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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찐리뷰

[꼬꼬무 찐리뷰] 조용필 노래에 반응 없던 북한 관객들…20년 만에 공개된 평양 공연의 진실

강선애 기자 작성 2025.08.29 12:34 수정 2025.08.2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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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8일 방송된 '특집: 더 레전드'의 1부 '그해 여름, 조용필 in 평양'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인순이, 헤이즈, 샤이니 민호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은밀한 초대

때는 2005년 8월 18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야. 들뜨고 설레는 표정으로 공항을 찾은 사람들 사이, 잔뜩 긴장한 얼굴의 한 남자가 있었어. 그는 항공사 카운트에 가서 이렇게 물어.

"여기, 평양 가는 비행기 어디서 탑니까?"

승무원은 황당 그 자체야. 대한민국 공항에서 북한으로 가는 비행기를 묻는다니? 그런데 더 어이없는 건, 이 남자의 태도가 너무 당당해. 그는 뭔가를 꺼내더니 직원에게 대뜸 내밀었어. 그걸 보고 승무원은 더 놀랐어. 바로 이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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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방문증명서야. 여권도 아닌, 방문증명서를 갖고 평양 가는 비행기를 타겠다는 이 남자. 어떻게 됐을까? 남자는 그날, 실제로 평양행 비행기를 탔어. 어떻게 된 일일까? 시간을 1년 전으로 돌려볼게.

2004년 7월, 중국 북경에서 연수중이던 SBS 오기현 PD에게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 전화를 건 쪽은, 민족화해협의회라는 북한 기관의 실무 책임자였어. 오PD는 전화를 받고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했어. 당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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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받고는 상당히 놀랐죠. '오 선생 안녕하쇼?' 딱 북한식 그 악센트 있지 않습니까. '나 뭐 김 누구누구 참사입니다' 딱 그러더라고요. 아 이 사람이 상당히, 높은 사람이다, 힘 있는 사람이다… 그때 이제 남한에 대북 사업하는 사람들이 접촉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바로 그거는 제가 알 수 있었습니다."
-오기현, 당시 SBS PD

오PD는 북한 관련 제작 경험이 풍부한 20년차 PD였어. 방송계에서는 북한에 가장 많이 다녀온 PD로도 알려져 있었지. 그런 오PD에게 전화를 건 북한의 김 참사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어.

"조용필 선생을 평양으로 불러주시라요."

북에서 불러달라고 한 그 사람의 이름 석자를 듣자마자, 오PD는 일을 성사시키기로 마음먹었어. 뮤지션들의 뮤지션, 바로 '가왕' 조용필을 북한에서 불러 달라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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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조용필 선생을 불러주시오' 그래요. 나중에 저희가 확인해 보니, 북한의 최고 지도자, 최고위층의 지시를 받은 것이었다, 이렇게 밝혀졌습니다. 저한테 처음 전화했던 사람이 '우리 공화국에서는 중학생 정도만 되면 조용필을 다 압니다', 그랬거든요."

-오기현, 당시 S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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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왕, 전설, 국민가수 조용필. 1969년에 데뷔해 올해 57년째 왕성하게 활동 중인 가수들의 가수. 전 국민이 다 아는 메가 히트곡만 수십 곡이고, 그 상당수를 직접 작곡했어. '단발머리' 같은 신나는 노래도 있고,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같은 애절한 노래도 있지. 80년대 방송사 연말 가요제에서 7년 연속 대상을 수상한 건 전무후무한 기록이야. 2013년에는 전 세대를 강타한 '바운스' 열풍도 있었지. 그해 조용필은 63세였어. 이런 레전드 가수를, 북한에서도 보고 싶었던 걸까?

▲ 미지의 북한

북한에서 이런 요청을 남한에 직접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는 것도 신기하지? 사실 70~8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반공 교육에 열심이었지. 그런데 80년대 후반, 세계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해. 길었던 냉전을 끝내고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어.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어. 남북 단일팀으로 국제 경기에 나가게 되고, 남북의 문화예술 인사도 교류하기 시작해. 그러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남북 교류에 더 속도가 붙었어. 2000년 6월 15일,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도 이뤄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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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남북의 소통이 활발했던 2000년대 초반, 남한의 가수들도 매년 북한에 가서 공연을 했어. 근데 그 공연에 조용필이 빠졌던 거지. 북한에서도 내심 조용필을 기다렸던 걸까. 2004년 7월, 갑자기 남한의 방송국 PD에게 조용필을 불러 달라고 연락을 해온 거야.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조용필이 처음 북한에 가서 단독 공연을 한다? 이건 분명, 방송사에 길이 남을 초특급 무대가 될 거야. 그 즉시 SBS제작본부장과 오기현 PD는 은밀하게 조용필을 만나러 갔어.

