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4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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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미국서 '징역 100년형'을 받은 한인…그가 누나의 남친을 죽인 이유는?

강선애 기자 작성 2024.09.13 12:35 조회 2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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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2일 방송된 '징역 100년형의 굿 선(good son)'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최영우, 방송인 강주은, 바이올리니스트 대니구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시카고에서 일어난 한인 총격 사건

때는 1993년 9월 25일, 미국 시카고. 주택가의 한 차고 안 어두운 구석에 한 남자가 몸을 숨기고 있어. 공포에 질린 이 남자의 품 안에는 권총이 있어. 이 남자의 이름은 앤드류 서. 19살 한인 교민이야. 앤드류는 왜 총을 들고 있는 걸까. 사건의 시작은, 끊임없이 앤드류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누나 캐서린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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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오두베인이 나를 때려! 나 좀 구해줘!"
"오두베인은 우리 집안의 원수야. 대체 뭘 망설이는 거야!"
"앤드류, 이건 우리 집안의 아들로서 네가 해야 할 임무야! 제발 네가 복수를 좀 해줘!"

앤드류를 향한 누나의 호소 속에 계속 등장하는 이름 오두베인. 그는 누나 캐서린의 오래된 남자친구야. 누나는 앤드류에게 '오두베인은 집안의 원수'라며 복수를 해달라고 애원했어. 그 복수는, 오두베인을 죽이라는 거야. 앤드류는 지금, 혼돈의 시험대 위에 서 있어. 하나뿐인 누나를 보호하기 위해 피의 복수를 행할 것인가, 아니면 살인이라는 엄청난 죄 앞에서 인간의 양심을 지킬 것인가의 사이에서. 그 고뇌의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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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서의 약혼자가 시카고 자신의 집 차고 밖에서 총에 맞아 살해됐습니다. 서 씨의 동생 앤드류는 누나 캐서린이 자신을 구타하는 남자친구를 살해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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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자신의 남자친구를 살해한 한 여인을 보고 계십니다. 그녀는 자기 남동생을 설득하여 자신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하게끔 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앤드류는 결국 오두베인을 총으로 쏴서 살해했어. 앤드류와 그의 누나 캐서린 남매 이야기는 미국 전역에 '살인남매'라고 알려졌어. 그런데 이 사건에는 앤드류는 미처 몰랐던,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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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게 된 범행 동기가 25만 달러에 달하는 우리 형의 생명보험을 받기 위함을 알아냈습니다."

-케빈 코론, 오두베인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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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서는 지난 가을 이후로 도주 중입니다. 그녀는 살인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시카고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섬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죽음의 플롯. 정말 누나는, 동생을 속였던 걸까? 정말 동생은 속아서 살인을 하게 된 걸까? 앤드류 죄에 대한 법원의 심판 결과는, 무려 '징역 100년형'이 나왔어. 아메리칸 드림이 악몽으로 변한, 최악의 비극적 스토리야.

'꼬꼬무' 제작진은 오랫동안 앤드류 측과 연락을 해왔고, 마침내 그를 직접 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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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앤드류 프린스 서. 한국 이름은 서승모 입니다. 열여덟 살 먹은 서승모, 앤드류 서였습니다. 이 사람이 이 사람이 됐습니다. 이제."
-앤드류 서, 징역 100년형을 받은 남자

꿈의 나라인 미국에서 100년형을 선고 받은 살인자 앤드류 서. 그가 풀어놓는 '그날'의 이야기야.

▲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서

시간을 더 앞으로 돌려볼게. 때는 1976년. 한 남자가 잔뜩 긴장하며 굵게 그어진 선 앞에 서 있어. 여기는 미국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의 입국 심사대야. 남자는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온 가족과 함께 막 미국땅을 밟았어. 이 남자는, 앤드류의 아빠 서윤명 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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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서윤명 씨, 엄마 강태숙 씨. 일곱 살 딸 서해성, 두 살 된 아들 서승모. 아주 단란해 보이는 네 가족이야.

시카고는 뉴욕, LA와 함께 미국 3대 도시로 꼽히는 곳이야. 1970년대는 미국 대 이민의 시기였어.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서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었어. 그 중에 앤드류네 가족도 있었어. 시카고에 도착한 윤명 씨는 아이들에게 영어 이름도 지어줬어. 딸은 캐서린, 아들은 앤드류라고.

그런데 이 가족에게는 슬픈 사연이 숨겨져 있어. 캐서린 위로 오빠가 한 명 더 있었어. 바로 장남 병철이. 앤드류네는 한국에서 서울 을지로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어. 1970년대 서울시내 아파트에서 살 정도면, 잘 사는 집이었지. 앤드류 부모님은 두 분 다 명문대를 졸업했고, 아빠는 장교 출신의 은행원, 엄마는 약사였어. 남부러울 것 없는 이 가족에게, 첫번째 비극이 닥쳤어. 초등학교 3학년이던 첫째 병철이가 잘 놀다가 아파트에서 추락한 거야. 머리를 크게 다친 병철이는 뇌사 상태에 빠졌고, 부모님은 안타깝게도 큰아들 병철이의 인공호흡기를 뗄 수 밖에 없었어. 가족은 큰 슬픔에 잠겼어. 특히 가족의 대가 끊겼다고 생각한 아빠 윤명 씨의 충격이 컸어.

얼마 후 윤명 씨는 아내에게 아들을 하나 더 낳자고 말해. 아내는 이 이야기를 듣고, 펄쩍 뛰어. 마흔이 넘은 나이에 어떻게 애를 더 낳냐면서. 하지만 윤명 씨는 아들을 못 낳을 거면 이혼이라며 강경한 입장이야. 어쩌겠어. 엄마는 의약품의 도움을 받은 끝에, 겨우 다시 임신에 성공했어. 그렇게 앤드류가 세상에 태어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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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앤드류의 탄생을 누구보다 기뻐했어. 건강한 아들이 태어난 것도 기쁜데, 죽은 첫째 아들 옆구리에 몽고반점이 있었는데, 똑 같은 위치에 앤드류도 몽고반점이 있는 거야. 그러니 얼마나 좋았겠어. 그렇게 앤드류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을 잇는 끈 같은 존재가 됐어.

