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8일 방송된 '무적가족과 스물네 번째 불'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유승호, 김동휘, 이솜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대구 경산 주택가 연쇄 방화 사건
때는 2004년, 대구에 사는 도재홍 씨. 나이는 60세, 은퇴한지 5년째야. 은퇴 후 취미 활동을 하며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집에 경찰이 찾아왔어. 도재홍 씨는 소싯적 대구에서 이걸로 알아주던 사람이야.
이건 도재홍 씨가 딸의 어릴 적 모습을 그린 거야. 이렇게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사람. 사실 도재홍 씨는 경상도에서 '몽타주'를 아주 잘 그리는 경찰이었어.
"1인자라고 했거든요. 몽타주 1인자."
-권기순, 故 도재홍 경위의 아내
몽타주를 사진처럼 잘 그렸대. 그런데 퇴직한 도재홍 씨를 왜 경찰 후배들이 찾아왔을까. 이 무렵, 대구 경찰들이 총동원 됐는데 넉 달이 넘게 잡지 못하는 범인이 있었어. 피해자도 있고, 사건 현장도 있는데, 좀처럼 범인이 잡히질 않아. 유일한 단서는 하나, 용의자를 본 목격자들의 기억 뿐이야. 이런 사정을 들은 도재홍 씨는 마지막으로 도와주기로 하고, 파출소로 임시 출근을 하면서 목격자들을 하나 둘 만나기 시작했어.
"목격자 진술만 듣고, 눈은 이렇게 생겼다, 코는 이렇게 생겼다, 입은 이렇게 생겼다, 얼굴은 둥근형이다, 그런 얘기만 듣고, 종이 한 장 지우개 하나 연필 하나. 이렇게 세 가지만으로 그리셨죠."
-도연제, 故 도재홍 경위의 딸
이렇게 목격자가 있음에도 범인을 잡지 못하는 이유는 뭐였을까?
2004년 7월, 대구 남구에 사는 명자 할머니란 분이 있었어. 이북이 고향이었던 할머니는 한국 전쟁 때 피난 내려와서 자수성가 했어. 남편이랑 둘이 안 해본 일 없이 열심히 사셨대. 할머니한테 가장 큰 재산은, 2층집이야. 40년 전에 남편이 직접 지은 집이거든. 먼저 떠난 남편의 손때가 묻어 있어서 할머니한테 가장 소중한 보물이야.
사건이 벌어진 날, 명자 할머니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가, 점심쯤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어. 그런데 저만치 불길이 하늘로 치솟고 있는 게 보여. 불길한 느낌에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는 집은, 명자 할머니의 2층집이었어.
평생을 일궈온 그 보금자리가, 바로 눈 앞에서 잿더미가 되어 버렸어. 몇 시간 후 불길은 잡혔지만, 할머니의 집은 전소됐어.
그렇게 명자 할머니네 집에 불이 나고, 보름쯤 지난 8월 5일. 이번엔 대구 옆인 경상북도 경산이야. 진성현 씨 어머니 집에도 불이 났어. 부모님이 어렵게 마련해 8남매를 낳고 키운 소중한 집이었어.
"(어머니가) 마을회관에 놀러가시니까 오전에 가시고 저녁에 (집에) 들어오시니까. 제가 집에 왔을 때는 정말로 완전 폐허가 되다시피 해서 절망적인 상태였습니다. 한동안 넋을 잃고 계셨고, 충격을 받으셔서 힘들어 하셨어요."
-진성현, 8남매 중 막내
화재 시각은 오전 8시 50분. 다행히 안방과 주방까지만 태우고 진화가 됐어. 화재 원인에 대해 처음에 경찰은, 콘센트 과열이나 합선을 의심했대. 그런데 뭔가 이상해. 우선, 명자 할머니네랑 진성현 씨네 화재에 공통점이 있어. 둘 다, 할머니 혼자 사시던 집이야. 또 집을 비운 오전에 불이 났어.
2004년 6월부터 10월까지 5개월간 불이 난 곳은 무려 스물 네 집. 이 집들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어. 화재 시각이 거의 오전 시간대이고, 노령의 집주인이 있는 단독 주택에 불이 났어.
