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0월 31일 방송된 '사형수 유영철'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오마이걸 멤버 미미, 배우 최덕문, 씨엔블루 멤버 강민혁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26년 만에 열린 비밀의 장소
때는 2023년 9월. 커다란 건물 한 구석에 그 누구의 발걸음도 닿지 않은 공간이 있어. 한 남자가 그곳으로 걸어가 자물쇠를 열고, 문을 열어.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청소를 시작해. 여기는 그 누구도 절대 오고 싶어 하지 않는 공간이야. 내부 구조도를 보여줄게.
구조도만 보면 잘 모르겠지? 이곳을 찍은 영상도 보여줄게.
"사형장에 들어선 사형수는 정사각형 마루판에 앉혀진다. 그 후 교도관들은 사형수가 앉아있는 마루판을 끌어 뒤에 있는 사형대로 옮긴다. 집행버튼 앞에 교도관들이 정렬한다. 드디어 마지막…"
여기는 바로, 서울구치소의 사형집행장이야.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사형제도가 존재해. 그리고 전국 교도소에 59명의 사형수가 수감 중이야. 가장 최근에 사형 선고를 받은 사형수는 2016년에 육군 22사단 군부대에서 총기를 난사해 당시 5명을 살해했던 임 모 병장.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사형이 집행된 건 19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이 집행된 그날이 마지막이었어. 그렇게 26년간, 굳게 잠겨있던 사형집행장의 문을 다시 연 거야.
그로부터 얼마 뒤, 대구교도소에 있던 한 수용자가 다른 교도소로 이감됐어. 이감은 예고가 없어. 당일 아침, 이감 직전에 통보해. 그리고 교도소 수용자의 가슴엔 번호가 새겨진 명찰이 있어. 명찰 색깔은 4가지로 구분돼. 흰색은, 일반수용자. 노란색은, 조폭 등 주의가 필요한 대상. 파란색은, 마약사범. 그리고 마지막 빨간색은, 사형수야.
이날 대구교도소에서 이감된 남자, 그의 가슴엔 빨간색 명찰이 달려있어. 사형수인 거야. 그가 이감된 곳은, 26년 만에 문이 열린 사형집행장이 있는, 서울구치소야. 이 사형수, 누구일까?
▲ 사형수의 정체
교도관들은 잔뜩 긴장했어. 이 사형수는 이전에도 이감할 때 난동을 부린 적이 있거든. 당시 교도관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아침에 출근했는데 당직 계장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이 사형수가 이송을 가야 하는데 이송을 안 간다고. CRPT(기동순찰팀) 직원들이 출동해서 대치 중에 있다고. 일단 우리 기동대 직원들을 물리고 나서, 제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앉아 봐. 네가 왜 이래?' 했더니, '짐도 싸야 하고, 정리도 해야 할 부분들이 있는데, 미리 사전에 이송 지휘에 대해서 이야기를 안 했다'는 것이죠. 미리 그 사실을 안다면, 어떤 교도소, 새로운 환경에서 또 적응해야 하는 여러가지 생각과 어려움이 있을 수가 있어서. 자살, 자해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사전에 미리 통보해 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윤휘, 전 교도관
교도관들을 긴장시킨 그 사형수에 대한 힌트를 줄게. 첫번째 '아빠', 두번째 '사이코패스', 세번째 '추격자'. 누구 떠오르는 사람 있어? 그럼, 그의 얼굴을 보여줄게.
그래,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이야.
유영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지 20년이 됐어. 유영철은 계속 독방에 수감 중이야. 수용자들에게 주어진 운동 시간은 하루 30분. 그런데 독거실 수용자들은 운동할 때도 따로 마련된 운동장에서 개별적으로 운동해. 유영철은, 운동도 거의 하지 않고 24시간 독거실에서 혼자 지내고 있대. 다른 수용자들과 접촉할 수 없는 환경에 홀로 격리된 지 20년. 그동안 자신의 죄를 조금이라도 뉘우쳤을까?
그런 그를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 있어. 아까 그 이윤휘 교도관이야. 이 교도관은 유영철과 매우 특별한 인연이 있어.
"제 기억으로는 2007년도에 그 방에 들어가서 상담을 했어요. 유영철이 혼자 수용돼 있는 방에 들어가서. 방에 딱 들어가는 순간, 밖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자동으로 잠기게 시스템이 되어 있어요.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유영철도 자기 집처럼 여기서 생활해야 하는데 사형집행 당할 때까지는. 그 안에서 어떻게 또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좀 내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들어갔기 때문에. 그렇게 뭐 두렵거나 떨리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7년동안 1주일에 거의 1번 정도…"
-이윤휘, 전 교도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교도관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상담'이야. 교도소 내에서의 난동을 막고, 추후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서 수용자들과 상담을 해.
독방에 들어가면 어떤 느낌일까. 보안상의 이유로 독거실의 정확한 크기 수치에 대해 밝힐 수는 없지만, 대략 이 정도 된다고 해.
네가 교도관이 됐다고 상상을 해봐. 이 좁은 공간에 갇힌 채 단둘이 마주 앉아서 유영철의 이야기를 듣는 거야. 그것도 7년간, 매주 4시간씩. 거기서 유영철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지금부터 조금씩 그 이야기를 알려줄게. '꼬꼬무'에서 방송 최초로 공개하는 거야.
