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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5년 전, 2011년 3월 11일에 벌어진 동일본 대지진이야. 일본 관측 사상 최대, 최악의 이 흔들림은, 5분 남짓한 새, 일본 열도를 동쪽으로 약 5cm 이동시키고, 지구 자전축까지 움직였어. 건물이 파괴된 건 물론이고, 일본 해안선 지도가 달라졌어. 무수한 사람들이 숨지고, 실종됐지.

그리고 그중엔, 한국인들도 있었어. 국제결혼을 한 교민, 유학생, 직장인을 포함해 이 무렵 동일본에 있었던 한국인들은, 만 2천여 명이었거든. 일본인들을, 아니 전 세계인을 공포에 떨게 만든 충격적인 대재앙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시간을 조금 되돌려볼게.

▲ 대재앙의 서막

지진 발생 이틀 전인, 2011년 3월 9일 오전 11시 45분. 서른다섯 살의 한국인 김일광 씨는 일본의 미야기현 센다이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어. 근데, 기분이 이상해. 전봇대가 휘청하고, 차가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해. '이게 뭐지?' 싶었던 그때, 휴대폰이 울려.

"여보 괜찮아요? 지진이 왔다는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아내 마유코 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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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어학연수를 왔다가 취업까지 하게 된 일광 씨는, 직장에서 만난 마유코 씨와 사랑에 빠졌어. 그리고 2004년, 두 사람은 연인에서 부부가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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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년 뒤엔, 첫째 딸 미래가, 4년 뒤엔 이란성쌍둥이가 선물처럼 찾아왔어. 그리고 2010년 8월, 일광 씨는 마침내 내 집 마련에 성공했어. 동네는 미야기노구의 가모 지구. 바로, 여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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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기현 최대 갯벌인 이곳은, 물고기들의 산란장이자 철새들의 휴식처인 해안마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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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는 강이고. 조금만 더 가면 바다하고 만나서, 연어 같은 생선도 있고. 지상낙원처럼 굉장히 살기 좋은 동네였죠."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한편, 일광 씨의 동네에서 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오시카 반도엔, 또 다른 한국인이 살고 있어. 11년 전 국제결혼을 한 홍경임 씨야. 경임 씨의 가족 사진을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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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 남편 유우키 씨고, 왼쪽이 여덟 살 리나, 오른쪽이 여섯 살 리사, 가운데는 네 살 유지로. 하지만 이 사진엔 없는 넷째가 있어. 경임 씨는 임신 33주였거든. 경임 씨네 대가족이 사는 오시카 반도도, 일광 씨네 동네 못지않게 아름다웠대.

그런데 일광 씨와 경임 씨가 사는 미야기현엔 딱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어. 바로 지진. 지진이 잦아도 너무 잦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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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은 지각판이 서로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땅의 움직임을 말해. 일본은 4개의 지각판이 맞물리는 곳에 있어. 특히, 미야기현 앞바다는, 북미판과 태평양판의 경계야. 규모 4.0의 지진이 발생하면 선반에서 물건이 떨어지고, 창문이 흔들리는 정도야. 지난 10년간 이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4.0 이상의 지진은 무려 3,008건. 연평균 약 300건이야. 다시 말해 이곳 주민들은 거의 매일, 땅의 흔들림을 느끼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냐.

일광 씨의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던 3월 9일에도, 미야기현 앞바다에선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했어. 규모 7.3 지진은 어느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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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5시 46분. 강력한 지진이 일본 서부 간사이 지방인 오사카와 고베 일대를 뒤흔들고 엄청난 피해를 냈습니다."

"고베시 NHK방송사에서 야근을 하던 기자들은 잠자던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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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을 가로지르는 고가 도로가 옆으로 누워버린 현장입니다."

"오사카와 고베를 잇는 한신고속도로의 고가도 허리가 끊어졌습니다. 질주하던 승용차들은 끊어진 고가 아래로 떨어져 타고 있던 사람들이 숨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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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된 사람이 500명을 넘어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규모가 워낙 커 구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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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20초 만에 6천여 명의 사망자와 4만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던 '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 이때의 지진 규모가 바로, 7.3이었어.

그럼, 2011년 3월 9일 미야기현 앞바다에서 지진이 났을 때 일광 씨와 경임 씨는 대피를 했을까? 안 했어. 심지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대. 이 지역은 지진이 너무 잦고, 심지어 이번엔 진앙지가 해역이었으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몰랐던 거야. 이게, 끔찍한 대재앙의 서막이란 걸.