"모르죠 뭐. 어떻게 됐는지. 다 타고 없으니까. 우리도 입고 나간 작업복 이것밖에 없어요."
-김OO, 화재 피해자.
"가재도구랑 이불, 심지어 속옷까지. 전부 불에 타서 지금 갈아입을 양말이라든가 속옷까지도 없는 실정입니다."
-한OO, 화재 피해자
24번의 화재가 나면서 발생한 인명 피해는, 불행 중 다행으로 아무도 없었어. 24번 모두, 빈집에만 불이 난 거야. 그런데 피해자들은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외출했는데, 119가 출동했을 땐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고 말했다는 거야. 어떤 집은 유리창이 깨져있기도 하고, 어떤 집은 현관문이 파손되기도 했어. 24곳 모두 발화점은 안방이나 거실이야. 이거, 단순 화재가 아닌 방화야. 누군가 주택가를 돌며, 불을 지르고 있어. 2004년 대구 경산 주택가 연쇄 방화 사건이야.
▲ 이상한 범행 수법, 찾을 수 없는 단서
문제는 수개월간 방화가 지속되는데 증거가 없어. 지문, 족적, DNA가 나오지 않아. 대구 경산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어. 집 비운 사이 누가 와서 불을 지를 지 모르니까. 대구 시민들이 화재에 더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 1년 전인 2003년에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있었으니까.
"2003년도에 지하철 방화 사건, 차량 연쇄 방화 사건, 그리고 또 이거 나오니까. 대구는 맨날 불만 나냐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경찰이) 바짝 긴장하면서도 (이 사건을) 기자들한테는 안 가르쳐 줬죠. '머리 아파 죽겠다', '화재가 났는데 범인을 못 잡는다'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연쇄 방화범이 저지른 모양이다', 이런 쪽으로 계속 카운트만 하고 있었던 거죠."
-김종엽, 당시 대구일보 기자
자동차만 불 지르는 사람, 상가에만 불 지르는 사람. 이제 대구 전체가 불이라면 아주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야. 6월에 1건, 7월에 4건이었던 방화는, 8월에 11건, 점점 더 늘고 있어.
그런데 9월 중순쯤, 신고전화가 한통 결려와. 방화범이 동네에 있는 거 같다는 제보 전화였어. 골목길에 낯선 승용차 한 대가 며칠째 서있는데, 어떤 남자가 차에 앉아서 동네를 염탐하더래. 신고를 받은 가까운 지구대 경찰들이 무장을 하고 출동했어. 차 안에는 두 명이 타고 있었어. 그런데, 차 안에서 동네를 염탐하던 사람은, 알고보니 형사들이었어.
"제가 그 당시에 12년차 형사였습니다. (그 골목에서) 일주일동안 잠복을 했다고 보면 됩니다. 어느날 하루는 중국집 배달원이 지나가는 거예요. 세워서 짜장면 두개 좀 갖다 달라고 했죠. 그 후에 쾅 하더니, '꼼짝 마!' 하면서 권총을 들이대는 거예요. 먹다가 얹힐 뻔 했어요. 어떻게 여기 왔냐니까, 저희들이 매복하고 있는 장소 부근에 있는 할아버지가 일주일째 젊은 놈 둘이 움직이지도 않고 왔다 갔다 하고, 저거 혹시 방화범이 아닌가 싶어서 파출소에 신고를 한 모양이에요."
-김재성, 당시 사건 담당 형사
"제가 막내기도 해서 그런지 몰라도 너무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위에서는 왜 못잡냐고 막 쪼고 계속 또 근무는 나가야 하고 잠복해야 하고 이게 한군데만 일어나는 게 아니니까. 계속 지역이 넓어지니까 긴장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한삼석, 당시 사건 담당 형사
이 소동 때문에 온 동네방네 소문이 퍼져서, 이 형사들은 철수를 할 수 밖에 없었어. 그런데 철수 며칠 뒤, 진짜 불이 났어.
이 대범한 범인의 동선을 보여줄게. 방화가 일어난 순서대로 정리한거야. 대구와 경산을 넘나드는 넓은 범위야.