▲ 목요일의 괴담
유영철이 체포되기 전인 2004년 7월로 돌아가 볼게. '목요일의 괴담'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목요일 새벽마다 여자들이 살해됐거든.
어느 무더운 여름밤, 사무실에 앉아 있는 정 씨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어. 정 씨는 성매매를 알선해주는 포주인데, 최근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는 여성들이 계속 생기는 거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 그런데, 이번엔 좀 달라. 이틀 전, 사라진 임 양이 타고 나간 차가, 엉뚱한 동네에서 발견됐거든. 정 씨는 가만히 기억을 되짚어봤어. 여성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7월초부터야. 일을 나갔던 다른 여성 김 양이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어.
"나 지금 납치되고 있어!"
그 말만 남긴 채 전화가 뚝 끊겼어. 정 씨가 급히 전화를 다시 걸어봤지만, 전화는 꺼져있어. 그렇게 김 양도 사라졌어. 정 씨는 손님의 연락처와 출장기록이 적힌 장부를 뒤지기 시작했어. 사라진 임 양과 김 양의 장부 기록을 보니, 손님의 휴대전화 뒷번호가 같아. 바로 '5843'. 정 씨는 업소 후배들을 소집해서, '5843' 번호를 쓰는 사람이 아무래도 여자들을 납치해서 감금하는 변태 같다고, 그 번호가 뜨면 바로 자신한테 연락하라고 했어.
다음날인 7월 15일 새벽 2시경. 공교롭게도 이날은 목요일이야. 후배한테 전화가 왔어.
"형님! 5843 떴어요! 신촌으로 여자를 보내달라는데요?"
"일단 보내준다고 하고 시간 끌어. 그놈 꼭 잡아야 해."
정 씨는 곧바로 평소 알고 지내던 형사에게 도움을 청했어. 그리고 후배들과 신촌으로 달려갔어. 그런데 그사이, 5843이 여성을 보고 퇴짜를 놨다는 거야. 다른 사람을 보내주겠다며 시간을 끌었더니, 이번엔 "홍대로 와라", "신촌으로 와라" 하며 계속 약속 장소를 바꿔. 정 씨 일행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옮겨다니며 이 5843을 찾아다녔어.
어느덧 시간은 새벽 4시. 바로 그때, 전화가 걸려와. 5843, 바로 그 놈이야. 전화를 받았더니, 신촌 그랜드마트 뒤편으로 여자를 보내달라 말해. 그런데 바로 그때, 정 씨 눈 앞에 통화를 하는 한 남자가 보였어. 5843이었어.
"어? 저놈이야! 5843! 저놈 잡아!!!"
정 씨 일행은 남자를 덮쳤어. 남자는 극렬히 반항했고 몸싸움이 벌어졌어. 그런데 남자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해. 무언가를 입안에 막 욱여 넣는 거야. 남자가 입 안에 넣은 건, 성매매 홍보용으로 만든 명함 모양의 광고 전단 9장이었어. 그걸 왜 먹으려고 한 걸까?
요청을 받고 출동한 지구대 경찰이 남자에게 수갑을 채웠어. 그러면서 "여자들 다 어떻게 했어?"라고 물었어. 그러자 남자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나와.
"내가 안 죽였어요."
여자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자신이 안 죽였다고 말하는 이 남자. 바로, 유영철이었어.
유영철이 체포된 이유는, 성매매 여성들의 연쇄 실종과 관련된 전화번호의 주인이라는 것 뿐이야. 그렇다면, 유영철이 연쇄살인범이란 사실은 어떻게 밝혀진 걸까? 지금부터 그 과정을 따라가볼게.
▲ 수상한 지갑 액세서리
유영철에 대한 조사는 마포에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에서 처음 맡게 됐어. 유영철의 첫인상은 어땠을까? 당시 조사를 맡았던 수사관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그놈 인상을 보니까 인상은 멀끔해요. 아무래도 수사관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육감이란 게 있기 때문에, 뭔가 수사를 좀 해봐야 할 사안 같다는 그런 생각은 들었어요. 2004년 7월인가 6월 무렵에, 우리 기동수사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구로, 금천, 관악 등 서울 시내 지도로 보면 서남부 지역인데, 그 지역에서 길 가는 여성을 대상으로 해서 죽이고 그런 사건이 연달아 발생해서. 그걸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이라 불렀는데, 혹시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일 가능성도 있다…"
-강대원, 전 형사
강 형사는 처음엔 유영철과 서남부 연쇄 살인 사건과의 관련성을 의심했어. 서남부 연쇄 살인 사건은,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서울 서남부 일대를 중심으로 총 13명이 사망한 살인사건이야. '목요일의 괴담'은, 이 사건 때문에 만들어진 말이기도 해. 훗날 밝혀진 서남부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은 정남규야. 정남규는 2006년에 붙잡혔어. 그러니까 유영철이 체포됐던 2004년에는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이 미제상태였던 거야. 그러니까 당연히 담당 형사들은 용의자로 의심할 수 밖에 없지. 형사들은 체포된 유영철의 전과 기록부터 찾아봤어.