▲ 모든 걸 빼앗아 간 재앙의 날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 46분. 저녁 근무였던 일광 씨는 집에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어.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있었고, 아내는 걸어서 5분 거리 커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선반에 올려둔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지더니 냉장고까지 쾅하고 쓰러져. 얼마 뒤엔 TV까지 팍 하고 떨어져. 깜짝 놀라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려고 보니, 먹통이야. 인터넷도 안 돼. 창 밖을 내다보니 건물이며 전신주며, 모든 게 다 흔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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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도쿄 시부야의 스튜디오가 매우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조금 전 오후 2시 46분경, 매우 강력한 흔들림을 느꼈습니다. 미야기 TV 스튜디오, 다시 흔들림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진입니다. 여진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지진으로 책꽂이의 책들이 다 쏟아지고, 도로는 갈라졌어. 강력한 지진이야. 일광 씨는 지진이 멈추길 기다렸다가 아내를 찾으러 밖으로 뛰어나왔어. 아이들이 있는 어린이집은 다행히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서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거든. 그런데 나와보니, 상황이 더 심각해. 아까 규모 7.3의 지진이 어느 정도인지 얘기했지? 그런데 이날 지진의 규모는 무려 9.0이야. 숫자로만 보면 별 차이가 안 느껴지지만, 지진의 방출 에너지는 규모 1.0이 커질 때마다 32배씩 증가해. 그러니까 이건 32X32, 한신 아와지 대지진의 1000배 이상 강력한 초대형 재난이야.

진앙지에서 400km, 서울에서 부산 거리에 있는 요코하마 야구장에서도 흔들림이 감지됐으니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겠지? 문제는 이 날의 비극이,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란 거야.

▲ 공포의 쓰나미

일광 씨는 전력질주를 하고 있어. 동네에 사이렌과 함께 울려 퍼지는 소리 때문이야.

"연안에 대형 쓰나미 경보가 내려졌습니다! 예상되는 쓰나미의 높이는 6m입니다!"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는 거야. 무려 6미터. 아파트 3층 높이야. 아내의 직장 앞에서 일광 씨는 목이 터져라 아내의 이름을 외쳤어. 그런데 없어. 창문엔 사람 그림자도 안 보여. 30분 넘게 발만 동동 구르며 건물 주변을 맴도는데, 어? 저편에서 아내와 동료들이 걸어와. 알고 보니 건물 옥상에서 대피를 하고 있다가 해산을 하는 거래.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쉰 일광 씨는 내심 '오늘 이러다 말겠지' 생각했대. 그렇게 아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기분이 이상해.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난생처음 듣는 기이한 소리가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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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어요. '미래 데리러 가자. 유치원에 있는 애들 데리러 가자' 라고 하는데, 무슨 기분 나쁜 소리가 막 들리더라고요. 쏴아아아 소리. 그때 봤을 때는 뭐 늦었어요. 그 쓰나미라고 그러는 해일이, 산 높이 같은 게 바로 눈앞에 있는 거예요."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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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가 밀려오고 도망가는 사람들. 이건, 언뜻 봐도 6미터가 아냐. 빌딩 같은 파도가 밀려오는데 동네 사람들이 거기에 휩쓸려. 재난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에, 일광 씨와 아내는 대피소를 향해 뛰기 시작해. 하지만 쓰나미의 속도는 그보다 더 빨라. 결국, '이제 끝이다' 생각한 순간! 아내를 꽈악 끌어안고 눈을 감은 일광 씨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어.

같은 시각. 이제 막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온 경임 씨는, 창문 너머로 방파제를 바라보고 있었대. '제발...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하면서. 남편은 불과 10분 전, "여긴 지대가 높아서 괜찮을 거야. 금방 다녀올게. 걱정하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어. 남편 유우키 씨는, 마을 의용 소방대원이었거든. 일본의 재난 시스템은 소방관이 오기 전에, 주민들이 먼저 움직이도록 짜여 있어.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재해가 너무 자주 발생하니까 골든타임 동안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버텨야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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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이제 수문 잠그러 간다고, 그리고 마을 사람들 피난시켜야 되니까. 우리 집은 높은 데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바다와 같은 높이에 있으니까 피난시키고 온다고."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그렇게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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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까지 물이 굉장히 높았어요. 고오오오오 하는 소리. 시커먼 물이 고오오오오 하면서 와서 그다음에 싹 부숴서 가는데, 그 큰 배를 그 둑을 그냥 가볍게 넘겨 가지고 그 큰 배를 길 건너 쪽에 도로에 올려놓을 정도로."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지진 발생 1시간 뒤인, 오후 3시 45분 무렵. 경임 씨네 집 창 밖으로 자동차며, 수백톤의 배까지 떠내려 가. 이런 상황에 챙겨야 할 아이는 셋에, 뱃속엔 아기까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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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배가 우리 집을 치면 우리 그냥 떠내려가겠구나 싶으니까. 이제 애들을 침대에 묶어놓아야 되나, 우리 죽어도 같이 다 시체가 따로따로 흩어지지 않고 같이 죽어야 되는데. 이제 어떻게 묶어놓아야 되나…"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모든 것을 삼킬 듯한 검은 물. 이제 경임 씨의 집 안, 2층 계단에도 차오르고 있어.

