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1년 반의 공백기 동안 다른 생활을 했잖아요. 원래 제가 했던 일이긴 하지만, '감이 떨어졌으면 어떡하나' 확신이 없어진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려니 불안했죠."
그룹 갓세븐 멤버 겸 배우 박진영은 군 전역 후 연기 복귀 첫 작품으로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선택했다. '미지의 서울'은 얼굴 빼고 모든 게 다른 쌍둥이 자매 유미래와 유미지가 인생을 맞바꿔 살아보며 진짜 사랑과 인생을 찾아가는 로맨틱 성장 드라마다. '오월의 청춘'의 이강 작가가 대본을 쓰고, '질투의 화신', '사이코지만 괜찮아' 등의 박신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박진영은 배우 박보영이 연기한 쌍둥이 자매 미래와 미지 가운데, 미지와 로맨스를 펼치는 남자주인공 이호수 역을 연기했다.
"전역 후 좋은 작품들의 제안이 들어왔는데, 그 가운데 '미지의 서울'을 선택한 많은 이유가 있어요. 먼저, 이강 작가님의 글이 제게도 큰 위로가 됐어요. 또 호수라는 캐릭터가 읽으면 읽을수록 눈에 밟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감독님과 첫 미팅을 하며 얻은 확신도 있었고요. 감독님을 통해 저도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보영 선배가 미지/미래 역할로 이미 캐스팅된 상태라, 제가 안 할 이유가 전혀 없었어요."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복귀작으로 정했으나, 군 복무로 그동안 현장을 떠나 있었기에 몰려오는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떨어진 감'을 되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초반 제 촬영분은 대사나 움직임이 적었어요. 절 배려해 그렇게 짜주신 거 같아요. 그러다 호수가 황비서(신정원 분)와 카페에서 뜨개질을 뜨며 대사를 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제가 깨달은 바가 있어요. 전 황비서의 대사를 다 받아내려 했는데, 그런 절 보고 감독님이 '호수는 모든 거에 다 반응할 거 같지 않으니, 반만 줄여보자' 하시더라고요. 감독님 말씀대로 했더니, 너무 호수 같은 거예요. 그때 '아, 내가 감 찾는 걸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렇게 따라가면 되는구나'를 느꼈어요. 감독님, 작가님, 같이 연기하는 파트너를 믿고 따라가면 된다는 걸요. 전혀 의심 없이 절 호수로 바라보는 보영선배의 눈을 보면서, 제 마음이 더 편해졌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현장에서 불안을 떨쳐내고 편함을 찾은 거 같아요."
호수는 미래, 미지의 고교 동창이자 옆집 이웃사촌이다. 훤칠하고 단정한 외모에 얌전한 성격의 호수는 공부도 잘해 대형 로펌 변호사가 된다. 겉보기에 단점 하나 없어 보이는 호수지만, 10대 시절 큰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상처가 있고, 자신도 크게 다쳐 다리가 불편하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한쪽은 고장 난 자신이 장애와 비장애 사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서성이는 '경계인'이라 느끼는 인물이다.
"'경계인'이라는 지점이 어려웠어요. 호수가 가지고 있는 핸디캡을 크게 표현할 수도, 아주 안 할 수도 없는 부분이라, 그 부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호수가 그 핸디캡을 갖고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캐릭터를 구축할 때 그걸 많이 신경 썼어요. 그래도 변호사까지 됐으면 핸디캡을 잘 극복했다는 반증 같은데, 호수는 왜 이걸 감추고 힘들어할까 생각해 봤어요. 그건 호수가 엄마나 주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자신의 핸디캡을 최대한 숨기려 한다는 걸 표현하고자 했어요. 남보다 적게 들릴 테니 말을 더 천천히 또박또박한다든가, 말하기 전에 0.5초씩 더 생각하고 얘기하려 한다든가. 그렇게 10년 동안 누적됐을 호수의 버릇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어서, 집에서 그런 부분들을 많이 연습했어요."
박진영이 호수로 완벽하게 거듭날 수 있었던 건, 파트너로 연기호흡을 맞춘 박보영의 도움이 컸다. 미지가 호수의 결함을 채워주고 성장의 발판이 되어주 듯, 박보영은 후배 박진영이 자신의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묵묵히 도왔다.
"보영선배와의 연기는 따로 안 맞춰도 잘 맞았어요. 무엇보다 현장에서 저한테 보여준 보영선배의 마음이 너무 컸어요. 1년 반을 쉬었던 제가 너무 좋은 대본 속 호수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까 봐 현장에서 부담도 긴장도 엄청 컸는데, 보영선배는 제가 실수를 해도 괜찮으니 편하게 하라고, 버팀목처럼 지켜봐 줬어요. 그런 부분이 가장 존경스러웠죠. 또 선배는 미지와 미래, 미래인 척하는 미지, 미지인 척하는 미래까지 1인 4역을 한 셈이잖아요. 제가 호수로서 그 각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고민이었는데, 그 역시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냥 선배가 보여주는 연기 그 자체에 제가 반응하면 됐으니까요. 선배가 주는 게 많으니, 저절로 되는 게 많았어요. 너무 좋았던 현장이었죠."
