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손재은 기자] 어둠이 짙게 내려앉으면 지포라이터의 '딱~ 딱~' 뚜껑을 여닫는 특유의 소리와 함께 블랙 슈트 차림을 한 정체불명 한 남자의 실루엣이 등장한다. 이 남자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누군가는 피를 흘리며 고통을 호소하다 눈을 감았고 안방극장은 순식간에 차가운 기운으로 가득해졌다.
이를 강신효가 연기해냈다. 지난 16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조작'(극본 김현정, 연출 이정흠)에서 문신남(김진우) 역을 맡아 긴장감 유발자로 활약했다.
극중 문신남은 믿음원 출신으로 비선세력 흑막 명령에 복종하는 용병. 극 초반에는 얼굴도 공개되지 않았다가 중반부에서 공개됐다. 한무영(남궁민 분)의 형 한철호(오정세 분)를 비롯해 수많은 인물들을 죽였고, 그 때마다 아무런 감정을 못 느끼는 것처럼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냉기를 뿜어냈다.
그러다 마지막 회에 가서야 자신이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처연하게 털어놓으며 정체를 밝혔다. 급기야 자결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강렬함까지 남겼다. 문신남의 이름이 김진우라는 것도 결말에 공개될 정도로 철저히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이 같은 문신남의 어둠을 벗어낸 강신효는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조작'에 연기 잘하는 선배 배우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행운과 시청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함이 묻어났다.
“이정흠 감독님이 '육룡이 나르샤' 인연으로 날 불러줬다. 사실 출연 전 문신남 역할이 부담이 많았다. 얼굴이 처음부터 나온 것도 아니고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상황에 얼굴이 공개되고 실망하면 어쩌지 걱정을 했다. 그런데 다행히 좋아해줘서 감사할 뿐이다. 사실 애초에는 특별 출연으로 중간에 죽는 거였다. 미팅을 했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끝까지 가자고 했다. 그래서 6~7회에 얼굴이 등장하고 마무리까지 가게 됐다”
강신효는 '조작'을 촬영하는 동안 문신남이 철통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인물이었던 만큼 숨어 지내야 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이정흠 PD의 뜻에 따라 리딩에도 참여하지 않을 정도였다.
“정말 외로웠다.(웃음) 외롭게 혼자 촬영해야 했다. 세트 촬영할 때 모든 배우 퇴근하고 난 촬영에 들어갔다. 그 덕에 선배 배우들과 친해질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다. 종방연에서 처음 본 분들도 있었다. '조작'에서 혼자 떨어진 느낌이었다. 리딩도 참석 못하고 회식도 못했다”
그 뿐이 아니다. 문신남은 자신의 감정을 말 대신 표정으로 이야기해야 했다. 그 표정이라는 것이 대부분 무표정을 유지했으니 연기하기 까다로운 인물이었다. 거기다 블랙슈트만 입는 단벌 신사이기도 했다.
“이정흠 감독님이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라고 했다. 한여름에도 슈트 입고 다니지만 땀나면 안 되는 인물이라고 했다. 의상도 단벌이었다. 그래서 딱 한 벌의 수트를 맞춰서 그 옷만 입고 촬영을 계속했다. 마지막 회에 처음으로 다른 옷을 입었다. 그 모습을 스태프들이 보더니 그제 서야 내 나이대로 보인다고 할 정도였다. 물론 내가 노안인 것은 있지만(웃음)”
강신효가 언제나 특별한 대사 없이 차가운 무표정을 짓고 있고, 대부분 혼자 촬영해서 그 촬영이 그 촬영이었겠구나 예상할 수 있지만 기억에 남는 신들은 있었다. 단번에 궁평항 신과 자결 신을 꼽았다.
“궁평항 신 경우 삼척에서 촬영했는데 한무영과 기자들이 모여 있을 때 먼발치에서 문신남이 보고 있는 모습을 촬영해야 했다. 그 장면을 찍고 스태프들과 철수 하려는데 이정흠 감독이 날 불러서 이석민(유준상 분)에게 '궁평항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문자를 보내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게 왜 나지?', '얼마나 빅픽처 드라마인걸까?' 생각하며 멘붕이 왔었다. 하물며 스케줄 표에도 민 형사 신으로 돼 있었다. 그런데 이게 다 보안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결국 촬영을 하고 모든 스태프들은 배우진에게 알리지 말라 함구령을 받았는데 다음날 유준상 선배가 '문자 보낸 것 너지?'라며 묻더라. '함구령을 받은 상황이라 모르겠다' 했는데 '너면 죽는다. 너 때문에 여기저기 다니고 이게 뭐냐'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문신남의 자결신 경우는 시청자들에게도 임팩트가 강한 장면이었다. 강신효는 자신의 마지막 신이기도 했던 이 장면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준비도 철저히 했다.