하지만 윤명 씨 부부는 병철이를 잃은 땅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어. 그래서 머나먼 땅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한 거야. 미국 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야. 부부 둘 다 영어실력이 그리 좋지 않았어. 게다가 미국에는 아는 사람도 연고도 없어. 그러니까 한국에서의 경력, 지위, 자존심 다 버리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어.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장의 일자리 뿐이었어.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며 돈을 모으고 모았어. 그렇게 4~5년 열심히 고생하니, 어느 정도 목돈이 생겼어. 부부는 그 돈으로 작은 잡화점을 차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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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어리기만 했던 아이들도 무럭무럭 자랐어. 어느새 앤드류는 부모님의 통역관 역할을 하고 있어. 엄마아빠보다 영어를 훨씬 잘하니까. 앤드류는 학교가 끝나면 곧장 부모님의 가게로 가. 그리고 물건 정리, 가게 청소, 영어로 손님 응대도 했어. 그 후에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하는 생활의 반복이야.

"새벽에 같이 일어나서 도매상 같은 데 가고, 같이 물건 같은 거 사러 가고. 부모님을 위해서 제가 많은 통역을 했으니까요. 늘 부모님 곁에서 도왔어요. 부모님이 저희 가족을 위해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할 수 있게요. 아버지가 밤낮 자랑을 많이 했죠. 조그마한 꼬마가, 어린애가 비즈니스맨이라고 웃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하면서 우리 아들이라고. 제가 아들이니까 무조건 당연하게 해야 하잖아요. 그게 옳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원해서 한 일이었죠."
-앤드류 서

참 착한 아들이지? 그렇게 온가족이 고생한 끝에, 드디어 집을 장만했어. 아빠는 기분이 너무 좋았어. 집도 장만하고 아이들도 잘 커가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거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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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다 짐 싣고 밥통 하나 갖고, 구경하러 가고 여행하러 갔죠. 가족과 같이. 그 가족이랑 같이 있는 것이 얼마나 반가웠었는지. 같이 있으면서 짜증내고 소리 내고 그래도, 같은 가족들이니까. 너무너무 반가웠습니다."
-앤드류 서

▲ 심각한 부녀 갈등

그런데,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겉보기와 달리, 속으로는 문제가 있었어. 가족 중에 크게 부딪히는 두 명이 있었거든. 바로 아빠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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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은 자유로운 성격의 10대 '아메리칸 걸'이었어. 아빠는 캐서린의 옷차림부터 하나하나 다 마음에 안 들어. 그래서 아빠가 지적을 하면, 또 캐서린은 순종적인 성격이 아니야. 두 사람은 마주치기만 하면 스파크가 튀어. 집안일을 도우라고 부모님이 말씀하시면, 앤드류는 "알겠어요"라고 대답하는 '굿 선(Good Son)'이야. 그런데 캐서린은 "그걸 내가 왜 해야해요?"라고 질문을 하고 이유가 납득이 돼야 행동해. 아빠는 캐서린의 이런 태도가 용납이 안 돼 불같이 화를 냈어. 엄마가 가운데서 중재하려 해도, 소용이 없어. 집안은 맨날, 아빠와 캐서린의 갈등으로 전쟁이야.

"누나는 그저 아메리칸 걸이 되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당연히 아버지는 누나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길 바라셨죠. 아버지는 밤낮 딸을 원하는데, 딸은 여자가 되고 싶으니까. 그 사이에서 문제가 생긴 거죠."
-앤드류 서

부모님은 착안 아들 앤드류만 예뻐하고, 캐서린은 못마땅한 시선으로 대해. 그럼 캐서린은 또 엇나가고 화내고. 악순환의 연속이야. 그러던 어느날, 결정적인 사건이 터져.

집으로 걸려온 전화를 아빠가 받았는데, 상대는 캐서린의 라틴계 남자친구였어. 근데 이 남자친구의 전화 예의가 너무 버릇이 없었어. 아빠는 딸을 불러 또 꾸짖었어. "어디서 이런 놈을 만나고 돌아다니는 거야!"라며. 그러자 캐서린은 "나 좀 내버려 둬! 간섭 좀 그만해! 여기 한국 아니고 아메리카라고!"라며 반항했어.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아빠는 캐서린에게 손찌검을 했어. 캐서린도 아빠한테 대들고 할퀴어. 급기야 아빠 가슴에서 피까지 흘러. 피를 본 아빠는 자제력을 완전히 상실했어. 아빠는 창고로 가더니, 석유통을 가져 왔어. 그리고는 라이터를 들고 "더는 이 꼴 못 본다. 같이 죽자"고 말했어. 엄마가 달려들어 겨우 라이터를 뺏고 아빠를 진정시켰어.

"우리가 애를 잘못 키웠어. 캐서린 쟤는, 우리 딸이 아니야."

아빠는 한숨만 쉬고, 캐서린은 구석에서 훌쩍훌쩍 울고 있어. 이렇게 극단적인 부녀 사이의 갈등. 시간이 지나면, 좀 해결될 수 있을까?

▲ 비극의 시작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빠가 자꾸 속이 불편한 걸 느꼈어. 근데 일을 쉴 수가 없어서 아빠는 병원을 안 갔어. 괜찮겠지 하며 약을 아무리 먹어도, 영 효과가 없어. 겨우 짬을 내서 병원에 갔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들었어. 단순한 복통이 아니었던 거야. 아빠는, 위암 진단을 받았어. 그것도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래. 이제 겨우 살만해졌는데, 하늘도 무심하지. 이민 온지 9년 만에 가족에게 두번째 비극이 찾아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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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아버지가 진작에 치료를 받았더라면, 암에 걸리지 않았을 거고. 그러면 저희 가족은 다른 길을 걸었겠죠.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어요. 나의 아버지는 슈퍼맨이었어요. 제 아버지는 너무 강했기 때문에, 수술 당일에도 병원으로 혼자 운전해서 가셨습니다. 건강하고 근육질의 사나이였던 아버지가, 그로부터 한 달도 되지 않아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아프고 창백하고 뼈만 남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에도 아버지는 엄지척을 해주셨어요. 아버지를 사랑했기에 그런 모습을 보는 게 마음 아팠어요."
-앤드류 서

엄마는 이 와중에도 일을 쉴 수가 없으니, 열 한살 된 앤드류가 아버지를 극진히 간호해.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을 잇는 끈 같은 존재였던 앤드류. 앤드류는 진짜 끈으로 효심을 보여줬어. 그의 감동적인 효심은 교민 신문에도 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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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군은 밤이 되어 잠을 잘 때는 자신의 손과 발을 묶어 아버지의 손발과 연결시켜 아버지가 노끈을 당기면 곧바로 깨어 시중을 들 수 있도록 했다."

