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2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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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고작 8살이었는데… 선감학원에 끌려간 아이들, 강제 노역에 죽음까지

강선애 기자 작성 2024.04.19 13:53 조회 5,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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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8일 방송된 '그 섬에 아이들이 있었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방송인 제이쓴, 배우 이종혁, 개그우먼 김민경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50년 만에 찾은 형

때는 2016년 7월.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야산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 굴착기까지 동원해서 우거진 나무와 수풀을 걷어내고 땅을 파는 작업이 시작했어. 꼭 찾아야 할 것이 있거든. 장소는 바로 이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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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에서 뭘 찾으려는 걸까? 직접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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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이제 유골을 발굴하기로. 우리 형 유골을… 저는 확신을 갖고 있었죠. 왜 그러냐면은 우리 형이 거기서 죽은 건 사실이잖아요. 분명히 거기서 죽었고, 그거를 묻었다는 증인이 나타났고. 그러니까 이거는 뭐, 신뢰가 안 갈 수가 없는 얘기죠."
-허일용, 형의 유골을 찾는 동생

일용 씨는 일란성 쌍둥이야. 그가 찾는 것은 바로, 쌍둥이 형의 시신이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현장을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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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조각 일부와 함께 작은 아이 신발이 발견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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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에 우리 형 흔적 같은데요."
-허일용, 쌍둥이 동생

작은 신발에서 알 수 있듯, 일용 씨의 쌍둥이 형은 8살 나이에 사망했고 이 곳에 암매장이 된 거야. 그리고 일용 씨는 50년이 넘어 형의 시신을 찾았어. 도대체 8살 어린 아이가 왜 죽은 걸까? 그리고 왜 50년이 넘도록 찾지 못했던 걸까? 이렇게 충격적인 일이 어떻게 벌어진 건지, 지금부터 시간을 과거로 돌려볼게.

▲ 선감도로 끌려간 아이들

때는 1960년대 초. 당시 6살이었던 쌍둥이 형제는 할머니와 함께 미아리 쪽에서 살고 있었어. 밥 때가 되면 "얘들아! 밥 먹게 들어 와라"라며 소리쳐 부르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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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쌍둥이는 할머니의 손을 양쪽에서 나란히 잡고 시장나들이에 나서. 시장에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고 해. 할머니에게 졸라서 얻어낸 달짝지근한 간식을 먹으며 정신없이 시장구경을 하던 그 때, 쌍둥이는 뒤늦게 깨달았어. 할머니 손을 놓쳤다는 걸. 순식간이었어. 정신을 차려보니,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 쌍둥이는 울고 불며 여기 저기를 찾아 헤매. 시간이 지나고, 해가 저물어 밤이 됐지만 할머니를 찾지 못했어.

그때 쌍둥이에게 누군가 다가왔어. 경찰이었어. 정말 다행이지? 경찰의 손에 이끌려 파출소로 가게 된 쌍둥이는 "집이 미아리에 있어요"라고 말하며 집을 찾아달라 했어. 쌍둥이는 무사히 집을 찾았을까?

아니, 쌍둥이는 집에 못 돌아갔어. 무슨 일인지 경찰은 쌍둥이를 아동보호소로 보냈고, 얼마 뒤 쌍둥이는 또 다른 장소로 옮겨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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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한두 대가 아니에요. 통통배도 있고 뗏목같이 생긴 거 있어요. 원생들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어떤 데인지도 전혀 모르고 뭐 생소한 대로 끌려 왔으니까."
-허일용, 쌍둥이 동생

어느 날 갑자기, 배에 태워졌다는 거야. 쌍둥이 형제가 도착한 곳은 어떤 섬이었어. 지도로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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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형제가 간 곳은 바로 이곳, 선감도야. 지금은 방조제가 생기며 육지와 연결이 됐지만, 당시에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었어. 그럼 쌍둥이 형제는 왜 이 섬으로 오게 된 걸까?

근데, 이 선감도로 온 아이가 쌍둥이 뿐만이 아니야. 당시 수많은 소년들이 이 선감도로 옮겨지고 있었어. 쌍둥이처럼 형제가 나란히 선감도에 온 경우는 또 있어. 사진을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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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 차이 나는 형제야. 4형제 중 셋째와 넷째. 동생이 형을 그렇게 졸졸 따라다녔던, 완전 찰떡 형제였대.

1969년 여름, 각각 10살, 8살이던 찰떡 형제는 학교 방학이라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집에서 지내고 있었대. 소일거리로 채소를 팔던 할머니를 따라 시장에 간 찰떡 형제. 채소를 파는 할머니 옆에 앉아있는데, 너무 심심해서 몸이 근질근질 해. 이런 형제를 보던 할머니가 "수원역에 가서 큰형이랑 놀고 있으면, 할머니가 남은 거 얼른 팔고 데리러 갈게"라고 말했어. 당시 수원역 근처에서 형제의 큰형이 일을 하고 있었거든. 그렇게 찰떡 형제는 역에서 큰형과 만나 놀다가, 큰형이 일 때문에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역 안에서 깜빡 잠이 들었어.