유영철은 무려 전과 13범이었고, 교도소에서 3년 6개월 복역한 후 1년 전에 출소한 상태였어. 그런데, 경찰에 잡혀 온 유영철은 당당해. "전단지 삼킨 것 밖에 없는데, 왜 그러냐"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 또 유영철은 그럴듯한 변명을 해. 출소한지 얼마 안돼 괜히 엉뚱한 일에 얽히기 싫었다는 거야. 5843 휴대전화도 자기 것이 아니고 길에서 주운 거래. 이렇게 되니, 유영철을 붙잡아둘 증거가 없어.
그때 유영철의 소지품에서 지갑을 발견했는데, 거기에 뭔가 달려있는 걸 포착했어. 이 액세서리는 당시 유행하던 건데, 남자들이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떨어지는 걸 방지하고자 고리로 달고 다니던 용도래. 겉보기엔 수상할 게 없는 액세서리야. 그런데, 늘 숨겨진 작은 단서가 진실을 밝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곤 해.
"시험을 해본 거죠. 저는 글자 그대로 단순히 시험만 해본 건데, '너 이거 어디서 났냐?' 물었더니, '동대문 황학동 가면 중고물품 그런 걸 많이 팔잖아요. 거기서 이런 꼬다리가 많기 때문에 거기서 산 거예요' 그러길래 '그래? 그거 얼마 주고 샀는데?' 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얘기한 거죠. 그랬더니 '천 원 주고 샀는데요' 하길래 '진짜 이거 천원 주고 샀냐?' 했더니, '두목님이라면서요. 내가 두목님 사줄 수 있어요' 그러더라고요."
-강대원, 전 형사
다시, 이 액세서리를 볼게. 돋보기로 자세히 살펴보면, '18K' 금이라는 표시가 있어. 그런데 이걸 천원에 샀다고?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걸 감안해도, 말이 안 되는 금액이지.
"거기서 제가 태도가 돌변했죠. 네놈이 내 시험에 걸려들었다… 어이 반장 들어와! 이 카드가 3천만원짜리 마이너스 카드니까, 너 지금 황학동에 가서, 얘가 천원이라 그랬으니까, 3만개를 사와라. 내가 뭐 기동수사대 해봐야 한 달에 월급 얼마 되냐. 나 이거 때려치우고 나 일확천금 벌고 내가 그냥 그만두련다…"
-강대원, 전 형사
사실 이 액세서리, 지갑 장식용이 아닌, 여성용 발찌였어. 이를 토대로 유영철을 추궁했어. 그러자 유영철이 조금 당황한 것 같아. 강 형사는 조금 더 밀어붙였어.
당시 서울엔 또 다른 연쇄살인이 있었어. 강남구 신사동, 삼성동, 종로구 구기동, 혜화동 이 네 곳에서 대낮에 부유층 노인들이 살해된 '서울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 사건'이야. 유일한 단서는 바로 이거였어.
범인의 뒷모습이 찍힌 CCTV 영상이야. 형사들은 유영철을 뒤돌게 해서 CCTV 영상 속 인물처럼 뒷모습 사진을 찍어보려 했어. 그러자 갑자기 유영철이 조용해져.
"얼굴이 창백해지고 노래지더라고요."
-강대원, 전 형사
갑자기 유영철은 "한 시간만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해. 그렇게 한참 고개를 떨구고 있더니, 종이와 펜을 달래.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쳐.
"내가 여기 있는 사람들 다 특진시켜 주겠어! 1계급 특진!"
곧이어 유영철이 뭔가를 써내려 가. 바를 정 6개. 숫자로 따지면 30이야. 이 숫자 30은, 본인이 살해한 피해자의 숫자래.
"네가 이거 30명을 죽였다는 거야? 이거 진짜야?"
"이 상황에서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유영철은 구체적인 내용을 써내려 가. '신사동 2명, 구기동 3명, 삼성동 1명, 혜화동 2명'… 서울 부유층 노인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바로 자신이라고 자백한 거야.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어. '서강대 뒷산 1명, 봉원사 열 몇 명'… 유영철은 계속 써내려 갔어. 또 다른 피해자들의 시신을 암매장한 장소라는 거야. 이건 경찰조차 모르는 살인사건이야. 밝혀지지 않은 암수살인이지. 유영철은 무려 30건의 연쇄살인 사건을 자백하기 시작했어.
▲ 서울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 사건
시간을 1년 전으로 돌려, 2003년 10월의 어느 날. 환갑을 맞은 고 씨는 노모와 아내, 아들과 함께 구기동 단독 주택에 살고 있었어. 고 씨는 운영하던 회사를 몇 년 전에 정리하고, 얼마 전에 경비 일을 다시 시작했어. 그가 일하는 이유는, 아내에게 서프라이즈 환갑 선물을 사주려고. 아내 차가 자꾸 고장이 나는 게 영 마음에 걸렸거든.
10월 9일 목요일. 고 씨는 이날도 새벽 4시부터 출근 준비를 해. 가계부를 정리하던 아내가, 오늘 적금 만기날이라고, 저녁에 용돈을 주겠다고 해. 고 씨는 일 마치고 저녁 6시 반쯤 동네 한의원 앞에서 보자고 다정하게 약속을 잡았어. 그날 저녁, 고 씨가 일을 마치고 먼저 약속 장소에 왔어.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아내가 오지 않아. 심지어 전화도 안 받아. 한참을 기다리던 고 씨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어.
