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마지막 사형 집행의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5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1997 마지막 집행자'라는 부제로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그날을 추적했다.
교도관 이윤휘 씨는 지난 1997년 12월 30일 새벽, 지금 당장 출근하라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날은 바로 대한민국의 마지막 사형 집행날이었고 이 교도관은 마지막 집행자가 된 것.
그는 "버튼 누를 때 마음이 심란했다.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한 생명이 죽음으로 간다는 생각이 드니까 내 역할에 대해 긴장도 되고 상대가 안쓰럽다고 할까 미안하기도 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대한민국의 마지막 사형 집행 1997년 12월 30일, 이날 전국적으로 23명의 사형수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리고 이후 대한민국에는 더 이상 사형 집행 없었고 이에 지난 2007년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는 대한민국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지정했다.
사형 집행 며칠 전 사형 집행을 알 게 되는 관계자들은 비밀리에 사형 집행을 위한 시설 점검을 하고 멘털이 강하고 신체가 건강한 교도관들을 사형 집행자로 선발해 집행 당일 소환했다.
그렇게 사형 집행 당일 출근한 이 교도관은 동료들과 함께 수용자 방 앞에서 대기하다 사형 집행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사형수를 사형장으로 데려갔다. 대부분의 사형수들이 난동을 피우는 이때.
지존파의 두목 김기환은 1995년 11월 2일 진행된 서울구치소에서 사형 집행에서 첫 사형수였다. 그는 사형장으로 가면서 덤덤한 모습을 보였다고.
그리고 방송에서는 사형장의 현장을 최초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집행 전 본인 확인을 하고 범죄 사실 나열 후 판결문도 읽는다. 그리고 본격적인 사형 집행이 시작되는 것.
양팔과 다리를 포증줄로 묶고 얼굴에는 흰 천을 씌운 후 목에 매듭을 단단하게 조인다. 그리고 사형 집행 버튼에 불이 들어오고 집행자들은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사형수가 앉은 의자 아래의 바닥이 열리면서 사형수가 떨어진다. 그리고 사형수는 줄에 매달려 죽음에 이른다.
이때 사형 집행 버튼을 누르는 교도관은 여러 명. 누가 집행했는지 모르도록 해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
검거 당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지 못한 게 한이다, 인간이길 포기했다고 말했던 지존파 행동 대장 김현양. 그는 대법 판결 이후 6개월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사회에 큰 악영향을 끼친 사건의 주인공이었기 때문.
그런데 그는 검거 당시와 달리 구치소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의 의중을 알 수는 없으나 겉으로는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 보였던 것.
그는 마지막으로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 외에 특별한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사형 집행 바로 직전,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로 "세상에 사랑이 잇는 줄 알았으면 살인자, 사형수가 안 됐다. 구속된 다음에 된 다음에서야 사랑이 있는 줄 알았다. 더 이상 나 같은 사람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라며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서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스물셋의 생을 마감했다.
자신의 허영심 때문에 유괴와 살인을 저질렀던 홍순영은 눈물이 범벅이 되어 유언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해자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는 유언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사형 집행은 토요일과 일요일, 국경일에는 진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형 집행을 멈추는 조건으로는 사형수가 임신부이거나 심신의 장애로 의사 능력이 없는 상태일 때.
의사능력이 있는 상태에서만 사형이 집행된다는 것을 알았던 사형수 신민철. 그는 사형 집행을 막아보려고 수면제를 준비해서 사형장으로 갔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마음을 바꿔 수면제를 교도관들에게 주고 떠났던 것. 이에 당시 사형을 집행했던 교도관의 꿈에까지 나타난 신민철. 그는 "인사는 하고 가야죠"라며 5년 동안 매일 마주했던 교도관에게 꿈속에서 인사를 남겼다고.
종교에 귀의하는 사형수들은 원하는 경우 최후의 순간까지 종교의식을 해주었다. 그리고 사형 집행 5분 후 의무과장과 검사가 지하로 내려가서 최종 사망 판정을 했다.
법의 엄중함과 판결의 무게를 체험하게 해 주고자 초임 검사들에게 사형 집행에 참여하도록 했던 검찰. 이에 사형 집행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강하다며 사형 집행에 참여한 이들의 정신적 치유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무부는 수많은 사형수들 중 누구의 사형을 집행할지 선정한다. 죄질과 수용생활 태도, 반성의 정도, 건강 상태, 당시 시대상 등을 반영해 사형을 집행할 사형수를 선정하는 것.
그리고 사형수 들는 장기나 각막을 기증하는 경우가 많은 것. 일부 사형수들은 본인의 시신 전부를 실험용으로 기증하기도 했는데 이에 사형 집행 후 시신 기증을 위한 수술도 진행되었다.
또한 가족들이 인계하지 않는 사형수들의 시신의 경우 교도관들이 장례까지 책임지는 경우가 많았다. 사형 집행 후 교도관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사우나를 함께 하는 등 사형 집행날은 동료들과 함께 하며 트라우마를 남기지 않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남은 사형수들의 장례까지 마치면 교도관들의 모든 임무가 끝나는 것이었다.
상상만으로도 힘든 업무를 하는 교도관들. 그들은 일을 그만두거나 회피하고 싶지 않았냐는 질문에 "누군가 해야 되는 거니까.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고 입회해 임무를 수행했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