그런데, 자고 있던 형제를 경찰들이 와서 들고 어디론가 간 거야. 너무 당황스럽지? 정신이 없는 사이 찰떡 형제는 역 근처에 있는 보호소로 보내져. 잠시 후 형제는 나란히 차에 태워졌고, 포장이 씌워진 트럭에 실려 갔어. 그런데 형제를 태운 그 차가, 할머니 집 부근을 지나는 거야. 찰떡 형제는 어떻게 했을까? 직접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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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천을 지나면서 저희는 더 소리를 내서 울었습니다. '여기서 내려주고 우리 걸어서 이쪽으로 가면 할머니집..' 그렇게 울고 해도 계속 매질만 하는 거예요. 등이고 엉덩이고 가리지 않고 매질을 했는데, 울다 울다 간 곳이 마산포라는 항이었고. 거기서 배를 타고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간 게 대부도 앞에 선감도였습니다."
-찰떡 형제 형

그렇게 찰떡 형제 또한 선감도로 가게 돼.

10살 영수의 경우는 더 충격적이야. 영수는 당시 엄마와 함께 수원에 있는 고모집에 다녀오는 길이었어. 수원역에서 집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다가 엄마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영수 앞에 2명의 남자가 나타나. 이번에도 경찰이었어. 경찰이 함께 가자는 거야. 영수는 엄마가 화장실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어. 그러자 경찰은 이렇게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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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다가 어머니도 그리로 오시기로 했어. 넌 지금 우리하고 같이 가면 돼."

경찰의 말이니까, 영수는 당연히 믿었어. 경찰은 영수를 차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갔어. 그렇게 엄마랑 헤어져 영수가 간 곳이 선감도야.

어느날 갑자기 영수, 쌍둥이 형제, 찰떡 형제 모두 선감도로 가게 된 거야. 도대체 선감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선감학원의 비밀

배를 타고 선감도로 가는 길, 영수가 들은 얘기가 있대. 경찰에게 아이들을 인수인계 받아 배에 태운 사람이 한 말이야. 어떤 이야기인지 직접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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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도 직원이 데리러 나왔어요. 우리를 인수인계해서 데리고 들어가더라고요. 배에 타니까 '여러분들 여기 어딘지 알고 왔어요?' 그러더라고. '모르겠는데요' 했더니, '여기는 너네들을 거기서 자립시켜 주고 좋은 기술 가르쳐주고 그런 곳이니까 그렇게 알으래요'"
-최영수, 수원역에서 엄마 기다리던 중 이송

기술도 가르쳐주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곳, 바로 선감도에 있는 '선감학원'이라는 시설이야. 학원이라고 하니, 영어 학원, 미술 학원 같은 곳인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사진을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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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 원생들의 모습과 원생 숙소, 작업장 사진들이야. 아이들 모습이 마치 각 잡힌 군인 같아. 선감학원 원생들은 단체로 생활을 하며 작업장에서 기술을 배운다는 거야. 심지어 이곳에서 원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어. 8살 나이에 죽음을 맞은 일용 씨의 쌍둥이 형. 그 형이 죽음을 맞은 곳이 바로 이 선감학원이야. 이 곳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이 돼. 쌍둥이 형의 마지막 모습은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대. 형의 입에 뭔가 잔뜩 들어있었거든. 그게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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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갔다 오니까, 담요 조각을 입에 잔뜩 물고 죽어 있더래요. 그래서 자기가 그걸 다 꺼내고 담요 조각을 꺼내고 그 입을 닦아줬답니다. 굶어 죽었답니다. 거기서 담요 조각을 뜯어 먹고…"
-허일용, 쌍둥이 동생

동생 일용 씨는 형의 마지막 모습조차 보지 못했어. 어떻게 죽었는지 다른 원생한테 전해 들었다는 거야. 형의 시신이 어디에, 어떻게 묻힌 지도 알지 못했지. 그래서, 앞에서 나온 것처럼 50년이 지난 후에야 형의 유해를 찾을 수 있었던 거야.

이게 더 충격적인 건, 선감학원에서 죽은 원생이 일용 씨 형 뿐만이 아니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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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선감학원 원생들이 암매장된 장소야. 일용 씨 형의 유골 역시 이곳에서 수습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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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GPR(지하 탐지 레이더) 탐사기라고요. 땅 속에 레이더파를 쏴서 어떠한 형태나 내질이 다른 이상한 데를 찾는 겁니다. 이런 신호들 있죠. 여기 하고 여기도, 지금 확실하게 진하게 보이죠. 이거는 거의 유해로 예상할 수가 있어요. 이거는 거의 100% 유해로 볼 수 있어요. 신호가 확실하게 강하게 반사가 되어 있죠. 여기도 마찬가지고요. 여기 또 나오네요."