-당시 교민신문 기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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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아버지를 사랑해서, 아버지를 어떻게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을까, 그것 때문에 한 거죠. 다른 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빠니까. 우리 친아버지니까. 어떻게 내가 사랑 안 하겠습니까."
-앤드류 서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두 달만에 세상을 떠나셨어. 아버지는 눈을 감으며 앤드류에게 "엄마를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기셨어.

"어머니는 아버지를 정말 사랑하셨고, 아버지가 전부였죠. 어머니가 1985년 당시 아버지의 장례식에 비디오 촬영하는 사람을 고용해서 녹화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달 동안, 그 영상을 반복해서 보시며 매일 밤 눈물로 잠들었어요. 그걸 바라보는 게 너무 힘들었죠. 저는 어머니를 달래려 노력했어요. '엄마 괜찮아요 견딜 수 있어요' 하면서..."
-앤드류 서

그럼, 캐서린은 어땠을까? 캐서린은 아빠의 병실에 면회 한번 오지 않았어. 임종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잠깐 들렀다 간 게 전부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졸지에 엄마는 타국에서 홀로 아이 둘을 키워야 해. 미국에서 약사 시험을 보려 했지만, 영어의 문턱을 넘기가 너무 힘들었어. 엄마는 작은 세탁소를 열었어. 이른 아침에 세탁소 문을 열고, 청소하고, 손님을 맞이 해. 세탁물을 받고, 세탁기를 돌리고, 다림질을 했어. 그리고 밤늦게 가게문을 닫아.

이런 엄마의 곁을, 든든한 아들 앤드류는 항상 지키고 있었어. 그런데 캐서린은 주로, 용돈이 필요할 때만 세탁소에 나타나. 앤드류는 그런 게 못마땅했지. 엄마한테 '누나 용돈 주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어. 그런데 엄마는 차마 그러지 못했어.

▲ 엄마의 죽음

오직 자식 밖에 모르는 엄마의 보살핌 아래,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가며, 앤드류네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갔어. 앤드류는 어느새 8학년이 됐어. 한국의 중학교 2학년 나이야. 개학 첫날, 앤드류는 깔끔하게 단장하고 학교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어. 그리고 기분 좋게 하교해서, 평소처럼 엄마의 세탁소 앞에 도착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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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 모든 게 변했습니다. '괜찮겠다 이제. 견디고 있었다. 다 살아나갈 수 있겠다',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얼마 안 갔습니다."

-앤드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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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세탁소 앞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경찰도 출동해 있어. 거기서 앤드류 눈에, 누나의 남자친구 로버트 오두베인이 보였어. 사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엄마 가게까지 온 게 의아해. 게다가, 누나가 오두베인의 품에 안겨 엉엉 울고 있어. 도대체 무슨 일일까? 그때, 오두베인이 앤드류에게 다가와 이야기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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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베인이 '지금 너랑 얘기해야겠어. 어머니가 사고가 났어' 그래서 저는 '알았어요, 전화해 볼게요. 해결하면 돼요. 괜찮아요. 어머니를 아침에도 봤는걸요'.. 아침에 봤으니까 괜찮다고. 얼마나 다쳤겠느냐고. '차 사고 났느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다른 사고가 있었다고. 그러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그걸 이해를 못했어요 내가. 엄마가 죽었다는 말이 무슨 뜻이지? 엄마가 돌아가신 게 말이 안 됐어요. 그렇게 제가 엄마가 돌아가신 걸 알게 되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앤드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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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의하면 55세의 엘리자베스 서가 여러 번 찔린 채 세탁소 뒤쪽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형사들은 단서를 수집하는 중입니다. 경찰은 강도가 원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서의 지갑이 없어졌습니다. 경찰은 오늘 밤 퇴근길과 내일 오전 출근길에 행인들에게 목격자가 없는지 조사할 예정입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한 손님이 세탁소에 왔는데, 문은 열려있는데 사람이 없더래. 느낌이 이상해 세탁소 안을 둘러보니, 안쪽에 엄마가 쓰러져 있었대. 바닥에 피가 흥건한 채로. 엄마는 무려 37차례나 칼에 찔렸어. 대체 누가 엄마한테 이런 짓을 한 걸까? 현장에서 없어진 건 엄마의 지갑 속 현금 100달러 뿐이었어.

당시 경찰은 가족인 앤드류와 캐서린도 조사했어. 앤드류는 엄마가 살해당한 그 시각 학교에 있었고, 캐서린은 오두베인과 아침까지 함께 있었어. 수소문을 해봐도 목격자도 없고, 범인의 윤곽이 좁혀지지 않아. 그렇게 남매는 둘만 남아서 엄마의 장례를 치러야만 했어. 미국은 장례식 때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애도하잖아? 그런데 엄마는 시신 상태가 너무 처참해서, 관을 열 수 조차 없었어. 앤드류는 믿기지가 않았어. 아빠가 돌아가신지 2년만에 엄마까지 돌아가셨으니까. 가족의 세번째 비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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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로 가장 먼저 다시 가서 청소를 한 사람은 저였어요. 제 인생에서 기절할 수도 있었던 상황 중 하나였죠. 모든 범죄 현장이 그렇듯이 누군가는 청소해야 하죠. 로버트 오두베인도 거기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아직도 세탁소 안쪽 모습이 기억이 나요. 몇 주가 지났기 때문에 모든 피가 말라서 응고되어 있었어요. 옷이 땅에 붙어 있었고, 피로 인해 분홍색으로 변한 하얀 셔츠, 다른 옷들이 땅에 흩어져 있었어요. 양동이와 스펀지로 청소했던 게 기억납니다. 모든 것을 닦아내야 했고 그래서 모든 것이 피로 범벅되고 분홍색이 되어있었죠. 그리고 물로 그 피를 닦아내던 냄새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공기 속에 철의 냄새가 났어요. 아직도 느껴지네요. 저는 어린아이였어요. 13살, 8학년 소년이었으니까요. 제가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었어요. 여전히 어려워요. 50살이 되었는데도 말이죠. 그 소년이 겪은 일은 상상할 수도 없죠. 하지만 그 아이는 버텼어요. 견뎌냈죠."
-앤드류 서

