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대한민국의 보물 숭례문이 무너져 내린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2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610년 만의 붕괴, 숭례문 방화 사건'이라는 부제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날을 조명했다.
2008년 2월 10일 일요일, 설 연휴 마지막 날의 그날. 재승 씨는 일을 마무리하고 오후 8시 반 퇴근길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습관처럼 바라보던 숭례문에서 의아한 장면을 목격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한 남성이 철제 사다리를 타고 숭례문 담벼락을 오르고 있었던 것.
그리고 약 5분 뒤 숭례문 앞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한 택시의 기사가 숭례문을 보고 경악했고 곧바로 신고 전화를 걸었다. 숭례문에서 갑자기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관할 지역에 있던 중부소방서에는 출동지령이 떨어졌고 소방대원들은 방송을 끝까지 들을 새도 없이 곧바로 출동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향하는 곳이 숭례문이라는 사실에도 믿지 못했다. 어떻게 숭례문에 불이 날 수 있겠냐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하지만 이들이 도착한 곳은 숭례문이 맞았고,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앞서 도착한 회현 119 안전센터 대원들의 초동대응으로 이미 숭례문은 물바다가 된 상황. 그럼에도 연기가 계속 새어 나오고 있던 것이다.
연기가 천장에서 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대원들은 천장 어딘가에 불씨가 있다고 판단했다.
원형을 보존하면서 화재 진압을 하고자 했던 대원들은 천장 내부의 불을 끄기 위해 문화재청에 연락을 해 상황을 전했다. 그리고 9시 33분 화재 비상 1호가 발령됐다.
10명 미만의 안명피해, 상황 해결에 3~8시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현장 지휘 대장의 권한으로 발령되는 비상 1호.
9시 40분경, 문화재청 측은 문화재가 조금 훼손되더라도 적극적으로 진화를 해달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에 소방대원들은 숭례문 일부를 뚫고 소화수를 넣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상 이는 쉽지 않았다. 아무리 시도를 해도 천장을 뚫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 결국 9시 55분, 화재 비상 2호가 발령되었고 인근 소방서에서 소방대원들이 추가로 출동하며 계속 화재 진압을 위해 애썼다.
그러나 도저히 지붕에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발만 동동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이때 현판 부근에서 연기가 나면서 불길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새파랗게 질린 문화재청 관계자들은 "적심에 불이 붙은 거야. 빨리 꺼야 돼"라며 지붕을 빨리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시 32분 화재 비상 3호가 발령되고 소방대원들은 현판이라도 먼저 철거하기로 하고 현판에 다가갔다. 그런데 2m 30cm의 길이에 106kg의 무게가 나가는 현판을 소방대원 둘이서 떼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현판은 철거 작업 중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테두리 일부만 파손되고 나머지는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지붕을 뚫기 위해 기와를 부숴야 하는데 너무 단단하고 지붕 위는 화재 진압을 위해 뿌린 물 때문에 잔뜩 얼어버린 상태. 쉽지 않은 진화 작업 속에 불은 계속 번지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다.
지붕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불길을 TV로 생중계와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던 국민들 모두가 마음 아파했다.
2층 누각 붕괴 직전의 상황에서 2시간을 달려 현장에 도착한 문화재청 고위 간부들은 소방본부와 협의해 2층 누각을 완전히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1층이라도 지키기 위해 2층을 파괴하기로 한 것.
그런데 그 순간 화마에 휩싸인 숭례문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벽 1시 56분 엄청난 굉음 속에 숭례문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숭례문과 같이 무너져 내린 마음은 참담하고 슬펐다. 내 집에 불이 난 것 같은 마음으로 국민들은 눈물을 흘렸고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져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끝까지 화재 진압을 위해 사투를 벌인 소방대원들은 새벽 2시 5분 숭례문의 화재를 완전히 진화했다.
90% 정도가 살아남은 1층 누각, 그러나 2층은 잿더미로 변해있었다. 단 5시간 만에 숭례문이 불에 타버린 것.
화기로부터 숭례문을 지키고자 했던 조상들의 그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화재 원인 파악을 위해 온 문화재청 관계자들은 범행에 사용된 도구들 발견했고 이 사건이 방화 사건이라 확신했다.
2층 누각 세 번째 기둥 바닥에 뿌린 시너에 불이 붙고 순식간에 불이 천장에 닿을 만큼 커져 화염이 기둥과 천장까지 옮겨 붙었던 것이다.
특히 서까래 위의 개판 사이로 불씨가 들어가서 적심에 옮겨 붙은 불. 이때 적심 층을 가득 채운 나뭇조각들이 숱의 역할을 하며 불길을 더욱 거세게 만들었던 것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화 사건의 범인은 23시간 만에 검거되었다.
숭례문 화재 사고가 발생하기 전 버스에서 누군가가 숭례문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던 재승 씨는 숭례문 화재 사고에 대한 뉴스를 본 후 곧바로 119 소방센터에 방화일 수 있다며 자신이 본 광경을 신고했던 것이다.
이에 CCTV를 확인한 수사팀은 희미하게 도주하는 모습이 찍힌 범인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러나 방화 추정 시간만 추정 가능할 뿐 범인의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다.
당시 대형 방화 사건 예상했던 강상철 형사는 방화범 자료 파일을 열어서 문화재 방화 전과가 있는 전과범들의 리스트를 추려서 담당팀에 보냈고 이에 담당 수사관들은 유력 용의자를 특정했다.
마을 회관에서 용의자를 마주친 수사관들. 용의자는 집으로 가자며 방에 들어가서 가방을 챙겨 나왔고 순순히 차량에 탑승했다. 그리고 경찰서에서 자신의 범행을 모두 시인했다.
담담하게 현장 검증에서 범행을 재현한 범인. 그러나 그는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후회나 반성은 없었다.
토지 보상에 대한 불만 때문에 앞서 창경궁에도 방화를 저질렀던 범인은 벌금 1,300만 원과 집행유예 2년형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집행유예 기간 동안 또다시 숭례문에 불을 지른 것.
책정된 금액의 5배의 보상금을 달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해도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겠다고 범행을 준비했다는 범인. 그는 자기 말만 들어줬어도 이런 일이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범인은 열차 탈선도 생각했으나 사상자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사상자가 나지 않으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끌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국보 1호에 불을 지르기로 결정했다고 밝혀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끝까지 자신의 억울함만 주장한 범인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방화 사건 5년 3개월 뒤 35,000여 명이 투입되고 예산 277억 원이 들어간 복원 작업을 모두 끝낸 숭례문이 다시 국민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해당 사건 후 문화재 방재 시스템으로 소화기 32대와 스프링클러, 화재감지기도 설치되고 인근 소방대원들은 문화재 도면을 확보하고 문화재 화재 대응 훈련도 진행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사건 당시 방화 가능성에 대해 신고를 했던 재승 씨. 그는 자신이 방화를 막지 못했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죄책감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 화재 진압 작업에 투입되었던 소방대원들은 문화재를 지키지 못했다는 무거운 마음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화재 진압을 위해 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마음은 모두 진심이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2020년 개정된 문화유산 헌정에는 "문화유산의 원래 모습과 가치를 온전하게 지키며 역사 문화 환경과 자연유산을 보호한다. 문화유산이 삶의 질을 높이는데 이바지하도록 국민 지역공동체 정부는 그 보존과 가치 구현에 힘을 모은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국민이라면 문화재의 관심을 갖는 것이 마땅한 권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