-김순태, 지질 및 지반 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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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확인된 분묘는 최대 150기. 무려 150명의 시신이 이곳에 묻혀 있을지 몰라. 누가, 왜, 어떤 이유로 이곳에 묻힌 걸까? 그 이유는, 몰라. 선감학원에 기록된 사망 원생의 수는 불과 29명이야. 공식 사망은 20여 명인데 분묘는 150개. 차이가 너무 나지? 이 섬에 감춰졌던 선감학원의 비밀은 무엇일까.

▲ 지옥의 섬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어느날 갑자기 선감학원에 가게 됐어. 선감도 나루터에 도착하자마자, 매질이 시작돼. 지옥이 시작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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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 선감도가 아니고, 지옥도예요. 지옥도."

-최영수, 선감학원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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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천국을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고 해도, 그곳에서의 생활만큼 힘들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합니다."
-찰떡 형제 형, 선감학원 피해자

선감학원에 도착하면 의복과 발에 맞지도 않는 고무신을 지급받아. 그 옷에선 말도 못하게 냄새가 났대. 숙소도 배정 받는데, 형제끼리 온 아이들은 한 숙소에서 생활할 수 없다는 거야.

"세상천지에 두 형제인데, 뭐 의지할 곳도 없고.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었죠."
-허일용, 쌍둥이 동생

"그냥 무서웠죠. 형을 보고 싶다고 해서 보러 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찰떡 형제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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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형제도, 찰떡 형제도 서로 다른 숙소로 떨어져야 했어. 이렇게 수용된 아이들의 나이는 7세에서 12세 사이가 거의 절반이야. 학교를 가야 하는 나이잖아. 선감학원에선 원생들 중 일부만 학교에 보냈다고 해. 그럼, 남은 아이들은 뭘 했을까?

아이들은 호미도 없이 맨 손으로 밭을 일궜어. 소에게 먹일 건초를 베고, 누에 먹이를 주고, 심지어 염전 일도 해. 무려 5000평에 달하는 염전을 농지로 개간하는 일도 시켰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노동은 예외가 아니었어. 하교 후엔 바로 일하러 가야해. 만약 일을 못하거나 할당량을 못 채우면, 잔혹한 매질과 매서운 처벌이 아이들에게 내려져.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성인 부리듯 부렸어요."
"어리다고 보호 받는 게 아니라 체력이 약한 게 처벌의 이유였습니다."
-선감학원 피해자들

기술을 알려주고,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잖아? 아이들의 노동이 직업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강제 노역이었어. 노예와 다를 바가 없어. 대체 이 선감학원을 누가 운영을 한 걸까? 선감학원 조직도를 보여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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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부원장이 있고 그 아래 지도, 서무, 관리를 하는 직원들이 있어. 그 밑에 사장과 반장이 있지. 사장은 각 숙소의 장이고, 반장은 숙소 안에 있는 각 반의 장인 거야. 사장과 반장은 원생이야. 직원들이 그들에게 권한을 주고 나머지 원생들을 관리하게 만든 거야. 대체 이 원장과 직원들은 누구일까? 놀라지마. 원장과 부원장은, 공무원들이야. 그리고 직원 중에서도 공무원이 있었어. 그리고 선감학원은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곳이였어.

선감학원의 원생들은 폭행을 당하며 강제 노역에 시달렸어. 아이들이 생산한 물자는 팔아서 이 학원의 운영비로 썼다고 해. 그럼 최소한 한창 자라는 아이들의 식사는 괜찮아야 하잖아. 생존 피해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당시 식사를 재현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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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숟가락도 안되는 꽁보리밥에 건더기도 거의 없는 맹물 같은 국, 반찬이라곤 단무지나 젓갈 뿐인 식사야.

"저는 (당시) 열 살, 10년 살았지만 사람이 먹는 음식으로서 그런 음식을 본 적이 없거든요."
-찰떡 형제 형

"단무지하고 새우젓하고를 주는 거예요. 그런데 단무지도 손으로 누르면 이게 으깨질 정도로 그렇게 된 단무지고, 새우젓도 머리를 떼니까 조그맣게 구더기가 다니더라고요. 그런 걸 먹으라고 주더라고요."
-찰떡 형제 동생

양이 모자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질도 말도 안 되게 형편없어. 배고픔은 아이들에게 너무나 큰 고통이야. 견딜 수 없는 배고픔에 아이들은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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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흙이 있는데 그 흙을 파먹는 거예요. 황토흙 그 사이에 보면 조금 황토색보다 조금 더 진하고 이렇게 맨질맨질한 그런 줄기들이 있어요. 근데 그걸 파먹고 나면 화장실 가서 변을 못 보는 거예요. 그런데도 배가 고프면 먹을 게 없으니까 또 그걸 가서 먹는 거예요."
-찰떡 형제 동생

"백반이 뱀한테 물리지 말라고 준 것 같아요. 누가 줬는지 기억은 없는데, 그걸 항상 그냥 빨아먹고 다녔어요."
-허일용, 쌍둥이 동생

"배고프니까 이것저것 막 주워 먹고, 오물찌꺼기 같은 것도 먹고. 먹는 걸 잘못 먹어서 죽은 사람도 많아요."
-최영수, 선감학원 피해자

황토흙의 맛을 알아? 황토의 반질반질한 부분은 단맛만 나지 않는 초콜릿 같은 느낌이래. 그래서 원생들이 좀 거부감 없이 자주 먹었다는 거야. 그리고 나무열매, 굴, 메뚜기, 개구리, 심지어 쥐하고 뱀까지 눈이 보이는대로 잡아 먹었대. 산, 들, 바다에 있는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는 거야. 그래도 배는 항상 고팠어.