더 속상한 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범인 검거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는 거야. 오두베인은 앤드류에게 '경찰은 바보라서 절대 범인을 잡을 수 없다'라며, 희망을 버리고 빨리 이 일을 잊어버리라 충고해. 누나도, '백인이 아닌 아시아인 사망사건이라 경찰이 열심히 수사를 안해줄 거다'라며 그게 현실이라고 말했어. 엄마를 살해한 범인을 결국 잡지 못한 채, 미제 사건으로 남고 말았어.

▲ 앤드류의 보호자, 누나 캐서린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신 그날,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집으로 들어왔어. 바로 오두베인. 세탁소의 사건 현장 흔적이 정리되기도 전에, 오두베인과 캐서린은 엄마의 방을 차지했어. 누나는 오두베인과 함께 들어와서, 엄마의 물건들, 옷장 속 엄마의 옷들도 모두 정리했어. 앤드류의 기분은 엄청 나빴어. 하지만 크게 항의를 못했어. 캐서린은 이제 18세가 넘어서 법적으로 성인이거든. 그럼 캐서린이 앤드류의 유일한 보호자인 거야.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상황. 현실로 닥친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캐서린은 부모님의 집을 팔고 이사를 결정해. 그럼 돈을 아끼기 위해 집을 좀 좁혀 싼 곳을 얻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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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예전 집, 오른쪽이 새 집이야. 번화가에 위치한, 전보다 더 좋은 집을 선택했어. 캐서린은 심지어 집에 인테리어도 다시 싹 하고, 가구도 최고급으로 바꿨어. 뿐만 아니라, 캐서린은 시내의 나이트클럽도 인수했어. 사업 동반자는, 남자친구 오두베인. 두 사람은 약혼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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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은 평소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던 오두베인에게, 고급 양복과 벤츠 자동차까지 사줬어. 캐서린은 그 돈을 다 어디서 났을까? 돈은 여기서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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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보험 계약서야. 엄마의 사망보험금으로 80만 달러가 지급된 거야. 지금 한화 가치로 30억 원 정도 되는 거액이야. 근데 원래 보험금의 수익자는 앤드류로 되어 있었어. 캐서린은 한 푼도 상속받을 수 없었어. 하지만 앤드류는 미성년자잖아. 캐서린이 앤드류의 후견인으로서 돈을 관리하며 마음대로 쓴 거야.

앤드류는 이런 변화들이 굉장히 혼란스러워. 불만이 쌓이고 쌓이던 어느날, 앤드류는 누나에게 크게 대들었어. "누나 혼자 결정하지 마"라면서. 캐서린은 코웃음을 쳤어. "애송아, 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넌 그냥 아이로 살면 돼"라고. 캐서린은 앤드류를 집에서 내쫓아버렸어. 추운 겨울밤이었어. 앤드류는 눈물을 훔치며, 발길이 닫는 대로 달렸어. 걸음이 멈춘 곳은, 공원 안에 있는 큰 나무 아래였어. 이 나무는, 아빠가 어릴 적 앤드류와 같이 놀아주던 나무야.

앤드류는 나무를 바라보며 한참을 울었어. '앞으로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누나와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 거지? 왜 나만 이런 삶을 살아야 해. 엄마 아빠, 왜 나만 두고 갔어'라며 하늘을 원망했어. 그러다 그 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어. 차가운 바람에 눈을 떠보니, 사방에 눈이 쌓였어. 갈데가 없는 앤드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그 사이 캐서린도 진정이 됐는지, 문을 열어줘. 그리고 누나는, 잊을 수 없는 말을 건네. 'Be a kid(아이가 되어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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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내게 말했잖아요. 'Be a kid' 다시 아이처럼 살라고 했어요. (그전까지) 아버지의 아들이었고 집안의 남자였고, 11~13세 때였지만 집안에 뭐가 고장 나면 고치고, 마당 잔디를 깎았고, 집안 페인트칠하는 엄마를 도왔고 장도 봤어요. 그게 당시 제 삶의 의무였죠. 책임을 벗어나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한 사람으로서 성장하라는 의미였던 거 같아요. 그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 같았어요. 그 순간, 나는 누나에 대한 적의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남동생이 되었죠. 다시 아이가 되어 동네에서 자전거 타고 다닐 수 있겠구나, 다시 웃고 행복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앤드류 서

방과후 시간을 집안일을 돕는데 다 쓰지 않아도 되는 아이. 집안 살림 걱정 대신, 학교에 다녀오면 마음껏 놀아도 되는 아이. 어른이 할 걱정을 하느라 어린이의 꿈을 억누르지 않아도 되는 아이. 그런 아이로 살라고 누나 캐서린이 말한 거야. 엄마아빠한테 불효만 해서 미웠던 누나가, 앤드류에게 뜻밖의 자유를 선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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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캐서린은 앤드류에게 주로 백인들만 가는 사립 고등학교에 가라고 했어. 누나는 앤드류에게 "넌 인기있고 다재다능한 학생이 될 거야. 아시아인이라고 기죽지 마. 외향적으로 행동해. 백인 애들처럼 미식축구도 하고, 학생 회장도 해"라고 했어. 앤드류는 누나의 말처럼 했어.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학급 대표에, 4학년 때는 총학생회장에 당선됐어. 완전 '핵인싸'야. 키도 크고, 말도 잘하고, 리더쉽도 뛰어나고, 공부도 잘해. 아시아 학생들은 주로 수학동아리에 가입하곤 하는데, 앤드류는 미식축구 동아리에 가입했어. 거기서도 주축 멤버였어. 백인 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학교 생활을 했어. 누나 캐서린의 말처럼.