혹시 '봉대산 불다람쥐'라고 알아? '꼬꼬무'에서 다룬 적이 있는데, 2011년 울산에서 잡힌 연쇄 방화범이야. 그가 불다람쥐라 불렸던 이유는, 날다람쥐처럼 수사망을 피해 다녔거든. 이 불다람쥐가 낸 산불이, 17년동안 100건 가까이 돼. 봉대산 불다람쥐의 정체는, 50대의 평범한 직장인이었어. 봉대산 불다람쥐는, 우연히 담뱃불로 처음 불을 시작한 후 연쇄 방화로 이어갔어.
"우연히 하다 보니까 마약에 중독되듯이 불을 보면 희열이 느껴지고 기분도 좋아지고."
"한 20년 전부터 가정적인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울화병이 생겨서 울화를 소화하지 못해서 처음 시작한 것이 이렇게 됐습니다."
-봉대산 불다람쥐
그런데 이번 연쇄 방화범은 여러모로 이상한 점이 있어. 연쇄 방화범들이 불을 지르는 이유는 스트레스 해소가 대부분이래. 그런데 이번 방화범은 범행의 목적이 조금 달라 보여.
장롱, 부엌, 싱크대까지 온갖 살림살이들이 다 나와있어. 피해자들 집에서 금품도 사라졌어. 집안 곳곳에 있던 현금, 수표, 장롱에 숨긴 돌반지까지 싹 다 가져갔어. 절도범 중에 방화까지 저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데, 이 범인은 절도 후 방화까지 저질렀어.
게다가 이 범인은 훔친 물건도 남달라. 돼지저금통, 담배, 술, 면도기, 향수, 드라이기, 믹서기 등 생활용품들이야. 의아한 건, 절도품이 없는 집도 있었어. 진성현 씨 어머니 집은 사라진 물건이 없었대. 훔친 물건이 없어도 그 집에 어김없이 방화를 저질렀어. 이 범인의 목적은 금품일까, 불일까. 사라진 금품 액수는 약 3천만원. 거기에 집까지 타버렸으니, 추산 피해액은 총 6억원이 넘어.
또 이상한 건, 범인의 수법이야. 그 집에서, 옷, 수건, 이불 같은 걸 방 한가운데 수북이 쌓아두고 불을 질렀어. 그리고 그 위에 식용유, 간장, 식초, 밀가루를 막 뿌렸어. 집안 여기저기에 이 양념들을 마구 뿌려놓고 간 거야. 그리고 더 황당한 건, 범행 현장에 변을 보고 갔어. 이불 위에다가.
아직 범인은 못 잡았지만, 범행이 이어지며 조금씩 단서가 생기기 시작했어. 전소가 안된 몇몇 집에서 지문과 족적의 일부가 확보된 거야. 이제 검거는 시간 문제인 줄 알았는데… 족적은 무용지물이었어. 용의자가 어느 정도 좁혀져야 족적 대조를 할 거 아니야. 지문 조회를 해봤는데, 이것도 이상해. 일치하는 사람이 없어. 대체 정체가 뭘까. 외국인? 초범? 미성년자? 모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지문이 하나 나오긴 나왔는데 밝혀지지도 않고, 그 당시에 또 과학수사가 그렇게 발전돼 있지도 않았거든요. 그래서 단서를 찾기가 좀 더 힘들었죠."
-한삼석, 당시 담당 형사
"저도 형사 20여 년 했지만 이렇게 단서 없는 건 처음 접해봤어요."
-김재성, 당시 사건 담당 형사
▲ 목격자 진술로 만든 남녀 몽타주
수사력이 총동원 됐지만 용의자는 나오지 않았어. 그런 와중에 불은 계속 나. 속이 타들어가던 경찰은 뭘 놓친 게 아닐까, 계속해서 단서를 찾았어. 피해자들을 찾아가 또 묻고 묻던 중, 형사들의 촉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나왔어. 피해자들이 불이 나기 얼마 전에, 같은 경험을 했다는 거야. 피해자들의 공통점. 다들 밖에 '부동산 벽보'를 붙인 적이 있다는 거야.