▲ 부랑아 수용정책의 실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이곳에 끌려 온 아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 바로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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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랑아의 구호 및 지도를 위하여 선감학원을 둔다."
"부랑아의 수용구호, 부랑아의 지도 및 직업 보도."
-경기도 선감학원 조례

여기 있는 아이들은 '부랑아'라서 잡혀 온 거래. 부랑아의 사전적 의미는, '부모나 보호자의 곁을 떠나 일정하게 사는 곳과 하는 일 없이 떠돌아다니는 아이'라는 뜻이야. 선감학원은 부랑아 수용시설이었어. 그런데 영수 씨, 쌍둥이 형제, 찰떡 형제가 부모나 보호자가 없는 게 아니잖아. 강제로 부랑아가 되어 버린 거야.

국가는 보호, 복지, 갱생이라는 명분 하에, 이 부랑아 정책을 시행했어. 이건 1958년 국무회의에 상정된 부랑아보호대책에 관한 내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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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랑아가 배회하면서 온갖 추태와 비행을 감행하고 있는 바, 부랑아 보호대책을 실천함으로써 부랑아를 발본색원하고자 하는 바이며 이에 소요되는 국가예산은 책정된 바 없으므로 국민으로부터의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이에 충당하고자 함."

'발본색원'은 근본 원인이 되는 요소를 완전히 없애서 다시는 그러한 일이 생길 수 없도록 한다는 거야. 부랑아를 예비 범죄자로 보고 가두겠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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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치안의 목적, 그리고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는 목적 때문에 거리에서 떠돌고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소위 말하는 '깡패'라는 낙인을 씌워가지고 단속해서 수용소에 집어넣고, '이 사람들을 갱생시킨다'라고 하는 선전 효과를 보이는 거죠. 대도시를 되게 깔끔하고 좋은 공간으로 표상시키려고 하는 목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금철, 前기자

이런 부랑아 정책을 펼치면서 '도시정화', '도시미화'라는 표현도 썼대. 그러면서 이렇게 홍보를 해.

"당국에서는 이들을 보호 교화시켜 노동능력이 있는 자는 자활의 길을 걷도록 하는 등 불쌍한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앞으로 전국에 걸쳐 부랑아와 걸인들에 대한 보호대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당시 뉴스 내용 中

부랑아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부랑아에 대한 법률적 정의와 단속 기준이 없었다는 거야.

"되게 모호한 기준으로 자의적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저 사람은 부랑아야, 불량 행위를 할 위험이 있어' 라고 지목하는 순간, 그 사람이 어떤 행위를 과거에 했던 지와 상관없이 그 사람은 부랑아가 되는 거고, 수용이 되고 처벌을 받고."
-하금철, 前기자

"저는 부랑아가 아니에요. 제 동생도 부랑아가 아니었어요. 그때 당시에 살 만큼 살았고, 부모님들도 사회에서 나름대로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었고."
-찰떡 형제 형, 선감학원 피해자

"우리 어머니나 우리 할머니는 최선을 다해서 저희들을 보살펴 주셨던 분들이에요."
-허일용, 선감학원 피해자

"4남 5녀예요. 제가 제일 막내예요. 가족하고 생이별 돼가지고. 이걸 누구한테 하소연하고 누구한테 이것을 원망을 해야 될지."

-최영수, 선감학원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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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해 온 아이들을 신원 확인도, 보호자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았어. 아이들의 이름, 나이, 주소, 보호자 여부까지 엉터리로 작성된 경우가 많아. 그래서 아이들이 없어져도 가족이 찾을 수가 없는 거야. 누가 부랑아인가, 기준과 정의도 없이, 이 아이들은 그냥 수집이 됐어. 그냥 평범한 아이들이었어. 이 아이들에게 '부랑아'라는 낙인이 찍힌 거야.

▲ 끔찍한 기억들

이런 선감학원이 40년 동안이나 운영됐어. 시작은 1942년 일제 강점기였어. 통제와 치안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선감학원은 광복 후, 1982년까지 유사한 목적으로 계속 운영된 거야. 이렇게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아이들은 무려 4,689명이야. 근데 이 숫자조차 정확한지 알 수 없어.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지옥을 경험한 거야.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아이들이 특히 무서워하던 소리가 있대. 선감학원에 어둠이 내리면, '드르륵 드르륵' 사장이나 반장이 곡괭이 자루를 끄는 소리가 숙소 복도 끝에서부터 들리기 시작해. 아이들은 이 소리가 시작되면 오돌오돌 떨어. 곡괭이 끄는 소리가 멈추면, 비명소리가 울려 퍼져. 방 앞에 멈춘 곡괭이 끄는 소리는 잔혹한 폭행을 알리는 신호탄인 거야.

