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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끝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진짜 스포츠 영웅'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4.06.14 05:23 수정 2024.06.1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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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조오련은 어떻게 전설이 되었나.

1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그가 전설이 된 이유 -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라는 부제로 대한민국 수영의 역사 조오련의 그날을 조명했다.

1968년 11월, 서울 종로의 YMCA 건물에서 한 소년이 사정사정하며 매달렸다. 이 소년은 수영장 회원권 위조 사실이 발각된 것. 소년은 수영만 하게 해 달라며 사정을 했고, 이에 직원은 그에게 수영장 청소를 조건으로 수영장 사용을 허락했다.

오직 수영 하나 때문에 땅끝마을 해남에서 서울까지 온 소년. 그는 바로 대한민국 수영계의 레전드 조오련이었다.

어려운 형편에 생계를 위해 갖가지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연습에 매진한 조오련. 그는 다음 해인 1969년 6월, 전국체전에 출전했다. 당시 소속 학교가 없던 18세 조오련은 일반부로 경기에 출전했고, 성인인 일반부들 사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를 보던 대한체육회 회장은 그를 당장 태릉선수촌에 입촌시키라고 일렀다. 수영장이 막 만들어진 그때 태릉에 입촌하게 된 조오련은 마음껏 돈 걱정 없이 온종일 수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기록을 계속 경신했다. 한 해에 11번의 한국 기록을 깨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1970년, 제6회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당시 수영에 걸린 메달 26개 중 26개 전부를 쓸어갈 정도였던 일본에 도전장을 내민 조오련. 그는 경영 400미터에서 무려 2위와 1초 차이를 내며 아시아 신기록을 달성 금메달을 따냈다. 이는 대한민국 최초 경영 금메달이었다.

조오련은 자유형 1500미터에서도 아시아 신기록을 기록하며 우리나라 최초 수영 2관왕이 되었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아시아의 물개'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그리고 그 후부터 본격적인 수영 열풍이 시작됐다. 박태환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노민상 전 국대 감독은 조오련 키즈 중 한 명. 조오련의 서사가 밝혀지자 꿈을 안고 그처럼 되려는 이들이 줄을 이었던 것.

4년 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조오련은 또다시 금메달 2관왕이 되었다. 특히 그는 아시아 대회 신기록으로 우승을 했고, 시상대 위에는 한복과 고무신 차림으로 머리에는 태극기 띠를 둘러 시선을 집중시켰다.

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준 조오련. 그는 선두에서 앞서가면 오래 대한민국을 뽐낼 수 있으니까 1500미터 종목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아시안게임 3연패는 실패한 조오련. 27살의 그의 찬란했던 시절은 서서히 지나가고 있었다. 방콕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사실상 은퇴를 한 조오련은 이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발표를 했다.

오직 헤엄으로만 대한해협을 건너겠다는 것. 60km의 거리를 시속 3km로 갈 경우 무려 20시간을 헤엄쳐야 했다. 그리고 이를 성공시키면 그는 대한해협을 헤엄으로만 횡단한 최초의 인류가 되는 것이었다.

그의 절친했던 후배 지봉규는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을 믿었고, 이에 대한해협 횡단 팀의 감독이 되기로 했다. 물길에 밝은 선장, 그리고 코치와 감독, 기자단까지 합류한 횡단 팀이 결성되고 이들은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8개월 동안 준비를 끝낸 조오련은 마침내 역사적인 도전의 출발선에 섰다. 그는 거듭되는 위기를 극복하며 계속 헤엄을 쳤고 예상 기록을 무려 6시간 앞당긴, 13시간 16분의 기록으로 대한해협 횡단에 성공했다.

입항 절차를 마치고 부두에 그가 발을 딛자 환호가 쏟아졌다. 그를 축하하기 위한 재일 동포들이 박수를 보냈던 것. 국민적 영웅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 조오련은 대한민국 수영을 대표하는 고유대명사가 되었다.

성공적인 도전으로 평온한 삶을 즐기면 되는 조오련. 그런데 그는 20년 후인 49세에 다시 한번 대한해협 횡단에 도전했다.

한일 월드컵 앞두고 기획된 초대형 프로젝트에 조오련은 이번엔 혼자가 아닌 팀으로 도전하게 된 것. 그의 횡단 팀은 거듭된 노력으로 실력이 향상되었고 의기투합했다.

2000년 8월 12일,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 인사를 전하고 시작된 그의 도전. 기상 악화로 1차 도전은 철수. 이후 2차 도전에 나선 조오련과 그의 팀. 이들은 거센 파도와 해파리떼의 공격을 뚫고 18시간 11분 만에 대한해협 횡단에 성공했다.

그 후에도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2005년 물개가족 독도 횡단 프로젝트, 3년 후에는 민족대표 33인을 기리는 독도 33바퀴 횡단에도 도전했다. 국민에게 희망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도전을 거듭한 조오련.

그는 2010년 환갑을 앞둔 나이에 30년 만에 다시 한번 혼자 대한해협을 건너겠다고 선언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온몸을 던질 각오를 하고 훈련을 시작한 조오련. 그런데 어느 날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소식이 전해졌다.

훈련에 매진하던 그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져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편한 것보다는 도전을 좋아해 도전을 거듭했던 조오련. 그에 대해 후배 지봉규는 "형님 곁에 가서 다시 한번 수영하며 사는 그런 세상을 맞이하고 싶다. 형님이 보고 싶다"라며 애틋한 그리움을 전했다.

배는 좀 나왔지만 수영복 입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던 조오련.

그의 이야기를 들은 박태환은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던 당시 선생님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찾아뵙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의 이야기를 알게 되니 마음이 무겁다"라며 수영 후배로서 아쉽고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명성만으로 편안한 삶이 보장된 인생을 살았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조오련은 2020년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 선정되었고 체육인 중 6번째로 국립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무모해 보일지 모르지만 시작하는 순간 도전이 된다고 말했던 조오련. 이에 박태환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분"이라며 존경을 표했다. 그리고 곧 개막할 파리 올림픽에 출전할 후배들을 향해 "하던 대로 해왔던 대로만 했으면 좋겠다. 나는 열심히 응원하겠다"라고 자신의 마음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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