명자 할머니가 기억을 떠올렸어. 할머니가 붙인 부동산 벽보를 보고 한 젊은 청년이 방을 보러 오겠다고 전화를 걸어왔어. 그렇게 할머니는 집에서 청년을 만났고, 청년은 집이 마음에 들어 당장 이사를 오겠다고 했어. 청년이 이사하던 날, 작은 이삿짐 하나를 갖고 온 청년은 이삿짐 차가 뒤따라 온다며 곧 도착할 거라 했어. 그런데 갑자기 이삿짐 차가 접촉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은 청년은, 현장에서 합의를 해야한다며 할머니한테 20만원만 빌릴 수 있겠냐고 물었어. 내일 바로 돌려준다고 하고, 큰 금액도 아니라, 할머니는 쌈짓돈을 꺼내 청년에게 내줬어. 근데 그 이후, 청년은 돌아오지 않았어. 그리고 청년이 두고 간 이삿짐 박스는 아무 것도 없는 빈 상자였어. 처음부터, 계획적인 사기였던 거야.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후에 그 집에서 원일 모를 불이 난거야.
피해자 중에 똑 같은 일을 당하고 불이 났다는 집이 한 두 곳이 아니야. 피해자가 통화한 상대는 모두 젊은 남성. 집 구조, 식구가 몇인지, 집은 언제 비는지 다 확인한 거야. 그 남성이 전화를 걸었던 발신지를 추적해 봤더니, 공중전화야. 더 이상 추적은 불가능했어.
사건의 실마리는, 이제 목격자들 뿐이야. 그 젊은이를 직접 만났던 피해자들의 진술, 기억을 모아 은퇴한 도재홍 경위까지 찾아가 몽타주를 그리게 된 거야. 방화하는 모습은 못 봤지만, 통화 후 집에 찾아왔거나, 목격자들이 공통적으로 기억하는 남자. 나이는 20~30대, 키는 160cm 정도. 눈코입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다보니, 몽타주가 완성됐어.
그런데, 어떤 목격자들은 "제가 본 건 여자인데요?"라고 얘기했어. 알고보니 한 명 더 있었어. 남성과 여성, 두 사람이 함께 저지른 범행이었어. 50~60대로 보이는 중년 여성, 단발 머리에 벙거지 모자를 썼다는 진술들. 그리고 남자가 그 중년 여성을 "엄마"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나왔어.
젊은 남자와 중년 여성이 함께 연쇄 방화에 절도까지 저지른다? 두 사람이 진짜 모자 관계라면, 내 아들이나 엄마한테, 함께 이런 범행을 하자고 할 수 있을까? 경찰은 그래서 이들이 실제 모자지간은 아닐 거라 생각했어. 2004년 10월, 사건 발생 4개월여 만에 용의자들의 몽타주가 대구와 경산 지역에 배포됐어.
그런데, 경찰이 수사본부를 꾸리고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가면서, 한가지 큰 변화가 생겼어. 불이, 안 나. 범행을 중단할 걸까?
놈의 마지막 방화는 2004년 10월 5일이었어. 그 후 약 보름간 9곳이 빈집털이를 당했어. 불도 안 나고, 범행 시간도 오후나 저녁 때야. 하지만 형사들은 직감했어. 범인의 시그니처가 남아 있었어. 식초, 간장, 식용유 같은 식재료들이 현장에 그대로 있었어. 수사망이 좁혀 오는 거 같으니까, 범행 패턴을 바꾼 거 같아.
▲ 드디어 잡은 범인들, 안타까운 희생
11월 5일, 이 때도 절도 사건이 일어났어. 다음날인 11월 6일이 운명의 날이야. 그날 아침, 대구 남부 경찰서 봉천지구대의 김상래 경장이야. 당시 나이는 36세, 집에는 아내와 3살배기 딸이 기다리고 있어.