무서운 건 이뿐만이 아니야. 차마 말로 하기 쉽지 않은 성폭력도 당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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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처음 들어간 날부터... 그날부터 그 일을 당하기 시작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방장이 저한테 그래요. '네 동생은... 네 동생은 안 그러게끔 할게... 절대 네 동생은 안 당하게 할게...' 그 말이... 그 말이 저를 견디게 했습니다. 내가 힘들면 동생은 안 힘들겠지… 동생은 안 힘들겠지… 그랬습니다."
-찰떡 형제 형

"형은 아마 거기서 당했던 일 중에 '나는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라고 아마 형은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저도 거기서..."
-찰떡 형제 동생

50년이 지난 지금도 인터뷰를 하며 눈물을 쏟아내는 찰떡 형제. 당시 찰떡 형제는 10살, 8살 너무나 작고 어린 아이였어. 사장과 반장의 짓이었어. 그럼 직원들은, 이 사실을 몰랐던 걸까? 직원들이 설사 이 사실을 몰랐다 해도, 이건 명백한 잘못이야. 그들에겐 관리, 감독의 의무가 있으니까.

누가 하나 막아주는 사람 없이 고통스런 날들이 계속 돼. 그렇게 힘들 때마다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엄마였어. '엄마가 있으면 이렇게 안 힘들텐데', '엄마가 나 괴롭히는 놈들 다 혼내줄 텐데' 그런 생각을 했어.

그러던 어느 날, 힘들어하는 찰떡 형제 형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어. 박치기가 세다고 '망치'라고 불리는 원생이야.

"너 배고프지? 나랑 같이 가자. 굴 까줄게."

안지 얼마 안 됐는데 불쑥 말을 걸더래. 형과 망치는 몰래 바다에 나가서 굴을 까서 하나씩 나눠먹으며 슬픔과 배고픔을 달랬다고 해.

하루는, 망치가 불쑥 "너 집 주소 기억해? 집 주소 좀 알려줘"라고 말했어.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형은 기억하고 있는 주소를 망치에게 알려줬어. 그러던 어느 날, 망치가 형에게 와서 이런 말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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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내가 가서 너희 부모님들 데려올게. 내가 반드시 데려올게. 조금만 기다려."

망치는 이 말을 남기고 선감학원 탈출에 나선 거야. 그러고 며칠이 지났을 때야. 직원이 오더니 아이들을 쭈욱 훑어봐. 그리고 몇 명을 지목해 따라오라고 했어. 지목 당한 아이 중에는 찰떡 형제의 형도 있었어. 직원의 지시에 형을 포함한 몇몇 아이들이 바닷가로 향했어. 도착한 바닷가에는... 아이 한 명이 누워 있었어. 그 아이는, 찰떡 형제 부모님을 데려오겠다며 떠났던 망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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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아이가 갔어요. 얼마 안 있다가 바닷가에 누군가 떠밀려 왔다 치워야 되니까 '너 너 너 다 따라와' 그래서 가마니 네 모서리를 뚫어서 나무를 끼고 그래서 갔더니. 얼굴이 파래가, 군데군데 소라가 붙어 있던 그 아이가 누워 있었어요."
-찰떡 형제 형

그날 형은 망치의 시신을 직접 묻어야 했어. 형은 망치에게 너무도 미안한 마음뿐이었다고 해.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이렇게 됐구나' 하는 마음에. 그렇게 이곳에서 유일하게 힘이 되어 준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내야 했어.

▲ 필사의 탈출

망치처럼 탈출하려다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한둘이 아니었어. 선감학원은 육지와 떨어진 섬, 선감도에 있어. 거길 탈출하려면 방법은 바다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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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도에서 눈으로 보기엔 대부도가 가깝지. 그런데, 이렇게 대부도를 통해 인천으로 빠져나가려면 배를 타야 해서 뱃삯이 필요해. 근데 아이들에게는 돈이 없지.

다른 탈출경로는 동쪽, 화성으로 나가는 경로야. 육지에 도착하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니까. 선감도와 마산포를 잇는 최단 거리는 1,8km로 멀어. 선감도와 마산포 사이 바다는 수심도 깊어. 이 바다를 수영해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기회는 간조 시기야. 물이 빠져나가 해수면이 가장 낮아지는 그때, 탈출을 꿈꾸는 아이들은 숨죽여 기다려. 그리고 바닷물이 빠지는 걸 확인한 순간, 아이들은 갯벌 쪽으로 뛰어가. 하지만, 갯벌 안에선 뛸 수도 없어. 푹푹 빠지는 갯벌에 잘못 발이 박히면 그대로 잘못될 수 있어. 아이들은 갯벌에 납작 엎드려. 팔로 노를 젓듯 손으로 질퍽한 땅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가. 죽을힘을 다해서, 오로지 뭍에 닿기 위해 팔을 휘저어.