이 시기에 캐서린도 부유한 젊은 상속자이자 사업가로 승승장구 했어. 인수했던 나이트클럽이 아주 잘 됐거든. 그리고 미스코리아 시카고 예선 대회에도 나갔어. 입상은 하지 못했어.

누나의 남자친구 오두베인도, 마음에 안 들었던 첫인상과는 달라졌어. 자동차 운전, 오일 교환하는 법 같은, 아빠가 가르쳐 주는 필수지식들을, 마치 큰형처럼 앤드류에게 가르쳐줬어. 누나한테도 잘해주는 거 같아서, 동생은 마음이 놓였어.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 날에는, 오두베인의 가족들이 앤드류도 집에 초대했어. 거기서 시끌벅적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게. 혼자 있을 앤드류를 가족처럼 잘 챙겼어. 앤드류는 이제야 평범한 삶을 되찾은 듯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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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그리고 앤드류는 미국 동부에 있는 명문 대학교에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했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모두 여읜 불우한 가정환경을 딛고 성공한 이민 2세. 전도유망한 이 청년, 앤드류는 대학생활도 아주 훌륭했다고 해.

앤드류는 여름방학을 맞아 시카고 집에 왔다가, 곧 대학으로 돌아갈 참이었어. 누나 캐서린이 가기 전에 같이 저녁을 먹자고, 중요한 할 얘기가 있다고 앤드류를 불렀어. 남매는 식당에 마주 앉았어. 그런데 누나가, 말을 할 듯 말 듯 입을 못 열어. 평소의 캐서린답지 않게 망설여. 한참을 망설인 끝에 드디어 캐서린이 이야기를 꺼내. 엄청 충격적인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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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비밀이 있는데, '엄마를 살해한 사람을 알고 있다'는 거예요. 그거 들으면서 말도 안됐어요 나한테.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무슨 말 하는 거냐'고. 엄마를 살해한 사람을 알고 있다고. 그래서 '누군데?' 그랬더니. '화내지 말라고. 오두베인이,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엄마를 살해했다'고…'"
-앤드류 서

엄마를 죽인 범인이, 누나의 남자친구이자 엄마가 돌아가신 직후부터 6년째 같이 살고 있는 그 오두베인이라는 고백이야. 앤드류는 그 사실을 언제 알았냐고, 왜 이제 말하냐고, 왜 지금껏 신고하지 않았냐고 누나한테 물었어. 이해가 안가는 점 투성이야. 이어진 캐서린의 말은 더 충격적이었어.

캐서린이 오두베인을 처음 만난 곳은 헬스클럽이야. 오두베인이 매니저, 캐서린은 트레이너였어. 그러다 오두베인이 실직을 한 적이 있대. 돈 걱정을 하는 오두베인에게 캐서린이, '만일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유산이 있어서 괜찮다. 그러니 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는 거야. 유산 이야기를 듣자 오두베인이, 자기가 모든 걸 처리하겠다고 하더니, 곧 어머니를 살해했대.

앤드류는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왔어. 필름처럼 그날의 장면들이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가. 엄마가 살해당했던 그날, 내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던 그 손, 바닥에 고인 엄마의 피를 내 손으로 닦아낼 때 별일 아닌 듯 옆에 서있던 그 사람의 표정. 엄마가 돌아가시자마자 우리집 안방을 차지했던 그 놈이, 우리 엄마를 죽인 범인이라고? 앤드류는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아. 누나가 왜 그런 사람을 감싸주는지도 이해할 수 없어. 캐서린은 경찰에 신고하면 안된대.

"누나 말은, 그 사람은 나하고 같이 있었다고 말했고, 나는 그 사람하고 같이 있었다고 말했으니까. 한 사람이 걸리면 양쪽이 걸린다고. '내가 왜 거짓말 했냐'고 하니, 그 사람 때문에 했다고. '아 진짜 누나 미쳤다'고… '너가 신고하면, 누나 없어진다'… 그렇게는 살 수 없었어요. 누나 없이 어떻게 살아요?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고 누나도 없어질 거라고. 내 어깨에 부담이 많이 있었습니다."
-앤드류 서

오두베인과 캐서린은 서로가 서로에게 알리바이가 되는 관계야. 오두베인이 체포되면, 캐서린도 공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거야. 유일한 가족인 누나마저 체포돼서 나만 홀로 남게 되면 어떡하지. 앤드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붙잡고 고민에 빠져있어. 그런데 캐서린이, 뜻밖의 해결책을 제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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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 앉아서 햇빛이 막 내려오고, 앉아서 혼자 생각했어요. 고민하면서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누나가 나오면서 마주쳤는데 '야, 엄마 위해서 복수 해야 돼'"
-앤드류 서

캐서린이 말한 복수는, 오두베인을 없애라고 살인을 교사한 거야. 앤드류는 말도 안된다고 펄쩍 뛰었어. 오두베인이 아무리 나쁜놈이라도, 살인이라니. 앤드류는 캐서린의 말을 뿌리치고 학교로 돌아갔어. 그런데, 그때부터 캐서린한테 끊임없이 전화가 걸려와.

"앤드류, 오두베인이 나를 때려! 그리고 내 돈을 다 빼돌리고 있어. 우리는 파산할 거야."
"어떻게 우리 엄마를 살해한 사람을 그냥 놔둘 수 있어? 제발 네가 복수해줘."

6년동안 그렇게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서, 이제야 집안의 남자로서 나서달라니. 계속 망설이는 앤드류에게 누나는 이렇게 말했어.

"Do this for mom!(엄마를 위해 복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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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은 끊임없이 동생을 종용했어. 이게 캐서린의 당시 통화기록이야. 캐서린은 앤드류에게 짧은 기간동안 66통이나 전화했어.