"'북한 사람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우리 조 선생을 초청하려고 그럽니다' 하고 본부장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조용필 씨가 굉장히 덤덤해요. '그런 이야기는 벌써, 초청을 서너 번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 별로 가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처음에 딱 그래요."
-오기현, 당시 SBS PD

알고 보니 이미 예전부터 여러 방송사와 단체를 통해 수차례 제안을 받았대. 그런데 워낙 영향력이 큰 국민가수다 보니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렇다고 포기할 방송국 사람들이 아니지. 조용필이 어떤 말에 마음을 움직일지 고민했어. 그리고 고민 끝에, 조용필에게 이렇게 말했어.

"북한에 조용필 씨 팬이 있다고 합니다. 가수라면, 팬이 있는 곳에 당연히 가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며칠 후 조용필이 들려준 대답은, "갑시다"였어. 가왕의 마음을 움직인 건, 팬이었어. 북한에도 본인의 팬이 있다는 그 말에, 조용필이 북한 공연을 결심한 거야. 대신 조건은 단 하나. '국내에서 했던 공연 그대로 평양에서 보여주고 싶다'는 거.

SBS는 당장 조용필 평양공연 TF부터 꾸렸어. 조용필과 함께 방송을 해본 경험이 있는 PD들이 1순위로 투입됐어. 그중에는 예능국 9년차, 성기훈 PD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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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님이 '야 너 이거 해야겠는데? 너 평양 좀 가야겠다' 하셔서… '고생길이 열렸다. 집에 가서 무슨 얘기를 하지?' 싶었죠. 그 얘기 처음 했을 때 아내가 '당신이 꼭 해야 해? 다른 사람도 많잖아. 그리고 왜 북한이야? 거기 가는 거 괜찮아?'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
-성기훈, SBS PD

아무리 남북교류가 활발하던 때라고 해도, 북한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 많았어.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됐겠지. 그런데 얼마 후, 이 걱정은 현실로 닥치게 돼. 성기훈 PD는 곧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돼. 끝까지 잘 들어봐.

팀도 꾸려졌으니, 조용필이 초청에 응했다는 기쁜 소식을 북한 쪽에 전해야겠지? 당연히 전화나 이메일로 다이렉트 연락하는 건 불가능해. 북한에서도 오PD가 북경에 있을 때 연락을 해왔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중국에서 만날 순 없잖아. 그때 남북 간의 연락을 이어준 건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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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 그때만 해도 문서를 주고받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었어.

"전화 통화는 없고요. 팩스가 주 창구였어요. (팩스를) 북경으로 보내요. (북한에서) 나와있는 여러 가지 단체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거기서 받아서, 북한으로 보내는 거죠."
-성기훈, SBS PD

그렇게 SBS는 처음 조용필 공연을 제안한 북한 단체에 팩스를 보냈어. 조용필이 결심을 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공연을 추진하자는 거지.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자, 북한에서 중국으로, 다시 중국에서 서울 SBS로 문서 한 장이 전송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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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귀측이 남측 조용필 가수의 평양 공연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를 표시해 온 데 대하여 류의하면서 공연과 관련한 실무적인 문제들을 협의하기 위하여 SBS의 해당 관계자들과 오는 8월 29일부터 30일 사이에 금강산에서 만날 것을 희망합니다."

이번 주에 팩스 보내면서, 당장 다음 주에 만나자는 거야. 이런 분위기라면, 공연이 금방 성사될 거 같지? 그런데 이 금강산 만남은, 하루아침에 결렬됐어. 북한의 입장은 이랬어.

"금강산 실무협의가 귀측에서 벌어진 군사훈련으로 인해 제 날짜에 할 수 없게 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마침 그때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있었거든. 우리로서는 필요한 훈련이지만, 대외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는 메시지가 된 거지. 결국 협상은 제자리걸음. 조용필 평양 공연은 그렇게 한동안 진척이 없었어.

"남북 간의 대화나 접촉은 북한에서 연락을 끊어버리면 방법이 없습니다. 북한과의 사업은 늘 외부적인 변수, 특히 정치적 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정말 아슬아슬 늘 외줄타기 같은 느낌이었죠."
-오기현, 당시 SBS PD

▲ 기다림의 아픔

북한의 연락을 기다리며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가을이 됐어. 그때, 북한에서 다시 팩스가 왔어. 이건 방송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내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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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은 조용필 선생님 앞>
"안녕하십니까? 선생님에 대한 많고 많은 훌륭한 일들에 대하여 나는 우리는 듣고 느끼면서 하루빨리 만나고 싶은 심정이 큽니다."
"선생님의 세계적인 예술활동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는 것을 나는 우리는 느끼면서 최대의 따뜻한 인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요즘 북남 간에 가슴 아픈 정세의 악환경 때문에 선생님과의 만남이 안타깝게 지연되었음을 알립니다. 그러나 이 심각한 환경이 꼭 봄날의 눈석이 풀리듯이 녹을 때면 맨처음으로, 선생님의 뜻대로 폭풍 같은 환호의 그 시각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을 약속드립니다."
"역사적인 환호의 그날을 포기하지 마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수 조용필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듬뿍 담긴 내용이야. 그런데 가을에 온 이 편지 이후에도 몇 번이나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만나자고 했다가 미뤘다가, 그렇게 결국 겨울이 왔어. 2004년 한 해가 끝나가도록 제대로 된 합의는 이루지 못했어. 이대로 조용필 평양공연은 흐지부지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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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새해가 밝았는데, 북한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1월 15일 접촉을 하자' 급하게 그때 금강산으로 갔던 것 같습니다. 가서 북한 민화협 참사들을 만났는데 4월 공연을 진행하자고 해요."
-오기현, 당시 SBS PD

