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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소설 '도가니' 배경이 된 사건의 진실 추적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5.02.14 05:58 수정 2025.02.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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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이제라도 알려져야 할 그날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1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소설 도가니의 배경이 된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추적했다.

2005년 인화학교의 생활재활교사였던 전응섭 씨는 그날에 대해 20년 전 일어난 일이지만 어제처럼 생생하다며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광주의 청각장애 특수학교 인화학교의 재학생이었던 선화 양이 보육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고백을 들은 전 씨. 그는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그의 표정을 보고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이에 전 씨는 학생부장 교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학생부장은 조용히 하라고 했고 이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전 씨는 다른 관계자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지만 그들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결국 전 씨는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직접 선화 양을 돕기로 결심했다.

선화 양은 전 씨의 도움을 받아 기숙사 밖으로 나왔고, 장애인상담소에 그동안 자신이 당한 일들을 모두 고백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첫 피해를 당한 선화 양, 그가 지목한 가해자는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청각장애를 가진 선화 양은 수어와 몸짓으로 지금까지 감춰진 진실을 전했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통역으로 듣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수년간 감춰졌던 진실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자 학부모, 교육자, 장애인 단체, 시민 단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진술 15일 만에 인화학교 성폭력 대책위가 발촉 되고 이들은 학교 측에 책임을 물었다.

이에 학교장은 누군가의 음해라며 부인하기 급급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사회복지법인 우석 재단의 산하 기관이었던 인화학교와 기숙사 인화원, 보호작업장, 근로시설 등은 모두 족벌 경영으로 운영되는 곳이었고 선화 양이 지목한 가해자 행정실장은 학교장의 동생이었다.

선화 양의 이야기에 선화의 친구, 선배, 후배, 남학생들과 졸업생들까지 대책위를 찾아왔다. 이들은 또 다른 피해자였던 것. 그렇게 모인 학생이 서른 명이 넘었고 이들이 지목한 가해 교직원은 10명이 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피해자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인화학교의 기숙사인 인화원에서 생활하던 가정적으로 돌봄 받기 어려운 아이들이었던 것. 가해자들은 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가 있기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대신 결손 가정 학생들만 선택적으로 골라 성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선화 양의 경우 청각장애에 지적 장애가 있었고 부모님도 모두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을 전부 고소했고, 대책위는 가해자들에 대한 빠른 수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경찰, 교육청, 관할 기관 등 어떤 곳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가 책임을 미루었다. 명백한 범행이 드러났음에도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것.

또한 한 관할 기관의 공무원은 "자기들끼리 좋아서 한 건데 왜 그러냐"라는 말로 피해자들을 2차 가해했다.

이들 기관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카르텔이 존재했던 것. 이에 아무리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도 어떤 것도 바뀌지 않았다.

결국 어른들은 거리 시위에 나섰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아가며 시위에 참여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고 긴 투쟁이 계속됐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 목소리를 냈고 결국 가해자들이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그러나 당시 성범죄 처벌에 관한 이해할 수 없는 법들이 발목을 잡았고, 10명이 넘는 가해자들 중 단 4명만이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추행을 일삼은 생활재활교사 A부터 성폭행 후 오천 원짜리 지폐를 건넨 행정실장, 그리고 누군가의 음해라며 진실을 은폐하려던 교장까지 법정에 섰지만 고작 징역 2년에서 집행유예 3년의 처벌이 내려졌다.

최종 심판이 내려지자 피해자들은 수화와 함께 "으어어어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는 이들이 낼 수 있는 소리를 다 낸 절규였다.

이에 대책위 관계자는 "이런 사건들이 장애가 없는 학교에서 일어났을 때 과연 이런 처벌이 나왔을까?"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재판 후 일부 가해자는 피해 학생들이 남아있는 학교로 복귀를 하기도 했고, 전 씨처럼 가해자 처벌을 요구했던 교사들에겐 징계가 내려졌다. 결국 몇몇 피해 학생들은 학교를 떠났고 그렇게 인화학교 사건은 잊히는 듯했다.

대책위도 피해 학생들도 지쳐가던 어느 날, 인화학교 사건을 기사로 접한 공지영 작가가 대책위를 찾았다. 그는 "청각장애인들이 지르는 알 수 없는 비명으로 가득 찼다는 내용의 기사를 봤는데 그 소리가 저에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미안했다. 내가 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를 때까지 실상도 모르고 있구나 싶어서. 그리고 다음날 바로 광주로 내려갔다, 그렇게 시작됐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공지영 작가는 대책위의 도움으로 인화학교 피해 학생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고, 최종판결이 난 6개월도 안 된 시점부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소설을 연재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소설 '도가니'.

