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그날 성형외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4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수술실의 유령'라는 부제로 권대희 의료 사망사고를 추적했다.
지난 2016년 9월 9일, 한 어머니는 큰 아들의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어머니를 병원으로 오라고 했던 큰 아들은 어머니를 3층으로 오라고 했고, 어머니가 도착한 3층은 중환자실이었다.
그리고 큰 아들은 자신의 동생이자 어머니의 둘째 아들인 대희가 중환자실에 있다고 밝혀 어머니를 충격에 빠뜨렸다. 친구 집에 다녀오겠다던 아들은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 병원에 누워있었던 것이다.
평소 턱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던 아들 대희. 학창 시절 콤플렉스인 턱 때문에 왕따를 당했고 이로 인해 트라우마까지 생겼던 것이다.
콤플렉스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찾아간 곳은 강남의 한 성형외과. 대희에는 가족에게는 비밀로 한 채 달라질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수술대에 누웠다.
그러나 11시간 후 119에 출혈 환자를 대학병원으로 이송한다는 전화가 걸려왔고, 대학병원에 옮겨진 대희는 심정지 후 심폐소생술로 겨우 맥박은 살아났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체 11시간 동안 성형외과에서 대희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심정지 시간 단 2분, 하지만 대학병원에서는 대희의 어머니에게 일주일을 못 넘긴다,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 등의 이야기를 하며 장기 기증 여부에 대한 이야기까지 해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납득할 수 없었다.
14년 무사고로 광고했던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을 받던 대희. 그의 수술을 집도했던 병원장은 다음날 아침 중환자실을 찾았고, 자신의 병원에 있을 때만 해도 대희는 위험하지 않았다며 턱 뼈가 남들보다 커서 출혈이 조금 많았을 뿐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의심스러우면 수술방에 CCTV도 있으니 다 줄 수 있다고 했고, 이에 대희의 어머니는 대희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요구했다.
수술 과정이 담긴 영상을 받은 어머니는 차마 영상을 볼 수 없었다. 이에 친척 중 의학과 법률 지식에 해박한 이에게 영상을 대신 보여주었다. 그리고 친척은 영상에 해답이 다 있다며 영상을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 한다고 했다.
7시간 30분 길이의 영상. 대희의 어머니는 고통을 감내하며 영상을 주시했다.
병원장이 수술실에 들어오며 수술이 시작되었고, 그는 20여분 후 대희의 턱 뼈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바닥으로 대희의 피가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간호조무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밀대로 피를 닦아냈고 이 행동은 한 시간 동안 여섯 번이나 반복되었다.
1시간 수술 후 병원장은 수술실을 빠져나갔다. 뼈만 잘라내고 봉합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실을 떠난 것. 그리고 곧 수술복을 입는 다른 사람이 등장했다. 병원장도 아니고 간호조무사도 아닌 그는 지혈을 시작했다. 그의 정체는 바로 섀도 닥터, 수술 기록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유령 의사였다.
이 장면을 본 어머니는 울분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유령 의사는 이후에도 나머지 수술 과정을 맡았다. 또한 대희의 출혈을 계속되었다.
다시 1시간 후 유령 의사도 수술실을 나가고 이후에는 수술모도 쓰지 않은 간호조무사가 지혈을 이어갔다. 대희의 출혈이 계속되는 중 그 옆에 의사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봉합까지 마친 간호조무사도 자리를 떴고, 잠시 옷을 갈아입은 간호조무사는 대희의 옆에서 휴대폰을 보고 립을 바르며 시간을 보냈다.
해당 병원은 소위 말하는 수술 공장이었다. 대희의 수술이 진행되던 같은 시간, 다른 수술실에는 또 다른 환자가 있었다. 동시 수술을 진행한 것.
마취의가 순서대로 수술실을 돌며 마취를 하고 그 후에는 병원장이 수술을 진행했다. 그리고 병원장이 다음 수술실로 이동하면 유령 의사가 들어와서 수술 부위를 세척하고 봉합해 수술을 마무리했다.
3명의 환자의 동시 수술이 진행됐고 대희는 두 번째 환자였다. 그리고 병원장 포함 해당 병원의 의료진들은 이에 대해 잘못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대희의 출혈량은 3,500CC의 정도. 이는 체중이 45kg인 여성의 전체 혈액량으로 대희 몸속 피의 70%가 빠져나간 것이었다.
그러나 성형외과에서 의사들은 출혈로 혈압이 떨어지자 혈액대용제를 투여했고 혈압이 일시적으로 회복되자 모두 퇴근했다. 그 후 회복실로 옮겨진 대희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급격히 혈압이 떨어졌고 이에 결국 119 신고까지 하게 된 것이다.
대희는 무엇보다 수혈이 시급했다. 그러나 대학병원 이송 전까지 수혈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병원장은 "혈액원에 혈액을 요청했지만 119가 먼저 도착해서 수혈을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거짓이었다.
119가 도착하기 4분 전 혈액이 도착했지만 의료진들은 수혈을 진행하기는커녕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사고 18일 후 중환자실에서 생일을 맞은 대희. 회생이 어렵다는 의사들의 판단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어머니. 그리고 10월 24일 병원장이 그런 어머니를 찾아왔다.
