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졸업'이 끝나고 가장 크게 드는 감정은 아쉬움이에요. 이렇게 본방송을 열심히 챙겨본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매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면서 봤어요. 이제 '진짜 끝났구나' 하는 아쉬운 감정이 커요."
지난달 30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졸업'(극본 박경화, 연출 안판석)에서 남자 주인공 이준호 역을 소화한 배우 위하준은 드라마 방영이 끝났다는 것에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졸업'은 대치동의 스타 강사 서혜진(정려원 분)과 신입 강사로 나타난 발칙한 제자 이준호(위하준 분)의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다. 특히 '졸업'은 '밀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등을 만든 '멜로의 장인' 안판석 감독의 작품이라 기대를 모았다.
결과적으로 3%~6%를 오가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높은 시청률 성적표를 얻지는 못했지만, '졸업'이 그려낸 대치동 학원가의 생생한 뒷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를 끌어모을 만했다. 또 이를 표현한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 안판석표 멜로 특유의 감성적인 연출이 어우러지며 '졸업'은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위하준이 안판석 감독과 호흡을 맞춘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2018년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손예진의 남동생 역으로 활약한 바 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안판석 감독은 조연이었던 위하준을 주연으로 발탁했다.
"'졸업'의 캐스팅 제의가 왔을 땐, 지난 5년이란 시간 동안 나름대로 정말 쉬지 않고 계속 달려왔는데. 그거에 대한 조금의 인정을 받은 느낌이었어요. '내가 해온 게 잘못된 게 아니었구나', '나 열심히 잘 해왔구나', '그래서 이렇게 좋은 기회도 오는구나' 하는 생각에 저 스스로 보람을 느꼈어요. 감사한 마음도 들었고요."
안판석 감독은 배우들이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최소한의 촬영으로 최대의 결과물을 얻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어떤 장면들은 배우의 얼굴을 찍는 대신, 주변의 물건이나 배경만을 찍는 파격적인 구도로, 그 순간의 분위기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이는 감독으로서 전체적인 그림이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려져 있어야만 가능한 연출 방식이다.
5년 전 그런 안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접했던 위하준은 이번에 더욱 확실하게 안 감독만의 매력을 느꼈다.
"안 감독님은 연기를 굉장히 자유롭게 맡겨 주세요. 사소한 디렉션만 잡아주시고,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연기하라고 하시죠. 그래서 저도 모르는 리액션, 애드리브가 많이 나와요. 그걸 많이 살려 실제 방송에 써주세요. 감독님의 진가는 방송을 보면 더 느껴져요. 현장에선 '왜 이거밖에 안 따시지?', '왜 뒷모습만 찍으시지?' 할 때가 있어요. 배우니까 준비해 온 걸 하고 싶은 욕심이 나잖아요. 그래서 얼굴도 찍는 게 어떠냐, 제안을 드린 적도 있어요. 그런데 방송을 보니 알겠더라고요. 정말 전체를 보시더라고요. 왜 이 신에 이 부분이 필요한지, 필요가 없는지, 그걸 찍는 순간에는 모르는데, 나중에 방송으로 봤을 때, '아 이래서 그랬구나', '여기에 포커싱을 주고자 그런 거구나', '정말 대단하시다'라는 걸 느꼈어요."
위하준에게 '졸업'이 의미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남자주인공으로 활약한 첫 멜로 작품이라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 '배드 앤 크레이지', '최악의 악' 등을 통해 남성성을 강조하는 장르물과 강한 캐릭터를 주로 선보여 온 위하준에게 잔잔한 멜로 작품인 '졸업'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위하준은 '졸업'의 이준호 캐릭터를 통해 사랑의 설렘과 긴장, 갈등과 성숙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멜로 장르도 가능한 배우라는 걸 입증했다. 그가 멜로 작품에 도전하고자 했던 이유는, 팬들 때문이었다.