밤샘 근무를 마치고 지구대를 나서려던 김 경장은 다시 돌아가서는 몽타주 전단지를 챙겨 나왔어. 가는 길에 전단지 좀 나눠주려고. 그렇게 길을 나선 김 경장이 주택가 골목을 걷고 있는데, 방금 스쳐 지나간 사람이 눈에 들어와. 희끗희끗한 단발머리에 벙거지 모자야. 본인이 들고 있는 몽타주 속 여자와 너무 비슷한 거야. 김 경장은 침착하게 말을 걸었어. "어머니, 어디 볼일 보러 가세요? 요즘 이 동네에 사건이 하도 많아서요"라고 말을 걸며 여자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 보는데, 눈코입 다 몽타주와 완전히 판박이야.
김 경장은 잠시 신원 확인을 하겠다고 했는데, 이 여성은 아무 말도 못하고 신분증도 안 꺼내. 김 경장이 다시 "어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라고 묻는 그때, 저 멀리서 한 남자가 미친듯이 뛰어와. 그러더니 전속력으로 김 경장을 덮쳤어. 몽타주 속 그 남자였어.
두 사람이 엉겨붙어 실랑이가 시작됐어. 그 때 그 남자가 "엄마 도망쳐!"라고 소리쳤어. 그리고 다음 순간, 남자가 흉기를 꺼내 김 경장을 공격했어. 김 경장은 칼에 찔린 그 상태로, 배를 움켜 쥐고 범인을 쫓았어. 칼에 찔린 몸으로 절뚝거리며 범인을 뒤쫓았는데, 점점 힘이 빠져. 150m 정도 쫓아가다가, 김 경장은 결국 그 자리에 쓰러졌어.
"지난 7월부터 넉 달 동안 대구와 경산에서 발생한 20여 건의 주택방화 사건 용의자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붙잡힌 용의자는 24살 박 모 씨와 68살 김 모 씨. 놀랍게도 이 둘은 모자지간이었습니다. 용의자들은 근처에서 근무하던 경찰관에게 붙잡혔지만, 김 경장은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다 오후 2시쯤 끝내 숨졌습니다."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임무를 다한 故김상래 경사. 36살 젊은 경찰관의 안타까운 죽음에 많은 시민들도 슬픔을 함께 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범인들은 잡혔지만 안타깝게도, 김상래 경사는 순직했어. 그런데 사건의 충격적인 전모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 유령으로 살았던 무적가족
24살의 아들 박영수(가명), 68살의 엄마 김진순(가명). 김재성 형사는 처음에, 엄마 김진순 씨가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인 줄 알았대. 조사를 하며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대라고 했더니, 없다는 거야.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니 간첩으로 의심한 거야. 알고 보니 이 모자는 무적자(無籍者), 호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어. 아들이 24살이 되도록, 출생신고도 안 돼있어. 법적으로 이 아들은,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이야. 엄마 김진순 씨는 70년대부터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로 살아왔대. 이게, 말이 되는 일이야?
초반에 사건 현장에서 지문을 확보하고도 대조군을 찾지 못했던 건, 두 사람 다 등록이 안 돼있던 거야. 대체 그동안 어떻게 산 걸까. 가끔 출생신고도 안 된 채 학대 당하는 아이들과 관련한 뉴스를 본 적 있지? 그런데 이 모자는 성인이잖아. 60대와 20대의 성인. 형사들도 난생 처음 겪는 상황이야.
불을 왜 지른 거냐 물으니 이들은 "먹고 살려고 그랬는데, 증거가 남을까 봐"라고 대답했어. 일단 두 사람이 범인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증거를 찾아야해. 모자는 경산에 살면서 대구를 오가며 범행을 저질렀대. 경찰은 두 사람을 앞 세우고 집을 찾아 갔어. 원룸촌에 있는 작은 빌라야. 여기서 형사들은 또 한 번 충격에 빠져. 형사들이 문을 여는데 고등학생 정도 되는 남자가 둘이 더 있어. 수갑을 찬 엄마를 보더니 이렇게 말해. "엄마, 잡힌 거야?"
"원룸 하나에 방이 하나밖에 없었던 걸로 아는데 고등학생 나이 정도로 보이는 동생도 있었거든요. 두 명이 있었는데, 아들 셋은 (출생 신고를 안해서) 아예 호적 자체가 없었죠."