"누나는 매일 6~10번씩 저한테 전화했어요. '앤드류 이거 해! 이거 해!' 전화가 계속 울리더라고요. 계속, 계속해서요. 넌 아들이라고, 엄마를 위한 거라고. 그렇게 얘기하니까. 어떻게 됐는지는 몰라요. 믿었어요. 아직도 이해가 안 돼요. 제 이성적인 사고가 그 정보를 그렇게 처리했는지요. 그냥 마비가 된 거죠. 엄마를 많이 생각했어요. 엄마가 혼자 그 세탁소 뒤에서 바닥에서 35번 찔림을 당하면서 피를 흘리면서, 내가 있었으면 이런 문제가 안 생기는 건데… 어떻게든지 내 책임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마음이 막 들면서, 이걸 해야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 순간에는 그 말이 나한테 이해가 됐어요. 말이 되더라고요.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지만, 그게 제 동기였어요."
-앤드류 서

▲ 엄마를 위한 잘못된 복수

1993년 9월 25일 토요일. 그날 시카고에는 비가 내렸어. 검은 옷을 입은 앤드류가 시카고 공항을 나서고 있어. 캐서린이 마중 나왔어. 그리고 앤드류에게 총을 건네.

"내가 오두베인을 차고로 나오도록 유인할 거야. 그때 네가 쏘면 돼. 확실하게 두 발을 쏴."

이렇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고 캐서린은 자리를 떠나. 앤드류는 혼자 운전을 해서 오두베인이 있는 집으로 향했어. 이때 앤드류의 심정은 어땠을까? 가면서도 고뇌와 갈등이 계속 됐어. "내가 뭐하는 거지? 지금이라도 돌아가!"라는 생각과, "엄마를 살해하고 누나까지 괴롭히는 그 놈을 내 손으로 처단해야 해"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교차됐어.

시카고의 캐서린과 오두베인이 살고 있는 집 차고로 앤드류가 조용히 들어왔어. 앤드류는 발길을 돌리지 못했어. 차고에 몸을 숨기고 때를 기다렸어.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는데, 깨진 거울이 보여. 거울 속에 낯선 나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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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에 계속해서 계속해서 엄마가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이 생각나더라고요. 피를 흘리면서 죽은 거요. 누나가 제게 소리 지르는 게 들렸어요. '엄마를 위해서 해야 돼!' 어째서인지 제 목소리도 들렸어요. '너 이러는 거 아니야, 이건 네가 아니야'… 그러다가 엄마랑 누나의 두 목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어요. 저는 그 모든 목소리를 조용히 시켜야 했어요. 누나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어요. 저는 그 19세 소년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근데 저는 약했어요. 바보였죠. 제가 한 일이지만 제가 왜 그랬는지는 설명할 수 없어요. 그날 도망쳤어야 했는데. 그냥 도망쳤으면 괜찮았을 텐데. 누나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체가 자꾸 생각났죠. 자신의 피 웅덩이 속에서 죽도록 내버려졌죠. 제가 닦았던 그 피. 그게 저를 이끈 거예요."
-앤드류 서

어느덧 해가 기울어. 그때야, 딸깍.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마당에 불이 들어와. 뚜벅 뚜벅, 발소리가 들려. 오두베인이 차고로 들어오고 있어. 앤드류는 권총을 들어서 오두베인의 머리를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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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서의 약혼자가 시카고 자신의 집 차고 밖에서 총에 맞아 살해됐습니다. 그녀는 오두베인에게 자신의 차에 문제가 생겼으니 도와달라고 하며 그를 차고로 불러들였습니다. 살인용의자로 캐서린 서와 남동생 앤드류 서에게 영장이 신청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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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정황은 더 악화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서 씨의 동생 앤드류는 누나 캐서린이 자신을 구타하는 남자친구를 살해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자기 남동생을 설득하여 자신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하게끔 했습니다."

"캐서린 서는 그녀의 약혼자 로버트 오두베인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두베인은 서 씨의 남동생 앤드류에게 총살되었습니다. 배심원은 서 씨가 남동생에게 살해를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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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따라다니는 비극 앞에, 신을 원망했던 앤드류. 복수심과 절망에 사로잡혔던 19세 소년은, 결국 1급 살인범이 됐어. 그리고 앤드류에게는 징역 100년형이 선고됐어.

아무리 누나가 설득했다고 해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한 명의 성인이고, 범행에 동의한 적극적인 공모자라는 판단이었어.

▲ 사라진 캐서린

그럼 살인을 사주한 누나 캐서린은 어떤 판결을 받았을까? 그런데, 캐서린의 마지막 재판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어. 캐서린이 앉아있어야 할 의자가 비어있어.

재판 중에 캐서린이 도망을 간 거야. 캐서린은 보석금을 내고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었어. 알고보니,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직후에 갑자기, 값비싼 고층 아파트로 이사를 했어. 그리고 이웃들에게 자신을, 부동산 컨설턴트인 '카시아 케인'이라고 소개를 하고 다녔어. 이름을 바꾼 거야. 살인교사 혐의로 재판 중인 캐서린이.

판사는 캐서린이 없는 상태로 궐석재판(당사자 한쪽이 출석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하는 재판)을 진행했어. 결국 캐서린에게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선고됐어. 그런데, 캐서린은 왜 도주한 걸까? 사실 경찰조사 단계에서 캐서린에게 불리한 내용이 하나 밝혀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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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오두베인의 보험증서야. 사망보험금 25만달러의 수익자는 캐서린으로 되어 있어. 앤드류가 모르는 또 다른 진실이 있는 걸까? 그리고 캐서린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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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여인은 캐서린으로 보이지? 근데 이름이 달라. '티파니 에스카다'. 이 사진은, 1995년 12월 하와이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를 마친 후, 티파니 에스카다와 남자친구 켈머 켈리 백이 찍은 사진이야. 에스카다는 살인 재판을 피해 하와이로 도망쳐 위장 전입한 시카고 도망자 캐서린이었어.

캐서린은 하와이로 도주해서 신분을 세탁했어. 가족회사를 운영하는 젊은 사업가 티파니 에스카다로. 티파니와 에스카다는, 캐서린이 좋아하는 두 브랜드 이름을 합친 가명이였어. 하와이에 도착한 캐서린은 새 남자친구를 금방 만들었어. 그리고 호놀룰루 번화가에 전망 좋은 고층 아파트로 이사하고, 자동차도 샀어.

그런던 어느날, 이 티파니, 아니 캐서린이 사라졌어. 캐서린이 TV에서 이걸 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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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한 공개수배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공개수배된 걸 본 거야. 이제 캐서린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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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망갔는지 묻자) 시카고 정치 때문에요. 시카고가 많이 부패했거든요. 저는 무고해요."