그래도 다행히 이번엔 큰 틀의 합의서까진 작성했어. 평양에서 조용필의 단독 공연을 진행하고, 공연 장소와 모든 편의는 북측에서 제공한다는 내용이야.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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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무기 보유 사실을 직접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2005년 2월. 북한이 갑자기 핵보유 선언을 하는 바람에, 남북 관계는 다시 요동쳤어. 그렇게 꽃피는 봄이 찾아왔어. 그러네 놀라운 건, 그 와중에도 북한은 조용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야. 또 팩스가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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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장. 이제 진짜로 구체적인 공연 준비를 하자는 거야. 이후에 북한 금강산과 개성에서 몇 차례 사전 협의가 진행됐어. 당시 회의에 참석한 성기훈 PD는 북한 담당자들과 논의하며 든 생각이 딱 하나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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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씨가 온니 원이었어요. 조용필 씨 공연은 북측에서 꼭 해야 한다고.. 원픽 같은 느낌이죠."
-성기훈, SBS PD

▲ 공연이 성사되기까지

북한에서도 이 공연을 정말 원하고 있어. 하지만 구체적인 방식을 정할 땐, 서로 입장차가 컸다고 해. 그래도 여기까진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며 어느 정도 합의가 됐어. 그러다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게 있었어. 바로 공연 장소. 남측이 원했던 곳은, 1만 2천석 규모의 류경 정주영 체육관.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과 비슷한 규모야. 그런데 북한은 2천석 규모의 봉화예술극장을 제안했어. 양측은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하게 대립했어. 공연 장소만큼은 서로 절대 양보할 수 없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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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류경 정주영 체육관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조용필 씨의 평소 공연 그 모습 그대로 보여주자고 가능한 한 했는데, 보통 한 3만명 정도가 들어가는 운동장에서 공연을 했거든요. 무대 길이가 무려 170m입니다. 저희가 봉화예술극장을 알아보니까 무대의 길이가 34m인가 그래요. 규모가 너무 차이가 났죠. 그 스케일을 보여주려면 적어도 극장은 안된다..."
-오기현, 당시 SBS PD

조용필은 남한에서 하던 공연 그대로를 북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가능한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서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전하고 싶었던 거야. 그러다 보니, 너무 작은 곳은 불가했어. 하지만 북한 입장에선, 공연장의 규모가 커질수록 보안이 취약해. 특히 최고위층이 참석할 수도 있으니, 작더라도 안전한 장소를 선호했던 거 같아.

"정주영 체육관은 남한 기술자들이 만든 체육관이거든요. (보안 측면에선) 믿음이 아무래도 덜 가죠. 그래서 아마 실내 공연장을 고집했던거 같고. 그것 때문에 실랑이했는데…"
-오기현, 당시 SBS PD

"회담이 핑퐁식으로 주고받기가 어떨 때는, 제가 거기에 참석하고 있으면 무서웠어요."
-성기훈, SBS PD

엇갈린 조건에 협상은 난항을 겪었어. 결국 협상단은 합의를 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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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며칠 후에 팩스가 왔습니다. '남측의 잘못으로 이번 공연은 진행할 수 없습니다'. 그 잘못이라는 것은 체육관을 공연 장소로 고집하는 것이었습니다."
-오기현, 당시 SBS PD

이렇게 공연 취소 통보를 받은 게 2005년 7월이야. 처음에 오PD가 북경에서 전화받은 게 2004년 7월이었어. 여름에 시작한 프로젝트가, 다시 여름을 맞은 때였어. 1년을 이 공연만 보고 달려왔는데, 얼마나 허탈하겠어. 남측에서 다시 팩스를 보내도, 북측에선 아무런 답이 없어. 당시 PD들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계속 팩스만 바라봤대. 그러다.. 드디어 다시 팩스가 오기 시작했어.

"우리는 그동안 민족의 화해와 단합에 이바지하는 견지에서 조용필 선생의 평양공연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우리 측 해당 기관들과 여러 차례에 걸치는 실무협의를 진행하면서 있는 성의와 노력을 다하여 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조용필 선생의 평양공연 장소를 류경 정주영 체육관으로 하는데 끝내 동의를 받아냈습니다."

드디어 조용필 평양 공연이 최종 성사됐어. 그 후로는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돼.