집에 가보니 마당엔 아내의 차가 있어. 그런데 초인종 소리에도 아무런 기척이 없어. 퇴근 무렵이면 아내와 어머니가 같이 저녁을 준비했는데, 어머니의 목소리도 안 들려. 다들 어디 갔나, 하며 고 씨는 마당으로 들어섰어.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어. 집 안은 조용해. 거실 스탠드를 켜보니, 벽난로 앞에 웅크린 검은 물체가 보여. 뭐지? 하며 다가간 순간, 고 씨는 온 몸에 소름이 끼쳤어. 아내가 몸을 웅크리고 쓰러져 있는 거야. 아내를 만졌는데, 몸이 이미 차가워. 그제야 주변에 아내가 흘린 엄청난 양의 피가 보여. 그리고 2층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려. 정신없이 계단을 올라가자, 계단 끝엔 아들이 숨져있어. 화장실 앞에는 어머니도 쓰러져 있어. 결혼해서 출가한 두 딸을 빼고, 고 씨의 온 가족이 그렇게 사망한 거야.
고 씨는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어. 경찰 조사가 시작됐지만,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없어. 때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가눌 수 없는 슬픔에, 때론 정체 모를 범인에 대한 공포로. 고 씨는 매일밤 잠을 이루지 못했어. 범인이 잡히기만 하면, 그놈도 내 손으로 죽이고 나도 우리 가족을 따라가겠다는 마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었어.
구기동 사건을 전후로 4건의 서울 부유층 노인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어. 이 연쇄 살인 사건의 시작은 강남구 신사동이었어. 아들 내외가 부모님 생신이라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으셨고, 집으로 찾아갔다가 살해당한 부모님을 발견했어. 범인이 방을 뒤진 흔적은 있었지만, 현금, 귀금속 모두 그대로였어. 다음이 구기동 사건이야. 역시 뒤진 흔적은 있지만, 현금, 수표, 귀금속이 그대로 남아 있었어. 강남구 삼성동의 희생자는 69세의 여성. 역시 서랍장 안에 현금과 수표 400여 만원이 그대로 있었어. 그리고 혜화동에선 80대 노인과 간병인, 총 2명이 살해됐어. 여기도 금고를 파손한 흔적은 있지만, 금품 피해는 없었어.
이 네 사건의 공통점은, 범행 장소가 단독주택이었고, 대낮에 벌어졌다는 거야. 주로 남성들이 출근한 뒤, 집에 남아있던 주부나 노인들을 노린 거야. 그리고 또 다른 공통점, 금품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거야.
지금 유일한 단서는, 당시 CCTV 영상 밖에 없어. 이것도 뒷모습 뿐이라서, 용의자 특정이 안돼. 해가 바뀌고 반년이 지나도 범인의 윤곽이 오리무중인 가운데, 묘한 추측이 돌기도 했어. 공교롭게도 사건 발생 지역명 초성이, 같은 자음으로 시작한다는 거야. 신사동의 'ㅅㅅ'. 구기동의 'ㄱㄱ'. 삼성동의 'ㅅㅅ'. 혜화동의 'ㅎㅎ'. 경찰은 다음 사건 발생지로, 수서동을 예측하기도 했어.
그렇게 범인을 잡지 못해 애만 태우고 있는데, 우연히 체포된 유영철이 엄청난 자백을 한 거야.
"네가 지금 서울의 4대 사건 굉장히 큰 사건인데, 그걸 네가 말로 해선 안 되는 거고. 네가 일부러 말을 했으니까, 직접 나하고 거기 한 번 가자. 네가 진짜 했는지 안했는지 확인해야 할 거 아니냐. 내가 직접 갈 테니까, 가자. 갈래? 가자… 했더니, '예 알겠습니다. 가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마포에서 가장 가까운 데가 구기동이니까, 구기동 가자…"
-강대원, 전 형사
경찰은 유영철을 데리고 두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난 구기동으로 갔어. 그리고 사건 발생장소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하차했어.
"'너 범행하러 갈 때 걸어갔냐, 택시 타고 갔냐?' 했더니, 걸어갔다는 거예요. '그래? 스톱. 여기서 걸어가 봐' 그놈을 앞장세우고 우리는 뒤따라갔죠."
-강대원, 전 형사
유영철이 진짜 범행 장소를 아는지, 확인해 본 거야. 유영철은 주저없이 골목 골목을 잘 찾아가. 그러더니 범행 현장인 고 씨의 집 앞에 딱 도착했어. '진짜 범인인가?' 싶은 참에, 고 씨의 집이 아닌 5m 정도 떨어진 다른 집을 지목하는 거야. 경찰을 골탕 먹이려 했던 걸까? 그럼, 여기까진 어떻게 찾아온 거지? 차에서 내려 무려 20분이나 걸어왔어. 뭔가 알고 있는 건 확실해 보여.
경찰들은 다음 사건 장소인 혜화동으로 유영철을 데려갔어. 이번에도 유영철은 혜화동 입구에서 도보로 가는데, 망설임 없이 사건 현장으로 향해. 그런데 또다시 도착해서는 다른 집을 지목해. "너 지금 장난하냐? 근데 여기까진 어떻게 알고 온 거야?"라고 묻자 유영철은 이렇게 답했어.