▲ 혼돈 속의 사람들

그 사이, 일광 씨는 어떻게 됐을까. 쓰나미에 휩쓸렸던 일광 씨가 정신을 차린 건, 물속에서였어. 눈을 감아도 깜깜, 떠도 암흑인 상황에서, 발은 떠밀려온 뻘과 쓰레기 안에 박혀서 꿈쩍도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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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까 뭐 물속이고 금붕어처럼 물속인데 새카매요. 진짜 새카매요. 바로 올라갈 수도 없고요. 밑에 뭐 여기 옷에 끼고 뭐..."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겨우겨우 장화 안에서 간신히 발을 빼고, 물에 젖은 패딩 점퍼도 벗은 다음에, 수면 위로 올라가려고 버둥거리는데, 손 끝에 그물 같은 게 잡혀. 바로 농구 골대였어. 농구 골대가 어느 정도 높이인지 알지? 약 3m. 무지하게 높잖아. 이걸 한 번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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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 씨가 눈을 떴던 실내 체육관 내부 사진이야. 이 높이에 있는 농구대가 손에 잡혔으니, 이 안에 물이 얼마나 많이 차 있었단 건지 알겠지? 일광 씨는 간신히 난간에 매달려 아직 물에 잠기지 않은 위층으로 넘어갈 수 있었대. 드디어 살았구나,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건 뭐 슬픔을 넘어, 차라리 혼돈이야.

"거기 농구 골대에서 물 빠져서 걸어 나가는데, 둥둥 떠 있는 할아버지 시신도 엎드려서 있었고... 전쟁 난 줄 알았어요. 그리고 거기 체육관 옆에 우리 집인데, 봐도 집이 없더라고. 그러니까 내가 동서남북 헷갈리는 줄 알았어요. 이상한데? 다시 한번 봐도 (우리 집이) 없어요."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근데 무엇보다 절망적인 게 있었어. 아내 마유코 씨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목이 다 쉬도록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하늘에선 야속하게 눈발까지 흩날려. 맨발은 꽁꽁 얼어서 감각도 없고, 몸 곳곳은 다 베이고 찢어져서 피가 철철 나. 결국 주민들의 도움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일광 씨는, 이후 영사관에서 제공한 임시 대피소에 머무르게 됐어. 하지만 일광 씬 지금, 미칠 지경이야. 아내는 생사도 모르고, 마을은 송두리째 사라졌어. 그저 첫째 딸 미래와 쌍둥이, 세 아이들이라도 안전하게 대피했길 기도할 뿐이야.

과연 아이들은 무사했을까? '꼬꼬무' 제작진이 이번에 일본에 가서 취재한 이야기를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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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구지 미래입니다. 지금 대학교 3학년이고 아르바이트를 세 개 하고 있습니다"

(2011년 3월 11일의 기억을 묻자)

"지진이 나서 다 같이 중학교로 대피했어요."

-구지 미래/ 당시 6세, 현재 2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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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몇 살이셨는지 묻자)

"1살이었어요."

-구지 희로나/16세

"1살. (정확히) 8개월이었어요."

-구지 켄세이/16세

미래와 동생들은, 무사했어. 정말 다행이지? 알고 보니, 어린이집 가까이에 살고 있었던 처가 식구들이 대피소에 있는 아이들을 찾아 보호하고 있었던 거야. 영사관에 찾아온 처남에게 그 소식을 들은 일광 씨는, 그제야 기적을 꿈꿔. 이제 아내를 찾아야지.

일광 씨는 처남과 함께 다시 마을로 향해. 지진에 끊어진 다리를 피하고 물에 잠긴 길을 돌아서 간신히 동네에 도착했는데, 또 다른 문제가 벌어져. 실종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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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간절한 사연이 벽이며, 게시판에 빼곡하고, 실종자 사진을 꼭 쥔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마을을 가득 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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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곳이 없으니까 제가 어디에 있을지 모를 것 같아요. 살아만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광 씬 아내를 만났을까. 절망 속에서도 기적을 꿈꾸는 일광 씨의 이야기는 잠시 뒤에 다시 이어갈게.

▲ 끝나지 않은 재앙

그 무렵 경임 씨의 동네에도 마침내 쓰나미가 멈췄어. 우는 아이들을 달래 보지만 누구보다 울고 싶은 심정인 건, 경임 씨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멀리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깨진 1층 창문 너머로 누군가 들어와. 남편이길 바라며 후다닥 뛰어가 보는데, 낯선 육상 자위대원이 서 있어. 경임 씨가 임신 33주잖아. 임부와 아이들의 대피를 도우러 자위대원이 온 거야. 그렇게 자위대 헬기를 타고 마을을 내려다보던 경임 씨는, 세 아이 앞에서 펑펑 울고 말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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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몰랐거든요. 우리 마을만 그런 줄 알았지. 다른 데가 그런 줄은 모르고. 근데 신랑도 다른 데 피난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안 오고. 다 나와 같이 이렇게 됐구나 싶으니까. 너무 슬프더라고요. 음.. 그래서 그냥 막 한없이 눈물이 나더라고요."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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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와 통신은 진작 끊겼어. 뉴스? 당연히 못 보지. 그래서 경임 씨는, 이런 광경을 상상조차 못 했대. 남편이 서 있었을 방파제는 잠겼고, 공항은 물바다에, 열차는 탈선을 했어. 더 슬픈 건 3월 11일, 이 잔인한 하루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단 거야.