▲ 조용필 평양 공연

무려 1년을 기다린 프로젝트잖아. 조용필의 감회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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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공연은 그동안에 계속 SBS와 북측 간에 계속 협의를 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되고 안 되는 것도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만 이쪽에서 수긍할 건 수긍하고 양보할 건 양보해서 올 하반기 첫 공연으로 평양을 시작함으로써, 아주 제대로 이룩하게 된 거 같습니다."
-조용필

이제 기자회견도 끝났겠다, 정말 공연이 시작하는 같아. 공연 D-DAY는 8월 23일. 이젠 시간과의 싸움이야. 근데, 평소엔 막힘없이 진두지휘 하는 조용필인데, 이번엔 고민이 좀 있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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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북한 사람들이 '내 노래를 알고 있을까?'하는 걱정이야. 이제껏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걱정을 하는 거야. 사실 걱정할 만한 게, 북한 관객들이 워낙 반응이 없는 걸로 유명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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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평양에서 한 공연이 있었어. 당시 그룹 신화가 댄스와 함께 '퍼펙트 맨'을 신나게 불렀는데, 북한 관객들의 표정은 시큰둥했어. 왜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이에 대해 한 탈북민 출신은 이렇게 설명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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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남북 고위급 회담하는 것 같네요. 이상하다 하겠죠. 저런 걸 처음 봤을 테니까. 놀란 표정이잖아요. 머리 스타일 자체도, 북한에는 남자들의 머리가 반듯이 빗어 넘기는 그런 머리 스타일이고 다 까만 머리인데. 양복을 입었으면 넥타이를 매야 정상적으로 무대에 나선 사람으로 보는데, 넥타이도 안 매고, 와이셔츠도 다 내려온 상태고 하니까 좀 이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한선, 탈북민

근데 지금 관객 반응을 따질 때가 아니야. 자칫하면 공연 자체를 할 수도 없을지도 몰라.

공연을 일주일 앞둔 인천항. 이 공연의 메인 조연출 성기훈 PD가 나홀로 사투를 벌이고 있어. 사정도 했다가 화도 냈다가, 성PD는 당시 수백 톤에 달하는 모든 장비의 수송을 혼자 책임지고 있었거든. 장비는 화물선으로 가야 하니까 제작진 중에 가장 먼저 평양행에 오른 거야. 아니, 올랐어야 했는데 아직 못 올랐어. 공연 날짜는 8월 23일. 5일밖에 남지 않았어. 그 안에 평양에 가서 체육관에 무대를 세우고, 조명, 음향, 악기 장비 등 모든 걸 세팅해야 하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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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에 선적해서 17일에 출발하면, 11시간 타고 가서 북한 남포항에 내려서 제대로 가면 한 18일 저녁이든 19일 아침에 들어갈 수 있겠네? 그래서 16일에 선적하려 했는데, 못 실어요. '북한에서 출항 허가를 안 해주고 있어요' 그래요. 저쪽에서 오라고 해야 가니까. 그게 없는 거예요 시그널이. 어떻게 하지? 그때 17일에 못 가고 배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마음이 쫄리기 시작하죠. 마음이 막 두근두근두근. 왜냐하면 이게 늦어도 20일에는 장비가 다 들어가야지만, 20일, 21일, 22일 3일 간에 세팅이 끝난다는 거예요. 그것도 아주 최소한의 기간인 거예요. 이거 늦어져서 공연 안되면 난 어떡하지?"
-성기훈, SBS PD

그 시각 인천항이 아닌, 인천 공항. 여기에도 성PD만큼 애가 타는 남자가 있어. 맨 처음에 평양 가는 비행기를 찾던 사람이야. 그는, 수년간 조용필의 콘서트 연출을 담당하고, 평양 공연까지 총괄하게 된 이종일 감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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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북한에 못 가지고 들어간다 해서, 가져오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핸드폰을 안 가지고 인천공항을 간 거예요. 갔는데 게이트가 어딘지를 모르겠는 거지. 보통 다 뜨잖아요. 근데 일체 안 떴으니까. 어디로 가야 되는지, 전화도 안되고 그래서, 안내 데스크에 여쭤봤어요. 거기, '평양 가는 비행기 어디서 탑니까?' 했더니. 이 분이 놀란 표정으로, 공항 직원들끼리도 몰랐던 거죠. 답변을 못 하시더라고."
-이종일, 공연 총연출

이 감독은 다행히 공항에서 일행들을 만나 평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어. 그 시각 불행 중 다행으로, 장비를 실은 화물선이 18일 오전에 남포항으로 출발했어. 이미 늦어졌지만, 밤늦게라도 남포항에 도착해서 19일 새벽에 평양으로 들어가면, 어떻게든 될 수 있는 상황이야.

18일 밤, 화물선은 남포항에 무사히 도착했어. 그런데 항구가, 휑 하고 아무것도 없어.