"제 발로 걸어나오는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캐서린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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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서는 지난 금요일 호놀룰루에서 캐주얼한 옷과 화장기 없는 얼굴로 붙잡혔습니다."

"캐서린은 아무 말 없이 걸어 나왔습니다. 시카고에서 가장 악명 높은 도주자 캐서린 서는 거의 체념하는 표정입니다."

"캐서린이 이전에 가졌던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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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일리노이주 여자 교도소에 수감된 캐서린 서. 그리고 그곳에서 48km 떨어진, 일리노이주 1급 범죄자 교도소에 수감된 앤드류 서. 앤드류 가족은 이민간지 20년 만에, 부모님은 모두 사망하고, 자녀 두 명은 나란히 교도소에 갇히는 신세가 됐어.

▲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앤드류는 옥중에서 누나 캐서린에게 편지를 보냈어. "캐서린, 그래도 난 누나의 동생이야"라는 내용으로. 이 편지에 캐서린도 답장을 보냈어.

"난 네가 누군지 몰라. 난 동생 같은 거 없어. 다시는 연락하지 마."

앤드류는 감옥에 갇혀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어쩌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잘못된 건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무엇보다, 나의 범행이 오두베인에 대한 복수가 맞기는 한 건지.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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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앤드류 어머니가 돌아가실 당시에 작성된 사망 조사 보고서에 쓰인 표현들이야. '과잉 살해', '엄청난 증오', '37번 찔림' 등의 단어가 등장해. 그냥 강도라면, 37차례나 찌를 이유가 있을까. 치명상만 입히고 돈을 훔쳐 달아냈을 텐데. '과잉 살해'는 강한 원한이 있는 관계에서 보이는 행태야. '엄청난 증오'라고도 쓰여 있는데, 앤드류는 이 지점에서 생각이 멈춰. 오두베인이 엄마에게 이 정도의 원한이 있었을까? 그땐 캐서린과 오두베인이 사귄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어.

'어쩌면 범인은, 오두베인이 아닐 수도 있다'

앤드류는 문뜩, 지난 여름의 일이 떠올랐어. 누나가 앤드류에게 오두베인을 없애달라고 말하기 일주일 전 쯤이야. 앤드류가 집에 들어서다 술에 마취한 오두베인과 마주쳤어. 그런데 다짜고짜 오두베인이 누나 욕을 막 하는 거야.

"네 누나는 정말 나쁜 여자야. 자기 목적을 위해서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 체스의 말처럼."
"넌 네 누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내가 누나랑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내가 네 누나의 비밀을 다 알고, 누나가 내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내 인생은 이제 막장으로 가고 있어."

오두베인의 이 말은 단순한 술주정이 아니었던 걸까? 그리고 오두베인과 캐서린이 서로 감춰주고 있다는 그 비밀은 뭘까? 캐서린은 엄마의 죽음과 무관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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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어요. 아마도 사건 20년 후까지요. 저는 오두베인이 아니고, 무언가 다른 게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눈이 멀었었어요. 저한테 찾아오신 분들이 몇 분 계셔서 물어봤어요. '이상하게 들린다는 걸 알지만, 우리 어머니의 살인사건에 대한 진실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들은 입을 다물었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죠. 그래서 괜찮다고 말해달라고, 그리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을 때, 이성적인 근거를 듣게 되고,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누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장밋빛 눈가리개가 벗겨지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 시작한 것을 보게 됐죠. 그리고 저는 깨달았어요.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는 걸요. 오두베인이 누나에 대한 진실을 정말로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생각엔 누나가 그게 문제라는 걸 알고 있던 것 같고요. 그때 누나가 저를 이용한 거고요."
-앤드류 서

오두베인은 살인자가 아니라, 누나의 알리바이를 거짓으로 증언해 준, 그냥 누나의 비밀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걸까? 분명한 건, 엄마 사망사건은 공식적인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미제 사건이라는 거야. 그 사고 당시에, 좀 더 철저하게 수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

누나의 거짓 위에 당긴 방아쇠. 잘못된 선택에 대해 앤드류는 크나큰 후회가 몰려왔어.

"복수는 그런 게 아니에요. 정의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문명사회의 일부예요. 우리는 그런 식으로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결국엔 제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은 제게 있었죠. 이게 끔찍하게 들리는 건 알지만, 저 자신 외에는 누구도 비난할 수 없어요."
-앤드류 서

▲ 앤드류의 새로운 아버지

그렇게 앤드류는 차가운 감옥에 갇혀 젊음을 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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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더 살아남을래요'. 그렇게 말하면서 하루하루… 하루 살면서 그렇게 해야 돼요. 내일, 모레 아니고, 하루만. 하루만 더 견딜 수가 있으면, 하루만 더 살 수가 있으면 내일이 될 거다… 그렇게 하면서 용기 내면서 기도하면서 살았죠. 하루하루, 하루만 더…"

앤드류 남매의 이 이야기는 시카고 교민 사회에서 널리 알려졌어. 교민들은 앤드류 가정의 비극적 스토리가, 마냥 남일같지 않다고 느꼈어. 앤드류를 만났던 교민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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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첫눈으로 봤을 때, 23살인데 우리 아들 같은 느낌을 가졌어요. 교포 사회에서도 앤드류의 어머니가 세탁소를 할 때, 많은 분들이 이렇게 접촉하신 분들이 있는 거 같아요. 근데 좋은 가정이었는데 이렇게 될 줄 몰랐다… 그래서 이제 동정의 손길이 하나하나씩 일어나기 시작한 거예요."
-김한철 장로, 시카고 교민

장로님은 조심스럽게 앤드류를 만나러 갔어. 앤드류가 수감된 교도소는 보안등급 1등급 교도소라 경비가 삼엄해. 9개의 철문을 지나 만난 앤드류는 앳된 청년의 모습이었어. 첫 만남 뒤, 김한철 장로님은 한달에 한번씩 앤드류를 만나러 갔어. 그러던 어느날, 앤드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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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에는 나오면 '아저씨!'하고 나오는데 그날은, 얼굴색이 변해서 나와요. '오늘 왜 이래? 무슨 일이 있냐?' 그렇게 얘기를 했더니 앤드류가 머리를 긁어가면서, '제가 아저씨한테 할 말이 있어요. 아저씨, 제 아버지가 돼 주실 수 있어요?'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래'. 말이 떨어지자 마자 '그래'. '이제부터 넌 내 아들이야. 나한테 아버지라고 그래' 그랬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일어나더니 '아버지!' 이러는데 눈물을 쭉 흘리는 거예요."