그날, 오후 5시를 넘겼을 무렵. 쉰여덟 살의 나오코 씨는 주민 수백 명과 함께 미야기현 게센누마의 한 대피소 옥상에 고립되어 있었어. 이미 쓰나미가 휩쓸고 간 대피소 건물엔 2층까지 물이 가득 차 있었거든. 오도가도 못한 채 추위에 덜덜 떨며, 먼바다를 바라보는데. 이상해. 바다에서 연기가 나. "불이다! 바다에 불이 붙었다!" 이번에 불이야.

전화가 안 되는 상황에서, 나오코 씨는 가족에게 다급히 문자메시지를 보냈어. 통신사 자체 서버에서 관리하는 문자메시지는, 늦더라도 결국엔 전송이 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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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오후 5시 45분>

"대피소 옥상. 주변은 바다. 아이들을 돌보고 있음. 부두 쪽은 화재. 춥다. 괜찮아"

다행히 나오코 씨는 침착해 보여. 하지만 불과 14분 만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

<3월 11일 오후 5시 59분>

"불바다. 죽을지도 몰라. 버텨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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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오후 6시>

"대피소 3층. 주변은 바다. 무슨 이유에선지 어두워졌고, 불이 보여. 무서워"

파괴적인 지진, 초대형 쓰나미, 어마어마한 화재, 이 모든 게 불과 3시간 만에 연달아 벌어진 거야. 그런데 미야기현 게센누마에서 유독 화재가 커진 이유가 뭘까. 일본 수산 가공의 중심지인 이곳은, 선박이며 연료 저장 시설이 항만에 집중돼 있었어. 강진으로 파손된 연료 탱크에서 유출된 기름만 해도 200리터짜리 드럼통, 6만 4천여 개 분량. 그러니까, 이제 어떻게 되겠어? 여긴, 불지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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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원지에서 95km 떨어진 일본 미야기현의 게센누마시 모습입니다. 7만 4천여 명이 사는 도시 전체가 불바다로 변했습니다. 피해지역이 광범위해 현지 당국은 화재 진화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유류 화재야. 물로는 진화가 안 돼. 그렇다고 이 불타는 도시에, 소방대원이 접근할 수도 없어. 구조대가 온다 해도 고립된 채 도움을 기다리는 시민들이 이 도시에만 7만 명이 넘는 상황이야. 그렇게 나오코 씨 인생에서 가장 두렵고 긴 밤이 지나가고 있었어.

▲ 생사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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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이 밝았어. 2011년 3월 12일 토요일 낮 12시. 여긴 인천국제공항이야. 오직 구조를 위해 출국 수속을 밟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이미 너도 알고 있는 사람이야. 맞아. 중앙119구조대 백근흠 팀장. 구조대원들이 향한 곳은, 미야기현 가모지구였어. 그런데 현장을 본 백 팀장은, 불안감이 밀려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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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어요. 중국 쓰촨성 같은 경우에는 건물 잔재 내에서 생존자를 구할 수가 있어요. 그 틈에 이렇게 있으니까. 아이티 (지진 때)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일본 그 동북부 대지진만큼은 뭐 그런 게 없었어요. 현장에 갔을 때, 물이 서서 들어온다고 하죠. 쓰나미가 들어와서 다 끌고 나가버리니까."

-백근흠 / 당시 중앙119구조 팀장

동일본의 상황은 지금까지의 해외 구조 현장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어.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어. 눈보라에 떨고, 뻘밭에 발이 빠지면서도 혹시 모를 기적을 찾아 수색을 계속해. 그렇게 한참이 지났는데…

"여기요 여기! 다들 빨리 좀 와보세요!"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사람 손이 보여. 나무판자를 하나하나 치우고, 차가운 물속에 빠져 있던 몸을 조심스레 꺼내.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숨진 희생자는, 30대 여성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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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례를 하고, 잠깐 묵념해서 고인에 대한 예의를, 마지막 가는 길에 대해 추모를 하자… 수습을 했는데 알고 보니까 그 (희생자가) 한국 사람의 아내였다…"

-백근흠 / 당시 중앙119구조 팀장

아니기를 바랐지만, 숨진 이는 일광 씨의 아내 마유코 씨야. 소식은 곧, 마을에서 아내를 찾던 일광 씨에게도 전해졌어. 일광 씨는 '에이 설마. 아니겠지' 반신반의하면서도 시신이 안치된 센다이 종합체육관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대. 그리고 건물 입구에서 숨진 이들의 사진 수백 장을 보는데, 유독 예쁜 사람이 있더래. 아내 마유코 씨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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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아내가 맞는데 예쁘게 화장을 했더라고요. 옷 깨끗하게 입히고 화장까지 깨끗하게 해서... 아내한테 미안하죠, 못 지켜줘서. 사랑하는 상태에서 그렇게 됐으니까 항상 미안해요."

- 김일광 / 미야기현 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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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기억하고 있어요. 다정하고, 음식을 자주 만들어 주셨어요. 엄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슬펐어요."