"전 몰라요. 그냥 뉴스에서 폴리스 라인 쳐진 장면을 보고 찾아온 거예요."
뉴스 화면을 보고 길을 찾아왔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저 밑에, 1km 전방에서 내렸거든. 그러면 TV에서 1km 전방에서부터 쭉 따라오면서 찍어줘야 해요. 이 집 찾으려면. TV는 딱 그 현장만 보여주는 거거든."
-강대원, 전 형사
유영철의 태도가 자백할 때와 180도 달라졌어. 사실 현장검증에 나서기 전, 유영철이 부탁 하나를 했어.
"제 어머니하고 여동생을 좀 불러주세요. 제가 가족 앞에서 고해성사를 먼저 하고, 다 털어 놓겠습니다."
유영철에게는 쌍둥이 여동생이 있어. 쌍둥이 동생은 유영철과 전혀 달라. 고등학교를 모범적으로 졸업하고, 번듯한 회사에 취직했거든. 경찰서에 어머니가 들어서자 유영철이 고해성사를 시작해. 느닷없는 아들의 살인 고백을 들은 유영철의 어머니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네가 사람을 왜 죽이니. 내 아들이 그럴 리 없어. 너 형사들한테 협박당한 거지? 그런 거지?"
도무지 아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아. 급기야 실신해서 병원에 실려가기까지 했어. 유영철은 쓰러진 어머니를 보고 마음이 흔들린 거야. 어쨌든, 현장검증은 완벽히 실패했어. 증거도 전혀 없어. 지금 유일한 단서는, 유영철의 자백뿐이야. 유영철의 죄를 입증할 수 있을까?
▲ 유영철의 도주
유영철이 경찰서로 돌아온 뒤, 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어. 유영철이 도주한 거야.
"유영철이 도망간 거예요. 밤 12시 다 돼서. 세찬 비를 뚫고 도망가 버린 거예요."
-강대원, 전 형사
유영철이 간질 발작 증세를 보여서 수갑을 잠깐 풀어준 사이에 도망가버린 거야. 심지어 간질 발작 증세도 거짓 연기였어.
"내가 방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니까. 큰일났다. 우리 서울경찰청 여기서 문 닫아야 된다. 우리 수사대 그냥 문 닫아야 한다… 경찰에 모든 오명을 다 씌우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놈이 진짜 범인이었다면… 밤 1시 다 돼서 도망간 놈을 이 서울 시내에 마른 바닥에 김서방 찾기지, 어디서 잡아요? 숙직하는 직원들 110명 다 소집했죠. 잡아야 하니까."
-강대원, 전 형사
기동수사대 전원이 비상 소집됐어. 서울시내 곳곳을 뒤져서 반드시 그놈을 잡아와야 해. 1팀은 유영철 어머니 집, 2팀은 그놈이 신촌에서 잡혔으니 신촌 일대, 3팀은 지방으로 도주할 수 있으니 역 주변을 살피도록 했어. 그리고 긴급 수배 전단을 배포했어. 하지만 어디서도 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아. 속은 타들어 가는데 성과 없이 시간만 흘러.
그러던 새벽 4시경, 유영철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그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고 있어. 그 모습을 잠복중이던 형사들이 발견한 거야. 그들에게 유영철이 어디 있냐고 물었어. 그러자 아무것도 모른다며, 도통 입을 안 열어. 형사들은 두 사람을 분리시켜 묻기로 했어.
"어머님, 따님이 다 얘기했어요. 그러니까 어머님도 솔직하게 말씀하세요."
딸이 불었다고 다그치자, 마침내 유영철의 어머니가 중요한 사실을 실토해. 유영철이 자취하는 오피스텔이 신촌에 있다고. 지금까지 거기 같이 있다가 헤어져 오는 길이라고. 경찰은 유영철의 오피스텔로 재빨리 들이닥쳤어. 하지만 이미 유영철은 사라진 뒤였어. 그럼, 유영철의 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깔끔하게 정돈된 일반적인 집이였어. 어느덧 시간은 새벽 5시가 넘어가고 있어. 해가 뜨고 혹시라도 유영철이 서울을 벗어나면, 체포는 불가능할지도 몰라. 당시 형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우리가 통상적으로 과학적으로 생각할 때, 도주하게 되면 일단 도심으로는 안 나갈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포 쪽에서 광화문이나 이런 쪽으로는 도주를 안 할 것이다. 반대 방향으로 도망가면, 바로 마포대교를 건너 영등포 쪽으로 가지 않겠냐 생각했죠. 제가 우리 직원한테 농담 삼아서, 당시 공중으로 신발을 높이 벗어서 올렸는데. 신발이 떨어져 보니까 신발이 영등포 방향 마포대교 방향으로 딱 떨어지는 거예요. 신발코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유영철이 있을 것이다 했었어요. 영등포 사창가 쪽에는 사실 숨을 장소가 많아요. 음침하고 이러니까 그쪽으로 도망갈 그런 게 경험상 많이 있었어요."
-김상중, 전 기동수사대 형사
마침 영등포역은 지방으로 가는 관문이니, 형사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영등포역으로 향했어. 형사들은 절박한 마음에 "유영철이 신촌에서 포주들과 몸싸움을 하며 얼굴에 멍이 들었으니, 혹시 계란을 문지르며 다닐지 모르니까 잘 살펴봐"라며, 사소한 거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어. 그때야. 형사들 차가 영등포역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 대기를 받고 서 있는데, 진짜 계란으로 얼굴을 문지르는 남자가 보여.