하지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아이들의 체력은 금세 동이 나. 어느새 빠져나갔던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자유를 찾아, 가족을 찾아 탈출하려던 아이들은 그렇게 하나, 둘... 물에 잠겼던 거야. 물에 잠긴 아이들 중 못 찾은 아이들도 있겠지. 그래서 사망자 수가 명확하지 않은 거야.

찰떡 형제가 선감학원에 온 지도 어느새 5년이 흘렀어. 형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어. 형은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핑계를 대며 한 알, 한 알 약을 모으기 시작해. 도저히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었어. 친구 망치를 묻을 때도 이런 생각을 했대. '같이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같이 들어가면 이제 더 이상 힘들지 않을 텐데'라고. 동생을 생각하며 견디려고 했지만 너무 아프고,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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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도 못 본다.. 그 생각 하니까 너무 무섭기도 했지만, 당장 내가 힘든 게 내가 아픈 게 너무 싫었습니다. 살아있으면 계속 고통을 당할 것 같아서, 죽으면 이제 그만 괴로울 수 있다. 그래서 이제 나는 '그만 아플래, 그만 힘들래' 이 생각만 가지고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찰떡 형제 형

모아놓은 약을 먹던 바로 그때, 이를 목격한 직원이 형을 막았어. 그 뒤, 찰떡 형제는 다른 시설로 옮겨져. 쌍둥이 형제 중 동생 일용 씨 또한, 형이 선감학원에서 죽음을 맞자 얼마 후 다른 시설로 옮겨졌어. 이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이 되어야만, 선감도 밖으로 나갈 수 있던 걸까.

영수 씨는 탈출을 많이 시도했대. 잡혀서 맞고, 또 잡혀서 맞고... 그래서일까? 선감학원에 있은 지 3년 정도가 흐른 어느날, 직원이 다른 곳에 보내주겠다며 어디론가 데리고 가더래. 영수 씨는 직원을 따라 선감도 밖으로 나온 순간, 인파 속으로 도망을 쳐. 직원의 말이 사실인지, 어디로 데려가려는 건지,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래.

선감학원 원생들은 이렇게 다른 시설로 옮겨지거나, 탈출을 하거나, 그 곳에서 죽음을 맞은 거야.

▲ 폭로와 외면

선감학원은 그 곳에서 무려 40년이나 존속했어. 이 안에 벌어진 인권 유린에 대해 사람들은 몰랐던 걸까? 그 의문에 답을 주실 분이 있어. 1956년 선감학원을 직접 취재하신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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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도에 그때 이제 선감도를 가게 됩니다. 선감학원 원내에 내부 제보자를 받았어요. 제보내용이 선감학원 내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게 아니고 애들이 혜택을 받아야 할 것을 그들이 착복하는 거다 그런 내용이거든요."
-이창식, 당시 선감학원 취재 기자

이창식 기자는 동료기자 한 명과 같이 선감도로 향했어. 사전 연락 없이 갑자기 간 거야. 기자가 오니, 선감학원 직원들이 경계를 하더래. 가서 "원생들을 좀 만나고 싶습니다" 했더니 선감학원 직원들은 "수업중이라 안 된다" 핑계를 대며 원생들을 만나지 못하게 막아.

"못 만나게 하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왜 못 만나게 해요. 당연히 그건 기자의 감각 아니에요?"
-이창식, 당시 선감학원 취재 기자

직원들에게 제보 받은 내용에 관해서도 물어봤어. 그러자 직원들은 '문제가 없다, 애들한테 잘 하고 있다'며 오리발을 내밀어. 그런데 이 기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선감학원의 모습은 직원의 얘기랑 달랐어. 마주친 원생들의 모습은 남루하기가 말 할 수 없어. 삐쩍 마르고, 때가 낀 모습에, 입고 있는 옷도 형편없어. 원생들의 숙소에 있는 모포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일반 사람들도 살기가 어려울 때니까 '넉넉하지 못할 거다'라는 생각은 하죠. 그래도 기본이라는 게 있잖아요. 더구나 자라나는 어린애들이니까 그들은 이제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그런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또 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그게 안 됐다는 거…"
-이창식, 당시 선감학원 취재 기자

이 기자는 선감학원에 가서 본 것들과 내부고발자의 제보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어. 그 기사가 바로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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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랑아 수용에 이상. 기아에 떠는 원생. 막대한 예산은 어디다 사용?"

이 기사는 선감학원의 문제를 세상에 처음 드러낸 기사야. 이 기사가 나가고 뭐가 달라졌을까? 이창식 기자는 6년이 지난 1962년, 또 한 번 선감학원을 방문했어. 이번엔 경기도 도지사도 함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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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도에 여길 6년 만에 간 거 아닙니까. 이 신문 보도하고 나서… 그런데 가보니까, 뭐 바뀐 건 별로 없더라고요. 모포를 담요 개 놓은 걸 푹 찔러서 이렇게 들어. 어머 그랬더니, 너덜너덜하더라고요 담요가. 그러니까 처음에 보도하고 나서 6년 만에 가서 보고도 아, 이게 참 문제가 있어도 보통 문제가 아니로구나… 뭔가 개선되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창식, 당시 선감학원 취재 기자

그 후에도 몇 차례 선감학원의 문제점에 대한 기사가 나왔어. 많은 사람들이 선감학원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는 거야. 그럼에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할 사람들이 알고도 방치하고, 무시하며 40년의 비극을 만든 거야.