"18일 밤에서 19일로 넘어가는 밤에, 도착해서 물건을 내렸어요. 그런데 트럭도 없고 인부도 없고. 사람들한테 물어봤죠. 트럭 어디 있냐고... 이거 어떡하지? 또 이제 그다음부터 두근두근 하기 시작했죠… 빨리 해야 됩니다. 이 시간에 가야, 그나마 타이밍이 맞는데, 여기서 놓쳐서 조금이라도 늦어지기 시작하면 큰일 납니다. 그렇게 실랑이를 오전에 쫙 하고 있는데 오후 넘어가서, 그분이 나타났어요."
-성기훈, SBS PD

출항이 미뤄지며 모든 게 꼬여버린 거 같아. 여기서 더 늦어지면 공연 자체를 못 올릴 수도 있어. 그런데 그때, '그분'이 나타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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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제 기억으로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는 분이 갑자기 나타났어요. 그분이 되게 실세 같았어요. 이분한테 뭔가 얘기하면 될까? 해서, 정말 폭포수처럼, '이거 이거 해주시지 않으면, 지금 공연을 못합니다' 하니까 '진짜? 알았어!' 하면서 약간 뭔가 통한 거 같은 느낌? 그러더니만 그분이 '야! 날래 저 빠루 갖고 오든지 뭐든지 갖고 오라!' ,'지게차 갖고 오라!' 하니까 진짜 지게차가 어디선가 쓱 오는 거예요. '와 이분 대박!' 하면서, 이제 뭔가 되겠구나. 갑자기 일이 막 진전되기 시작한 거예요."
-성기훈, SBS PD

그분은 성PD에게 정말 구세주였어. 그분이 지시하자마자 어디선가 트럭 수십대가 나타나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장비들을 나르기 시작했어.

오매불망 무대 장비가 오길 기다리던 선발대는 19일 새벽, 천둥 같은 소리에 다같이 밖으로 나가. 수십대의 트럭이 탱크 소리를 내며 체육관으로 달려오는 소리였어. 이종일 감독은 그 광경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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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인가 아주 깜깜한데, 저기서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들이, 차가 30대가 넘었던 것 같은데 몇십대가 쭉 줄을 서서 들어오는 거예요. 근데 진짜 우리 6.25때 영화에 나왔던 그런 군용 트럭 있잖아요 초록색. 그 트럭이 막 섞여 있는 거예요 거기에. 심지어 몇 대는 시동을 밖에서 거는 트럭도 있어요. 덜덜덜 거리면서 그 차들이 그렇게 짐이 들어왔어요."
-이종일, 공연 총연출

이제 선발대에게 주어진 시간은 3일. 21일에 조용필이 입국하자마자 바로 리허설을 해야 하니, 그 안에 무대, 조명, 악기까지 완벽하게 세팅해 둬야 해. 남포항의 기적이 이제 이 공연장에도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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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계속 철야를 할 수밖에 없었죠. 계속 밤샘 작업을 하면서 일정을 맞출 수밖에 없었던 거죠. 스태프들이 아주 고생을 많이 했고, 더불어서 북한 스태프들도 고생을 많이 했고. 준비시간이 짧아지는 바람에. 그래도 우리가 또 하면 한다고 그러잖아요. 역사적인 공연이고 하다 보니 사람이 마음가짐이나 이런 게 힘든 줄 모르고 막 이러잖아요. 공연 말로는 그런 말이 있어요. '어쨌든 막은 오른다'."
-이종일, 공연 총연출

약 40명의 북한 인부들이 남한 스태프들과 손발을 맞췄어. 간식도 나눠 먹고, 땀도 닦아주기도 하면서 이 역사적인 무대를 남북이 함께 완성한 거야.

▲ 조용필의 북한 입성

드디어 그가 움직이는 날이야. 2005년 8월 22일 오전 10시. 그날 인천 공항엔 원조 오빠 부대의 우렁찬 인사가 울려 퍼졌어. 조용필의 팬들은 '여행을 떠나요'를 같이 열창하며 조용필을 배웅했어. 조용필이 가는 곳엔 팬클럽이 빠질 수 없는데, 이번엔 따라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가 없어. 팬들은 어느 때보다 응원이 필요한 용필오빠에게 이렇게라도 힘을 주고 싶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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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으로 향하는 조용필의 마음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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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지역이기 때문에, 오늘 아침만 해도 '오늘 공연이구나' 생각을 했는데… 글쎄요. 조금 긴장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묘하네요."
-조용필

어느덧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어. 평양 공항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평양에 도착한 조용필을 취재하러 나갔던 SBS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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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씨랑 우리 본진 왔을 때는 그것 자체가 대단히 성대한 어떤 이벤트였어요. 평양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종혁 조선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대표 자격으로 직접 왔었고, 고려호텔로 이동했을 땐 고려호텔은 준비를 아주 열심히 해서, 거의 모든 직원이 다 나왔던 것 같은 느낌, 박수 치고 음악 틀고 열렬히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라는 노래도 울려 퍼졌던 것 같고요."