"배낭을 메고 양손에 검정 비닐봉지를 든 채로 계란을 들고 눈에 멍을 풀기 위해서 굴리면서 지나가는 게 딱 잡힌 거예요. 누가 보더라도 눈에 딱 띌 정도의 얼굴이었어요."
-김상중, 전 기동수사대 형사
유영철은 도주 11시간만에 다시 체포됐어.
▲ 유영철의 범죄 행각
다시 조사실로 잡혀온 유영철. 유영철은 자신의 범행을 모두 실토하기 시작했어.
"제가 졌습니다. 네, 제가 죽인 거 맞습니다."
유영철이 첫 살인을 저지른 건, 강간 등의 죄로 징역 3년 6개월을 복역하고 출소한지 불과 13일 만이었어. 그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품고 부유층을 상대로 범행할 계획을 세웠다고 해. 유영철이 처음 구속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 옆집 누나네 집에 들어가서 기타와 돈을 훔쳤어. 그때만 해도 유영철은 본인이 진짜 징역을 살게 될 줄 몰랐대. 중범죄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실형을 받게 된 거야. 그 순간,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그는, 십자가를 꺽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대.
"신이 나를 버렸다."
자기가 저지른 죄는 생각도 안하고, 신이 자신을 버렸다고 여긴 거야. 그래서 유영철은 신에 대한 보복으로, 교회 앞에 있는 정원에 딸린 단독주택에 사는 부유층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어. 그렇게 유영철은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했던 거야.
이후에 유영철이 범행을 잠시 멈춘 적이 있는데. 그건 CCTV에 찍힌 본인의 뒷모습 때문이었어. 하지만 4달 후, 2004년 3월부터 유영철의 폭주는 다시 시작했어. 다른 사람들의 집을 침입하는 대신, 성매매 여성들을 자신의 오피스텔로 부른 거야. 범행 패턴을 바꾼 거지.
3월에 1건, 4월에 2건, 5월에 2건, 6월에 3건, 7월에는 체포 직전까지 15일 만에 3건. 총 11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암매장 했어. 유영철은 피해 여성 대부분이 실종돼도 찾을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대. 직업이 성매매 여성이라서.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그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거였어. 자신보다 약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거야.
유영철은 기동수사대에서 도주하자마자 어머니와 여동생을 오피스텔로 불렀어. 그리고 집안을 청소하고, 범행 도구를 모두 버렸어. 증거를 인멸하려 한 거야. 경찰은, 과학수사를 시작했어. 혈흔 감식에 사용하는 루미놀 시약을 유영철의 집에 뿌리자, 화장실 천장과 배수구에서 살인의 흔적이 선명하게 드러났어. 그리고 집 주변에선 범행 도구도 찾아냈어.
손잡이가 짧은 4kg짜리 쇠망치. 휴대하기 좋게 유영철이 직접 제작했대. 이걸로 피해자들을 살해한 뒤에, 집에서 시신을 훼손한 거야.
살인의 증거를 모두 찾았어. 그리고 유영철도 범행을 자백했어. 다시 현장검증에 나선 유영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시신을 찾으러 간 봉원사 일대. 유영철이 지목한 곳을 파보자, 총 11구의 피해자 시신이 발견됐어. 유영철은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어. 현장검증 이후 기자들 앞에 선 유영철은 이런 말을 했어.
"이 계기로 여성들이 함부로 몸을 놀리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부유층들도 좀 각성했으면 합니다."
발찌의 주인이었던 피해자를 찾으러 간 유영철은 이런 말도 했어.
"발찌 주인공은 맞지. 그래서 생각이 나는 거야. 발찌 때문에 생각이 나는 거지. 왜냐하면 유일하게 내가 물건에 여자들 다 죽이면서 액세서리를 내 용품으로 만든 건 걔 하나뿐이야. 여자 반지를 낄 거야 뭐 시계를 찰 거야. 그것도 오피스텔에서 죽인 거니까…"
"여기서부터 5분을 올라갔어. 위로 올라가서 왼쪽으로 꺾어지라는데 저쪽을 말하는 거예요."
유영철이 가리킨 방향으로 이동했지만, 암매장한 장소를 기억 못 해 끝내 시신을 찾지 못한 피해자도 존재해. 시신 유기 장소를 못 찾아 헤맬 때, 형사가 다시 생각해보라고 보채자 유영철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이런 말도 했어.
"아이X. 똥개 훈련 시키네… 증거품이나 찾아봐요."
발찌의 주인을 살해한 후, 발찌를 빼서 자기 지갑에 단 거라고.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말해. 피해자 중에는 황학동에서 노점상을 하던 안 씨도 있었어. 여자도 아니고 부유층도 아닌 안 씨를 왜 죽였나고 묻자, 유영철은 이렇게 대답했어.
"제가 경찰인 걸 신분을, 가짜 신분을 알았습니다… 나중에 동기를 따로 밝히겠습니다."