자신의 병원에 귀책사유가 없고, 대학병원 탓이라고 주장하던 병원장은 어머니에게 대학병원에 대한 고소를 집요하게 부추겼다. 그러면서 그는 형사 소송을 할 경우 자신의 병원이 무조건 이기게 되어 있고, 그렇다면 합의를 해야 하는데 합의의 경우 자신들의 병원측만의 잘못이 아니니 억울해서 100% 책임지고 합의할 수 없다는 협박인지 설득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오직 아들을 살릴 생각만 하던 어머니는 병원장의 태도에 분노했다. 그리고 병원장을 향해 제발 자신들을 힘들게 하지 말라며 오열했다.
그런데 병원장이 다녀간 다음 날 대희의 심장은 결국 멈추고 말았다. 오늘을 넘기기 힘들 거 같다는 의료진, 어머니는 결국 연명 치료를 포기하고 아들을 하늘나라에 보내주었다.
대희의 어머니는 "엄마가 우는 소리 듣고 엄마가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떠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눈물을 보였다.
의식을 잃은 지 49일째 세상을 떠난 대희. 그리고 대희의 이야기는 이후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대희의 의료 사고를 낸 성형외과는 여전히 영업 중이었으며 무사고에 대한 광고와 함께 유령 의사 없이 병원장이 수술 모든 과정을 집도한다고 홍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대희의 형이 항의를 하자 경찰을 불러 그를 내쫓았다. 불공평한 세상에서 동생을 위해 할 게 없다는 것에 절망한 그는 방황했고, 그렇게 평온했던 가정은 무너져갔다.
이에 대희 어머니는 한 달 후 성형외과 의료진을 고소했다. 모든 걸 걸고 소송에 매달린 어머니.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의료 소송에서 의료진들의 과실을 입증하기 위해 그는 의미조차 알기 어려운 의무 기록지, 감정 결과지 등을 수백 번 정독했고 CCTV 영상은 수천번 돌려보며 표를 만들었다.
그렇게 CCTV 영상의 분 단위, 초 단위로 기록한 표와 각종 자료를 경찰에 넘겼고,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와 의료법 위반 혐의로 피의자들을 검찰에 송치했다. 의료법 위반에서 금고형 이상을 받아야 취소되는 의사 면허.
하지만 검찰은 피의자들의 의료법 위반 혐의에 대해 증거가 불충 부하다며 불기소했다. 의사 면허가 없는 간호조무사의 의료 행위는 분명 의료법 위반이며 이를 지시한 의사들도 의료법 위반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어머니는 전문 기관에 감정을 의뢰했고, 6개의 기관에서 12차례 감정 결과 의료법 위반 판정이 나왔다. 그리고 경찰도 이를 인정했다.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다.
이때 어머니는 새로운 사실 하나를 확인하고 절망했다. 사건의 담당 검사와 성형외과 측 변호사는 같은 학교 같은 과 동기이자 사법 연수원 동기였던 것. 고등검찰에 항고했으나 결과는 또 기각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소 자체를 되지 않으면 피의자를 처벌할 수 없는 법, 이에 어머니는 재정신청을 해서 법원이 검찰 측에 기소 명령을 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질 확률은 0.3% 정도로 희박했다. 하늘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 이에 어머니는 매일 대희 납골당에 찾아가 대희에게 울며 빌었다. 또한 그는 매일매일 거리로 나가 1인 시위를 이어갔다.
그렇게 416일간 이어진 어머니의 1인 시위. 법원은 피의자들에 대한 공소제기를 명했다. 0.3%의 기적을 뚫고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후 진행된 1심에서 법원은 의료법 위반과 과실치사를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는 어머니의 처절한 노력을 알아주었고 그 결과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병원장에게만 징역형을 선고하고 나머지 의사들에게는 벌금형만 내렸다.
이에 어머니는 항소했고, 이듬해 항소심에서는 1심보다는 더 무거운 처벌이 내려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의료진들이 사실 관계는 인정하나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했다.
그리고 지난 2023년 1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는 법원의 결론. 이에 피고인들의 형이 확정됐다. 집도의는 실형이 확정되었고, 나머지 의료진들은 집행 유예를 받아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러나 어머니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운 7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어머니가 할 일은 끝이 아니었다. 대희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어머니는 대희의 20가지 버킷리스트를 발견했고, 이 중 "세상에 내 이름으로 된 흔적 남기기"라는 버킷리스트를 대신 이뤄주기로 한 것.
의료 사고 피해자들을 돕는 단체 대표가 된 어머니는 수술실 CCTV 의무화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고, 어머니의 노력에 힘입어 이는 지난 2023년 9월 25일부터 정식 시행되었다. 어머니의 포기하지 않은 노력이 의료법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해당 법안은 권대희법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아들 이름이 세상에 남은 것이다.
권대희법 외에도 누군가의 이름이 붙은 법안들. 그러나 이는 모두 그 누군가가 사망한 후 만들어진 법이었다. 이에 방송은 다시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면서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 달라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