-주영진, SBS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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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쁨도 잠시, 짐을 풀자마자 조용필이 달려간 곳이 있어. 바로 공연장. 그런데 공연장에 들어선 조용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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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배를 타고 와서, 화물 하역하는 시설이 상당히 불편했어요. 막 인원이 붙어서 그냥 내리고 많은 짐들을 내오다 보니까, 그래서 조금 파손된 것들이 조금씩 있었어요."
-이종일, 공연 총연출

"류경 체육관에 와 보니까, 조금 좁은 듯은 하지만 음이 어떻게 메아리가 칠지, 그게 가장 염려스럽고. 저희가 오늘 밤새 작업을 하면, 대충 음은 다 잡을 것 같아요."
-조용필

생각보다 공연 환경이 너무 열악했던 거야. 무대랑 객석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소리가 울리기도 하고, 악기들 상태도 불안했어. 내일이 당장 공연인데 말이야. 완벽주의 조용필은 당장 리허설을 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럴 수 없었어. 그날 저녁 북한에서 조용필을 환영하는 성대한 만찬을 준비한 거야. 만찬 내내 조용필의 머릿속에는 공연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겠지. 마음이 조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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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말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정말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내일 역사적인 조용필 공연을 이곳 평양에서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전에 저희는 리허설, 연습을 또 해야 하고. 이제 무대 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남은 시간 여러분들 즐거운 시간, 아주 정말 뜻깊은 평양의 첫 밤이 되시기 바라겠습니다."
-조용필

그런데 만찬 직후 공연장으로 가던 조용필이 갑자기 노래 한 곡을 추가하자고 하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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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아리랑' 알아요? 우리 테이블에서 '홀로 아리랑'을 그렇게 원하는데. 근데 난 모르잖아요. 여기서 한 70%가 안다고."
-조용필

내일이 당장 공연인데, 그 부탁이 자꾸 마음에 걸렸던 거 같아. '홀로 아리랑'은 1989년에 발표된 가수 한돌의 노래인데, 한창 남북교류가 활발할 때 북한에도 퍼진 거 같아. 재밌는게,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북한의 구전민요로 알고 있다는 거야. 북한에선 남한 노래를 테이프나 CD로 소장할 수 없어. 그래서 대부분 노래가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다 보니, 출처를 알 수 없는 노래가 된 거야. 그렇게 북한 사람들의 애창곡이 된 이 '홀로 아리랑'이 추가되며, 공연 스태프들은 비상이 걸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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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은 한 번도 그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내일 그거를 공연하는데 불러야 한다는 게, 일반 가수로서는 좀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악보도 없었어요. 지금같이 뭐 핸드폰으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핸드폰도 아무도 없었거든요 못 가지고 가서."
-이종일, 공연 총연출

제대로 된 리허설도 못한 마당에, 새로운 곡까지 연습해야 했던 거야.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어렵게 악보부터 구했어. 그런데 이 악보를 본 조용필과 스태프들이 깜짝 놀라. 이게 그때 구했던 악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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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이름을 숫자로 표기한 북한식 악보야. 조용필도 생전 처음 보는 거지. 과연 몇 시간 후 조용필은 '홀로 아리랑'을 멋지게 들려줄 수 있을까.

결국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최종 리허설이 시작됐어. 실제 무대처럼 열창하며 한창 리허설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어수선해졌어. 어디선가 한 남자가 나타나서 "중단하라우! 음악 끄라우! 전부 나가시라우!"라며 막 소리치자, 북한 보안 요원들이 쫙 깔리면서 안에 있던 스태프들과 조용필까지 내쫓기 시작해. 왜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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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최고위층이 내일 방문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경호 요원들이 시설점검 하는 모양이다, 생각했죠."

-오기현, 당시 S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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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 김정은이 올 것이냐, 아니다 안 온다, 우리끼리 뭐 설왕설래 했었거든요. 그 체육관이라는 곳이 보면 VIP 석이라고 해서, 유리로 막혀있는 부분이 있어요. 갑자기 공연 전날 북한 관계자가 그 안에다가 스피커를 설치해 달라고 그러더라고. 거기 아무도 없는데, 왜 스피커를 거기다 설치를 해달라고 그럴까. 그래서 우리끼리, 저기서 보려는 거 아니냐, 이런 추측을 했죠."
-이종일, 공연 총연출

일단 리허설은 다음날 오전에 하기로 하고, 조용필과 모든 스태프들은 숙소로 돌아갔어. 과연 북한 최고 지도자는 내일 조용필을 보러 올 것인가. 현장에서도 이게 초미의 관심사였어.

▲ 공연 D-DAY

드디어 그날이 밝았어. 조용필이 평양 관객들을 만나는 그날. 남북 합작으로 무려 1년에 걸쳐 진행된 역사적인 프로젝트가 이제 몇 시간 후면 눈앞에서 펼쳐져. 공연은 저녁 6시. 조용필은 어제 다하지 못한 리허설을 마치고, 사회자와 대본도 꼼꼼하게 다시 점검해. 공연 직전까지 단 한시도 쉬지 않았어.