-김한철 장로, 시카고 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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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설명도 못합니다.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 양아버지입니다. 진짜로 사랑합니다. 아들같이 친아들같이 그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나 밤낮 끌어안고 모시고 있습니다. 가족입니다. 그 가족의 사랑을 알고 있어요 내가."
-앤드류 서

앤드류는 아버지라고 부를 존재가 너무 간절히 필요했던 거 같아. 장로님은 친자녀가 있지만, 그런 앤드류를 위해 기꺼이 아버지가 돼 주셨고, 그 인연은 27년째 이어지고 있어.

▲ 다시 태어나다

앤드류는 모범이 되는 수감생활을 했어. 교도소의 연로한 수감자를 돕는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고, 교도소 내에서 공부를 계속해서 학사 학위도 취득했어. 하지만 앤드류의 형량은 100년이야. 근데, 앤드류는 어떻게 감옥에서 나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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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가 두부를 먹고 있어. 올해 1월 26일이야. 앤드류는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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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아침 7시에 교도관이 문을 두드려요. '교도소 소장님이 널 보고 싶어 해'라며 아홉시에 가라고 하더라고요. 가슴이 뛰는 거죠. 무슨 이유인가. 찾아갔어요 내가. 그랬더니 '유 고잉 홈'. 내가 정신을 못 차렸어요. 1월 26일, 내가 살아났어요. 다시 태어났습니다. 2024년 1월 26일. 그게 제 생일이에요. 저의 두번째 생일입니다."
-앤드류 서

앤드류의 수감생활 점수는 만점에 가까웠다고 해. 모범수로 쌓은 신용, 교도소 내 노동시간 등, 감형 요소들이 인정돼서 30년 만에 모범수로 조기 석방이 결정된 거야. 그리고 이렇게, '꼬꼬무'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됐어. 1993년, 19살에 감옥에 들어갔던 앤드류는 2024년, 50세가 됐어.

앤드류는 석방되자마자 이 곳을 찾았어.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곳. 아버지의 묘와 어머니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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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왔습니다. 삼십년 동안 교도소 안에서 살다가 다시 찾아오면서, 절대로 아버지하고 어머니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실수해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앞으로 잘 살겠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아버지하고 엄마한테 잘하겠습니다. 인사드립니다."

앤드류는 지금 주변 고마운 분들의 도움 속에 열심히 일도 하고 새 삶을 살아가고 있어. 앤드류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감사하대. 드넓은 하늘, 새들이 날아다니는 모습, 세상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음에 행복함을 느끼고. 심지어 막히는 도로조차 감사해. 그리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그 행복의 기회를 뺏긴 오두베인과 그의 가족에게 진정으로 사죄하는 마음을 늘 갖고 있대.

새로운 꿈도 꾸고 있어. 불우한 환경에서 범죄의 유혹과 싸우는 청소년들이, 자신과 같은 후회할 짓을 하기 전에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바람직한 길을 제시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대.

그럼, 캐서린의 근황은 어떨까? 김한철 장로님이 캐서린 교도소도 찾아가서 여러 번 면회 요청을 했는데, 캐서린은 면회에 응하지 않고 있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 이건 캐서린의 최근 사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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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에게 누나를 만나러 갈 생각이 있냐고 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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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나니까. 근데 아직까지는 그때가 왔는지 안 왔는지 모릅니다. 걔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냥 너무 불쌍해요. 그렇다고 해서 누나가 한 짓이 용서되는 건 아니죠. 여전히 누나를 사랑하냐고요? 몰라요 뭔지 이제…"
-앤드류 서

앤드류에게 기억에 남는 '그날'은 언제일까. 그 어린 소년이 아버지를 잃은 그날, 소중한 어머니를 잃은 그날, 그리고 누나에게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그날, 오두베인에게 총을 겨눈 그날. 앤드류에게 많은 '그날'들이 있었지. 그런데 앤드류는 이 날을 꼽았어.

꼬꼬무 찐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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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그날이요? 한 달 반 전쯤이었나. 일요일 아침이에요. 햇빛이 들어왔어요. 내가 차 안에 있고, 바깥에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유리창이 내려갔습니다. 음악이 들리고 바람이 들어오면서 달리면서 다 봤어요 내가. God Thank You. 그 순간이 진짜 나의 그날이었습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어떤 일요일을 '그날'로 뽑은 앤드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어?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떠났던 네 가족의 꿈은 산산이 깨지고, 모두 엄청난 인생의 파고를 겪었어. 그러니까 평범함의 의미를 잘 아는 거지.

앤드류에게 '가족'의 의미에 대해 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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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저한테 무슨 의미냐고요? 가족은 저에게 절대적인 사랑이죠. 가족은 저를 다치게 할 동기가 없는 사람들이죠. 가족은 저를 사랑해줄 사람들이죠. 좋은 때나 좋지 않을 때나 제가 기댈 수 있는 사람, 또는 저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죠. 가족은 항상 제 편인 사람들입니다. 가족은 저를 항상 옹호해주는 사람들이고요. 반대로 제가 늘 옹호를 해줘야 할 사람들이에요. 제 가족이 '하늘을 빨갛고 잔디는 파랗네'라고 했을 때, 누군가 그게 진짜냐고 물어보면, 저는 그렇다고 할 거예요. 하늘은 빨갛고 잔디는 파랗다고 그 사람들에게 말할 겁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가족들에게 '하늘이 빨간 게 아닌 거 알고 있지?'라고 할 테지만요. 그게 저한테는 가족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도 죄는 정당화될 수 없어. 하지만 앤드류 곁에 응원하는 사람이 많았던 건, 어린 청년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겠지만,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지금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겠지. 기나긴 죗값을 치르고 나온 앤드류에게 응원을 건네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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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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