-한삼석, 당시 사건 담당 형사
"집에 들어가니까, 동생들이 인터넷으로 게임을 하고 있더라고요. 당시에는 압수품에 노트북도 있었을 거예요. 훔친 거지. 엄마하고 우리가 압수 수색하러 들어가니까 동생들이 놀라서. 왜냐, 엄마가 유일신이거든. 아마 걔들도 엄마하고 큰 형이 절도하는 건 알았을 거예요. 저는 이런 가정도 있었나, 깜짝 놀랐어요."
-김재성, 당시 사건 담당 형사
혹시 엄마가 아이들의 출생신고도 못할 정도로 지적인 문제가 있나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어. 엄마는, 고향이 충청도이고, 젊었을 때는 산부인과에서 간호사로 근무했으며 집도 있었다고 주장했어.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가 가출했고, 그 이후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주민등록이 말소됐다는 거야. 이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은 안 돼. 엄마가 말한 병원을 찾아가 봤지만, 김진순 이란 직원의 기록은 나오지 않았어. 하지만, 확실히 확인된 건 있어. 엄마의 주변 수사를 하던 중에, 삼형제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나타난 거야.
그 사람에게 왜 출생신고를 안했냐고 묻자, 엄마 진순 씨와 친부 박 씨는 애초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는 거야.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친부 박 씨에게 이미 가정이 있었거든. 부적절한 관계로 장남 영수 씨가 태어났다는 거야. 친부 박 씨는 두 집 살림을 하며, 호적에 올려준다고 말만 해왔어. 그런데, 정말 경악스러운 건, 이 친부 박 씨의 직업이, 전직 경찰이었대. 경찰 출신 아버지를 둔 아들이 연쇄 방화범이 되고, 경찰 한 명을 죽게 만든 거야.
"경찰 아들이 현직 경찰관을 칼로 찔러 죽인 거예요. (혼외자를) 세 명이나 낳았어요. 그리곤 호적에 올리지도 않았어요. 왜 그 출생 신고도 안 하고. 그 애들은 그냥, 껍데기만 인간이지. 유령 같은 생활을 했어요. 왜 도둑질 했냐고 물으니까. '회사에 취직도 못 할 것 아닙니까. 호적이 없으니까'"
-김재성, 당시 사건 담당 형사
부모의 무책임한 결정 때문에 세 아들은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유령처럼 살아야 했어. 출생 신고가 안되면, 학교를 갈 수 없어. 엄마가 장남 영수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영수가 동생들에게 가르쳤대. 집 밖에도 잘 못 나갔어. 누가 의심하면 안되니까. 학교도 안 다니고 집에만 있으니, 당연히 친구도 없었지.
수사 중에 담당 검사가 영수 씨한테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고 물으니 "그냥 집에 있었다"고 했어. "학교 다니고 싶지 않았어요?"라고 물으니, 영수 씨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어. "가고 싶었어요. 학교 담벼락에서, 동네 애들 학교 가는 거 구경했어요."
학교 뿐이겠어? 아파도 병원에 못 가지. 의료 보험이 없으니까. 군대도 못 가. 법적으로 영수는 없는 사람이니까. 아이들이 어렸을 땐, 엄마가 공사장 식당에 나가 돈을 벌었대. 영수도 커서는 공장에 다녔어. 근데, 돈 떼이기 십상이었어. 신분증이랑 통장을 왜 못 가져오냐며, 죄 짓고 숨어다니는 거 아니냐며, 부당하게 돈을 받지 못해도, 어디 신고를 할 수도 없었어.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이 가족은 범죄로 먹고 살기 시작했어.
'꼬꼬무'가 이 네 모자가 실제 살았던 집의 주인을 어렵게 만났어.
"처음에 계약할 때는 그 집 아버지 이름으로 했거든요. 그런데 주민등록번호도 엉터리예요. 엄마 있고 아들 세 명인데 인물은 엄청 좋아. 아들 셋이. 월세는 30만원 받았는데, 집에 오니까 뉴스 나오는데 그 집 엄마가 나오는 거예요. 집에 전화해서 별 일 없냐고 물으니, 아무 일도 없다고 하면서 월세는 꼬박꼬박 줘요. 안 미뤘고."