"항상 공연 시작하는 순간까지도 항상 노력하시고 연구하세요. 그러다 보니까 직전에 바뀌게 되는 경우가 많죠. 전 스태프가 항상 막이 올라가는 순간에도 긴장을 하고 있어야 되는, 이제 이런 점들이 팬들한테 참 좋은 점이 될 거예요 아마."
-최희선, 밴드 '위대한 탄생' 리더

그렇게 모든 점검과 연습이 끝나고, 오후 5시. 드디어 관객 입장이 시작돼. 이종일 감독은 그 순간을 평양에서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기억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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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있는데 보니까, 저 다리 끝에서 관객이 모여서 한꺼번에 쫙 들어오는 거예요. 남자분들은 전부 검정 바지에 흰 와이셔츠, 여자분들은 전부 치마저고리, 꽃 막 수놓은 양산 있죠. 그런 거를 탁 쓰고 쫙 들어오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감동적이고, 너무 놀랐고, 대단히 흥미로운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나는 게 그 장면이에요."
-이종일, 공연 총연출

금세 7천여 관객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어. 과연 관객들 반응은 어떨까? 북한에서는 무반응이 예의라고 하지만, 조용필은 한 번도 무반응 공연을 한 적이 없어. 남한에서 뜨거운 박수갈채를 가장 많이 받은 가수니까. 어떻게 됐을지, 2005년 조용필의 평양 공연 실황을 보여줄게. 화질 개선 작업을 해서 4K 화질로 재탄생시켰어. 생생한 무대를 실감 나게 느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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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진 SBS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공연이 시작됐어. 조용필은 '태양의 눈', '단발머리', '친구여', '못 찾겠다 꾀꼬리' 등의 노래를 열창했어. CD를 삼킨 듯한 라이브 실력. 역시 명불허전 조용필이야. 그럼 북한 관객의 반응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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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을 맞춘 듯한 정적. 무반응에 대한 걱정이 현실이 되어버렸어. 그런 관객을 보며, 조용필의 마음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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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딱 보는 순간, 그냥 제가 얼게 되더라고요. 그냥 표정이 없으니까. 사람이 왜 인사를 할 때,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 저쪽에서도 표정이 반가운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전혀 표정이 없으니까. 내가 이렇게 숨이 딱 멎는 느낌이에요."

관객들이 집중을 해서 그런 건지, 주변 눈치를 보는 건지. 그래서 이번 조용필 평양 공연 방송을 준비하며 '꼬꼬무'가 백방으로 알아봤어. 이날 조용필의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은 누구고, 이들에게 조용필은 어떤 가수였을지. 20년 만에 최초로 공개되는 그날의 숨겨진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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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평양이 고향이 탈북민 김철웅이라고 합니다. (조용필 공연 관객석을 비춘 화면을 보며) 얘 정춘실이라는 애예요. 피아노 치던. 그 옆에 남자가 바이올린 했던 정남이에요. 어, 손대현 선생님, 교수님들 성악과 교수님들. 이 구역이 평양 음대 교수 구역이에요. 선생님들을 지금 다 데려온 거예요. 제가 봤을 땐 거의 평양시에 있는 예술인들 거의 하고, 평양 음대생들이 거의 다 갔던 것 같아요. 객석을 보니까 다 음악 하는 사람들뿐이던데요."
-김철웅, 탈북 피아니스트

북한에서 조용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냐고 묻자 김철웅 씨는 이렇게 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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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중국을 통해서 들어왔던 것 같은데, 조용필 씨의 '허공', '친구여', '그 겨울의 찻집' 그런 노래들이 굉장히 많이 들어와서 한동안 많이 유행했습니다. 당시 소문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허공'을 되게 좋아했다는 소문이 있더라고요. 특히 고영희가 좋아했다고 그래요. 김정은의 어머니."
-김철웅, 탈북 피아니스트

이날 객석은 평양의 문화예술 관계자와 주요 핵심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 가족들로 채워졌다고 해. 그래서 공연 초반에는 더더욱, '남한 최고 가수의 무대에 쉽게 반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건 아닐까.

"눈치 봐야 하잖아요. 이걸 안다는 것 자체가 불법인데, 괜히 안다고 처음부터 반응했다가. 일단은 모두의 마음은 그랬을 거예요. '그래 난 절대로 웃지 않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갔을 거예요. '절대로 너네한테 여유를 보이지 않으리라'"
-김철웅, 탈북 피아니스트

▲ 마침내 음악으로 하나된 그날

그런데 그렇게 보던 객석의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일이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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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느낌, 어렵습니다. 저도 음악 생활을 굉장히 오래 했습니다. 제가 37년간 음악 생활을 했습니다만, 나이가 지금 40이거든요. 여기처럼 이렇게 떨려본 적 없어요. 제가 동료들한테도 '편하게 해, 어렵게 생각하지 마. 다 우리 동포야. 편하게 하자' 하고서 제가 떨려요."
-조용필

조용필의 농담 한마디가 얼어있던 북한 관객들을 웃겼어. 북한 관객이 웃으니, 공연팀의 긴장도 함께 풀렸어. 조용필을 향한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어. 북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비결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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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통했죠. 저런 유머를 하는 걸 좋아해요. 사실 공연도 중요하지만, 남한 가수들이 공연 도중에 얘기하는 걸 되게 기대해요. 그 말투를 듣고 싶어 하고, 이렇게 여유 가지고 툭툭 던지는 유머러스한 것은 정말 잘 먹히죠. 저것 때문에 플러스 많이 올라갔을 거예요."
-김철웅, 탈북 피아니스트

조용필의 유쾌한 농담이 제대로 통한 거야. 북한 관객들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켰고, 그 후로 공연장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어. 자신감이 생긴 조용필이 공연 중간중간,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했어. 말만 하면 빵빵 터져. 그렇게 한번 통한 다음부턴, 노래를 듣는 관객들의 표정이 훨씬 더 자연스러워졌어.