▲ 꿈을 빼앗긴 소년들

선감학원에서 나온 일용 씨와, 영수 씨, 그리고 찰떡 형제의 삶은 어땠을까?

찰떡 형제는 다른 시설로 갔다고 했잖아. 그 시설에서 형제를 해외입양 보내려 했어. 근데 형은 안 가겠다고 했대. 대신 동생만 좋은 곳에 보내달라고 했어. 왜? 둘 다 해외로 떠나면 영원히 가족과 헤어지게 될까봐. 형은 남아서 가족을 찾고, 동생을 데리러 갈 생각이었대. 그래서 동생을 두고 시설에서 도망을 쳐. 남은 동생은 어떻게 했을까? 동생도 도망을 쳐. 형을 찾으려고... 그리고, 다시 만난 형제는, 진짜 부랑아가 돼. 부랑아가 아니었던 형제가, 국가가 말한 진짜 부랑아가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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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라나야 된다'라고 하는 생각이 있었다면 시설에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재원을 좀 더 많이 투자하고, 제도들을 만들어 왔을 텐데. 강제로 수용되는 그 삶 이외에 다른 방식의 삶을 상상하기 어렵고, 그래서 도망을 가거나 정식으로 퇴소를 해도 안정된 삶의 기반을 갖지 못하고…"
-하금철, 前기자

선감학원 이후, 일용 씨 삶도, 영수 씨 삶도 어느 것 하나 쉽지가 않아.

"나와서, 가족도 모르지 아무것도 모르지. 다른 사람들하고 어울리다 보니까, 좋지 못한 생활도 많이 했었고요."
-최영수, 선감학원 피해자

일단, 학업이 단절됐어. 초등학교 졸업도 못한 분들도 많이 계셔. 가족을 찾는 것 또한 쉽지 않아. 9남매 중 막내였던 영수 씨 또한 가족을 너무 찾고 싶었어. 가족에 대한 그리움만 키우며 40년의 세월이 흘렀어. 그러던 2016년 8월, 화물차 기사로 일하고 있던 영수 씨에게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나. 그날, 영수 씨가 자주 가는 카센터에서 전화가 걸려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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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카센터 사장님의 장인어른하고 저하고, 형님 아우 하는 사이예요. 그 양반이 바로 저한테 전화를 했더라고. '야 영수야. 네 형 같은데. 네 형인데? 너 저기 어디 안산 감자골이 고향이야?'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여기 계시다'는 거예요. 차를 가다가 돌려가지고 막 바로 카센터로 갔어요."
-최영수, 선감학원 피해자

믿기 힘든 일이잖아. 헤어진 지 40년이 넘게 흘렀어. 영수 씨는 카센터로 향하는 1시간 동안 별 생각이 다 들었대. 그렇게 도착한 카센터. 차를 세우고 내려서 보니 한 남자가 보여. 두 사람은 서로를 자세히 봐.

"형? 영렬이 형?"

"영수야! 너 영수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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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형이 맞았어. 형제 중에 영수 씨랑 가장 많이 닮았던 셋째 형, 열렬이 형이 맞는 거야.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어.

영수 씨는 가족을 만나면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대. 가족이 자신을 얼마나 찾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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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얼마나 찾았는지 아느냐, 엄마가… 혹시 모르니까 집에서 매일 엄마는 매일 저쪽을 사리역 쪽만 쳐다보고 계시고. 혹시 오지 않을까. 열차 올 시간 되면 엄마는 꼭 역전에 가서 기다리셨대요. 혹시 내가 열차 타고 오지 않을까 하고.. '올 거다. 올 거다' 하면서. 엄마는 말도 못 하게 우셨대요. '죽지는 않았겠지? 죽지는 않았겠지' 하면서… 말도 못 하게 그냥 걱정 걱정 속에 사셨다 하시더라고요."
-최영수, 선감학원 피해자

영수 씨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어머니는, 몇 년 전 이미 돌아가셨다는 거야. 돌아가시기 전까지 어머니의 바람은 하나였어. "죽기 전에 우리 막내 얼굴이라도 한 번만 봤으면 좋겠다"는 것. 영수 씨는 형을 만나고 그 길로 함께 부모님 묘소를 찾았어. 영수 씨가 부모님 묘소에서 가장 처음 꺼낸 말은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해요"였어.

비록 부모님을 직접 뵙지 못했지만, 이 기적 같은 만남 덕분에 영수 씨는 지금도 가족들과 자주 왕래하며 지내고 계신대.