"팬분들이 기다렸어요. 제가 너무 장르적인 것만 하니까, 팬분들이 '멜로도 좀 해라', '멜로 보고싶다' 그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거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죠. 저도 생각해 보니, '오징어 게임' 이후로는 다 장르적인 연기만 했더라고요. 그래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 타이밍에, 행운같이 '졸업'이 딱 들어왔죠. 스케줄도 맞았고요. 그래서 하게 됐어요."
멜로 첫 주연 도전이라고 해서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다만 위하준은 "그동안 짝사랑만 했는데, 쌍방으로 사랑하는 게 생소했다"며 웃어 보였다. 위하준은 '로맨스는 별책부록', '18어게인' 등의 드라마에서 서브남주 캐릭터를 연기한 바 있다. 여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연기만 했다 보니, '졸업'처럼 남녀 주인공이 서로를 바라보는 연기가 어색했다는 귀여운 소감이다.
"멜로가 특별히 어렵진 않았는데, 사랑을 서로 주고받는 게 생소했어요.(웃음) 애정신에서는, 어떻게 해야 더 예쁘고 멋있어 보이는지 그런 걸 제가 잘 모르니까 좀 뚝딱거리긴 했죠. 그런 서툰 모습들이 오히려 '졸업'의 준호랑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 서툰 남녀의 진솔한 사랑으로 그려진 거 같아서요. 너무 능숙하게 잘하면, 그게 더 이상했을 거 같아요."
'졸업'이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터치하는 멜로 장르이다 보니, 상대 역 서혜진을 연기한 배우 정려원과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위하준은 정려원의 모든 면이 다 좋았다며 극찬을 쏟아냈다.
"정려원 누나 자체가 사람이 좋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분이에요. 인간적으로도 대화를 많이 했는데 저와 비슷한 면도 있고, 호흡이 정말 좋았어요. 누나한테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저보다 훨씬 선배인데, 놀랄 정도로 현장에 정말 빨리 오고, 정말 열심히 해요. 그런 태도적인 측면에서, 누나를 보며 제가 오히려 반성했어요. 저도 현장에 안 늦는 편이고, 대사 NG 나는 거 싫어해서 잘 준비해 오는 편인데, '내가 안일했구나' 싶을 정도로 누나가 최선을 다하고 이 작품에 진심이더라고요. 모든 배우, 스태프들한테 항상 친절하고요. 누나를 보며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 큰 공부가 됐어요."
대치동 학원가에서 활약하는 선생님 캐릭터를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남다른 준비과정이 필요했다. 강의 스킬을 습득하는 것부터 칠판에 글씨를 쓰는 판서 연습까지 따로 해야 했다.
"강사 역할을 맡은 정려원, 소주연 등 다른 배우들과 함께 자문 선생님을 통해 선생님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강의는 어떻게 하는지, 그런 얘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판서도 저희가 강의하는 신에서 직접 다 써야 했기 때문에, 연습을 많이 했고요. 칠판을 사서 집에 두고 계속 연습했어요. 수업하는 신은 자문 선생님이 영상으로 수업하는 걸 찍어 주시면, 그걸 보며 흉내를 내고, 제 말투나 몸짓으로 바꿔가는 과정을 반복했어요. 수업하는 장면이 몽타주 신으로 음악과 함께 쓱 지나가더라도, 저희는 대충 연기할 수 없으니 그걸 다 실제 강의하는 것처럼 준비해서 연기하곤 했어요. 그게 실제 방송으로는 안 나간 게 좀 아쉽긴 해요."
안판석 감독의 작품은 멜로라고 해서 남녀의 사랑 이야기만 조명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사회 풍자와 메시지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졸업' 역시 대치동 학원가를 배경으로, 공교육과 사교육에 몸담고 있는 직업군, 학부모와 학생의 관계성을 통해 입시만을 위한 지나친 교육열이 가져오는 부작용과 교육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했다.