- 구지 미래 / 일광 씨 큰 딸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했던 엄마야. 마유코 씨가 우리 돈으로 시급 8천 원을 받는 커튼 공장에 나간 건, 쌍둥이들 기저귀 값이라도 벌기 위해서였어. 마유코 씨는 남편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음식을 연습했던 사랑스러운 아내이기도 했어. 그야말로 가족들에게 햇살 같은 존재였던 마유코 씨가, 세상을 떠난 거야.

그럼 불바다가 된 도시 건물에 고립돼 있었던 나오코 씨는,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 밤사이 불길은 잡혔어. 아니, 더는 태울 연료가 없어서, 불길은 스스로 잦아 들었어. 하지만 아직도 대피소 건물엔 뻘이 가득 차 있어서 1층으론 내려갈 수 없어. 음식은커녕, 물도 없어. 수백 명이 좁은 공간에 있다 보니 잠을 잘 수도 없고, 앉는 것조차 돌아가며 앉아야 돼. 모두 절망에 빠져 있던 그때였어.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

"여기예요! 여기 사람 있어요!"

나오코 씨는 물론, 구조를 기다리는 모두가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러. 이윽고 헬기가 대피소 상공에 멈췄어. 그러더니 레펠을 타고 내려온 소방청 대원이, 나오코 씨를 찾아.

"여기 나오코 씨 계시나요? 아드님의 요청으로 왔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얘길까. 영문도 모른 채, 나오코 씨는 주민들 대피부터 도왔어. 그런 그가 건물에서 탈출하 건 다음날이 되어서야. 그리고 사정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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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진 발생 한 달쯤 지나서였습니다. 나중에 (영국에 있던) 아들이 일본에 왔을 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지진 발생 당시 아들이) 30분 정도 공들여 글을 써서 (SNS에) 올렸더니 운 좋게 (구조로) 연결이 되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쓰미 나오코 / 당시 미야기현 거주

알고 보니 나오코 씨를 구한 건, 그녀의 아들이었어. 당시 영국에 근무하고 있었던 나오코 씨의 첫째 아들은 간절한 맘으로 자신의 SNS에 글을 하나 적었대. 바로 이거야.

"장애아동 시설의 원장인 어머니가 아이들 10여 명과 함께 미야기현 게센누마 대피소에 고립되어 있습니다. 아이들만이라도 구해주실 수 없을까요."
-아들의 SNS

나오코 씨는 장애 아동 시설의 원장이야. 지진이 왔을 때 나오코 씨가 운영하던 시설의 아이들은 다행히, 모두 하원을 한 상태였지만, 맞은편 보육원의 사정은 달랐대. 두 명의 보육 교사가 수십 명의 아이들을 대피시키고 있었거든. 나오코 씨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보육원으로 달려갔어. 그리곤 아이들을 안고 업고, 몇몇은 차에 태워 대피소로 향했어. 처음 나오코 씨가 가족들에게 보냈던 문자 기억나? '아이들을 돌보고 있음'이라던 문자. 대피소에서도 나오코 씨는, 보육원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던 거야.

그런 엄마를 생각하며 지구 반대편에 있던 아들이 써 내려간 SNS는, 순식간에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건 물론 일본 방송에까지 다뤄져. 덕분에 엄마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주민들 모두 무사히 건물을 빠져 나올 수 있었지. 정말 재난 속에서 피어난 인류애야. 하지만 사실 나오키 씨 아들에겐, 지극히 인간적인 바람도 있었대. 이건 아들이 나중에 자신의 블로그에 적은 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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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계속 복지 시설에서 근무했습니다. 아직 어렸던 자식을 뒤로하고서라도 시설의 아이들에게 곁잠을 재워주던 분. 분명 이번에도 많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평온함을 주었겠지요. 솔직히 말해 제 속마음은 이랬습니다. '수많은 아이의 어머니'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전부 내팽개치고 한 명의 어머니로서 무사히 웃으며 돌아와 줘... 왠지 좀 한심하죠?"

-아들의 블로그

아들의 마음, 이해 돼? 세상 어느 자식이, 엄마를 잃고 싶겠어. 영웅 같은 엄마를 둔 아들이 진심으로 바란 건 그냥 내 엄마가 평범히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던 거야.