-당시 네 모자의 집주인 부부
방 두 칸에 월세 30만원. 네 명이 살기에 좀 좁았지만, 그냥 형편이 안 좋은 줄로만 알았어. 집주인은 이 가족이 연쇄 방화범일거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했대.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사비를 들여 집에 인터폰을 설치했대. 그리고 유난히 수도 요금이 많이 나왔대.
"방마다 계량기 달려있는데, 나중에 보니까 물을 엄청 쓴 거예요. 수도세가 많이 나오고 '아 이상하다' 했는데, 불내고 이러면 빨래 많이 했을 거 아닙니까. '이래서 그랬겠구나' 생각이 들었죠."
-당시 네 모자의 집주인 부부
네 모자는 이웃들과 마주쳐도 고개를 푹 숙이고 대화도 나누지 않았어. 하지만 끈끈함은, 어느 가족보다도 강력했대.
제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 봤어? 온 가족 구성원들이 도둑질, 보험사기, 조건만남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서 같이 생활비를 마련해 사는 내용이야. 밖에서는 온갖 나쁜 짓을 하는데 집에 들어오면 이 사람들이 그렇게 다정하고 화목해. 이들 가족도, 비슷했던 거 같아.
"(가족이) 똘똘 뭉쳐서 남 믿을 사람 아무도 없고, 아들이 (엄마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그런 눈초리더라니까요."
-김재성, 당시 사건 담당 형사
▲ 진짜 훔치고 싶었던 것
경찰의 압수수색 결과, 네 모자의 집에서는, 형사, 화장품, 믹서기 등 절도품들이 발견됐어. 식료품도 들고 나왔어. 쌀 40kg, 깨 한 말, 고춧가루 다섯 근 같은. 머리 자를 때가 되면, 미용 가위를 훔치고, 화장품이 떨어지면 화장품을 훔치고, 찬바람이 불면 오리털 점퍼를 훔쳤어. 그리고 피해자 집을 나서기 전, 식용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어. 그리고 훔친 물건을 들고 집까지 버스를 타고 귀가하곤 했대.
그리고 이런 것도 있었어. 보통 절도 품목에 잘 없는 물건이야. 신분증, 통장, 도장, 학생증… 같은 것도 훔쳤어. 영수네 가족은 신분증이 없으니. 가족들 또래로 보이는 피해자들의 신분증을 갖고 다니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급하면 병원도 가고, 남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도용하며 살았을 거야. 또 절도품 목록 중에는, '명예 대학생 수첩', '포항공대 졸업 기념 메달' 같은 것도 있었어. 이들은 피해자들의 삶도 갖고 싶었던 걸까.
네 모자 집에는 범행 대상을 물색하며 빼곡히 적은 메모들과 함께, 영수의 일기장이 발견됐어. 온 나라가 월드컵 준비로 시끌벅적하던 2002년 새해 첫날 쓴 일기야.
"내년에도 타종식을 보겠지. 그때쯤이면 난 또 어떤 모습일까? 내가 원하는 모습,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을까? 사실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모습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오늘도 내일도 내 인생을 충실히 살 것이다. 후회스럽지 않기 위해서."
-장남 영수의 일기 中
네 모자의 범행에 대해, 연쇄 방화를 오래 연구한 전문가에게 분석을 요청했어.
"연쇄방화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 단독범행입니다. 왜냐하면 범죄라는 것을 저지르기 위해서는 공통의 이익이나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어떤 특정한 욕구를 갖고 불을 저지르고, 그런 것을 반복해서 같이할 공범을 찾기는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거죠."
-박형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쇄 방화는 아주 사적이고 과잉된 감정이 필요한 범죄래. 그런데 자기와 똑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을 서로 원하는 타이밍에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게다가 오로지 증거 인멸을 위해 불을 질렀다는 주장도 앞뒤가 안 맞는데. 증거 인멸보다 더 중요한 심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절도했을 때 증거를 인멸하려면 장갑을 끼면 되잖아요. 다른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불을 질렀다는 건 평소에 억눌려 있는 감정을 '나는 힘이 없지만 불이 도와주면 할 수 있어' 증거인멸이라는 합리적인 행동 이면에 범죄자의 감정적인 측면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인 거죠."