북한 관객들에게 친숙한 북한 가곡 '험난한 풍파 넘어 다시 만나네'를 부르자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고 따라 부르는 관객도 나와. 화려한 조명과 함께 신나는 곡으로 전환되고, '여행을 떠나요'를 부르자 발장단을 맞추며 흥을 표현하는 관객도 있어. 이렇게 모두가 하나가 된 110분의 공연. '꿈의 아리랑'이 끝나자마자, 마치 파도타기 하듯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북한 관객들이 무대 위 아티스트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 기립 박수가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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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이례적이죠. 정말 이례적이에요. 북한에서는 기립박수가 진짜 안 나와요. 본인들이 느끼기에도 충분히 이건 기립박수다, 이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기립박수가 나온 거죠. 기립박수 나온 건 처음 봤어요."
-김철웅, 탈북 피아니스트

게다가 곳곳에서 "재청! 재청!" 소리가 들려. 앵콜을 원하는 거야. 앵콜곡은 '홀로 아리랑'. 하루 만에 준비한 곡이야. 기립 박수에 화답하기 위해 다시 무대에 오른 조용필. 관객들은 조용필의 '홀로 아리랑'을 박수로 치며 따라 불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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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상당히 찡했죠 저희들도. 오히려 저는 이제 그 반응을 잘 생각 못 했었으니까. 그걸 불렀을 때 이렇게 하나가 돼서 그들이 동조하는구나. 이런데서 순간 뭉클한 부분도 있었죠."

-이종일, 공연 총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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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기 오기 전에 생각했던, '음악은 북과 남이 똑같다'라는 결론을 오늘 지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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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평양의 밤을 뜨겁게 달군 110분의 공연은 이렇게 막을 내렸어. 아까 북한이 조용필에게 보낸 편지의 문구 기억나? '역사적인 환호의 그날'이 될 거라고 했었잖아. 그 말처럼, 남북이 하나 된 역사적인 만남의 순간은 전설처럼 남아있어. 그럼 공연을 마친 조용필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 순간의 감격을 표현한 단 하나의 장면이 있어. 그날 공연 이후 뒤풀이 때 사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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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오래 간직하고 싶은 사진이요. 조용필 씨도 되게 좋으셨던 것 같아요 마음이. '내가 평양 공연을 끝냈다'라고 하는 어떤 뭉클함, 감격. 이런 것들이 여운이 가라앉지 않아서 고려호텔 직원들 앞에서도 노래를 한 두곡 정도 하시기도 했어요."
-주영진, SBS기자

평양에서의 그날을 함께 한 관계자들은, 그 해 여름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말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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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뿌듯했죠. 너무 멋진 공연이었고, 역사적인 순간이었고. 조용필 씨가 해냈다, 진짜 그 감동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아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못 오는 순간이니까, 그게 아쉽죠."

-윤현진 아나운서, 당시 사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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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은 제 여름 중에 가장 뜨거운 여름이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한 아티스트가 이런 큰 역할을 할 수가 있구나, 그 어떤 대북 지원이나 어떤 역할보다, 실제로 이렇게 시민과 시민이 만나서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예술을 통해서 서로 소통한다는 거. 그것이 상당히 파급 효과가 있고 그거에 일조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이종일, 공연 총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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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입은 '통일돼야 한다', '우리 민족은 하나입니다' 얘기하는데, 직접 몸으로 혹은 마음속으로 부딪혀 본 그런 기회를 얻은 것, 되게 값지죠. 과정이 길고 험난했고. 엎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그런 과정이, 사실은 우리나라 통일의 과정이 아닐까요."
-성기훈, SBS PD

그렇게 평양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조용필이, 다음날 꼭 가고 싶다고 한 곳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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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경기장? 다음에 거기서 한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거기를 한 번 사전답사를 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뭐, 하게 되면, 실내는 이제 했으니까, 이제 실외에서. 완전 여기 떠나갈 정도로 큰, 파워 있는 음향을 가져와야지."
-조용필

15만 명을 수용하는 북한에서 가장 큰 야외 경기장에서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 싶었던 거야. 2005년 그땐, 정말 내년이라도 당장 가능할 거만 같았거든. 하지만 조용필의 그 꿈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꿈으로 남아있어.

그 사이 남북관계는 많은 일이 있었고, 언제부턴가 민간 차원의 교류는 사라졌어. 요즘은 통일에 대한 목소리도 줄어들었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작은 구멍 하나가 거대한 담을 무너뜨리듯, 작은 소통과 교류로 단단한 장벽도 넘어설 수 있다는 거. 그래서 이번에 뜨거웠던 그 해 여름날의 이야기를 준비한 거야.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 조용필 평양 공연에, 정말 그가 왔을까? 진실은, 아무도 몰라. 왔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만약 왔었다면, 평소 즐겨 부른다는 그 노래를 같이 따라 부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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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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