그렇게 내 가족의 안전을 기원하고 있는 사람은 또 있어. 바로 경임 씨야. 마을 사람들의 대피를 돕고, 곧 돌아오겠다던 남편 유우키 씨는 소식이 없어.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아무리 기다려도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 그리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경임 씨의 집엔 이게 도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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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위해 헌신한 유우키 씨를 위한 감사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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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포옹이라도 해줬어야 하는 건데라는 생각도 많이 들고,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못하고 보낸 게 속도 상하고. (남편을) 왜 보냈나 싶기도 하고. 내가 일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나를 지켜야지 왜 남들 지키려고 가냐고 하지 못한 게. 가지 말라고 내가 아무것도 못 한다고 가지 말라고 부탁도 했어야 되는데 못한 것도 많이 속상하고…"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남편 하나만 바라보고 일본에 왔던 경임 씨는 그때까지 일본말도 서툴렀대. 그래서 집안의 대소사며, 아이들의 교육을 챙겼던 것도 남편이었어. 그날, 방파제의 수문을 닫으러 가지 않았다면 남편 유우키 씨도 분명 무사했을 거야. 하지만 그는, 의용 소방대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했어.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희생된 사람은 무려, 1만 6천여 명이었어. 사인은 대부분 익사. 물에 잠긴 면적만 해도 서울의 약 93% 정도야. 피해가 왜 이렇게 컸을까? 그날 미야기현 앞바다에선 해저 산사태가 동시에 벌어졌어. 무려 네 곳에서. 그러니 그 위의 해수면 곳곳은 요동칠 수밖에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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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곳의 지형도 한 몫했어. '리아스식 해안' 들어봤어? 해안선이 들쑥날쑥 톱처럼 생긴 곳이야. 강력한 파도가 해안의 좁은 곳에 밀려들면 높이가 높아질 수 밖에 없어. 이 날 밀려온 쓰나미의 최대 높이는, 약 40미터. 무려 아파트 15층 높이야. 그 높이에서 강력한 힘으로 떨어진 물은 그야말로 지상의 모든 걸 다 휩쓸고 지나갔어.

그런데 지금까지의 재난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끔찍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면 어때? 재앙은 끝나지 않았어. 일본 최악의 날에서, 지구 최악의 날이 된 그 순간의 이야기가 아직 남아있어.

▲ 지구 최악의 날

다시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3시 20분으로 돌아가 볼게. 스물일곱 살의 류타 씨는, 다급히 회사로 향하고 있었어. 비번이었지만, 강진의 규모를 봤을 때, 분명 일손이 더 필요할 것 같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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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의 강도에 따라 '긴급정지'라는 것이 경보로 있는데요. 긴급정지를 하면 꽤 혼잡하고 여러모로 할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도와주러 가야겠다 싶어서 회사로 향했습니다."

- 이도가와 류타

서둘러 도착한 회사 내부는, 이미 엉망이야. 집기는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고, 경보는 연신 울리고 있어. 동료들의 안부를 묻던 그때였어. 쓰나미가 건물을 강타해서 전기가 끊어진 거야. 이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는 아니었어. 비상발전기가 가동돼서 금세 전기가 돌아왔거든.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건, 8분 뒤야. 또 쓰나미가 건물을 덮친 거야. 모니터 표시등이 타다다다다닥 꺼지더니, "SBO다!" 외치는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

SBO는 Station Black Out(스테이션 블랙 아웃). 모든 전력이 상실됐다는 의미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류타 씨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져. 왜냐면 그의 직장인 이곳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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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를 축소해 만든 모형이야. 1971년 가동을 시작한 도호쿠 지방 최대의 원자력 발전소. 무려 1100만 가구가 하루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는 이곳엔, 총 여섯 동의 원자로가 설치돼 있었어. 해안 바로 옆에 있는 1,2,3,4호기, 조금 떨어져 있는 5,6호기야. 그런데 이 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가 끊긴다는 게 어떤 의미일 거 같아?

이곳의 원리는, 간단해. 핵분열을 하면, 대략 2000도 정도의 열이 발생하는데, 이걸 냉각하지 않으면 연료봉을 감싸고 있는 금속이 녹으면서, 물과 반응해 수소가 만들어져. 그렇게 되면 끔찍한 대폭발로도 이어질 수 있어. 그러니 전력 상실로 펌프가 멈추고 물 순환이 안 되는 지금. 류타 씨의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

지금 제일 필요한 건, 물 순환을 도울 전력, 아님 물이라도 있어야 돼. 직원들은 도쿄전력 본사에 지원을 요청했어. 하지만 비상용 발전차가 오지 않아. 도로 상황 봤지? 곳곳은 이미 침수되고 끊어졌어. 그나마 온전한 길 위엔 대피하는 사람들로 가득해. 결국 저녁 7시 30분 무렵, 원자로 안에 있던 물이 증발해. 냉각이 안되니 연료봉이 녹기 시작해. 그리고 3월 12일 토요일, 오후 3시 36분. 결국 1호기가 폭발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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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중앙제어실에 있었습니다. 지진인가 싶었는데 '이건 지진 아니야, 폭발이다'라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여기에 있다가는 확실히 죽겠구나, 그런 공포감이 있었습니다."

- 이도가와 류타/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 운전원

근데 이 얘기에서 이상한 거 없어? 폭발을 막기 위해서는 물로 원자로의 열을 식혀야 해. 그런데 여긴 바다 앞이잖아. 보이는 건 다 물이야. 왜 바닷물을 냉각수로 쓰지 않은 걸까? 그 이유가 충격적이야. 1호기가 폭발한 다음날인 3월 13일 오후 8시. 원전의 운영사인 도쿄전력 본사 관계자와 현장 소장이 화상회의를 해.

도쿄본사: "최대한 버티면서 담수 지원을 기다리는 건 어때요?"
소장: "안됩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됩니다."
도쿄본사: "하지만 담수를 쓰는 편이 부식이 안되잖아요?"