가해자들을 향한 분노와 함께 피해자들에게 응원과 위로가 쏟아졌고, 소설을 접한 배우 공유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이 이야기를 스크린상으로 옮겨서 더 많은 사람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뜻을 함께하는 제작사가 나타났고, 이들은 오징어게임의 연출자인 황동혁 감독에게 연출을 부탁했다. 한 달 이상 고민하다 제안을 수락한 황 감독. 그는 이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목적 하나로 영화 작업에 참여했다.

누군가의 간절함과 책임감이 모여 영화가 만들어졌고 최종 관객 466만 명이라는 성과까지 얻었다. 그리고 이는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경찰, 검찰, 교육청, 관할 당국에 거센 항의를 했고 광주지방경찰청에서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재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 경찰은 이명숙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명숙 변호사는 6년 전 무혐의 처분을 받은 한 피해자의 사건을 떠올렸다.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 형 집행이 끝난 혐의에 대해서는 다시 심리를 할 수 없기에 재판하지 않은 사건을 떠올린 것.

영화에도 등장한 한 피해자의 이야기. 행정실장은 행정실로 피해자를 데려가 온몸을 결박하고 성폭행했다. 그리고 피해자는 온몸이 결박당한 채 하룻밤 넘게 방치됐다가 다음날 오전에야 풀려났다.

그런데 이 사건은 무혐의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던 것. 재판부는 부수적인 정보들이 사실과 다르다며 피해자의 진술에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했던 것. 이에 이명숙 변호사는 다른 증거를 찾아 나섰고 이때 그날의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목격자가 등장했다.

당시 인화학교 고3이었던 목격자는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던 길, 어디선가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귀 기울였다. 희미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목격자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끔찍한 범죄 현장을 목격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기억하는 목격자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니 문이 열려있었다. 안을 봤는데 여학생이 손발이 묶여 있었고 여학생이 발버둥을 쳤다. 행정실장은 강제로 성폭행을 하려고 했다. 그리고 영화에 나온 것과 달리 테이프가 아니라 묶인 부분이 가는 실이나 낚싯줄 같은 걸로 묶여있었다. 너무 가늘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묶인 건 맞았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두려워서 현장에서 도망친 목격자. 그리고 그는 며칠 뒤 행정실로 불려 갔다. 행정실장은 목격자의 존재를 알아차렸던 것이다.

아무도 없는 방으로 데려가서 말없이 펜과 종이를 건네고 갑자기 시작된 무자비한 폭행. 행정실장은 심지어 유리병으로 목격자를 폭행했다. 이에 목격자는 "살이 찢어지고 피가 튀는데 때리면서 재밌는 것처럼 웃었다. 계속 웃으면서 때리니까 그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는 것도 무서웠다. 웃는 얼굴 자체가 공포가 됐다"라며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을 고백했다.

행정실장의 폭행과 협박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목격자. 하지만 그는 영화 '도가니'를 보고 자신이 본 것을 증언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6년 만에 다시 시작된 재판에서 검찰은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그리고 법원은 수어로 판사의 판결을 전했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장애로 인하여 쉽게 저항할 수 없고 외부에 피해 사실을 알리기도 어렵다는 점 등을 이용하여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고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 피고인을 징역 12년에 처한다"라는 수어 메시지.

법원은 검찰의 구형보다 더 높아진 형량을 선고했고, 10년간 정보공개와 위치추적 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행정실장은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며 항소했고 최종적으로 8년 형이 선고됐다.

이에 대책위 관계자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이 다시 기소되고 감옥을 가게 되고 형을 받게 되고, 이 자체 만으로도 피해자도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고 그것만으로도 저희는 해냈구나 하고 생각했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이 사건의 판결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특례법이 개정됐다. 13세 미만, 장애를 가진 여성에 대한 성범죄 공소시효가 사라지고 장애가 있는 사람을 성폭행한 경우 7년 이상 최대 무기징역까지 처벌하는 것. 또한 재판에서 피해자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됐던 항거불능 조항도 삭제됐다. 소위 도가니법이라고 불리는 이 개정안이 그렇게 탄생한 것.

그리고 이 판결 후 인화학교는 폐쇄되고 법인도 해체 수순을 밟았다. 사회복지사업법도 개정되어 복지 시설에 대한 관리 감시가 강화되었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대책위가 가장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피해자들이 자립할 수 있는 일터가 생긴 것. 공지영 작가와 출판사의 지원으로 광주 시내 작은 카페가 오픈했고 이곳에서 피해자는 물론 인화학교의 졸업생이면 누구나 일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곳은 현재에도 운영 중이라고.

비극적인 사건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이 모여 기적을 이루었고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세상에 향한 관심과 따뜻한 마음이 있다면 우리도 분명 그중 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올해로 사건이 벌어진 지 20년, 도가니 대책위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에 대책위는 "여전히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피해자가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고 말해 큰 울림을 자아냈다.

겨울이 추운 건 소중한 사람의 온기를 알기 위해서라는 '도가니' 속 한 구절, 온기를 나누며 서로를 감싸 안아 줄 수 있다면 어떤 추위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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