호수는 엄마 염분홍(김선영 분)과 특별한 모자관계다. 분홍은 호수의 새엄마인데, 호수 아빠의 사망 이후 호수를 떠맡아 직접 낳은 친아들 이상으로 더 정성스럽게 돌봤다. 이런 분홍에게 짐이 됐다는 부채감을 갖고 성장한 호수는, 착한 아들로서 최선을 다하면서도 분홍에게 마음의 거리를 뒀다. 극 말미, 호수가 청력 상실의 두려움 속에 홀로 괴로워할 때, 호수를 끌어안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 준 분홍의 눈물 어린 응원은, 호수가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게 했다. 그리고 이런 분홍의 조건 없는 사랑은 시청자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그 장면을 촬영하며 처음 두 세 테이크를 갔는데, 감정이 만족할 만큼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못 해낸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선영선배님이 오셔서 저한테 귓속말로 '아무것도 하려 하지 말고, 내가 다 줄 테니까 나만 봐 진영아. 나 믿고 나만 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고 찍었는데, 바로 오케이가 나왔어요. 그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호수가 분홍 엄마에게 마음을 열 듯, 선배님의 '나만 봐'라고 했던 그 말이 절 녹였던 거 같아요."
박진영은 이호수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에 대해 '다르다'고 했다. 호수는 조용하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쪽인데, 실제 자신은 수다를 좋아해서 말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갓세븐 멤버들 사이에선 자신이 멤버들을 놀리고 장난을 치는 포지션인데, 호수는 아무것도 모르는 숙맥에 놀림을 당하는 쪽이라고 다른 부분을 말했다.
호수와 실제 성격은 다른 편이지만, 박진영은 호수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다. 박진영은 자신보다 어른스러운 호수를 연기하며, 닮고 싶은 부분을 찾았다.
"호수가 저랑 많이 다르면서도 비슷했던 건, 아마 참는 부분인 거 같아요. 근데 전 참음에도 불구하고 친한 사람들한테는 힘들다고 얘기하는 편인데, 호수는 그냥 버티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많이 반성했어요. '나랑 비슷한 나이인데, 어떻게 이렇게 어른스러울 수 있지?' 싶었죠. 이런 호수의 한 부분이 저한테 체화돼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호수가 너무 괜찮은 사람이니까요. 공감해 주고, 기다려주고, 버텨주고. 그런 호수의 어른스러운 면들이요."
'미지의 서울'은 뭔가 결핍이 하나씩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 어려움을 딛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 주는 감동과 더불어, 그런 성장을 곁에서 진심으로 응원하며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누군가의 존재가 주는 위로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드라마였다. 박진영도 이 작품을 함께 하며 큰 위로를 받았다.
"로사가 세상을 떠나며 상월(원미경 분)에게 남긴 편지에 '언젠가 널 읽어주는 사람이 올 거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저한테도 참 많이 위로가 됐어요. 예전의 제가 듣고 싶은 말일 거 같았거든요. 누군가 지금 답답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장면을 봤으면 좋겠어요. 우울하고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될 때, 아무도 날 생각하지 않을 거라 여겨도, '언젠가 널 읽어주는 사람이 있을 테니 버텨보자',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과거의 저한테도요."
경남 진해 출신의 박진영은 10대 시절 상경해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과거의 자신한테 로사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숙소 생활을 하며 느낀 외로움, 모든 짐이 내 어깨에 있는 것만 같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던 그 시절의 자신에게 '버텨보자'며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도 극 중 미지에게 '서울'이 마냥 나쁘지만 않고 설레는 공간이었던 것처럼, 박진영에게도 서울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제게 서울은 두 번째 고향이에요. 지금 제가 32살인데 17살 때부터 서울에 살았으니 반평생을 서울에 살았죠. 미지처럼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가 기억나요. 한겨울에 연습생으로 들어왔는데, 청담사거리에 눈이 엄청 내린 게 너무 신기했어요. 저희 동네에는 눈이 안 왔거든요. 눈이 녹아 차가 지나가며 검은 물을 튀기는데도, 그걸 보는 게 즐거웠어요. 연습생 형, 누나들이 '한강이 얼었다'고 해서 '어떻게 강이 어냐. 거짓말 치지 마'라고 한 적도 있어요. 얼어있는 한강을 보러 갔는데, 정말 문화 충격이었어요. 그때 17살의 저는, 한강을 처음 본 미지보다 더 좋아했던 거 같아요. 따뜻한 커피캔 하나 들고, 언 한강을 보며 좋아했던 그 기억이 나요."
박진영은 입대 전 찍었던 영화 '하이파이브', 드라마 '마녀'가 올해 공개되며, '미지의 서울'까지 올 상반기에만 세 작품을 대중에 선보였다. 여기에 갓세븐 활동도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는 체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며, 계속 지치지 않는 활동을 예고했다.
"타이밍과 운이 좋았던 거 같아요. 감사하게도 연달아 작품들이 나오게 됐죠. 제가 1년 반을 쉬었잖아요. 너무 일이 하고 싶었어요. (군대에서) 나가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기 때문에, 아직은 지치지 않고 일을 하고 싶어요. '마녀'와 '하이파이브'는 입대 전에 찍었던 거고, '미지의 서울'도 박보영 선배에 비하면 제 분량이 크지 않았던 편이라, 힘들지 않게 찍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요즘은 촬영 시간이 딱 정해져 있잖아요. 그거에 맞춰 체력을 분배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잠도 최대한 자며, 체력 관리를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박진영에게 '미지의 서울'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물었다. '미지의 서울'에서 호수 캐릭터를 연기하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박진영은, 다른 누군가에게도 '미지의 서울'이 2025년 상반기에 위로를 받았던 작품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2025년 상반기를 일기장 꺼내보듯 꺼내 봤을 때, '그때 이 드라마가 있어서 위로를 많이 받았어' 하는 드라마로 기억이 되면 좋겠어요. 드라마가 참 많이 나오고, 세상에 이야기들도 많잖아요. 앞으로 다른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받더라도, 지금 이 순간, 2025년 상반기를 기억했을 때는 '미지의 서울'이 그분들의 기억에 위로로 남았으면 해요. 그것만으로도 전 좋을 거 같아요."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tvN]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