“마지막 신은 대 만족이었다. 감독님이 사람을 너무 죽여서 죽긴 죽어야 한다 해서 많은 상상을 했는데 한무영과 높은 곳에서 싸우다 자결하는 모습을 생각했었다. 그 보다 더 훌륭한 장면을 만들어줘서 감사할 뿐이다. 촬영할 때 힘든 점은 많았다. 한낮 더위는 여전했는데 에어콘도 없는 곳에서 남궁민 선배와 액션 신을 촬영해야 했고, 그에 이어 감정까지 표출해야 했다. 한철호 이야기를 할 때는 후회한다는 느낌을, 정체가 노출되면 자결하라는 슬픈 감정을 주고 싶었다. 감독님과 상의 끝에 감정이 가는대로 연기를 했다. 정말 죽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숨을 참고 얼굴에 힘을 줘 미간의 혈관을 보이도록 했다. 목에 주사를 꽂을 때도 거울 보며 연습을 한 것들이 있었는데 촬영 때 써먹었다. 힘든 것보다는 슬펐던 신이다”
이 같은 연기를 할 수 있던 데에는 선배 배우들의 도움도 컸다. 특히 가장 많이 붙었던 남궁민에게는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남궁민 선배가 너무 좋았다. 많이 챙겨줬다. 내가 목을 조르고 때리고 하는 신이 많았는데 남궁민 선배가 더 해도 되니까 세게 하라고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나는 아플까 걱정을 많이 하고 고민도 했는데 오히려 부담없이 하라고 격려해 줬다. 마지막에 유일하게 감정 표출을 하는 신에서도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응원을 해주기도 했다”
강신효의 말에 의하면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했다. 그렇게 '조작'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그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특별출연이었는데 마지막까지 장식을 잘 해줄지 몰랐다. 조연이고 악역인데 죽으면서 그 정도 마무리를 잘 해줘서 감사할 뿐이다. 마지막 대본 받고 소름 돋았다. 종방영때도 선배 주연 배우들이 '문신남이 주인공이었다'고 말해줬는데 그게 좋으면서도 한편으로 부담스럽고 민망했다”
강신효는 2012년 영화 '러시안 소설'로 데뷔해 드라마 '아이리스2', '유나의 거리', '육룡이 나르샤', '엽기적인 그녀' 등을 통해 배우로서 한 단계 한 단계 올라오고 있다.
“이렇게 천천히 인정받길 바랐다. 한번에 잘되면 좋지만 처음 연기할 때부터 천천히 올라가자 했다. 연극영화과 나온 동기나 선배 봐도 작품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문득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롤 모델이 조승우 선배다. 중학교 2학년 때 비디오 빌리러 갔다가 '하류인생'이 나왔는데 주인아저씨가 '조승우 닮았다'는 말을 했었다. 그 때부터 동경했고 조승우 선배가 등장하는 뮤지컬도 보러 가고 했다. 나는 조승우 선배처럼 영화 뮤지컬 드라마 하는데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길게 오래 가고 싶다. 나중에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하지만 강신효에겐 숙제가 남아있다. 연거푸 어두운 역할을 했던 터라 이미지가 무겁고 묵직한 쪽으로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밝은 역할을 해보고 싶은데 어두운 것만 하다 보니 이런 역만 찾아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원래 성격이 밝은 편이라 어두운 모습보다는 더 잘 할 수 있는데 안타깝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멜로나 로맨스도 도전하고 싶다”
강신효의 말대로 작품 속에서 어두운 이미지를 쏙 뺀 밝은 모습을 한 번 보고 싶기도 하다. 실제 성격에 걸 맞는, 딱 맞춤옷 같은 역할로 시청자들과 만나길 기다려본다.
사진=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손재은 기자 jaeni@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