일용 씨는 지금까지 가족을 찾지 못했어. 찰떡 형제는 다행히 가족과 만났대. 그런데, 찰떡 형제의 형은 가족 외에 꼭 찾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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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 선감도를 찾아가요. 그 고통 속에 있었으면서 '왜 찾아가냐'라고 반문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묘역에는, 어쩌면 저 때문에 죽은 친구가 한 명 잠들어 있고요. 그런데 나중에 찾아가 보니까 그 아이를 내가 어디다 묻었는지 기억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갈 때마다 미안하고, 갈 때마다 보고 싶고… 갈 때마다 묘역에서 눈물 흘리면서.. 어디 있니? 나 너 보고 싶어…"
-찰떡 형제 형

선감학원에서 유일하게 힘이 되어준 내 친구 망치. 본인이 직접 묻었지만, 묘비도, 표식도 없는 친구의 무덤을 찾을 수가 없는 거야.

그런데 그 친구를 2023년, 바로 작년에 찾았대. 도대체 어떻게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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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2022년에 이어, 작년에도 선감학원 암매장 추정지에 대한 유해시굴을 진행했어. 이번엔 분묘 40기를 대상으로 시굴했는데, 이 중 15기에서 유해인 치아 210점과 금속고리 단추, 직물 끈 등 유품 27점이 발굴됐어. 그리고 선감학원 피해자 SNS 단체방에 이 내용들이 전해졌어. 그 내용을 보던 형은 깜짝 놀라. 유품을 찍은 사진 중 한 장을 보는 순간, 내 친구 망치 얼굴이 떠올랐거든. 바로 이 사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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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망치가 함께 바닷가에 가서 굴을 까먹곤 했잖아. 망치가 썼던 굴 까는 도구라는 걸, 형은 단번에 알아본 거야. 형은 망치를 만나기 위해 직접 현장으로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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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답답했을까… 내가 너 찾지도 못하고… 이렇게 있었냐.. 차가운 데 있었어..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을거야… 미안하다 미안.. 자주 올게 그래도. 나는 여기 없어도, 나 여기 자주 올 때마다 봤지? 너 나와 있어도 나 자주 올 거야. 이제 편히 쉬어. 나도 이제 너 생각 조금 덜 할게."

그렇게 형은, 친구 망치에게 40년 만의 인사를 건넸어.

▲ 아직도 남아있는 친구들

현재까지 시굴한 분묘는 45기에 불과해. 아직 발굴하지 못한 분묘들이 많이 남아 있어. 다행히 얼마 전, 경기도에서 유해 발굴을 직접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예산을 긴급 편성했다고 해.

그리고 2022년 10월, 진화위에서 선감학원 사건을 국가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결정했어. 법무부, 행정안정부, 보건복지부, 그리고 경찰, 경기도까지, 모두 인권유린에 책임이 있다며 공식적인 사과를 권고했어. 하지만 지금까지 경기도지사의 공식 사과만 있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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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랑아 갱생과 교육이라는 명분 아래 국가가 어린이 수천 명의 인권을 유린한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심각한 국가 폭력으로 크나큰 고통을 겪으신 생존 피해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경기도지사로서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2022. 10. 19. 진화위 기자회견장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

현재 경기도에서는 선감학원 피해자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어. 근데, 경기도 거주자 밖에 받을 수 없다고 해. 법적으로 도의 예산은 해당 도민에게만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래. 그래서, 지원금을 받기 위해 경기도로 이사를 오는 사례까지 있대. 현재, 국비 지원을 명시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이지만,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어. 진실이 밝혀지는 것과 더불어 피해에 대한 회복이 뒤따라야 선감학원 사건은 진정한 마무리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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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선감학원 피해자가 직접 그리신 그림이야. 종이학을 타고 날고 있는 소년. 종이학을 타고 바다를 건너 선감학원 밖으로 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오래 전 그 날, 한 소년의 간절했던 꿈은 지켜주지 못했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 그리고 미래의 아이들은 함께 지켜줬으면 해.

이번에 인터뷰에 응해 주신 분들의 꿈은 과연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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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이 안 죽었고… 안 죽었을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 살아서 밥도 같이 먹고, 여행도 같이 다니고. 이러면서 뭐 인생 얘기도 하고. 이렇게 살았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허일용, 쌍둥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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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공부를 하고 싶어요. 이제 살아야 얼마나 더 있겠냐고. 그렇지만, 그동안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해서 더더욱 공부를 하고 싶어요."

-최영수, 선감학원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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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제 인생에 대해서 소중하게 정말 열심히 그렇게 살고 싶어요.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내 인생을 이렇게 살아온 것 자체도 너무.. 감추려고만 했던 그게 좀 후회스럽기도 하고. 조금 더 당당하게 살고 싶어요."
-찰떡 형제 동생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지며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한 체포, 구금, 수색, 심문, 처벌,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이건 대한민국 헌법에 있는 내용이야. 하지만 선감학원 아이들은 이런 권리를 단 하나도 누릴 수 없었어. 누구도, 어떠한 이유로도, 절대 빼앗아서는 안되는 그들의 권리이자 그들의 삶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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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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