-박형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그리고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행동은, 아들이 주도했을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엄마 김 씨의 의지나 판단이었을 수도 있대. 김 씨는 대부분의 피해자들과 나이가 비슷했어. 그녀 입장에서 범행 장소는, 자신과 남의 생활이 얼마나 다른지 느끼는 곳이었을 거야. 내가 갖지 못한 평화로운 가정. 이들이 진짜로 훔치고 싶었던 건, 그런 평범한 삶이 아니었을까?
▲ 비로소 얻게 된 '신분'
영수네 가족은 결국, 김 경장을 마주친 그날, 붕괴되기 시작했어. 아직 10대인 두 동생을 남겨둔 채, 모자는 구속됐어. 범행할 때 그토록 대범했던 영수는, 구속된 후 상당히 불안한 모습을 보였어. 더욱이, 김 경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몸에 이상반응까지 나타났대.
"(아들은) 정신이 붕 떠 있는 이런 상태였습니다. 계속 딸꾹질을 해서 대화가 잘 안될 정도로 딸꾹질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딸꾹질이 반복되는데, '아 저 사람 저러다가 죽지 않겠느냐' 굉장히 제가 불안하더라고요."
-소칠용, 모자의 국선 변호사
이들 모자가 한 범행은 사기, 절도만 40회, 방화는 24회. 그런데도 영수는 피해자보다 엄마와 동생들 걱정에 더 전전긍긍했어. 사회와 세상엔 내 가족뿐이었던 거야.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죄나, 피해보상을 하지 못한 영수 모자에게는, 이런 판결이 나왔어.
"부모의 무책임함으로 호적에 등재되지 않은 채 성장하였던 관계로 극히 빈한한 생활을 하여오던 중 범행에 이르게 된 사정은 인정된다. 그러나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후 40여차례나 범행을 반복하면서 무고한 많은 피해자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엄청난 정신적 재산적 피해를 입게 되어 중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 피고 박영수를 무기징역에, 피고 김진순을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에 처한다."
-판결문 내용 中
故김상래 경장은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어린 딸, 사랑하는 아내와 영원히 이별하게 됐어. 집을 잃은 명자 할머니는 빈소를 찾아가 눈물을 흘렸대. 괜히 본인 때문에, 젊은 경찰이 목숨을 잃은 거 같다고.
"아직 눈에 선합니다. 그 분이 복도에서 만나도 제가 선배니까 인사성도 밝고 매사에 참 솔선수범하는 친구였는데 정말 안타까운 죽음이에요. 그 분 생각하면 정말 눈물 나려 합니다."
-김재성,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그리고 수십명의 피해자들의 고통도 상당했어. 집 고칠 돈이 없어서, 그 해 겨울 복지관이나 친척집을 전전했던 분들이 많았거든. 피해자 진성현 씨가 이 사건으로 받은 보상금은, 시청에서 준 30만원이 전부였어. 당시만 해도 이런 범죄 피해자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었거든. 피해자들 대부분이 이 네 모자의 사연을 듣고, 참 복잡한 심경이었대. 원망스럽고 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짠한 마음이라서.
"그런 분한테 우리가 보상을 요구한다든지 그런 걸 할 수 없는 입장이잖아요. 피해 입은 걸 한마디로 말하면 '재수 없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으니까. 단순한 방화범인 줄 알았더니만. 참 이런 사건이라서…"
-진성현, 연쇄 방화 피해자
아이러니 하게도 재판 과정에서 이들 가족이 비로소 얻게 된 게 있어. 엄마 김 씨는 주민등록이 살아났고, 세 아들 모두 주민등록과 호적이 생겼어. 그토록 갖고 싶었던 신분을, 24번의 방화 끝에 얻게 된 거야. 네 모자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집행유예를 받은 엄마 김 씨는 경산으로 돌아갔어. 집주인 부부에게 별다른 설명 없이, 그저 "면목이 없다"라고만 했대. 그 후로도 몇 개월간 두 아들과 살다가, 이제 다른 곳으로 가겠다며, 깨끗이 집을 치우고 나갔대. 그날 이후로 어디로 갔는지, 감옥에 있는 장남은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