바닷물을 원자로에 집어넣는 순간, 거액을 들여 만든 원자로는 폐기해야 되거든. 그러니까 담수를 기다리자는 거야. 그렇게 머뭇거리는 사이, 다음날인 3월 14일. 3호기가 폭발해. 15일에는 2호기가 손상되고, 점검 중이었던 4호기 마저 폭발해. 전 지구적인 재앙이 시작된 거야.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 물질은 대기로, 토양으로, 바다로 퍼져갔어. 이제 원전 주변에 사람이 살아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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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비상 전력이 가동돼, 냉각수 순환이 멈추지 않았다면? 비극은 벌어지지도 않았겠지. 문제는 더 있었어. 원전 주변을 둘러싼 이 방파제의 높이는 5.7미터.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으로 밀려온 쓰나미 높이는 15미터가 넘어. 무엇보다 유감스러운 건, 지진 발생 3년 전인 2008년 도쿄전력 내부에서도, 대형 쓰나미가 올 가능성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한 적이 있다는 거야. 시뮬레이션 결론은 '쓰나미가 올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최소 8미터에서 최대 15.7미터가 예측됐어. 실제와 유사하지? 그렇다면 조치가 있었을까? 아니. 조치는 없었어. 시뮬레이션은 시뮬레이션일 뿐, 진짜로 발생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봤거든.

2012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조사위원회에서는 이런 결론을 내렸어.

'이 사고는 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현상에서 시작됐지만, 그 결과는 명백히 인간이 만들어낸 재난이다.'

그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도쿄전력 전 경영진 세 명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어. 그리고 지난 2025년 3월 5일.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선고공판이 열렸지.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본 사고의 결과가 매우 중대하고, 되돌릴 수 없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 통념을 반영했을 것으로 보이는 법령상의 규제와 그에 따른 국가의 지침, 심사 기준 등의 체계가, 절대적 안전성의 확보까지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상의 이유로, 피고인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판결문

모두, 무죄야. 원전을 설계할 당시의 기준으로 봤을 때, 위법이 아니고, 천재지변을 완벽하게 예측해 대비하는 건 불가능하니, 개인의 책임이 아니란 거야.

▲ 마을 촌장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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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도쿄전력의 선택과는 달랐던, 또 다른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일본 이와테현 해안에 자리한 소도시, 후다이 마을이야. 1947년, 이곳엔 새로운 촌장이 부임하게 돼. 그의 이름은 와무라 고토쿠. 바로 이 분이야.

고토쿠 촌장은 35억 6천만 엔, 당시 한국돈으로 약 120억 원을 들여서 마을 해안에 수문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해. 주민들 반응은 안 좋았어. 주민들의 반대와 분노가 하늘을 찔렀대. 예산낭비라는 거야. 하지만 그 후에도 주민들과 지자체를 끈질기게 설득한 고토쿠 촌장은 1984년 결국, 높이 15.5미터, 길이 205미터의 수문을 완공해. 그는 왜 이토록 고집스레 수문 건설을 강행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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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다이 마을은 1896년과 1933년에도 지진과 쓰나미로 수백 명이 숨졌던 곳이야. 그런데 1933년의 대형 쓰나미에서, 한 청년이 극적으로 살아남았어. 바로 고토쿠 촌장이었어.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대재난의 그날. 후다이 마을에도 거대한 쓰나미가 닥쳐. 이곳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꼬꼬무'가 후다이 마을을 직접 다녀와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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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에 돌들이 있는데 지금은 정돈돼 있지만 실은 이게 쓰나미가 가져온 거예요. 보시는 것처럼 이 방조제 높이는 해발이 15.5미터인데 8미터 추가해서 23.6미터라고 돼 있죠? 저기까지 쓰나미가 왔어요."

-다치우스 마사루/ 후다이 마을 총무과 소방 방재 계장

그럼, 동일본대지진 당시 후다이 마을의 사망자는 몇 명이었을까? 어선을 살피러 방파제 밖으로 나갔던 주민 한 명이 안타깝게도 실종됐지만, 나머지 주민들 중에 사망자는 0명. 수문 안쪽의 건물들도 전혀 피해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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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다이 마을 남쪽에 요다 마을이라는 곳이 있는데 궤멸 상태가 됐어요. 인근 마을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후다이 마을만은 정말 기적이었다고 많이들 말하죠."

-다치우스 마사루/ 후다이 마을 총무과 소방 방재 계장

1997년, 고토쿠 촌장은 수문의 쓰임새를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어. 그리고 대지진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촌장의 뜻을 알게 된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그를 기리는 비석을 세웠대. 바로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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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있었던 재해는 세 번 있어서는 안 된다>

안전에 있어 절대 타협하지 않았던, 고토쿠 촌장의 신념을 적은 거야. 천재지변의 가능성을 대비하지 않았던 도쿄전력의 판단과 비교하면 어때?

▲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동일본 대지진 한 달 뒤, 경임 씨는 여전히 영사관에서 제공한 임시 거처에 머물고 있었어. 그런데 아랫배가 뭉치듯이 아프더니 다리 사이에서 주르륵 흐르는 건 피야. 경임 씨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어.

