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강경윤 기자] 뮤지컬 '이프덴'을 선택한, 그러니까 시쳇말로 '영업당한' 이유는 배우 정선아와의 인터뷰가 결정적이었다. 기자들 여러 명이 한 시간을 쪼개서 질문을 해야 요즘 인터뷰의 녹록지 않은 사정은 인터뷰를 하는 쪽과 받는 쪽 모두에게 말의 깊이를 보장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정선아와의 인터뷰는 한 지 몇 달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그녀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대화의 몰입감을 올리며 유쾌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정선아의 출산 이후 복귀작이자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창작뮤지컬 '이프덴'을 선택한 동기, 그리고 특별한 애정을 드러낸 답변이 특히 강렬했다.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재연 개막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너무나 반가웠을 만큼 말이다.
뮤지컬 '이프덴'은 도시 계획을 전공한 30대 후반 엘리자베스가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이후 중고 취업준비생이 돼 뉴욕으로 돌아온 뒤 벌어지는 두 가지 이야기로 진행된다. 원점 회귀한 엘리자베스 앞에는 모든 것들이 선택을 해야 할 것들이다. 현실과 이상, 안정과 도전 등 관념적인 것에서부터, 오늘 저녁에 뭘 먹을지 아니면 다이어트를 위해서 한 끼를 건너뛸지 등 지극히 사소한 것까지 말이다.
뮤지컬 '이프덴'은 영화 한 편으로 뚝딱 만들어도 될 만한 흥미로운 소재와 그에 상응하는 힘 있는 스토리텔링이 강점이다. 러닝타임 165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엘리자베스의 두 갈레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뜻밖의 비극적 사건에 비명을 지를 뻔할 정도로 놀라기도 하고, 난데없이 찾아온 행운에 크게 공감하기도 한다. 우리네 삶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이프덴'에서 정선아는 '안경'이란 최소한의 장치를 가지고 엘리자베스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누가 뭐래도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는 폭발력 있는 고음이다. '이프덴'에도 그런 게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만 언급하기엔 부족하다. 미래를 포기하고 두 아이의 엄마로 들어선 '리즈'를 표현하는 정선아의 연기에 솔직히 많이 놀랐다. 슬픔으로 휘청이는 여성, 모진 비극을 이겨내는 담대한 모성 등이 감정을 울렸다. 분명 기대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극에서 족히 80%를 채워나가는 정선아의 체력과 열정에 감탄하기도 했다.
'이프덴' 곳곳에 배치된 다양성은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풍부하게 한다. 이야기는 2000년 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하지만 무대가 진행되는 이곳은 2024년 한국이 아니던가. 성 지향성, 여성의 낙태 결정권, 출산과 경력 단절, 도시 개발과 환경오염 등 때때로 논쟁적인 소재이지만 명백하게 우리 사회에 실존하는 다양한 인간의 군상과 우리가 빚어내는 숱한 갈등이 무대 위에서 재현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관객의 상상력을 무한히 넓히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끝없이 던지게 한다. '이프덴'의 주제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관통하는 중요한 질문인지 다시 한번 절감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터뷰에서 배우 정선아가 힘 있게 전하려고 했던 출산 이후 복귀작으로 '이프덴'을 선택했던 이유에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프덴'으로 정선아가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인정을 받았던 이유도 함께 말이다.
2022년 한국뮤지컬어워즈 5관왕을 받은 뮤지컬 '이프덴'은 내년 3월 2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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