"제게도 대치동 학원 문화는 새로운 세계였어요. 대본을 보고 '진짜 이래?' 하며 놀랐죠. 근데 실제로는 더하면 더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릴 때 대치동에서 학원 대여섯 개를 다닌 또래 친구를 만났는데, 정말 치열하게 살았더라고요. 한편으론 좀 짠했어요. 전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으니까요.(위하준은 전남 완도에서 자랐다) 학원이 어딨어요. 축구하며 시간 보내고, 학교에서 야자만 하는 정도였는데. 전 그렇게 자연 속에서 흙에서 뛰어놀며 살았는데, 요즘 학생들은 얼마나 치열해요. 세상 자체가 경쟁 사회고 자본주의 사회인데. 준호가 말하는 교육의 본질,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그 메시지가 와닿았어요. 꼭 필요한 이야기라 생각했고요. 전 작가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비판적인 시각이 있는 작품을 좋아해요. 그런 게 TV 드라마로 많이 나올 수 없는 게 사실이지만, 안판석 감독님께서 계속 이런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주시면 좋겠어요."
극 중 준호와 혜진은 사랑을 통해 서로를 성장시키는 어른의 로맨스를 보여준다. 현실의 위하준도 그런 사랑을 꿈꾼다고 밝혔다.
"준호와 혜진은 현실적인 부분에서 서로 상처도 받지만, 결국엔 서로를 졸업시켜 주는 인물들이에요. '네 탓이야' 탓하지 않고 묵묵히 곁을 지켜주고 보듬어주는 혜진을 보며, 준호도 부족하고 바보 같았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성장하죠. 준호로 인해 혜진도 잊고 있던 본인의 자아를 다시 찾게 되고요. 너무 아름다운 연애 같아요. 저도 그런 연애를 하면 좋겠다,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준호가 서혜진을 통해 성장했다면, 위하준은 이준호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배우로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주연배우로서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부담과 걱정이 있었는데, 다행히 잘 끝냈어요. 그 부분에서 배운 게 있죠.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 그런 부분들을 많이 느꼈어요. 멜로 장르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됐고요. 이준호라는 인물을 통해, 뭔가 부정했던 제 자신을 보는 거 같았어요. 준호가 너무 저돌적이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게 미성숙해 보여서 약간 이해 안가는 부분들도 있었어요. 근데 돌이켜 보니, 제가 그런 사람이더라고요. 표현을 안하고 숨기고 살았을 뿐이죠. 준호는 그걸 다 표현해서, 남들에게 그렇게 보였던 거고요. 준호가 '졸업'에서 그런 과정을 겪으며 조금 더 성숙한 사람으로 발전했듯, 저도 조금은 성장한 거 같아요. 배우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두려움이 많고, 불안정하고, 지혜롭지 못하고 미성숙하던 나로부터 졸업을 해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현명하고 성숙한 사람이 될까, 그런 고민을 하게끔 계기를 마련해 준 작품이 '졸업'이에요. 그런 생각과 다짐을 했다는 게, 저한텐 성장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졸업'이 저한텐 소중해요."
위하준은 '졸업' 촬영 전후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 촬영을 진행했다. '오징어 게임' 시즌1이 전 세계에서 대히트한 작품인 만큼, 시즌2를 향한 관심도 뜨겁다.
"'오징어 게임2'에서 제일 기대되는 건,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이에요. 대본을 봤을 때, 너무 매력 있고 좋았거든요. 워낙 잘하는 선배님들이 투입됐는데, 그 캐릭터들이 어떻게 살아나서 생동감 있게 펼쳐질지, 또 어떤 새로운 게임들이 보일지, 그런 부분들이 너무 기대돼요."
'졸업'에서 섬세한 멜로 연기를 선보인 위하준은 오는 12월 공개될 '오징어 게임2'에서는 강렬한 연기 변신이 전망된다. 그 후에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도전해 보여준 적 없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다음에는 로코 장르를 해보고 싶어요. 이번에 작품성 있고 현실적인 멜로를 했다면, 다음엔 유쾌하고 코미디가 섞인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다시 또 장르물을 하고, 그렇게 어느 한 쪽에 굳혀지지 않게, 계속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대본들을 보고 있는데, 차기작을 빨리 정해 돌아올게요."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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