유영철은 위조 경찰 신분증을 들고 다니며 경찰을 사칭해서 돈을 갈취하는 범죄도 저질렀던 거야. 안 씨에게 자신의 가짜 신분증이 들통나자 그를 잔인하게 살인한 뒤 인천 월미도 쪽에 시신을 유기했어.
유영철에게 살해된 피해자. 확인된 수만 모두 20명이야. 그런데 유영철이 처음에 30명이라 자백했잖아? 수사관들이 유영철에게,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죽일 수 있냐, 시신을 훼손하는게 무섭지 않았냐고 물었어.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대.
"사람을 죽이는 두려움보다 오히려 내가 지금껏 살아온 고통이 훨씬 크다."
검찰 조사 중에는 교도소를 옮겨 달라며 단식 농성을 벌이기도 했대. 처음 수감된 곳이 서울구치소였는데 당시 그곳엔, 사형 폐지를 고대하는 40여명의 사형수가 수감돼 있었어. 그런데 자기 때문에 사형 폐지 논의가 물거품이 될 거니까. 다른 사형수들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대.
재판 중에도 난동을 부렸어. 판사가 자기를 벌할 수 없다고 생각했대. "제 스스로 제 인생을 포기하고 저지른 일. 그 죗값 또한 스스로 단죄하겠다"라며, 난간을 뛰어넘어 판사들을 향해 돌진하기도 했대.
철저히 살인만을 목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사람. 일면식도 없는 노인과 여성 수십명을 죽이고도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 심지어, '내가 안 잡혔으면 100명을 살해했을 거'라 말하는 사람. 유영철은 이전엔 볼 수 없던 새로운 유형의 범죄자, 바로 사이코패스였어.
▲ 유영철의 교도소 생활
그의 감방 생활은 어땠을까? 유영철은 수감되고 얼마 뒤, 시뻘게진 눈으로 교도관을 찾았대.
"요즘 자기가 잠을 못 이룬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제가 물어보니, 그 피해자들이 밤마다 나타난다는 겁니다 귀신으로. 독거실 내에 화장실 쪽 그 위에 천장 밑에서 자꾸 피해자들의 환상이 보인다고. 3명에서 4명 정도가 계속 나타난다. 귀신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잠도 못 이루고 힘들어서, 하루 일과가 너무 피곤하다.. 이런 식으로 얘기 한 거죠."
-이윤휘, 전 교도관
사이코패스 범죄자도, 정작 피해자 환상이 보이는 건 두려웠나봐. 그럼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되는 게 아닐까.
유영철은 수감 초기 교도소에서 한 언론사 기자와 수십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어. 그 중에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적은 부분도 많아.
"그 어떤 살인이라 해도 목적 없는 살인은 없습니다. 원한이 있어서도 아니고 돈 때문도 아니고, 성을 빼앗으러 했던 것도 아니고. 이제라도 제가 밝힌다면, 전 사회를 죽이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이제 그만들 왈가왈부했으면 합니다. 사회에 대한 살인이기 때문입니다."
"색맹이라 좋은 점도 있다. 어두운 곳에서 잘 안 보인다는 거다. 사체 매장할 때마다 플래시나 핸드폰 한 번 안 가져갔지만, 칠흑 같은 곳에서도 잘 보이더라."
"2003년 출소할 당시 안정적인 직장이 있었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거라는 네 말에 그냥 피식 웃음만 나오더라. 난 출소해서 로또에 당첨이 되었더라도 아마 살인을 멈추지 않았을 거다. 오히려 그 돈으로 완벽하게 아지트라도 만들어 내 목적을 달성했을 것이다."
-유영철의 편지 내용 中
말도 안 되는 자기변명만 늘어놓았지. 게다가 이런 부탁을 하기도 했어.
"기자님, 책 하나 부탁드릴까 하는데요. '살인범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제 얘기가 실린 시사저널이에요. 좀 지나긴 했는데 구할 수 있으면 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많이 얘기가 올라갔다는데, 안 좋은 리플도 괜찮으니 출력해서 좀 부탁드립니다. 바쁘신데 죄송해요. 애들 같은 부탁이나 드려서."
피해자에게 죄책감이 없던 유영철이 아주 각별하게 생각한 사람이 있어. 바로, 자기 가족. 한때 웨딩사진 기사로 일한 적 있는 유영철은 가족들의 일상을 영상으로 찍곤 했어. 아들과 아내에 대한 애착이 엄청 강했거든.
유영철이 부탁했던 시사잡지. 그 속의 사진들이 유영철이 찍은 본인의 가족들의 사진이야.
하지만 유영철은 결혼 생활 10년 중 7년을 교도소에서 보냈어. 그는 교도소에서 강제 이혼을 당하고, 양육권도 빼앗겼어. 그런데 체포되기 나흘 전에도, 할머니 제삿날이라며 아들을 데리고 큰형 집을 찾았다고 해. 유영철이 아들에 대한 마음을 표현한 부분이 있어.
"제가 이번 만행을 저지르면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아세요? 그건 사체를 토막 내는 와중에 아들 녀석에게 전화가 온 순간이었어요. '감기 다 안 나았어 아빠?' 하며 물어보는 말이 '아빠 난 다 알고 있어. 그러지마' 하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했었어요. 하던 작업을 중단하고 너무 긴장해서, 사체 토막을 늘어놓은 채 밥을 먹었어요. 아들 녀석이 내게 주었던 정신적 위안과 행복감은 세상 그 어떤 무엇과도 비교가 안 되었다는 얘기예요."
