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1인 미디어의 시초 백남준을 조명했다.
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는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K-컬처의 시초, 백남준'이라는 부제로 위대한 예술가 백남준이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를 조명했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이자 197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예술가 백남준은 진정한 한류 1세대였다.
1932년 종로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조선시대 대대로 내려오는 부잣집의 막내아들. 우리나라에서 7번째로 여권을 발급받은 그는 17세에 홍콩으로 유학, 그리고 이후 6.25 전쟁으로 일본으로 피난을 떠났다.
그리고 현대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24살에 독일로 떠났고 그곳에서 예술적 동지이자 스승인 작곡가 존 케이지와 만났다.
이후 그는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는 퍼포먼스로 예술적 독립을 선언했고, 이에 언론은 그를 두고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고 칭했다.
존 케이지로부터 독립한 백남준은 TV를 활용한 예술 작품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부 예술가들은 그의 작품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다.
독일을 떠나 뉴욕으로 간 백남준은 영상을 촬영해 편집까지 하는 비디오 아트를 시작했다. 영상 촬영은 방송국이나 영화감독의 전유물 같았던 시대에 그는 1인 미디어의 시초가 되었던 것.
백남준은 자신의 팬이었던 일본 미술학도 시게코와 연인이 되었다. 결혼만은 하지 않겠다던 백남준. 하지만 자중에 악성 종양이 생겨 불임이 된 시게코와의 결혼을 결정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의 불임 사실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백남준.
한국과 독일, 분단의 아픔을 두 번 겪은 백남준은 화합과 교류를 중시하는 예술 철학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한국전쟁 이후 약 35년 만인 1984년 한국으로 돌아간 백남준. 그는 귀국 전 세계 최초로 대규모 위성 생중계로 작품을 선보였고 이는 전 세계인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미디어와 기술 권력이 우리를 감시하게 될 것이다, 디스토피아로 세계가 바뀔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던 조지오웰의 1984. 그러나 백남준은 미디어의 긍정적 기능에 주목했고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작품을 통해 "조지 오웰 당신은 반만 맞았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이는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그즈음 영혼의 단짝 이정성을 만난 백남준은 수많은 TV로 구성된 초대형 작품인 '다다익선'을 만들어냈다. 높이 18.5미터, 지름 7.5미터로 사용된 TV만 1003대에 달하는 이 작품은 개천절인 10월 3일에 맞춰 TV 1003대를 쌓아 올려 의미를 더했다.
평생의 파트너가 된 두 사람. 이정성은 백남준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손이 되었다.
독서광으로 여러 분야에 박학다식했던 백남준. 그는 지식을 예술적 비전으로 발전시키며 사회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1974년, 스마트폰과 1인 미디어를 정확하게 예측한 그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최공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한국관이 없어 독일관에 전시한 아쉬움에 환하게 웃지 못했다.
그 후 김영삼 대통령과 만난 백남준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이 생겨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2년 뒤 아시아에서 두 번째 국가관인 한국관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후 수많은 한국 예술가들이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에서 자신의 예술관을 펼쳤다.
자신의 두 번째 목표인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를 준비하고 있던 백남준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고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여사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백남준. 얼마 후 그는 다행히 퇴원할 수 있었지만 좌반신 마비로 평생 휠체어를 타고 살아야 했다.
4년 만에 다시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가 이뤄지고 이는 아시아 작가로 최초였다. 21세기 특별 전시로 레이저 아트 야곱의 사다리를 선보인 백남준.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과 도전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2006년 하늘의 별이 된 백남준. 그를 추모하는 이들은 백남준의 넥타이 퍼포먼스를 펼치며 백남준다운 장례식장을 만들었다.
49재 추모식은 한국에서 백남준을 위한 헌정 퍼포먼스가 벌어졌고, 그의 유골은 미국과 독일, 한국에 나뉘어 안치되며 소통과 교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대신 기술을 이롭게 사용하는 유토피아를 꿈꾼 백남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인간다움은 잃지 말자는 그의 가르침은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지침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