다행히 아기는 좀 작긴 하지만 건강하대. 얼마 뒤 경임 씨는 병원에 입원을 했어. 출산일이 가까워졌거든. 그리고 다음날, 넷째 에리카가 태어났어.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잘 견뎌준 아기가 대견하면서도, 경임 씨는 마음 한구석이 아리기만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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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고 나면은 바로 남편이 오고, 먼저 태어난 아기들이 오고 그러는데. 이번은 없었기 때문에 병실에서 굉장히 많이 울었던 거 기억이 나요. 애 낳고 나서 이제 큰애들도 다 따로 있고 남편도 없고. 이제 아기랑 저만 있어서 많이 아기한테도 미안하고 그래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곁에 있었다면, 한달음에 달려와 새 생명을 안아줬을 남편이야. 커다란 나무 같았던 유우키 씨의 빈자리는 너무도 컸대. 자꾸만 아빠를 찾는 아이들에게, 뭐라 답해줘야 할지 몰랐던 그 해 크리스마스 무렵. 경임 씨에게 뜻밖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와.

"홍경임 씨, 남편을 찾았습니다."

집에서 15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해안에서, 남편 유우키 씨의 유해가 발견된 거야. 마침내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게 실감이 나 한없이 슬프면서도, 늦게라도 가족 곁으로 돌아온 남편이 경임 씨는 참 고마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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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한테는 항상 감사하고 고맙다고 제가 했었어요. 살아 있을 때도. 저랑 결혼해 줘서 감사하다고 저한테 예쁜 애들 낳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많이… (울컥) 지금도 아빠 닮은 애들 넷씩이나 있어서 제가... 항상 고맙고 지금도 사랑해…"

-홍경임, 미야기현 한인

바로, 15년 전 어제였어. 해마다 일본에서는 3월 11일 오후 2시 46분이 되면 묵념을 해. 동일본 대지진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서야. 하지만 그만큼이나 더 중요한 게 있어. 기억이야. 피해가 컸던 지역 곳곳을 지나다 보면 눈에 띄는 게 있어. 바로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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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의 목적은 뭘까? 쓰나미가 밀려왔을 당시 침수됐던 높이를 기억하고, 혹시 모를 다음 재난의 기준으로 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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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끔찍했던 그때의 참사를 잊어가고 있고 그 당시를 모르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살아남은 우리가 책임감을 느끼고 계속 전해 가야 하는 일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다치우치 마사루 / 후다이 마을 총무과 소방 장재 계장

경임 씨는 아직도 빗물에 물웅덩이가 흔들리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한대. 그럼에도 '꼬꼬무'와의 인터뷰에 응한 데는, 이유가 있어. 개인의 경험은 쓰라린 고통일 뿐이지만, 그 기억을 공유하는 건, 사람을 구하는 가치가 된다는 거야. 생존자들은 그게, 자신들이 살아남은 이유라고 믿는대.

얼마 전, 일광 씨가 다시 가모지구를 찾았어.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이웃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던 마을엔 이제, 추모비만이 남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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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이자 엄마인 마유코 씨. 그녀가 가족들에게 잊혀진 순간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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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몇 학년 됐다, 잘 크고 잘 있다, 아들 인기 많다, 여자 친구 많다… 그런 식으로. 입학식, 졸업식, 시합에서 우승했을 때, 쟤들 세 명 다 운동을 잘해가지고. 그때 (아내가) 옆에서 같이 응원했으면, 같이 보러 왔었으면, 졸업식에도 옆에 같이 사진 찍어줬으면 좋죠. 그런데 옆에 없다는 빈자리가 그때가 제일 많이 생각나죠."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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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생각났어요.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 '다른 애들은 엄마가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지 미래/ 마유코 씨의 첫째 딸

"저도 운동회 같은 걸 하면 엄마가 없어서 슬프고 외로웠어요."
-구지 희로나/마유코 씨의 막내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엄마의 빈자리. 2011년 3월, 쓰나미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아내를 찾아다녔던 일광 씨는, 딱 하나만을 상상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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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족 다섯이서 그냥 밥이나 한 끼... 그냥 행복한 가족이라 그럴까. 평범하게..."

-김일광, 미야기현 한인

가족들이 함께 식탁에 모여 밥을 먹는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하루야. 우린 종종 일상의 소중함을 놓치고 살곤 하지. 그날, 어디선가는 졸업식이 진행 중이었고, 누군가는 장을 보고 있었을 거고, 또 다른 이는, 퇴근을 앞두고 약속을 잡고 있었을지도 몰라. 2011년 3월 11일은, 그런 특별할 것 없는 순간의 안녕이 무너진 날이었어. 2만여 명의 사람들은 아직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있고, 2천여 명의 사람들은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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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해, 할머니댁에 갔다가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진 여섯 살, 나쓰메의 유해가 14년 만에 가족들에게 전해졌어. 나쓰메의 부모님은 무슨 얘길 했을까. 지난 시간 동안 너무도 하고 싶었다는 그 평범한 한마디를 끝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칠까 해.

"잘 왔어. 돌아와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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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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