유영철은 검거된 후 마스크에 '아빠'라는 단어를 직접 썼어. 아들은, 과연 저런 아빠를 원했을까.
▲ 끝나지 않은 범행
구기동 피해자 고 씨. 그는 유영철 때문에 아들과 아내, 어머니까지 잃었어. 소중한 가족 셋을 한 순간에 잃었던 고 씨는 유영철의 범행 동기를 듣고 더욱 기가 막혔어. 원한도, 돈도 아닌, 그냥 유영철 본인의 비뚤어진 분노 때문에 행복한 가정이 산산조각이 났어. 범인이 잡혔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어. 이 가족은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
"내가 좋았으면 당신도 날 좋아했지… 왜 먼저 갔어… 당신이 나를 좋아했으면 나를 데리고 가야지… 정말 미안해요, 미안해…"
-고 씨, 구기동 피해자 유가족
고 씨는 범인 유영철이 잡힌 후, 자신도 가족을 뒤따라 가겠다고 생각하셨대. 그런데 삶을 정리하기 전, 이런 결심을 하게 돼.
"바로 여기 이 자리에서 투신을 하려 했던 것이었는데, 용서를 해주고 나니까. 하느님의 뜻인지는 몰라도, 죽음이 삽시간에 가셨어요. 아직 딸 두 명이 있어요. 아이들을 위해서 좀 더 내가 살아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 씨, 구기동 피해자 유가족
고 씨는, 유영철을 용서하기로 했어. 그런 결심은, 용서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는 아픈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고 씨는 유영철이 사형을 면하게 해달라는 탄원서도 썼어. 그리고 유영철을 직접 만나러 교도소에도 찾아갔어. 유영철은 고 씨에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고 씨가 신앙인이었는데, 영치금도 넣어주면서 면회 오고 하는데. 그런데 면회를 안 나가는 겁니다 유영철이. 그래서 제가 방에 들어가서 유영철에게 '왜 안 나가냐? 나 같으면 가서 무릎 꿇고 반성하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텐데. 왜 그 분을 안 만나려고 하느냐' 라고 질문하니까. 가족 세 분이 피해를 자신으로부터 당했는데, 그 (살해) 과정 자체를 설명하려는 그런 의도를 보이더라고요. 어찌 그 사람 앞에서 용서를 구하지 못할망정, 그 말을 그 아버지한테 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어떻게 갖고 있을까. 저는 이 말을 듣고, 이 친구가 정말 사이코패스구나, 그때 알았어요."
-이윤휘, 전 교도관
황학동에서 노점상을 하다 살해당한 안 씨. 그는 4형제 중 장남이었어. 유난히 우애가 돈독했던 형제들은 큰 충격을 받았어. 끝내 둘째 형과 막냇동생은 스스로 세상을 떠났어. 그리고 그 어머니까지, 화병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어. 유영철이 죽인 사람은, 20명이 아니야.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내가 그때 형들 죽고 방황을 해서, 내가 막 술도 먹고. 지금 마음이 나도 언제 터질지 몰라. 나도 정신과 십몇 년 동안 약을 먹고 있고. 우리 형 잘 가는 데 산에 갔어. 가서 소주 3병 사고. 그냥 죽어야 되겠다… 죽으려고 하는데, 박스 비닐에서 뭐 바스락거려. 나중에 보니 이 강아지가, 얘가 배를 째서… 복돌아, 맞지? 얘를 누가 유기한 거야. 얘도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끌어안고 온 거야. 끌어안고 와서 지금 10년을 넘게 키우잖아… 남일처럼 생각하지 마라. 자기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 국민 여러분. 왜냐하면 자기 가족이 언제 이렇게 안 올지 모른다…"
-피해자 안 씨 동생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유가족은 여전히 고통 속에 괴로워하고 있어. 그리고 유영철이 자신의 죄를 반성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아.
"상담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20명의 부녀자들이 사망해서 검찰에 기소를 당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찾지 못한 시신이 있다'고 하면서. '그래서 나머지 시신을 어디에 묻었는데?' 경부고속도로 주변에 묻어놨대요. 현장 검증을 다닐 때, 그 지역까지 갔었대. 근데 못 찾았대 결국은. 본인 말로는 그때 당시에 한 세, 네 구 정도.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서너 명의 피해자들이 계속 교도소 방 화장실 쪽에서 보여서 잠도 못 이룬다고 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영철 같은 경우는 언제 사형 집행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을 위해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찾지 못한 시신이 있다고 한다면, 그분들이 4명이든 10명이든 간에, 지금이라도 좀 더 검찰 조사에 협조해서 그분들의 시신을 다 찾아서 영혼을 달랠 수 있도록,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시신의 어떤 유품이라도 전해줄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윤휘, 전 교도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유영철의 여죄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유영철이 입을 열어서 세상에 죽음조차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달래길 바랄 뿐이야.
지난 7월 법무부는 범죄피해자 원스톱 솔루션 센터를 개소했어. 범죄 피해자들이 일상 회복을 할 수 있도록 법률, 경제, 심리, 복지적인 도움을 주는 곳이래. 이런 시스템이 더욱 활성화 돼서 피해자들의 회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